전출처 : stella.K > [스크랩] 음악소스 출처들과 가져오는 법

 출처 : 수빈이의 다락방

처음 방법은 음악 들으실 때에 미디어 플레이어를 이용하실 경우에
음악 소스를 가져오는 방법입니다.
두번째 방법은 좋아하시는 음악 사이트 가사 정보를 클릭해
음악 소스를 가져오는 방법이랍니다.
요청을 받고 한번 올려 봅니다.
예전에는 벅스뮤직을 선호해 듣곤 했었는데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방법 하나:



방법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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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키노 > 와인 초보라고 기죽지 말자! Best20

차츰 대중적인 술로 떠오르고 있는 와인. 한번쯤 우아하게 즐기고 싶은데 만만치 않은 가격과 수많은 종류 때문에 망설여진다면…. 여기 내 주머니 사정에 맞춰 최고의 와인을 찾아내는 법이 있다. 소믈리에가 추천한 가격대별 베스트 와인을 만나보자.   
와인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

와인의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온도. 4℃ 이하로 차게 마시면 와인의 향을 알 수 없고 혀도 마비되어 맛을 느끼지 못한다. 또 너무 따뜻하게 마시면 와인이 무겁고 알코올 도수가 높게 느껴져 신선한 맛을 즐길 수 없다. 와인은 종류에 따라 적정 온도가 달라지는데, 이는 와인의 떫은맛을 내는 타닌 성분 때문. 타닌은 온도가 낮아지면 거칠어져 제 맛을 내지 못하므로 타닌 함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레드와인은 실온에서, 타닌 함량이 적은 화이트와인은 약간 차갑게 마시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레드와인은 15~18℃, 화이트와인은 10~12℃가 적당하다.
와인 액세서리

코르크 스크류 | 코르크 마개를 따는 데 쓰이는 도구. 와인을 세워서 보관하면 코르크가 말라서 스크류를 사용할 때 부서질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 소믈리에 나이프는 호일 커팅 나이프가 따로 있고 지렛대의 원리로 마개를 열 수 있는 전문가용 오프너. 호일 커팅 나이프가 톱처럼 생긴 것이 좋고 손잡이 부분이 나무로 마감한 것이 사용하기에 편하다.   
와인 스토퍼 | 먹다 남은 와인을 보관할 때 사용하는 도구. 와인의 맛과 향이 사라지지 않도록 공기와 접촉하는 것을 막아주며, 병이 넘어졌을 때 와인이 새는 것도 방지한다.
디켄터 | 와인을 마시기 전에 침전물을 걸러내는 디켄팅을 하기 위한 도구. 병에 든 와인을 유리 용기에 따라두면 침전물이나 부서진 코르크 조각을 분리할 수 있다. 또 와인이 공기와 닿아 풍미가 좋아진다. 디켄팅이 필요한 와인은 숙성 기간이 오래된 레드와인으로, 적어도 하루 전에 병을 세워 침전물을 바닥으로 가라앉힌 뒤 디켄팅한다.   
아이스 버킷 | 차갑게 즐기는 화이트와인이나 샴페인을 서빙할 때 상온에 두었던 와인을 급하게 냉각시키는 도구. 내부가 2중으로 된 것일수록 냉각 효과가 오래 지속된다. 아이스 버킷에 물과 얼음을 4분의 3 정도 채운 뒤 와인병을 넣어두었다가 서빙한다.
가격대별 와인 셀렉션

▼1만~3만원

1 Calina Reserve 2001 C/S ‘calina’는 스페인어로 ‘새벽 안개’란 뜻. 입 안을 조여주는 진한 타닌 맛이 이 가격대에선 최고.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홈바에 앉아 박신양과 이동건이 대작하던 와인. 칠레산, 1만9천2백원, 아영주산. 2 Private Bin Sauvignon Blanc 입 안에서 긴 여운을 남기는 달콤한 맛. 청량감이 강하고 오렌지, 파인애플, 자몽 등 과일 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산미, 알코올, 풍미의 전체적인 밸런스가 잘 잡힌 와인. 뉴질랜드산, 1만8천원, 신동와인. 3 Villa Muscatel ‘작업의 명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매혹적인 맛. 심플한 녹색병에 가면을 형상화한 레드 마크가 인상적이다. 술을 전혀 못하는 영화배우 한석규가 유일하게 마실 수 있는 와인. 이탈리아산, 2만9천5백원, 아영주산. 4 Rosemount Cabernet Sauvignon Merlot 로즈마운트는 브랜드만으로 마니아들의 구입 리스트에 들어갈 정도로 안정적인 맛을 선보이는 와인 시리즈. 가격 대비 최고의 와인으로 초보자들에게 적극 추천. 호주산, 1만5천4백원, 신동와인. 5 Alamos Malbec 말벡이라는 포도 품종은 큰 인기를 끌지 못했으나 아르헨티나에서 훌륭한 와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적당한 타닌과 연한 달콤함이 조화를 이룬 와인. 아르헨티나산, 2만1천원, 아영주산.

▼3만~5만원

1 Robert Mondavi Costal P/S Merlot 온도 조절이 가능한 56개의 거대한 프렌치 오크통 발효조를 통해 만들어낸 강건한 베리의 맛이 특징. 잘 익은 과일 맛과 부드러운 타닌으로 끝맛이 편안하다. 미국산, 3만8천원, 신동와인. 2 Goumenissa Boutari 2001 ‘그리스의 와인 품종을 다 아는 것은 바닷가의 모래알을 다 아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채로운 품종을 자랑하는 그리스 와인. 긴 여운을 남기는 타닌 맛이 인상적이다. 4만2천원, 리쿼타운. 3 Kendal Jackson Vintner's Reserve Cabernet Sauvignon 캘리포니아의 전형적인 프리미엄 와인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캔달 잭슨 와이너리. 브랜드의 값어치를 하는 풍부하면서 균형 잡힌 맛이 좋은 와인이다. 미국산, 5만원, 아영주산. 4 Carmen Nativa Cabernet Sauvignon 칠레 와인의 이미지를 바꿔줄 만한 우아한 맛이 특징. 부드러운 카시스와 바닐라의 은은한 향이 느껴지며, 적당한 타닌이 입 안으로 퍼지는 맛이 좋다. 칠레산, 4만8천원, 두산주류 BG. 5 Valdubon Cosecha 2003 스페인의 카베르네 소비뇽이라고 불리는 고유 품종 ‘템프라니요’로 만든 와인. 과일 향이 진하며 살짝 느껴지는 매운 향이 정열의 나라 스페인의 풍미를 잘 살려준다. 스페인산, 4만2천원, 포도나무와인.

▼5만~7만원

1 Gloria Ferrer Syarh 시라는 프랑스 북부 론 지역의 품종이지만 미국에서 훌륭하게 재탄생했다. 타닌 맛이 강하며 스파이시한 향과 참나무의 향이 멋진 하모니를 이루는 와인.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미국산, 5만9천원, 포도나무와인. 2 Etesian Pinot Noir 피노 누와는 와인을 만들기가 가장 까다롭다는 품종으로 그만큼 매력적인 맛을 자랑한다. 탤런트 채시라가 극찬한 와인. 미국산, 5만9천원, 포도나무와인. 3 Connetable Tablot 2001 샤토 탈보의 세컨드 와인. 세컨드 와인이란 엄격한 기준에 못 미치는 와인을 퍼스트 라벨에 포함시키지 않고 별개의 브랜드로 출시하는 것. 저렴한 가격에 고급 와인의 맛을 느낄 수 있다. 프랑스산, 5만1천원, 두산주류 BG. 4 Lucentte 1999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와인 생산자로 유명한 프레스코발디 가문의 와인으로, 로베르트 몬다비 와이너리와 합작으로 만든 고급 와인 중의 하나. 이탈리아산, 6만6천원, 신동와인. 5 Gallo Stafani Cabernet Sauvignon 1998 혀의 촉감을 살짝 마비시킬 듯 강렬한 타닌 맛이 긴 여운을 남긴다.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마셔보아야 할 와인. 미국산, 6만5천원, 두산주류 BG.

▼7만~10만원
1 Chateau Talbot 2001 백년 전쟁의 영웅 ‘마샬 탈보’의 이름을 딴 고급 와인. 은은한 과일 향과 오크 향, 풍부한 타닌의 조화가 매력적이다. 탤런트 송일국이 좋아하는 와인. 프랑스산, 7만9천8백원, 두산주류 BG. 2 Robert Mondavi Napa Valley Cabernet Sauvignon 전통적인 로베르트 몬다비 와이너리의 저력을 감상할 수 있는 와인. 과일과 바닐라, 오크 향을 비롯해 신선하고 달콤한 클로버 향과 은은한 수선화 향까지 느낄 수 있다. 미국산, 7만3천원, 신동와인. 3 Jordan Cabernet Sauvignon 밸런스가 좋은 최상급의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으로 달콤한 맛의 여운이 오래 지속된다. 진한 루비색을 띠며 소장 가치가 있는 와인. 미국산, 8만2천원, 신동와인. 4 Lafon Rochet 1997 선물용으로 아주 좋은 와인으로 명성에 걸맞게 뛰어난 맛을 자랑한다. 숙성되면 놀랍도록 부드러운 맛이 나는 전형적인 생테스테프 와인. 프랑스산, 7만7천원, 신동와인. 5 Cava Cambas Red ‘헤라클레스의 피’로 불리는 그리스만의 대표적 품종 ‘아이오르이티코’로 만든 와인. 병 입구를 진흙에 담갔다가 말려서 출시한다. 그리스산, 7만2천원, 리쿼타운.

도움말 / 김기우(QM인터내셔널 외식업 부분 이사)  제품 / 포도나무와인(353-4578)·리쿼타운(031-916-7905)·신동와인(794-4531)·아영주산(2631-2303)·두산주류 BG(3398-1616) 진행 / 성하정 기자  사진 / 송미성 

레이디경향   2005-06-21 12:08:48  

워낙 많은 종류의 와인이 출시되어 있는지라 뭘 선물해야할지 몰라 인터넷 사이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발견한 글인데 괜찮은 정보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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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자꾸만 우울해진다.

마치 침몰해가는 범선처럼 나의 정신도 육체도 한없이 나약해진다는 것을 느낀다.

규격화되고 잘 정돈된 삶, 투쟁할 것도 도전할 것도 없는, 그저 끌려가기만 할 뿐인 이 삶이 나를 더할 것 없이 나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호사스럽다! 그렇다! 이런 깡통소리를 지껄여댈수 있는 것도 호사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호사스러움이 나를 질식케 한다.

건조하고 지루한 일상의 호사스러움이 나를 파괴하고 있다는 걸 요즘처럼 많이 느낀 적이 없다. 난 전장을 갈구한다. 숨 쉴 수조차 없는 치열한 전투의 참호 속을!

그곳이라면 난 자유를 느낄지도 모른다.


가끔 난 시계태엽인형 같다. 사실 내 삶은 매우 단조롭다. 항상 일어나는 시간도 같고, 취침시간도 거의 일정하다. 식사시간도 일정하고, 식사 메뉴 또한 그러하다. 난 뭐든 만들어 먹는걸 귀찮아한다. 사먹거나 아님 인스턴트로 때운다. 뭔가를 준비하고 씻고 다듬는 과정이 나를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에게 식사란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보충하는 일련의 과정에 불과하다.


가끔 여자 친구는 밥 먹는 걸 지켜보다가 박수를 딱 쳐서 내 주의를 환기시킨다. “정신 차려! 뭐해?” 내가 밥 먹는 도중 또 시선을 멍하니 두고 그저 되새김질에만 열중하는걸 몰래 본 모양이다. 난 자주 이런 핀잔을 듣는다.


나라는 시계태엽인형은 건조한 아스팔트 위를 태엽이 다 풀려버릴 때까지 마냥 걷고 싶지는 않다. 차라리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고 싶다.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바동거릴망정 태엽이 멈쳐버릴때까지, 그 태엽이 언제 멈쳐버릴지도 모르는 알 수 없는 곳에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힘없이 주저앉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전혜린은 그의 글에서 스스로를 아스팔트 킨트(Asphalt-Kind: 아스팔트만 보고 자란 도회의 고향 없는 아이들)라 고백했다. 나또한 그러하다. 그녀처럼 나에게도 고향이 없다. 난 도시에서 태어나 지금도 도시에서 살고 있다. 나에게 딱히 고향이라 부를만한 안식처는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았다. 돌아갈 곳이 없는 나는 그저 회색의 포도와 레몬빛 가스등 사이를 정처없이 부유할 수밖에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이다.


쉽게 잠들 수 없는 이 밤! 난 아파트 베란다로 나갔다. 그 곳만이 그나마 나에게 숨 쉴 만한 작은 공간을 내어줄 것이라 믿었기에 그러했다. 3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나처럼 잠들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파트위에서 드문드문 비치는 작은 불빛들...

저 너머에 동지가 있는 것이다. 난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세상에는 나 혼자만이 아니구나하는 안도감!

도시는 밤의 어둠이 장막처럼 내려앉는 그 때, 차갑고 청량한 공기와 코발트 빛 안개가 도시의 추악함과 메마름을 삼켜버린 후에야 비로소 아스팔트 킨트들에게 고향을 안겨주는 것이다.


갑자기 Bruckner가 듣고 싶어졌다. 여지없이 피아니시모와 현의 트레몰로로 시작되는 브루크너만의 심연 속으로 젖어 들고 싶은 것이다. 그 곳만이 안식을 줄 거라 믿기에...


브루크너 7번의 Adagio!

브루크너의 매력은 멜로디나 선율에 있는 것이 아니다.

<共鳴>!

바로 함께 울리는 것! 공간을 홀로 점유한 채 울리는 소리의 파장에 몸을 맡기는 것, 부유하는 것! 그것이 극도의 쾌감을 준다. 그래서 브루크너의 음악은 혼자 듣는 것이다. 낯선 타인과 함께라면 공명할 수 없다!


영혼의 소박함을 송두리째 강탈당해 버린 현대인은 자신만의 자아의 망집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타인과의 교감은 어쩌다 이루어지는 환상과도 같은 것. 달콤했던 환상이 깨어지면 남는 건, 처절하리만치 잔인한 고독 밖에 없다.

찢겨져 버린 영혼을 웅켜잡은 채 우리는 다시 무표정하고 어두운 일상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끝없이 반복되는 것.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이다.

하지만 부르크너를 듣노라면, 심연 속으로 젖어들어 갈 수 있다. 한줄기 빛조차 다다를 수 없는 절대의 공간, 그 장엄한 침묵의 심연 속에서 무한히 부유하고 있노라면,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다.

그 어두운 침묵의 심연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태어난 고향이므로...


"I've seen things you people wouldn't believe. Attack ships on fire off the shoulder of Orion. I watched C-beams glitter in the dark near the Tannhauser gate.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난 너희 인간들이 믿지도 못할 것들을 보아왔지. 오리온 좌에서 불타오르는 전함들. 난 탄호이저 게이트 근처에서 어둠을 가로지르는 C 빔의 불빛도 보았어. 그 모든 순간들이 시간 속에서 사라지겠지. 마치 내리는 빗속의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마지막 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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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thoven String Quartet No. 15 OP. 132


이 곡을 처음 듣게 된 건 영국의 소도시 Cambridge였다. 캠브리지는 매우 작은 도시인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서울 면적의 1/20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느끼기엔 서초구보다도 적을 듯 싶었다. 캠브리지의 City Center에는 가끔 거리에서 마임을 보여주거나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거나 현악 4중주를 들려주곤 하는 무명 음악가들의 공연이 있었는데, 자신의 테이프나 CD를 자작해서 사람들에게 팔곤 했다. 대부분 Complication 음반이었고 가격은 5-10파운드(10000-20000내외) 정도였는데, 단순히 그들의 생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불우 이웃을 돕는 자선 기금같은 의미도 있어서인지 그리 비싸다고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느 날 장을 보기위해 우연히 City Center를 지나치다 아련한 현악기의 음색이 들려왔고, 소리를 쫓아가다 보니 남자 3 여자 1로 구성되어 있는 4중주단을 만나게 되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음악을 조용히 경청하던 터라, 나도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의 틈새로 비집고 들어가기위해 용을 써야만 했다. 낯선 도시 한복판에서 울리는 베토벤! 그것이 내가 처음 듣게 된 베토벤의 현악 4중주곡이었다.


순간적인 감흥에서였던가, 아님 뭔가 좋은 일에 나도 한 몫 끼어보고자 하는 저열함에서였던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나도 그들의 테이프를 하나 구입하게 되었고(그 땐 CD를 사기엔 웬지 돈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음반 중 하나가 되었다.


친숙하게만 느꼈던 베토벤의 String Quartet에 대한 나의 인식은 이른바 “高手”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글을 읽게 되면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었고, 특히나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에 대한 여러 비평가들의 극찬이 실린 평론이나 저서들을 접하게 되면서부터는 완전히 손을 떼게 되었다. 그건 <나의 무지에 대한 수치감> 때문이었다. 제대로 발음조차 할 수도 없었던 무수한 음악용어들과 생소하게만 들리는 연주자들의 이름, 수많은 음반에 대한 비교 비평은 나의 기를 확실히 죽여 놓는데는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고수들이 추천하는 여러 음악이론서, 평론서, 잡지, 음반 가이드를 섭렵하고 난 후 다시 베토벤의 현악 4중주를 접했을 때, 난 정말 그들이 말한 것처럼 클래식은 아는 것만큼 들린다라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아는 것이 아닌 그들이 아는 것, 내가 지식으로 알고 있던 것만을 들을 수 있었다. 음악적 지식에 대해 전무했던 시절,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좋아서 들었을 때 내가 느꼈던 감동! 나의 언어로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을 그동안 모두 잃어버렸던 것이다. 난 그저 그들이 나에게 말해주었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읊조리는 전달자에 지나지 않았다.(나중에서야 그들도 서로서로 배낀다는 걸 알게 되었다. 특히나 국내에서 출판되는 음반 평론서나 음악해설서는 일본 서적을 그대로 표절해놓고서는 자신의 것처럼 포장하는 걸 자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Snob라고 불렀다.


음악이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음악을 듣는 걸까?

즐기기 위해서 듣고, 기분이 좋아지거나 위로 받기 위해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닌가?

자신이 즐기기 위해서가 아닌 타인의 취향을 단지 이해하기 위해 음악을 접하게 되면 그 순간 음악은 고통이 되고, 그 곳은 지옥이 된다.

 

음악은 강요해서 들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접어 두면 된다. 그것 말고도 좋은 건 너무나도 많다.

많은 사람들이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 작품들을 어렵다고 말한다.

듣기 위해선 뭔가를 준비해야 할 것 같고, 체계적으로 공부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리라.

 

음악은 이성이 아닌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심오한 철학이나 음악 이론을 알지 못하면 느낄 수 없는 음악이 있다면 그건 음악이라 말할 수 없다고 단언해도 좋다. 음악을 듣는데는 두 귀만 있으면 충분하다.

명곡 라이브러리나 명곡 해설서 따윈 던져버리고 가만히 들려오는 현의 울림에 귀 기울여보자. 이제 베토벤의 현악 4중주가 더 이상 케르베로스의 포효처럼 괴롭게 들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체를 찾기 위해 기꺼이 지옥으로 내려간 오르페우스의 하프가 지옥의 군주 하데스를 감동시킨 것처럼, 만약 당신이 조용히 귀를 기울일 수만 있다면,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제 15번 OP.132는 당신을 충분히 감동에 떨게 만들어 주리라.


이런 의미에서 부제를 랭보의 시선집 <지옥으로부터의 자유>에서 붙여보기로 했다.

그리고 베토벤 현악 4중주 제 15번을 이토록 더 잘 묘사할 수 있는 말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 안에서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작곡 배경을 잠시 살펴보면 베토벤이 이 곡을 작곡할 당시(1825년)는 그에게 있어서 지옥 그 자체였다. 동생의 죽음으로 후견인을 맡게 된 조카 Karl은 베토벤의 헌신적인 보살핌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방황과 타락으로 그를 괴롭혔으며, 지속적인 장의 염증과 여러 질병으로 인해 육체적으로도 그는 이미 죽음을 앞둔 초로의 노인에 불과했다. 지옥과도 같았던 현실,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짙은 그림자와 회한. 그것이 이 곡에 너무 잘 나타나 있으며, 단적으로 난 이 곡을 한 인간이 죽음을 앞두고 그려내는 슬픈 서정시! 라고 부르고 싶다.


E. Kbler Ross 박사는 죽음을 앞둔 수많은 환자들을 면밀히 관찰한 결과 다음과 같은 임상학적 결론을 도출해 내었는데,

이를 The Stages of Kbler Ross라고 부른다.


 제1 단계는 부정(Denial)의 단계이다. 대부분의 모든 사람이 암과 같은 죽음의 선고를 받게 되면 처음에는 강하게 부정한다. '아니야, 난 믿을 수 없어.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어' 하면서 자신에게 죽음이 임박했음을 부인한다.


제 2단계는 분노(Anger)이다. '하필 그 많은 사람 중에 내가'하며 자신이나, 가족, 병원 직원에게 분노를 나타낸다. 신을 저주하거나 주위에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 죽음의 단계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이다.


제 3단계는 타협(Bargaining)의 단계이다. 첫 단계에서는 슬픈 현실을 대면할 수가 없고, 둘째 단계에서는 사람들과 신에게 노골적으로 분노를 표현하고 나면, 사람은 타협을 시도하게 된다. 그래서 불가피한 사실을 어떻게든 연기하려는 의도를 내보인다. 과거의 경험으로 미루어 착실한 행동을 보이고 특별한 헌신을 하기로 맹세함으로써 그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의 소망은 생명을 연장하는 것, 며칠이라도 좋으니 통증이나 신체적 불편 없이 보냈으면 하는 것이다. 이때의 타협은 보통 절대자와의 타협이라고 할 수 있다.

 

제 4단계는 깊은 우울증(Depression)의 단계이다. '이젠 도저히 희망이 없구나'라면서 심한 우울증에 빠진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남아 있는 가족들에 대한 걱정, 자신의 무력감에 대해 울기도 하고 조용히 있기도 한다.


제 5단계는 수용의(acceptance) 단계이다. 죽음을 받아들인다. 죽음을 수용한 후에는 마지막까지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자기 운명을 받아들이고 분노하거나 우울해 하지도 않는다. 극도로 지치고 쇠약해진 상태이다. 혼자 있고 싶어하기도 하고 언어보다 무언의 언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머나먼 여정을 향해 떠나기 전에 취하는 마지막 휴식의 시간인 것이다.


분명히 모든 사람이 동일한 과정을 거쳐 죽음을 수용하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같은 단계를 밟아나가며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는 있다고 본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제 15번 OP. 132는 5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래는 4악장으로 만들 생각이었으나, 병으로 작곡을 중단했다가 나중에 3악장의 계획을 바꾸기로 결심하면서 악장이 하나 늘어나, 5악장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물론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겠지만, Kbler 박사의 죽음의 5단계와 5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의 구조가 웬지 모르게 닮았다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고, 난 이를 내 감상의 주된 Point로 삼았다.

 

일단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제 15번의 개관을 살펴보자


제 1악장:Assai Sostenuto-Allegro  

소나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 1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제 1주제는 매우 어두운 반면 제 2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제 2 주제는 조금 밝은 음색을 띄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서주의 동기가 악장 전체를 누르고 있어 음울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어느새 병든 초로의 노인이 되어버린 베토벤이 자신에게 짙게 드리워진 죽음에 대한 그림자를 애써 털어버리려는 듯 제 1 바이올린은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여리게 자신의 고통과 회한을 나지막하게 고백한다. 이에 비해 제 2 바이올린은 부드럽게 그의 슬픈 영혼을 어루만지듯이 유연하게 펼쳐진다.


제 2악장:Allegro Ma Non Tanto

A-B-A의 3부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 1 바이올린은 지속적으로 같은 주제를 반복하고, 제 1바이올린을 제외한 비올라와 첼로가 제 1 바이올린의 선율을 이어 받아 주제를 다시금 강조하는 방식이다. 지속적인 질병과 극심한 정신적인 고통으로 말미암아 인내의 한계에 다다른 베토벤이 절대자를 향해 <정말 그래야만 하는가?>라며 자신의 분노를 은은하게 표출하는 듯이 느껴진다.


제 3악장: Molto Adagio

베토벤 자신이 제 3악장의 서두에 “리디아 선법에 따른 병이 회복된 자의 신에 대한 성스러운 감사의 노래”라고 표기해 놓은 것처럼 베토벤 현악 4중주 전곡 중에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선율을 가지고 있는 악장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리디아 선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ETHOS이론(인간의 지성적인 면이 아닌 비지성적인 면(감성)을 습관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이론으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음악은 인간의 성격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그것이 윤리적 가치를 가졌을 때만 허락되어야 한다라는 것)에 의하면 음악에 사용해서는 안되는 선율이다.

인간의 나약한 심정을 드러내고 슬프고 억압된 감정을 창출해내기 때문에 음악은 마땅히 즐거워야 한다고 믿고 있었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아폴론적 음악에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선법으로 활용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인간의 내면을 투영하고 사색하기에 가장 적합한 감정상태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이유에서였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가장 평온해지며 타인을 향한 무한한 배려심과 사랑이 흘러넘칠 때가 바로 타협의 단계이다. 자신이 일생을 통해 저질렀던 죄악에 대한 두려움과 내세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인해 어떤 방식으로든 선한 행위를 하려고 하며, 그 선한 행위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병원에서는 이 단계를 겪고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죽고난 후 신체를 기증하겠다는 약속을 가장 빈번하게 한다고 한다.


제 4악장: Alla Marcia, Assai Vivace


짧은 2부 형식의 행진곡 풍이다. Kbler 박사에 의하면 깊은 우울증으로 울기도 하며 조용한 사색의 시간을 가질 때이지만 베토벤은 아마 독방에서 조용히 흐느끼고 싶진 않았나보다. 울기보단 차라리 활짝 웃어보이기로 마음 먹었을지도,,,,

자신의 그런 마음을 애써 숨기고 싶었는지 구성면에 있어서도 가장 짧다.


제 5악장:Allegro Appassionato


론도 형식으로 경쾌한 리듬과 빠른 속도로 환희에 찬 열정을 노래한다.

베토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양식은 그가 삶을 바라보는 양식과 다를바 없다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그는 언제나 <그래야만 했다> 굴종하기 보단 반항했고, 패배하기 보단 승리하기를 원했다.

그가 평생 바랬던 이상적인 영웅 <프로메테우스>처럼 극한의 상황에서도 포기보다는 투쟁을 원했던 것이 베토벤이었다.

난 그런 그가 살고자 했던 진정한 삶은 화려한 영웅이 아닌 처절한 戰士의 삶이었다라고 믿고 있다.


마지막으로 루쉰의 짧은 산문을 실으며 글을 맺고자 한다.


사실 戰士의 일상생활이란, 결코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노래하고 울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노래하고 울어야 할 것과 무관한 일도 없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전사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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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벨의 앉아있는 데몬
Tchaikovsky! 그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난 그를 결코 살인자가 될 수 없었던 오이디푸스로 이해하고자 한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 처음 등장한 이 불행한 사나이는 피할 수 없는 저주받은 운명의 굴레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이름(오이디푸스는 퉁퉁부은 발이란 뜻이다)이 빚어내는 숙명처럼 마음의 안식을 갖지 못한 채 영원히 세상을 떠돌아야만 했다.


차이코프스키 또한 그러했다. 다만 그가 오이디푸스와 달랐던 점은 그는 아버지를 결코 죽일 수 없었다는 것. 그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를 증오하기 보다는 스스로를 불사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만이 달랐을 뿐이었다.


차이코프스키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열정과 냉정사이>라는 소설의 제목만큼 합당한 말을 찾기도 어렵다는 걸 느낀다. 그를 평생 사로잡고 있었던 고통의 근원도 그것이었고, 그의 위대한 예술을 낳게 한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평행하게 달리는 이 두 선로(열정,냉정)는 언젠가는 만날 것 같은 희망으로 끝없이 내닫게 만들지만, 실상은 영원히 달려도 결코 만날 수 없는 숙명을 처음부터 갖고 태어난 것이다.

 

그를 결코 헤어날 수 없는 숙명의 굴레로 밀어놓은 그날(1850)의 아침으로 돌아가 보자.

1850년 어느덧 10살의 나이가 된 차이코프스키는 그가 살던 조그만 시골 마을 보트킨스크를 벗어나 당시 로마노프 왕조가 지배하던 러시아 제국의 수도 <성 페테르부르크>의 법률학교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간단한 입학 수속을 마친 후 사랑하는 어머니 알렉산드라가 타고 있던 마차가 막 그의 곁을 떠나려던 참이었다. 어머니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던 차이코프스키를 만류하기 위해 사람들은 그의 가녀린 어깨를 꽉 쥐고 있어야만 했다. 어머니가 타고 있는 마차가 그의 시야에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하자, 참을 수 없는 열정과 격정에 사로잡힌 어린 차이코프스키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타고 있는 마차의 휠에 자신의 몸을 던졌다!

그의 이 유년시절의 기억은 영원히 그의 뇌리에 새겨졌고, 마차에 자신의 몸을 내던지고도 막을 수 없었던 어머니와의 이별은 4년 후 어머니가 콜레라로 사망함으로써 영원한 고별을 맞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유년기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으나 그것이 성장기간 중 자연히 해소가 됨으로써 근친상간이라는 심리학적,도덕적 장벽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라고.. (어머니가 또 다른 아이를 갖게 되어 자신이외의 다른 존재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 하게 되거나 성장 기간중 자신이 아닌 아버지가 어머니를 소유하고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면, 그는 자신의 사랑이 어머니를 결코 독점할 수 없다는 걸 자각하게 된다)

 

하지만 차이코프스키의 경우처럼 어머니에 대한 지나친 애정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소되지 못하고 억압되어, 심리적 근원으로 고착되어 버린 경우에는 심각한 정신 병리학적 증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가 평생 수치와 슬픔의 원천으로 느꼈던 그의 동성애적 기질과 조울증은 이런 유년기의 고통과 더불어 찾아온 것이었다. 몸을 던져서도 막을 수 없었던 어머니와의 이별은 그에게 <여성과의 사랑은 결코 이루어 질 수 없고 결국 이별로 끝이 날 수 밖에 없다>라는 것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게끔 했다.

 

한 때 그 자신도 이 저주받은 숙명을 그를 열렬히 사모하던 음악원의 제자 ‘안토니나 이바노브 밀류코바’와의 결혼으로 타개해 보려 했으나 진실한 사랑이 아닌 도피처로 선택한 결혼은 9주만에 파국으로 끝이 났고, 계속되는 밀류코바의 성관계 요구(그에게 여성과의 성관계는 곧 어머니와의 성관계를 의미했고 이는 근친상간에 다름 아니었다)는 그를 쇼크 상태로 몰아가기에 충분했다. 결국 이는 페테르부르크의 강가에 몸을 던지는 자살시도로 이어진다. 비록 자살은 미수로 끝이 났지만 48시간가량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그 이후 계속되는 고열과 환각으로 그의 정신과 육체는 피폐해지고 만다.

 

결국 의사는 그에게 러시아를 떠나라고 충고했고, 그는 스위스의 Clarens로 휴양을 떠나게 된다. 밀류코바는 그 이후로도 다른 남성과의 관계에서 3명의 아이를 낳는 등 끊임없이 바람을 피웠고, 차이코프스키는 그녀와의 이혼을 원했으나, 그녀는 그와의 결혼 상태를 지속하기를 원했다.(이런 법률상의 결혼관계는 그녀가 정신질환으로 사망할때 까지 이어졌다)

비록 결혼은 파국을 맞이하였으나, 그는 결코 그녀를 비난하지도 증오하지도 않았다.

그건 그가 반드시 짊어져야만 했던 슬픔의 유산이었기 때문이리라.

 

혹자는 그가 이혼을 꺼려했던 것은 밀류코바가 그의 동성애 기질을 폭로하기를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라고 하나 그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해 보건데 그것 때문은 아니라고 난 믿고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차이코프스키의 평전에 나오는 짧은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의 유년 시절 가정교사였던 Fanny Durbach가 증언한 바에 의하면 차이코프스키와 그의 형 니콜라이가 학업을 게을리 하자 따끔하게 훈계를 하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너희들의 교육을 위해 앉을 새도 없이 열심히 일하시는데 너희들은 그런 고마움을 조금도 모르고 학업을 게을리 해서야 되겠냐?”는 것이었다. 훈계가 끝이 나자 잠시 지루함에 몸을 떨었던 니콜라이는 만면에 행복한 미소를 띄우고 놀러가 버렸으나 차이코프스키는 하루종일 생각에 빠진 상태로 일찍 침실로 올라가 버렸다. 잠시후 가정교사 페니는 침실 안에서 들리는 차이코프스키의 흐느끼는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다. 울음과 함께 차이코프스키는 그가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작은 목소리로 신에게 고백하기 시작했고 곧 그의 두 눈은 고통의 눈물로 빨갛게 충혈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는 죄책감으로 한동안 괴로워했다고 한다.

또한 밀류코바와의 결혼 또한 그녀를 상처 입히지 않으려는 순수한 기사도 정신의 발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당시 차이코프스키는 푸쉬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을 감명깊게 읽은 터라 오네긴이 자신을 사모하는 순수한 처녀의 편지를 묵살함으로써 그녀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는 것에 심히 공감하고 있던 터였다. 한없는 사랑을 상대에게 고백하나 끝내는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그녀의 심정이 아마 자신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느꼈을 터였다.)

 

하지만 그의 순수한 기사도 정신의 발휘는 종내는 비극으로 치닫고 말아 결국 두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았고, 여성으로의 애정을 원했으나 열렬히 사모했던 그에게서는 결코 얻지 못했던 밀류코바는 그 후 무절제한 생활과 심적 고통으로 야기된 정신질환으로 정신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차이코프스키는 제네바 호수 근처의 작은 도시 Clarens에서 휴양을 갖던 차에 그의 음악을 사모하던 러시아의 부유한 미망인 ‘나데츠나 폰 메크’ 부인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그녀는 <절대로 만나지 않는다>라는 다소 기묘한 조건으로 그에게 매년 6000루블의 후원금을 약속했고, 그는 이 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이게 된다. 그는 폰 메크 부인과의 만남으로 경제적인 독립을 하게 되었고, 비로소 예술에의 열정을 음악에만 쏟아 부을 수 있게 되었다. 그에게 폰 메크 부인은 그의 음악에의 의견, 믿음, 인상, 희망, 절망, 열정을 숨기지 않고 고백할 수 있는 해방구와 같은 존재였고, 이는 바로 그에게 <상실된 어머니의 존재> 그것에 다름 아니었다.

폰 메크 부인은 차이코프스키보다 9살이나 연상이었고 11명의 자녀를 갖고 있는 푸근한 어머니 같은 여자였다. 또한 이성적으로 관계를 맺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그에게 정신적인 안도감을 가져다주었고, 이는 곧 음악으로의 열정으로 나타나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교향곡 4번을 비롯해 바이올린 협주곡 등이 바로 이 클라렌스에서 쓰여졌던 것이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op.35는 이런 상황에서 탄생했다.

죽음까지도 생각하게 만들었던 불행했던 결혼 생활과 그 자신이 그토록 혐오했지만 결코 벗어나지 못했던 숙명을 감싸안은 채 바이올린의 현은 노래해야 했다. 그의 고통과 의지를 그리고 미래에의 희망을..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개관을 살펴보면

 

제 1악장: Allegro moderato-Cadenza

소나타 형식으로 제시부,전개부,종결부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오케스트라 서주가 앞으로의 주제를 암시한다. 그런데 이 1주제가 놀랍기 그지없다. 이 곡이 작곡될 당시(1878년) 그는 죽음까지 결심했을 정도의 극도의 심적 고통을 겪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귀족적이며 당당하기까지한 오케스트라 서주를 보여주는데, 마치 삶을 향한 그의 확고하고도 강인한 의지를 표현하는듯하다. 오케스트라 서주에 이어 곧 바이올린 독주에 의한 전개부가 펼쳐지는데 정말 화려하고 현란하기 그지없는 바이올린 테크닉의 향연 그 자체라 말할 수 있다. 또한 독주자와 함께 펼쳐지는 강렬한 오케스트라 Tutti는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압도적인 폭발력을 보여주는데, 독주자가 반주없이 즉흥적으로 펼치는 Cadenza에선 마치 자신의 슬픔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바이올린 현에 담아 나즈막하게 그의 고통을 토로하는듯하다. 간간히 미묘하게 떨리는 바이올린의 Vibrato는 마치 심연에서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애써 참아 넘기려는 의연함으로 나타나 더욱 깊은 감동을 우려낸다. 그리고 종결부에선 다시한번 주제가 반복되고 절정으로 치달으며 끝을 맺는다.

 

제 2악장: Andante-Canzonetta

A-B-A형식의 3부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悲歌이고 영혼의 통곡이다. 1악장에서 애써 삼키려고만 했던 울음은 끝내 참아내지 못했고 조금씩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슬픔은 어느새 비탄의 강이 되어버려 곡 전반에 걸쳐 만연히 흐르게 된다.

 

제 3악장: Allegro Vivacissimo-Finale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 1주제는 2박자의 격렬한 러시아 민속 무곡 트레파크의 음율로 되어있으며 제 2주제는 러시아 농민의 악곡 가락으로 구성되어 매우 활기차고 발랄한 바이올린 음색을 들려준다. 마치 미래에의 희망과 삶의 환희를 암시하는 것처럼...

 

제 3악장은 2악장과는 구분이 되어 있지 않은 듯 급작스럽게 등장하게 되는데 이것은 차이코프스키의 철저하리만치 진중한 심리적 흐름을 따른 작곡법에 무관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당시 그를 지배하는 정서는 자신의 슬픔을 인내하고 이겨나가려는 의지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다음엔 어느새 지워버릴 수 없는 낙인이 되어버린 차이코프스키의 내적 고통, 마지막으로 미래를 향한 작은 희망이 그 뒤를 따랐다. 연주시간을 보더라도 1악장의 대략 18-19분대, 2악장이 9분대, 3악장이 6-7분대이다. 물론 독주자의 즉흥 연주가 이루어지는 카덴짜로 인해 1악장이 가장 길다고는 하지만 작곡 당시 차이코프스키는 카덴짜 부분도 작곡해 두었으므로 이것으로 인해 1악장이 가장 길어졌다고는 보기 힘들고, 그의 작곡의도가 1악장을 가장 염두에 두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 그를 엄습하고 있었으나 이를 반드시 이겨내야겠다라는 그의 강인하고도 확고한 의지가 그의 정서 밑바닥에 유유히 흘렀기 때문이었고, 3악장의 급작스러운 전개 또한 인간의 심적 변화를 유심있게 살펴보았다면 전혀 당황스럽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고통은 단계를 밟아 나가듯이 서서히 그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심적 동기나 의도가 있다면 인간은 그 고통이 언제 있었냐라는 듯이 그 고통을 심연 깊숙이 숨겨버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비록 슬픔의 고통은 낙인이 되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망정 잠시 잊어버릴 수는 있는 것이기에...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OP.35!

몸을 내던져서도 막을 수 없었던 어머니와의 영원한 고별!

받아들여지지도 이해될 수도 없었던 사랑을 해야 했던 그는 아버지 또한 너무나 사랑했기에 증오할 수 없었다.

그저 두 눈을 찔러버린 채 영혼의 안식을 찾아 영원히 세상을 떠돌아야 했던 오이디푸스처럼 그 또한 안식을 찾아 세상을 한없이 여행해야만 했다.(차이코프스키의 만년은 끝없는 여행으로 점철되어 있다. 물론 그것은 연주여행을 겸한 것이기도 했지만, 그를 한 곳에 안주할 수 없게 만들었던 심적 불안감도 크게 한 몫 했으리라는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당시 동성애는 매우 심각한 범죄행위였고 그 또한 제어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수치감과 분노로 얼룩져 있었다.-이로 인해 차이코프스키가 콜레라가 아닌 동성애로 인한 강요된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는 설이 강력히 대두되고 있다.)

나에게 이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가 사랑해 마지 않았던 어머니께 바치는 고해성사 처럼 들린다.


마지막으로 Swinburne의 작별이란 시로 글을 마감하고자 한다.


작별


우리 일어나 작별하세. 그녀는 모를 것이니.

큰 바람인 듯 바다로 가세.

모래와 물거품 온통 흩날리며. 여기 있는들 무슨 소용이랴?

아무 소용 없네, 이 모든 것들이 그러하고,

온 세상이 눈물처럼 쓰라리거늘.

이것들이 그러함을, 그대 아무리 보여주려 애써도,

그녀는 알지 못하네.


그러니 두려워 말고 함께 가세

노래 시간은 끝났으니

이제 침묵을 지키세

지난 모든 일도, 소중한 일도 끝났으니,

우리가 그녀늘 사랑하는 것처럼 그녀는 그대들도 나도 사랑하지 않네.

정녕, 우리가 그녀의 귀에 대고 천사처럼 노래해도,

그녀는 듣지 않네.


그러니 우리 가세, 가세, 그녀는 보지 않을 것이니,

모두 한 번 더 노래하세. 분명 그녀도,

그녀도, 지난 날의 추억을 떠올리고,

우리를 살짝 돌아보며, 한숨 지을 것이니. 그러나 우리,

가버리네, 사라지네, 그 곳에 있었던 적도 없는 듯,

아아 보는 이들 모두 나를 불쌍히 여겨도,

그녀는 보지 않네.

 

맺음말: 아무래도 차이코프스키의 비애를 제대로 소화해내기 위해선 단순히 연주자의 기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픔은 겪어본 사람만이 그 아픔을 이해하는 법!

            레오니드 코간이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나에게 더할 수 없는 최고의

            얀주다!

            코간에 대한건 저번에 쓴 글에 언급했으니 덧붙일 말은 없다고 본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차이코프스키가 이 바이올린 협주곡을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였던 아우어는 기교적으로 불가능 하다고 단정하여 사실상 이 협주곡은 연주되어지지 못했

           다.

           그런데 아우어의 제자였던 하이페츠와 밀슈타인이 이 협주곡으로 명성을 쌓게 되었으니니        참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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