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 of fog

 

우리는 오로지 크게 뛰는 기이한 박동들만을 감지하고 있었는데, 이 두근거림은 우리들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토록 우리의 심장 소리는 우리가 느끼고 있던 감미로움엔 어울리지 않았다.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 중에서


매력적인 음악에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귀를 잡아끄는 음악이 있고

또 하나는 귀를 잡아채는 음악이 있다.


어제 난 돼지 삽겹살을 구워먹고 있었다. 지글거리는 불판 위에서 자지러지듯이 비명을 불사르며 타는 저 고깃살!

머리에서 발끝까지 순 토종 한국인인 난 한국인 특유의 조바심을 눈에 띄게 드러내며, 불판 위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무젓가락을 쉴새없이 놀리며 노릇하게 구워지는 돼지 삽겹살에 감시의 눈길을 돌리지 않고 있었다.


잠시 후 노릇한 돼지고기 특유의 향취와 함께 입안에 향긋 퍼지는 마늘 냄새!

이--야아--하! 바로 이 맛이다. 이 맛이 나를 살찌우게 한다. 크흐흐으

감칠나면서도 쫄깃한 두툼한 육질과 함께 퍼져나오는 달콤한 육즙.

향긋한 생 쪽파와 알싸한 육쪽마늘. 이 조화의 영감을 그대도 아시는지.

거기다 두꺼비 한 마리가 끼어들면, 뭐 신들이 먹고 마신다는 불로장생의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라 할지라도 부러우랴!


한참을 나만의 향연을 만끽하다 얼마 전 구했던 Carlos Kleiber의 비공개 음원(1979년 12월 1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클라이버가 지휘한 브람스 교향곡 4번 실황)이 담긴 CD하나를 랙에 걸었다.

뭐니뭐니해도 클라이버의 진가라면 Orfeo에서 출시된 베토벤 4번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바로 Live에 있지 않은가.

그에겐 방음재와 흡음재로 가득찬, 갑갑한 Studio의 무음실보다는 직접 관중과 호흡할 수 있는 현장이 그에게 더 맞다.


현장체질의 클라이버의 브람스 교향곡 4번의 LIVE

헐! 1악장부터가 왠지 심상치 않다.

마치 다카르 랠리(Dakar Rally)를 앞둔 Wrangler jeep의 육중한 4.0L 디젤엔진이 뿜어내는 강렬한 열기와 굉음이 느껴진다.

 

“이봐 카를로스씨. Allegro non troppo(빠르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야. 벌써부터 질주하지 못해 안달하면 곤란하다구!

아직 랠리 초반이야. 파리 시내도 아직 못 빠져나왔는데...”


내 조바심과는 달리 노련한 老兵 카를로스는 아직 죽지 않았다.

브람스의 매력이라면 마치 통주저음(通奏低音)같은 두툼하면서도 육중한 현의 질감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인데...

수많은 전장을 헤쳐나온 베테랑 카를로스는 능수능란하게 빈필의 현악기군을 주무른다.

밀고.. 당기고.. 끊어주고,

 

“뭐야! 이건 대체.. 입닥치고 듣기만 하라는 거냐. 그런거야?”


‘초반부터 오버페이스해서 나중에 퍼지는거 아냐?’하며 긴장하며 듣고 있던 나에게 3악장은 처절한 패배감을 안겨주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나에게 장렬하게 외친다.

 

“봤냐? 내가 바로 카를로스 클라이버다!”


헐... 이제 삽겹살은 물 건너갔다. 맛있는 삼겹살은 더 이상 내게 감흥을 줄 수 없다.

그 보다 더한 쾌락을 지금 맛보고 있기에, 수확 체감의 법칙은 클라이버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긴장감은 어느새 고양감으로 바뀌어 있었고, 난 끊임없이 귀를 기울였다.

그가 보여주는 강렬한 쾌락의 마력속으로...

“우아아하-- 째---진----다---아--!”


통렬한 Paris 시내질주(1악장)로 시작된 랠리는 알제리, 말리, 세네갈을 거쳐 이제 푸른 오아시스가 보이는 다카르에 마침내 도착했다.

17일간의 대장정을 거친 피곤하고 지친모습이 아니라 활기차며 생동감있는 당당한 챔피언의 모습처럼, 클라이버는 나에게 장엄하며 압도적인 코다를 내게 선사했다.


난 그때 박수 치며 환호하는 빈의 군중들과 함께 있었다.

 

벅찬 감동으로 불끈쥔 손으로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려 천장 위로 날려버리며...

 

PS> DG에서 originals를 발매할때 기념비적인 100번째 음반으로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브람스 교향곡 4번으로 결정한 건 우연이었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그만큼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브람스 교향곡 4번의 경지는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그림처럼 천의무봉의 것이라 할까요? 그만큼 압도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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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무진 > [퍼온글] 영어사전에 대하여

내가 가지지 못한 좋은 영어사전을 남들이 가진 걸 보고 “사촌이 논 샀을 때처럼 배 아파 해” 본 적이 있는가? 두꺼운 영어사전을 처음 들칠 때 풍겨 나오는 약간은 이상한 냄새를 오히려 매혹적인 향기로 착각해 본 적은 없는지?

요즘에야 세태가 변하여 사전은 내가 찾는 것이 아니라 남이 찾아주는 것 또는 사전은 날렵한 전자기기나 PC 기능의 하나쯤으로 보는 생각이 오히려 상식이 된 만큼, 지금 책으로 된 영어사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평생 “논을 산 사촌”이라고는 가져보지 못한 필자가 이런 옛말 쓰는 것 만큼이나 고리타분할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나, 아래 글은 그냥 필자가 평소 애용하는 종이사전에 대한 소회(素懷)이자 찬가(讚歌)이니, 행여라도 만가(晩歌)라는 생각은 하지 마시길.

전자사전의 장점은 우선 간편해서 휴대하기에 편리하다는 점이겠다. 주머니에도 쏙 들어가는 크기에, 발음 기능도 있고, 5 ~ 6종의 사전을 한꺼번에 수록한 요즘의 전자사전을, 아무렴 옛날 도시락이니 책으로 무거운 가방 속에 그래도 악착같이 넣어 다녔던, 그래서 1년만 지나면 너덜너덜해지고 김치국물 냄새가 풍기고 했던 종이사전과 비교할 수가 있겠는가? 정말 좋은 세상이라고 말 할 수 밖에. 더불어 전자기기라는 장점을 이용, 막강한 검색기능까지 가졌으니, 참으로 편리하다 하겠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아무리 세상이 전자적으로 편리해져도 종이로 된 사전의 유용성은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똑 같은 글이라도 종이로 된 책에서 보는 것과 디스플레이를 통해서 보는 것의 눈과 정신의 피로도 차이가 심하다는 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으리라. 종일 휴대전화, 전자사전에다 MP3 Player까지, 젊은 사람들의 귀와 눈 상태는 과연 얼마나 나빠지고 있는 것일까(아니면 정보시대에 걸맞게 귀와 눈이 튼튼해지는 진화를 하고 있는 건지?) 또 한 화면에 보여줄 수 있는 정보량을 보아도, 현재의 디스플레이 기술로서는 전자기기보다 책쪽이 훨씬 우위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학교나 도서관, 독서실, 학원 등에 전자사전이 아닌 이 많은 종이사전을 어떻게 들고 다니느냐 비웃을 분은 이 글의 마무리 부분으로 바로 가시기 바란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필자가 특히 좋아하는 무한 roaming 또는 browsing이 종이로 된 책이 아니라 전자기기에서 가능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한한 정보의 바다를 슬슬 헤엄치며 정보를 낚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날렵한 서핑 보드로 쌩쌩 지나가서는, 글쎄 과연 무엇을 낚아 올릴 수 있을지? 한 단어를 찾으러 사전을 펼쳤다가 숙어에다가, 관련된 다른 단어를 찾아보고, 또 그 단어와 관련된 단어를 찾아보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또, …날 저무는 줄 모르고 들판을 헤매며, 네 잎 클로버를 찾던 어릴 적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런 즐거움을 주는 한 종이사전 나아가서 종이책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종이사전에 대한 찬사는 이 정도로 거두고, 필자가 쓰는 사전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국내에서 팔리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는데, 어디서 샀는지 기억이 안 나서 구분해서 적지 못했으니, 국내에서 사고싶은 분은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 보시길(그래도 기억이 나는 책은 국내 가격을 표시하였는데 인터넷 서점의 할인가격을 기준으로 적었다.) 가격은 참고용으로 책에 나와 있는 정가(미국에서 나온 책은 보통 책에 정가가 표시되어 있으나, 영국 책은 책값이 표시되어 있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아마 출판사 정가제가 아니라 유통망을 통해 가격이 결정되는 것을 합리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를 표시하였으나, 외국의 인터넷 서점에서는 보통 20% ~ 30% 할인이 가능하며, 1~2권 살 때는 국내 서점이 싸지만, 여러 권 살 때는 postage & handling(배송비용) 포함해도 외국의 인터넷 서점이 싸질 경우가 많으므로, 환율까지 계산해 보시고 유리한 쪽에서 사시면 된다. 필자는 편의상 몇 년 전부터 Amazon(www.amazon.com)만 이용하고 있는데 대략 주문 후 2주일 가량 걸리며, 한 번도 배달에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다(그 이전에는 www.bestbookbuys.com이란 사이트에서 가격을 일일이 대조해 보고 산 적도 있지만 보통 여러 권 몰아서 사다 보니 귀찮아서 그만 두었다.) 

1. 정통 영어사전류

(1) Shorter Oxford English Dictionary 5판, 전2권, 2002,12, Oxford University Press, Hardcover, 3,750 페이지, 220x285mm, 가격 U$ 150.

무려 50년이라는 세월을 자기 집 뒤뜰에 마련된 작업실에서 사전 편찬에만 보낸 사람이 있었다면 믿어지는가? 그래서 나온 산물(産物)이 사전의 기념비이자 지금도 최고 최대의 사전으로 꼽히는 Oxford English Dictionary(OED)라면? 제임스 머리(James Murray:1837-1925)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나중에 편집인이 추가되기는 했어도 이 사전은 Murray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그의 사후인 1928년 12권이 출판됨으로써 초판이 완간된 이 사전은, 1989년에 3판이 나왔는데 무려 20권으로 분량이 늘어났으며 464,000 단어가 수록되어 있다. 책 가격이 1,500불, 온라인 사전 개인 1년 이용료(http://www.oed.com/about/)가 300불, 말썽 많은 CD-ROM 버전이 역시 300불인 이 사전은 사실 전문적인 영어학자나, 중세 영문학 연구가들이 아니라면 보기조차 힘들다(그런데 관심 있는 분들께 말씀 드리자면, 이 사전은 Amazon의 정가보다 훨씬 싸게 파는 전문 가게들이 있으며, 이런 사이트들은 Amazon에서 이 사전을 검색해 보면 링크가 걸려 있어서 쉽게 접속할 수 있다.)

오죽하면 같은 출판사에서 22불, 200페이지 짜리 guide book이 다 나와 있겠는가? 사전에 가이드 북이라… 어원(語源: etymology) 설명이 가장 큰 장점이라 하지만, 어떤 일반인들이 한 영어 단어의 출현이 12세기라는 사실, 그 이후 수 세기 동안 몇 년도에 어떤 작가에 의해 어떤 뜻으로 사용되었다는 세세한 사실로 가득 차서 한 단어의 설명이 한 페이지를 넘어가는, 그래서 지금 과연 어떤 뜻으로 주로 쓰이는지 헷갈리게 하는 그런 사전을 필요로 하겠는가?

그래서 도서관 비치용이라고 할 OED의 대안이 필자가 가진 이 축약판 옥스포드 영어사전(SOED)이다. 2권짜리 이 사전은 OED와 같은 50만 가까운 어휘와 OED 설명의 1/3 정도를 커버한다고 되어 있으며, 1700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영어, Shakespeare와 Milton, the King James Version of the Bible까지 포함하고 있어, 어지간한 영문학자를 포함해서 일반인들은 이 사전으로 충분할 것이다. 현재 5판이 나와 있으며, 초판은 우리에게 “5형식”으로 익숙한 원래 OED 편집자 C. T. Onions가 편집을 맡았었다.

예를 들어 과학잡지를 읽다가 ‘miogeoclinal’이란 단어를 만났다고 하자. 대다수의 사전에서는 찾을 수가 없을 것이지만 이 사전을 찾아보면(제1권 1787페이지에 나온다), ‘miogeocline’이란 단어가 지질학 용어로 ‘next’와 같은 뜻이며, ‘miogeoclinal’이 그 형용사형이라고 되어 있다. 제대로 된 영어사전 구하는 분께 강력 추천. 역시 OED에 기초한 ‘Compact Oxford English Dictionary(COED)’, ‘New Oxford Dictionary of English’라는 것들도 있으므로 주의 요망.
 
(2) Pocket Oxford English Dictionary 9판, 2002, Oxford University Press, Hardcover, 1,083 페이지, 115x185mm, U$17.95
유명한 영문법 학자 Fowler 형제가 초판을 만든 휴대용 옥스포드 영어사전(POED). 12만 단어를 수록하고 있으나 보통 우리나라의 영한사전 크기에 불과하므로 설명이 간단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요새 젊은 사람들은 이 정도를 휴대용이라면 아마 코웃음 칠 수도 있겠다.

(3) The American Heritage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 4 판, 2000. 1, Houghton Mifflin, Hardcover, 2,074 페이지, 220x285mm, U$60.
OED와 쌍벽을 이룬다고 할 대작 사전 Webster를 제외하고, 미국을 대표할 만한 2000페이지급 사전. 사실, 수록 어휘로 사전을 선전하는 것은 어디까지를 수록 어휘로 볼지, 즉 동의어나 파생어, 숙어까지 포함하는 사전도 있고 순수한 entry만 수록 어휘로 보는 사전도 있고 해서 통일된 형식이 없는 만큼 극히 불분명한 일이라서, 또 제한된 지면에 어휘 수를 늘리면 설명이 부실해지기 마련이어서, 큰 사전들 중에는 이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 것도 있다. 이 사전도 책이나 선전에서 구체적으로 몇 단어가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예문이 없고, 큰 사전일수록 Countable, Uncountable 같은 외국인에게 필수적인 항목이나 Idiom같은 항목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삼십만 가까운 단어가 올라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백과사전을 지향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4,000개의 도해와 사진, 각종 도표 같은 추가 정보가 풍부하다. 미국에서 시행하는 각종 Standardized Test(예: TOEFL, SAT, GRE, GMAT)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하며, 이 사전의 usage note(용례 설명)를 기초로 만든 별권의 책이 아래에서 소개하는 The American Heritage Book of English Usage이다.
 
(4) The New Oxford American Dictionary, 2001.9, Oxford University Press, Hardcover, 2,023 페이지, 220x285mm, U$55.
영국 영어사전의 권위인 Oxford 출판사가 미국 영어에까지 손을 뻗친 사전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위의 American Heritage 사전을 목표로 한 것으로 보인다. 수록 어휘 25만 단어이며 말미에 미국 헌법 및 수정 조항 전문을 싣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새로운 미국 영어사전의 권위가 과연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써 본 사람들의 서평은 매우 호의적이다. 여기 25불짜리가 공짜로 포함되었다고 선전하는 CD-ROM은 사용이 불편하여 필자의 경우 설치했다가 지워 버렸다.

(5) Merriam-Webster’s Collegiate Dictionary 제11판, 2003.7, Merriam-Webster, Hardcover, 1,622페이지, 180x250mm, U$26.95
미국의 대학생용 reference 사전으로 활자가 작고 빽빽하다(16만 5천 entry에 대한 25만개의 정의가 1,622페이지에 들어차 있다.) 교육용 사전치고는 수준이 높아, 명사의 가산성(Countable, Uncountable) 같은 기본적인 항목, 동사의 문형에 따른 예문 소개 같은 영어 배우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부분은 아예 없다. 어휘가 풍부하고, 미국에서 출판된 대학생용이니 만큼, 단어의 해설, 정의가 SAT, GMAT, GRE 등 미국의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분에게는 유용하다. 1828년 미국의 노아 웹스터(Noah Webster)에 의해 “American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가 출판된 이래, 웹스터라는 이름은 참 굴곡이 많았는데, 현재 이 이름은 독점적인 지위조차 잃어버려, 여러 군데서 이 이름을 쓴 사전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앞에 Merriam이 붙은 웹스터 사전, 즉 Merriam-Webster가 정통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나오는 웹스터 대사전은 Webster’s Thir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Unabridged(2002.1, Merriam-Webster, 2,783페이지, 45만 단어, U$129)이다. 

(6) Oxford Advanced Learner’s Dictionary(OALD), 6판, 2002, Oxford University Press, 1,539페이지, 155x235mm, U$25.95, 국내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
8만 단어를 3천 단어를 사용해서 설명. 지금은 고인이 된 영국의 영어학자 겸 영어선생님 A.S. Hornby(1898 ~ 1978) 가 초판을 만든 학생용(교육용) 영어사전으로 그의 이름을 따서 아직도 혼비 영어사전이라 불리기도 한다. 1942년 그가 영어를 가르치던 일본에서 처음 나온 이 사전은, 외국인들에게 교육용으로 필수적인 명사의 가산성 구분, 동사의 문형(verb pattern), 단어의 어울려 쓰임을 알려주는 연어 정보(collocational information) 같은, 요즘은 우리가 이런 종류 사전에서 당연히 기대하는 그런 항목들을 최초로 포함한 선구적인 사전이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지금도 동사 문형(verb pattern) 연구에는 필수적인 사전이라고 하겠다.

영어 공부가 조금 익은 분들은 영어를 쓰다 보면 동사의 쓰임, 예를 들어 consider라는 동사의 경우 뒤에 어떤 형태의 보어가 오는가 궁금해질 것이다. 여기에 that절이 오는지 to-inf가 오는지, V~ing가 오는지 간접 목적어와 직접 목적어가 올 수 있는지, 온다면 어떤 형태가 올 수 있는지 등등. 이런 정보는 큰 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오직 교육용 사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 이 사전과 바로 아래의 Macmillan 사전이 잘 되어 있다. 아쉬운 점은 영국식 영어 위주로 되어 있어 미국식 영어가 더 많이 쓰이는 우리 현실과 안 맞는 점이 있다는 점이며 이는 바로 아래의 것으로 보충하면 될 것이다. 나중에 따로 이야기 할 기회가 있겠지만, 우리가 학교에서 문법 사항을 놓고 논란을 벌이는 상당한 부분이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의 차이일 수도 있는 것이다.

(7) Macmillan English Dictionary for Advanced Learners, 2002 초판, Macmillan Education, 1,658 페이지, 155x235mm, Amazon 정가 U$39, 국내 인터넷 서점에서도 팔고 있음.
10만 단어를 2,500단어를 사용하여 설명. 영국의 여러 유명 사전편찬자(lexicographer)들이 모여 만든 최신 사전으로 체제면에서는 위의 OALD를 본으로 삼았으나, 국내에 주로 유통되는 것이 American English판이라서 미국식 영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유용. 여기 CD에는 미국식 외에도 영국식 영어 발음도 함께 수록되어 있으며,  책은 빨간 색과의 2색 인쇄로 되어 있고, 핵심 어휘 7,500단어가 별도로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국내에 주로 유통되는 것은 위의 OALD나 아래 둘 포함해서 주로 중국에서 인쇄 제책한 것이라 인쇄나 종이 질이 국내 책보다 못한 점이 아쉬운 점. 그런데 이런 사전을 사면 단어나 찾는 정도로 그치지 말고 앞 뒤의 책에 관한 정보, 중간 별지 섹션 등도 읽어보는 수고를 해야 사전과 이용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므로, 영어 공부 하는 셈치고 꼭 읽어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8) Longman Dictionary of Contemporary Dictionary, 2판, 2003. 3, Pearson ESL, 1,949 페이지, 155x235mm, Amazon 정가 U$35.93, 국내 인터넷 서점에서도 팔고 있음.
2,000개의 설명용 어휘(defining vocabulary)로 106,000단어를 해설하고 있으나, 영어 공부가 높아지면 이 설명 어휘가 너무 적은 것이 아쉽게 느껴지는 만큼 초급자에게 적합할 것이다. 3색 인쇄에다 기본 3,000단어는 빨간 색으로 별도 표시되어 있음. 영국 영어학계의 권위 랜돌프 쿼크경(Professor the Lord Quirk – 영어 연구로 남작 작위까지 받은 분이다)이 서문을 썼다는 특색이 있으며, 이 LDOCE는 가능하면 CD-ROM이 포함된 판을 사는 것이 좋은데, 작동시간이 느린 흠은 있지만, 가격이 비싼(정가는 U$ 46.20) 아래의 Longman Language Activator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9) Collins-Cobuild Advanced Learner’s English Dictionary, 3판, 2003.9, HarperCollins Publishers, 155x235mm, 이 교육용 사전(6번~9번)의 국내 가격은 대략 4만원 안팎으로 값이 비슷하다.
2,500 defining vocabulary로 11만 단어 수록. 특이한 단어 해설법으로 ‘환경 속의 어휘(vocabulary in context)’, 즉 실제 사용법을 그대로 사용한 어휘 해설 방법으로 한 때 각광을 받았으나, 진부하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예를 들어 ‘particular’란 단어를 찾는다고 하자. 이 사전 설명은 ‘a particular thing or person is the one that you are talking about, and not any other’이라 되어 있는 반면, OALD를 보면, ‘(only before noun) used to emphasize that you are referring to one individual person, thing or type of thing and not others’로 되어 있다. 콜린스 코빌드 설명에 의하면 실제 이 단어가 문장에서 어떻게 쓰이는지(a particular thing or person) 보여주었으며 이렇게 하면 어학 학습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행간에는 물론 명사 앞에 쓰인다는 뜻이 숨어 있다는 것. 하지만 Oxford 식 설명이 더욱 사전적이라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모든 단어가 이런 콜린스 코빌드 식으로 설명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사실 조금 끔찍한 생각이 든다. 한편 요즘 모든 사전의 CD-ROM에 보안 장치가 포함되어 있어, 복제를 금지한다든지, 일정 기간 안에 한번씩 원본 CD를 넣으라든지 귀찮은 점이 있는데 이 사전은 그렇지가 않은 점이 편리하다.
  
2. 특화된 사전류

(1) The Oxford Dictionary of Quotations, 2001년 수정판, Oxford University Press, Hardcover, 1,136페이지, 170x240mm, GB £ 25.
유명한 명사들의 명구(名句)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또는 어렴풋이 기억 나는 명구의 중심 단어만으로도 그 명구를 찾아 볼 수 있는 사전. 예를 들어 아래에서 소개될 ‘The Elements of Style’이라는 책을 보다가 미국 독립운동 당시의 사상가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의 “These are the times that try men’s souls(이 시대는 사람의 영혼을 시험해 보는구나) ”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고 하자. 이게 어떤 책에서 어떤 맥락으로 쓰였는지 알고 싶을 때 이 사전을 보면, 우선 성씨 순으로 p 항목에서 찾아 볼 수 있어, Thomas Paine의 16번째 항목에서 이 글이 1776년 The Crisis란 글의 서문에서 쓰였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문장 속에서 times나 souls는 생각나는데 누구더라 할 때는 뒤의 index에서 times나 souls를 찾아보면 ‘times that try men’s souls(PAIN 563:16)’이라고 되어 있어 563페이지 pain(e)의 16번째 항목에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어로 글을 쓰거나 연설이 필요한 분 또는 심각하게 영어 공부하시는 분께는 많은 도움이 된다. 원래 이런 종류의 책으로는 “Bartlett’s Familiar Quotations”라는 책이 유명하지만 필자는 Amazon 서평을 참고하여 이 책을 구입했다. 2만 개의 인용구가 들어 있다.
   
(2) Merriam-Webster’s Biographical Dictionary, 1995.1, Merriam-Webster, Hardcover, 1,184 페이지, 185x250mm, U$29.95
고유 명사의 발음, 특히 사람 이름의 발음은 영어 발음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제일 어려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위에서 말한 OED의 편집자(James Murray)같이 유명한 사람도 국내 관련 서적에 보면 대개 ‘제임스 머레이’로 되어 있지만, 이 책을 보면, ‘제임스 머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아래에 나올 Roget’s Thesaurus로 유명한 영국 의사 Roget가 프랑스계로 이름을 ‘로제이’로 발음해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3만 개의 유명인의 이름과 간략한 이력이 소개되어 있는 사전. 발음 이야기 나온 김에 덧붙이면, 우리가 익숙한 국제음성학회의 발음 기호를 그대로 쓰는 영미 사전은 없다고 봐야 한다. 다들 그들 나름대로 익숙한 기호를 사용하고 있으며(워드나 아래한글에 이 국제음성학회식 발음기호가 없어 얼마나 불편한가?), 사전 앞 뒤에, 심지어 이 책이나 American Heritage Dictionary같은 경우는 매 페이지 하단에 발음기호를 표시하고 있을 정도이지만, 이런 이상해 보이는 발음기호 설명도 우리가 잘 아는 단어의 발음을 들어 예시하기 때문에, 읽어보면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고 어려운 점은 없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3) Merriam-Webster’s Geographical Dictionary, 3판, 1997.4, Merriam-Webster, Hardcover, 1,361페이지, 185x250mm, U$32.95
바로 위의 책과 자매 책이나 내용은 이번에는 인명이 아니라 지명이다. 우리나라의 서울(Seoul)을 찾아보면 ‘soul’과 같은 발음으로 표시되고 있다(s에다가 go할 때 o, 마지막 l). 총 54,000개의 지명 수록.

(4) Longman Dictionary of English Language and Culture, 2판 5쇄, 2002, Pearson ESL, 1,568페이지, 155x235mm, U$40.6
영어사전과 백과사전을 합친 듯한 구성으로 영미문화에 대한 항목을 특히 많이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commuter라는 명사를 보자. 일반 사전에는 ‘통근자, 통학생’이란 해설뿐이겠지만, 여기는 밑에 ‘cultural note’가 붙어 있는데, “In the US, people mainly think of commuters as people who spend a long time driving to work, especially because of TRAFFIC JAMs. In the UK, the STEREOTYPE of a commuter is of a person wearing formal business clothes who sits and reads a newspaper on the train to the office and does not talk to anyone else.(대문자는 연결 항목을 보라는 뜻).”라고 되어 있어 단어에 생생한 현장감을 부여한다. 외국어는 단지 말 자체 뿐이 아니라 contents를 알아야 대화에 깊이가 생긴다고 했으니 영미문화를 이해하려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전이다.  2,000 defining vocabulary를 이용하여 8만 개의 어휘와 1만 5천 개의 문화(정치, 역사, 지리, 과학, 예술, 팝 문화 등) 용어 설명이 들어 있다.
 
(5) Longman Language Activator, 2판, 2002, Pearson ESL, 1,530 페이지, 155x235mm, U$46.20
보통의 사전이 어떤 단어의 뜻을 해명하는 것(to decode the words into ideas)이라면 이 사전은 반대(to encode the ideas into words)라는 것이 특색이다. 즉, 이러이러한 맥락에서는 정확히 어떤 단어가 와야 하며, 특정 동사와 어울리는 주어와 목적어는 무엇이며, 같이 쓰이는 단어나 구(연어: 連語,collocation)는 무엇이냐 하는 것까지 한꺼번에 소개하고 있다.  당연히 keyword를 중심으로 배열을 할 수 밖에 없으며 이 2판에서는 자주 쓰이는 개념 분류를 중심으로 한 862개 단어가 keyword로 등장한다.

예를 들어 ‘happy’라는 항목을 찾아보자.  우선 관련 단어로 ‘ 문제가 생겼거나 불행했던 시간 후에 행복을 되찾다’라는 뜻으로 ‘recover’와, ‘enthusiastic/unenthusiastic, enjoy, smile, laugh, satisfied/not satisfied, excited/exciting, confident/not confident’라는 단어들과 개념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이어서 1번 항목인 ‘feeling happy’는 ‘happy, content, cheerful, cheery, be in a good mood’ 다섯 개와 관련이 있고, 각자 어떤 경우에 쓰인다는 설명 및 예문이 나오며, 2번 항목으로 ‘happy because something good has happened’… 9번 항목 ‘a film, story, piece of music that makes you happy(이 경우에는 ‘heart-warming, feel-good’과 비슷하다)’까지 총 1페이지 반에 걸쳐 해설이 되어 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영어 단어의 심화 연구 또는 작문(또는 발화) 사전이라고 하겠다. 순전히 한영사전에서 찾아낸 뜻만으로 만들어 내는 콩글리쉬식 작문이 아닌 제대로 된 본토식 작문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필수적이라 하겠다.

(6) Oxford Collocations Dictionary for Students of English, 초판 4쇄, 2003, Oxford University Press, 897페이지, 155x235mm, U$23.95
위의 Longman Language Activator의 특징 중 세 번째인 연어 관계만 실려 있는 사전으로, 9천 개의 주요 품사(명사, 동사, 형용사)에 대한 15만 개의 연어가 올라 있다. 위에서 예를 든 ‘happy’라는 항목을 보면, 이 형용사의 첫째 용법인 ‘feeling pleasure’의 뜻일 때, 주로 같이 쓰이는 동사는 ‘appear/be/feel/look/seem/sound/become/make somebody/keep somebody’ 등이 있고, 한편 어울려서 쓰이는 부사로는 ‘extremely/only too/particularly/really/very/completely/perfectly/qutie/genuinely/truly/far from/not altogether/not at all/not entirely/not exactly/not particularly/not too/not totally/fairly/pretty/reasonably/relatively/just’ 등이 있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아주 행복하지 않은 경우에는 ‘not totally happy’라는 표현은 쓰지만, 아주 행복하다고 해서 ‘totally happy’란 표현이나 ‘hugely happy, tremendously happy’같은 표현은 쓰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연어가 이렇게 단어의 어울림을 말한다면 idiom(숙어, 관용구)는 이렇게 대체 사용도 허용되지 않게 굳어진 표현을 말하는데, 예를 들어 ‘beat black and blue(멍이 들도록 패다)’라는 표현의 뒤쪽을 ‘beat black and red(멍이 처음 들면 붉지 않는가?)’라는 식으로는 전혀 쓸 수 없는 것이 바로 idiom인 것이다(idiom이나 아래에 나오는 phrasal verb는 또, 단순히 단어의 뜻을 합산하는 것으로 전체를 짐작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는 특징을 가진다.) 한편 이것이 문장 단위가 되면 usage(가장 넓은 의미의 용례, 관용법. 앞의 연어나 idiom을 다 포함하는 뜻으로도 쓴다.)가 되고, 이것들은 모두 어떤 법칙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grammar(문법)와 구별이 된다. 사실 문법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부사는 동사를 수식할 수 있지만, 위와 같은 예에서 보면 아무 것이나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데, 이와 같이 어떤 언어 모국어 사용자의 집단적 언어 사용 관습을 usage라고 하며,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문법에 들어가고, 사실 고급영어로 가는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 이 usage에 관한 사전은 아래 별도로 소개한다.

(7) Oxford Guide to British and American Culture, 3쇄, 2001, Oxford University Press, 599 페이지, 155x235mm, U$16.95
이 사전에는 아예 일반적 어휘 설명은 없고 영국과 미국의 문화(역사, 문학과 예술, 신화와 관습, 장소, 제도, 스포츠, 연예오락, 그리고 일상사) 1만여 개 항목에 대한 백과사전식 해설과 풍부한 사진, 삽화가 있을 뿐이다. “영국의 사법제도를 설명해 보라”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하자. 이를 알아내고 정리하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이 사전에는 영국 미국 각각의 사법제도가 한 페이지씩 요약, 설명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유용한지(특히 back-ground 지식이나 번역하는 분들에게) 짐작이 갈 것이다.
 
(8) Oxford Photo Dictionary, 13쇄, 2003, Oxford University Press, 125 페이지, 170x230mm, 국내에서 10,350원
앞에서 콜린스 코빌드식 단어 공부법 이야기가 잠깐 나왔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이 사전을 이용한 단어 공부법이 더 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욕실(화장실: bath room)과 관련된 영어 단어 표현을 알고 싶다고 하자. 이 책 17페이지에 보면, 욕실의 실물 사진이 나오고 그 속 물건이나 시설에 각각 번호가 붙어 있으며 그 아래에 28개 항목 설명이 영미식 나누어서 나온다. 이런 식으로 약 70개의 장소나 활동을 보여주는데 이런 식으로 단어를 외우면 단어 공부의 2가지 측면 중 하나(사물 개념의 지시성 이해. 나머지는 추상적 단어 쓰임. 예를 들어 부엌에서 쓰는 그릇도 종류가 다 다른데 각자 무어라고 부르는가? 같은 질문은 이런 종류의 사전이라야 답변이 가능할 것이다.)는 완벽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몇 페이지에 걸쳐 연습문제도 실려 있다. 이런 종류의 사전으로는 photo dictionary와 picture dictionary 두 종류가 있는데 아래에서 picture dictionary도 한 권 소개하였다.

(9) Word by word English/Korean(영한도해자전), 1996, Pearson ESL, 152페이지, 210x280mm, 국내에서 13,500원
앞의 사전과 같은 형식이나 실물 사진 대신에 삽화가 들어있는 점, 각 항목마다 연습문제가 있는 점이 다르며, 121개 장소나 활동별로 3,000개 단어가 실려 있다. 내용은 많이 들어있으나 아무래도 사진보다는 사실감이 떨어지며, 초중학생용으로 좋다.

(10) NTC’s Dictionary of American Slang and Colloquial Expressions, 3판, 2000, NTC Publishing Group, 560페이지, 150x230mm, U$14.95
이 출판사에서는 미국의 생활 영어에 특화된 사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사전은 그 중에서도 특히 속어나 구어체 표현만 모은 것으로, 우리가 이런 표현을 굳이 쓸 필요는 없지만, 알아는 들어야 한다는 뜻에서 필요하다. 예를 들어 ‘the whole nine yards’같은 표현은 보통 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여길 보면, ‘the entire amount; everything’이란 뜻이며 ‘어원은 불확실하지만 아마도 cement mixing truck, 즉 레미콘 트럭의 표준 크기가 9 세제곱 야드였던 데서 유래한다’고 되어 있고, “You’re worth the whole nine yards.”같은 예문을 들어 놓았다.
 
(11) Common American Phrases in Everyday Context(정통 미국 회화표현), 미국 McGraw-Hill & NTC, 한국 넥서스 출판사 번역판, 초판 2쇄, 2004, 612 페이지, 175x245mm, 21,500원(카세트 불포함 가격)
 1,900여 개의 핵심 표현에 대화문 6,000여 개가 들어있다고 되어 있다.  이 사전은 상황별로 분류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시작 단어의 알파벳에   따라 나열되어 있고, 뒤의 index도 단어로 찾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말할까 하는 것이 궁금한 사람은 아래 사전을 이용해야 함.  물론 한역이 있다는 것이 좋은 점.

(12) NTC’s Dictionary of Everyday American English Expressions(최신 미국 실용영어 대사전), 2003, 김태희 역, 에듀조선, 446 페이지, 150x230mm, 16,000원
7,000여 개의 표현을, 쇼핑, 여행, 교통, 건강 등 17개 소주제별로 나누어 수록하였고, 대체 어휘가 표시되어 있는 점, level(대화의 수준을 형식적, 격의 없는, 농담조, 비꼬는, 공격적 등 등급으로 나눈 것) 표시가 있어, 언제 누구에게 해도 무방한가에 대한 정보가 있다는 점에서 실제 사용에 매우 유용한 장점이 있다.

(13) Longman American Idioms Dictionary, 초판, 1999, Pearson ESL, 402 페이지, 125x195mm, 국내 가격 20,700원
4,000여 개의 미국 idiom이 실려 있다고 하여 특별한가 사 보았으나, 사실 이 정도 내용은 Macmillan 사전이나 NTC 사전에 다 나오기 때문에 중복 투자가 아까우니 가능하면 사지 마시길. 시험으로 미국식 속어 idiom인  ‘when the crap hits the fan’를 찾아 보았는데 나오지 않았다.
    
(14) Collins-Cobuild Dictionary of Phrasal Verbs, 2판, 2003, HarperCollins Publishers, 492 페이지, 125x195mm, 국내 가격 20,700원
이 사전을 찾는 분들은 구동사(句動詞)의 중요성과 유용성을 느끼게  된 사람들일 것이다. ‘이어동사(二語: two-word verb)’ 또는 ‘다어동사(多語: multi-word verb)라고도 불리는 이 phrasal verb는 일상 영어에서는 필수적이라 하겠다. 친근하며 배운 티를 안 내기 때문. 동사와 ‘파티클(particle)’로 구성된 이 구동사를 알파벳 순으로 배열한 앞 부분은 사실 웬만한 교육용 사전에도 다 나오기 때문에 필요성이 떨어지지만, 뒷
부분 54페이지에 이르는 ‘particle index’ 부분이 유용한데, 파티클 순으로 중요한 뜻과 거기에 해당하는 구동사를 모아놓은 형태로 되어 있다.

예를 들어 파티클 ‘about’에는 여섯 개의 중요한 뜻(movement, inactivity and aimlessness, encirclement, turning, action, introduction of subject)이 있고 각각 해당하는 구동사를 일일이 나열했는데, ‘action’이란 뜻일 때는 "bring about, come about, go about, set about”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 

3. Thesaurus(유의어 반의어 사전류)

영국의 외과 의사 Peter Mark Roget(1779 ~ 1869)는 나이 들어 의사를 그만 둔 후 소일거리로 ‘단어의 의미 분류’라는 독특한 취미를 가졌고 그 결과가 1852년 아주 긴 제목으로 나왔으니, 바로 후일 ‘thesaurus(유의 개념 사전)’이라 불리게 된 것이었다. 그 이후 여러 편집자들에 의해 계속 Roget라는 이름을 달고 출판되어온 이 사전은 현재는 가장 유명한 아래 (1)번 외에도 여러 종류가 나오고 있다. Roget에게는 여러 개념의 범주화 및 이에 따른 단어의 분류가 가장 중요한 일이었으나, 이는 그가 이 사전을 만드는데 필요한 도구이었을 뿐(수많은 영어 단어를 그의 개념 분류에 따라 나눈 결과가 바로 이 사전), 오늘날 사용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이 개념 분류에 신경을 쓰지 않으며 오로지 알파벳 순으로 나열된 항목 순서를 찾아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는 점이 아이러니라고 할 수 밖에. 강을 건너고 나면 배를 버리는 법.

예를 들어 바로 아래 책의 최근 판에 의하면 모든 단어는 10개로 분류된 대주제 아래 또 여러 개의 소주제, 그 밑의 소항목들로 분류되어 있으니, ‘thesaurus’라는 단어 자체를 개념 분류에서 찾아보면, ‘Fields of Human Activity – Communications – 280(이렇게 총 870개 소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publication : advertisement’ 아래에 나타나지만, 오늘날 이렇게 분류를 연구하여 찾아보는 사람은 없고, 쉽게 알파벳순으로 검색하여 802페이지에 있다는 것을 알 따름이다. 또한 여기에도 ‘thesaurus’의 뜻이 ‘dictionary of synonyms and antonyms(유의어 및 반의어 사전)’이라고 되어 있음에도 막상 자신은 유의어밖에 수록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아쉽다. 

(1) Roget’s 21st Century Thesaurus, 2판, 1999.7, Dell Publishing, 957페이지, 130x205mm, U$14.95
2만 개의 표제어(entry)에 50만 유의어(類義語: 우리가 보통 동의어라고 하는 것을 엄밀한 언어학적 견지에서는 ‘어떤 두 단어도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라는 의미에서 유의어라고 한다)를 수록. 여기 있는 사전 중에서 이 책의 활자가 가장 작다. 더구나 똑 같은 제목과 내용에 이 것보다 약간 작고, 가격도 싼 판이 나와 있어 주의를 요한다. 필자는 작은 것을 쓰다가 도저히 눈이 피로해 볼  수 없어 조금 더 나이 젋고 눈이 튼튼한 사람에게 넘겨준 적이 있을 정도이다.

위에서 말한 ‘thesaurus’의 유의어로 ‘glossary, language reference book, lexicon, onomasticon, reference book, sourcebook, storehouse of words, terminology, treasury of words, vocabulary, word list’를 들고 있으며 그 개념 분류 소항목인 ‘advertisement’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유개념을 거론한다, ‘advertisement, almanac, anthology, article, authority, autobiography, bible, bill, biography, book, brochure, canon, cartoon, catalog(ue), daybook, dictionary, directory, edition, erotica, fiction, glossary, guidebook, handbook, issue, journal, journalism, ledger, lexicon, literature, magazine, manual, memoir, newsletter, newspaper, novel, organ, pamphlet, paper, periodical, press, print, publication, publicity, reference, release, review, romance, satire, tabloid, text, textbook, thesaurus, tome, treatise, vocabulary, volume.’
 
(2) Oxford American Thesaurus of Current English, 1999, Oxford University Press, Hardcover, 863 페이지, 155x235mm, U$18.95
15,000 주 표제어(mail entry)와 35만 개의 유의어 외에도 반의어가 cross-reference로 표시되어 있다. 활자도 커서 보기에 편하며, 위의 Roget’s와 달리 개념 분류표 같은 것은 아예 없고, ‘thesaurus’같은 항목은 나오지도 않으며(사실 누가 ‘thesaurus’의 유의어를 찾아 보겠는가?), ‘dictionary’ 항목을 보면, ‘glossary, lexicon, wordbook, vocabulary list’ 달랑 넷을 들고 있지만, 배우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 쪽이 편리할 수 있다(특히 SAT나 GRE같은 시험을 목표로 하는 수험생들에게는).

(3) The Oxford Study Thesaurus, 1992, Oxford University Press, 555페이지, 130x205mm, 국내 가격 8,100원
위의 Oxford Thesaurus가 부담스러운 분들에게 좋은 책이다. 크기는 작지만, 2만 표제어에 15만 유의어와 반의어가 들어 있어, 웬만한 용도에는 다 쓰일 수 있다. ‘dictionary’ 항목은 ‘concordance, glossary, lexicon, thesaurus, vocabulary, wordbook’으로 오히려 위보다 유의어가 많고, ‘thesaurus’도 비록 “‘book’의 명사에서 ‘여러 가지 책’을 찾아보라”는 정도이지만 독립 표제어로 등장한다. 사실 수험 대비용으로는 그냥 영영사전보다도 이 유의어 사전이 훨씬 유용할 때도 있다. 모르는 단어가 나왔을 때 영영사전을 찾는 대신에 이 ‘thesaurus’를  이용하면, 여러 유의어 중에는 분명히 아는 단어가 나오므로 뜻도 알게 되고, 더불어 유의어, 반의어도 알게 되는 ‘일석삼조’라고 할까?

(4) The Merriam-Webster Dictionary of Synonyms and Antonyms, 1992, Merriam-Webster, 443페이지, 100x170mm(페이퍼 백), U$4.99
4,880개 표제어에 불과하고 크기가 작은 만큼 내용이 적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중요 표제어에 대해서는 일일이 다른 용례를 표시하고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위의 ‘dictionary’나 ‘thesaurus’같은 단어는 나오지도 않지만, ‘desire’를 찾아보면 ‘wish, want, crave, covet’가 있다는 것 외에도 이 5개의 단어가 어떻게 다르게 쓰이며 각각 반의어가 뭐라는 것도 나와 있으니 생각보다는 알차다고 할 수 밖에. 가지고 다니기 십상이다.

4. Usage Guide류

앞에서 잠시 언급하였지만 왜 usage가 중요한가? ‘아카데미 프랑세즈’ 같은 국가기관이 문법을 규제하는 프랑스나 우리나라처럼 한글이 법정 국어라서 그 사용을 일부 국가에서 규제하는(한글 맞춤법 같은 것이 그 예) 나라의 언어와 달리, 영어는 그 사용지역이 넓은 데다가, 규제기관이 없어서 사실 잘못하면 ‘언어의 무정부’ 상태에 빠질 위험이 높다. 그래도 이를 자율적으로 규율하는 것이 문법 외에도 바로 이 usage인 것이다. 중세 규범문법은 거의 사문화되었고, 있다면 학교문법(school grammar) 외에는, ‘누구 문법’하는 식으로 영문학자 개인 이름이나 학파 이름이 붙어 불리는 것이 전부이며, 이런 점에서 언어 사용 대중(언중)의 집단적 관습이라고 할 이 usage가 그래도 언어 결속에 지배적인 힘을 미치는 것이다.

물론 이 usage는 standard written English에 국한되므로, 그들이 일상 사용하는 언어는 이 usage를 무시한 것이 태반이다. 예를 들어 ‘주격과 목적격의 혼용(‘I’ 대신에 ‘me’를 사용하는 것, ‘whom’ 자리에 ‘who’를 사용하는 것)’은 일상 대화에서는 다반사이지만, 학교문법이나 격식을 따지는 글에서는 여전히 금기사항이다.

오랜 기간 우리나라 영어교육을 지배해 온 영국식 일본영어에 대한 반감으로, 요즈음 우리나라 영어는 거의 informal한 미국식 회화 위주로 나아갔지만, 이런 식으로 글을 쓰던지 점잖은 자리에서 말을 하면, 못 배운 소치로 취급당하기 십상이니, 주의해야 한다. 이런 점을 알게 되면, 왜 SAT, GRE, GMAT같은 미국 시험제도가 우리가 볼 때 영문법 같지 않은 특이한 문법을 고집하는지 이해가 쉽다. 그런 데서 주장하는 문법은 일종의 학교 문법으로 usage에 가까운 것이 많기 때문이다(이 usage는 그럼 누가 정하는가? 특성상 글 쓰는 일에 관계된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주기적으로 조사하든지-American Heritage 시리즈의 usage panel이 이런 것이다-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corpus를 조사해 통계를 내든지 - 대부분의 영국 사전) 따라서 이런 영어를 이해하려면, 문법책(grammar book)과 사전 외에도 다음과 같은 usage guide를 공부해야 한다.

이런 usage의 특색은 문법적인 규칙이 아니라는 점과 그냥 그 사람들이 그렇게 쓰고 이해한다는 점, 특성상 주관이 개입되므로, 학자나 책끼리도 서로 틀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중고급 영어교육이 헤매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 usage와 grammar 구분이 안 되게 배우고 가르치고 사용한다는 점, 즉 영어의 native speaker들이 분명히 이렇게 말하는데, 바로 그 내용을 왜 시험에서는 틀렸다고 하는지 그 이유도 모르는 채, 대강 뉘앙스가 어쩌고 하고 넘어가며, 답에 끼어 맞추기를 하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1) Merriam-Webster’s English Usage Dictionary, 1994, Merriam-Webster, Hardcover, 978페이지, 180x250mm, U$27.95
그래도 이 방면에서는 권위 있는 책이나 나온 지가 꽤 되었고, 문법과 달리 usage라는 것은 훨씬 빨리 변하기 마련이므로, 이 책의 내용이 벌써 고리타분한 것 아니냐는 미국 독자들의 서평도 있지만, 잘 정리된 내용으로 2,300개 항목에 걸쳐 20,000개의 실제 사용 예문을 인용하여 설명. 예를 들어, 우리가 보통 영국쪽이 이런 언어 규칙에 민감하고, 미국쪽이 훨씬 자유스럽다는 선입감과 달리, 몇몇 항목에서는 미국쪽이 오히려 까다로운데, 그 중 하나로 관계대명사의 사용을 들 수 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문법(고등학생이 보는 성문영어류에서부터 대학생용 영어교재에 이르기까지)에서나 아래의 영국 책 Practical English Usage같은 영국 문법서에 보면, 비제한적(non-restrictive) 용법의 관계대명사(학교문법에서는 보통 ‘계속적 용법’이라고 하며, 앞에 반드시 콤마가 오고, that은 이 용법으로 쓸 수 없다고 하는)는 앞의 특정한 명사가 아니라 앞 문장 전체 또는 상황을 선행사로 취할 수 있는 것(which referring to a whole clause or sentence)으로 되어 있다. He got married again a year later, which surprised everybody같은 문장에서 which의 선행사는 ‘그가 1년 후에 재혼했다는 사실’ 즉, 앞 문장 전체이다. 그런데 위의 미국식 standardized test를 공부해 보신 분은 이런 콤마 달린 계속적 용법의 which나 who라도 반드시 명사나 대명사를 선행사로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보고 그 근거를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시원한 답변을 찾을 수 없어 그냥 그러나 보다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나온 이 책과 아래의 American Heritage Book of English Usage에 이 문제가 언급이 되어 있다. 후자에서는 그렇게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지만, 비제한적 용법의 관계대명사가 앞 절 전체를 선행사로 가지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타당한 용법이라는 설명이 나오는 반면, 이 책에서는 그런 용법에 반대하는 주장을 소개하고 그러니 사용에 조심하라고 되어 있다. 즉, 미국의 시험 출제자들은 이 문제에 관한 한 이 책의 설명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가 가끔 이용하는 미국의 영어교육 사이트에서 최근에 이런 질의 응답을 본 적이 있다. 다음 문장이 괜찮은지 질문에 대하여, "More than 2.5 million people from south Florida to Daytona Beach were told to flee their homes, which is the largest evacuation in state history."  이런 답변이 나왔다(답을 한 사람은 전문가이다). " You can use 'which is', but I would avoid doing it in formal serious writing. In this sentence, the relative clause modifies the idea of the whole preceding clause. It is better for a relative pronoun ('which') to have a specific noun as an antecedent." 앞의 문장도 질문자에 의하면 현지 신문 보도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즉, 미국 사람 자신들도 보통 무심코 이런 표현을 쓰지만, 이런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보여주며, SAT, GRE, GMAT 같은 시험은 외국인이 아니라 미국사람 자신들을 원래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국어의 올바른 사용'과 관계되는 중요한 문제라서 자주 시험에 나오는 것이다.

관계대명사에 관한 논란 거리 2가지를 추가하자면, 이런 까다로운(어떻게 보면 hypercorrection으로 보일만한) 미국사람들은 관계대명사 that을 사람 선행사인 경우 who 대신으로 쓰는 것도 반대한다는 것도 참고하시길. 또한 관계대명사 that는 제한적으로만 써야 하고, which는 비제한적(계속적) 용법으로만 써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 앞의 명사를 특정한 것으로 지정하는 핵심적 정보를 주는 형용사절 또는 구를 제한적 용법(restrictive use),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추가 정보 제공의 용도이고 반드시 앞에 콤마가 선행하는 형용사절 또는 구를 비제한적(non-restrictive use) 용법이라고 하며 후자는 두 문장으로 나누어도 충분하다. 예를 들어, He has two sons who became lawyers에서 제한적 관계절 ‘who became lawyers’는 앞의 명사 ‘two sons’를 특정 짓는 역할을 한다. 즉, 그에게는 변호사가 된 아들이 2명 있다는 것으로, 변호사가 되지 않은 아들도 있을 소지가 있는 반면, He has two sons, who became lawyers라고 비제한적 용법으로 쓰면 2명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밝힌 뒤 그런데 그들이 (둘 다) 변호사가 되었다는 추가 정보를 준 형태가 되므로, 이렇게 2개의 절로 나눠 써도 무방하다. He has two sons and they became lawyers.  

(2) The Elements of Style, Strunk & White, 4판, 2000, Pearson ESL, 105페이지, 110x180mm, U$7.95
이 책에 관해서는 여기 서평을 올려두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미국에서 고교,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되어 한 시대를 풍미했고 여전히 이 계통에서는 중요하게 대접받는, 문체(style: 문장론. 어떻게 하면 효율적이고 애매하지 않은 표현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 및 usage에 대한 책으로, 미국의 문필가들이 많은 영향을 받은 책. 오죽했으면 이 책에 대한 반발로 ‘Adios! Strunk & White”란 제목의 책이 다 나왔겠는가?
 
(3) Garner’s Modern American Usage, Brian Garner, 2판, 2003, Oxford University Press, Hardcover, 175x245mm, 879 페이지, U$39.95
개인이 펴낸 usage guide로 grammar, usage, style을 다 다뤘다고 써 있다(사실 깊게 파고 들면 이들 사이의 경계도 애매할 때가 있다.) 분량이나 내용으로 보아 위 (1)의 책과 상당히 보완이 된다. 이 Garner란 사람은 이 책의 축약판인 아래 (5)번 책의 저자이며, 또 아래 (4)번 책 중 한 chapter인 제5장 Grammar and Usage의 저자이기도 하다.

(4) The Chicago Manual of Style, 제15판, 2003, The Chicago University Press, 956페이지, 155x235mm, U$55.
‘작가, 편집인, 교정인, 색인 만드는 사람, 광고문안 작성자, 책 디자이너, 출판인’ 등 모든 분야에서 필수적인 참고서적이라고 선전하는 이 책은 과연 그 명성답게 글과 책에 관한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점이 오히려 영어 배우려는 사람에게는 미흡할 수도 있다 – 누가 영어로 책 만들기나 교정쇄 만들기, 원고 정리, 인덱스 만들기 같은 것에까지 관심이 있겠는가? 따라서 이런 세세한 데까지 관심 있는 분들만 구입해야 후회가 없을 것.

(5) The Oxford Dictionary of American Usage and Style, Bryan Garner, 2000, The Oxford University Press, 360 페이지, 140x210mm, U$17.95
위의 (3)번 책의 축약판이다. 간단하여 휴대에 용이. 2,000여 개의 실제 생활(책, 잡지, 연설 등)로부터의 인용문을 이용하여, usage 외에도 자주 틀리는 문법 사항, spelling 등을 다룬다. 위 (3)번이 부담되시는 분께 권할 만 하다.
 
(6) Practical English Usage, Michael Swan, 2판 16쇄, The Oxford University Press, 2003, 658페이지, 155x235mm, 국내 가격 23,400원
영국식 usage의 집대성이나 미국식 영어와의 차이점도 설명하려 노력(하지만 위에서 말한 비제한적 용법의 관계대명사의 양국간 차이 같은 내용은 없다.) 이 책을 보면 어디까지가 문법 사항이고 어디까지가 usage인지 모를 만큼 온갖 사항이 다 망라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아무래도 usage라는 말의 용법이 미국과 영국 양국이 다른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될 정도이다. 알파벳 순으로 무려 605개 항목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다. 필자가 가장 많이 들춰보는 책 중의 하나. 이 책의 자매 편으로 이 책의 workbook 비슷한 How English Works란 책도 있다. 물론 이 책이 훨씬 많은 내용을 다루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보통 문법책과 다루는 범위나 내용에서 비슷한 데가 많아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7) American Heritage Book of English Usage, 1996, Houghton Mifflin, 290 페이지, 150x230mm, U$16.
위에서 소개한 American Heritage Dictionary의 usage note에다 일부 내용을 추가하여 별권으로 만든 책. 다음과 같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Grammar, Style, Word Choice, Gender(왜 요즘 중성명사의 인칭대명사로 he/his/him이 사라지고 them이나 his or her같은 것이 쓰이는지 등), Science Terms, Pronunciation Challenges, Names and Labels, Word Formation, E-Mail. 상당히 알찬 내용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며, 인터넷에서 공짜로 볼 수 있다(http://www.bartleby.com/64/). 이 사이트에서 찾아보면 위의 American Heritage Dictionary도 공짜로 볼 수 있다.

(8) A Dictionary of Modern English Usage, 초판 1926, 2판 1966, Oxford 출판사에서 고전 시리즈 재간행으로 2002년 재출판, 742 페이지,130x195mm, U$15.95
유명한 영문법 학자 Henry Fowler의 책으로 고리타분하다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영문법으로는 고전 반열에 오른 책이니 만큼 참고할 가치가 있다. 왜 미국사람들이 Mr.라고 쓰는 것을 영국사람들은 period 없이 Mr라고 쓰는지 아는가? 이 책 430페이지 Period in Abbreviations란 항목에 의하면, 원래 mister를 줄인 것이 Mr이므로, 약자에서 원래 단어의 맨 앞과 맨 뒤를 표시하고 중간을 줄인 것은 마침표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며, Capt.같이 captain을 줄이다 보니 맨 뒤에 뭔가 줄었다는 표시를 할 때에는 마침표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격식 따지는 영국영어식이구나! 라는 감탄이 절로 난다.

(9) Longman Dictionary of Common Errors, 2판 10쇄 2002, Pearson ESL, 375 페이지, 140x215mm, 국내 가격 14,400원
외국인 중급자 이상을 대상으로 자주 틀리는 문어체 영어를 알파벳 순으로2,500여 항목 배치하고, 정답 및 틀리는 예 몇 가지, 해설까지 첨부되어 있다. 예를 들어 ‘while’이란 항목을 보자. While I drove to the airport, my car broke down이란 문장과 Who will look after the children while you will be at work?란 문장은 틀렸다. 맞는 문장으로 고쳐보면? While I was driving to the airport(지나간 행동과 while이 같이 쓰이면 진행형으로 써야 한다), Who will look after the children while you are at work(while은 시간 접속사이므로 부사절에서는 현재시제로 미래를 대신함).

(10) Words You Thought You Knew, Jenna Glatzer, 2004, Adams Media, 310 페이지, 135x155mm, 국내 가격 13,000원
이 책은 usage 중에서 word choice 즉 단어 사용에 관련된 내용만 모은 책으로 흔히 (미국에서) 잘못 쓰이는 단어 1001개에 대한 해설을 수록했다. 이런 종류의 내용은 ‘The Elements of Style’, ‘American Heritage Book of English Usage’, ‘The Chicago Manual of Style’ 등에서도 일부분으로 다루고 있으나,  이 책은 완전히 단행본이라는 점에서 다르며, 읽어볼 만은 하지만, 완전히 저자의 견해가 정설이 아닌 항목도 있어서 조금은 유보하는 심정으로 대하시길 바란다. SAT나 GRE 보시는 분께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aggravate’와 ‘agitate’라는 단어를, 전자는 ‘악화하다’, 후자는 ‘선동하다, 부추기다, 성가시게 하다’로 완전히 분리해서 써야 한다는 주장을 하나-이 점은 ‘The Style of Elements’와 일치-, ‘The American Heritage Book of English Usage’에 의하면 원래 라틴어 어원도 그렇고 또 17세기로부터의 확립된 용례에 따라 ‘aggravate’를 ‘agitate’의 뜻으로 쓰는 것도 정당하다고 한다. 이것은 usage가 어느 정도 주관이 개입되기 때문에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혼란이라 봐야 하며, 진지한 영어 연구자라면 여러 책을 대조하여 가능한 다수설을 따르는 방법을 취하는 수 밖에.

5. 국내사전류

(1) 엣센스 영한사전, 9판, 2002.1, 민중서관, 3,246 페이지, 127x188mm, 29,600원
초판본일 때부터 필자가 애용해 오던 사전이라 다른 영한사전은 현재 갖고 있지 않다. 동아 프라임, 메이트 영한사전, 시사엘리트 영한사전, 금성사의 영한사전 등도 잠깐씩 사용해 보았으나 역시 필자는 엣센스 취향인가 보다. 물론 직접 영어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영어의 ‘말모둠’인 corpus를 가지고 있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영어사전 만드는 법은 어차피 외국 책의 번역일 수 밖에 없다. 어떤 것을 주로 모범으로 삼느냐 하는 문제에 따라 스타일이 다를 뿐이다), 일본사전의 번역본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긴 하다. 영어사전 좋다고 영한사전이나 한영사전 너무 멀리 하면 우리말 사용이나 번역에 문제가 생기므로 같이 쓰는 것이 낫다. 표제어로만 15만 단어가 올라 있으므로 어휘 수가 많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영한사전은, 용례나 예문의 부족, 동사 문형 해설의 미흡함, 가산성 구분에서의 오류 같은 공통적인 문제점을 지니고 있으며, 이 책도 예외는 아니다. 시사영어사의 책은 필자 경험상 다른 영어 서적에서 수 많은 오자, 탈자 등 안 좋은 추억이 많아 선뜻 내키지 않는다. 

(2) 프라임 한영사전, 3판, 2001, 두산동아, 2,838페이지, 130x195mm, 27,200원
이 책도 수록 어휘에 대한 정보는 없다. 예문이 풍부하며 한국영어영문학회 추천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오래 써 온 아래 엘리트 한영사전대신으로 바꾸어 선택했는데 아직 우열을 비교할 만큼 써보지를 못해 무어라 말할 수 없다. 이 책이든 아래 사전의 최근 판이든, 이보다 더 큰 한영사전이 과연 영어 배우는 사람에게는 필요한 지는 의문이다. 특별히 한영 번역을 위한 목적이 아닌 한 한영사전은 이 정도로 하고, 필요하면 인터넷 검색 등을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며 경제적이란 것이 필자 생각이다.
  
(3) 엘리트 한영사전, 2판, 1992, 1900페이지, 115x180mm
필자가 10여년 써 온 한영사전이니 요즘과는 시대 감각이 약간 떨어질 수 밖에. 오래 써 온 정 때문에 여기에는 직접 써 본 구판을 올리지만, 이 사전의 현재 판은 2002년 1월에 나온 것으로 인터넷 서점에서 27,200원에 팔리고 있다. 구판의 경우 권말 부록이 알차서 유용하였던 기억이 있다(세계의 주요 인명, 지명, 미국과 영국 영어의 차이, 상업 서식, 정부기구 이름 등).

(4) 동시통역 기초사전, 이진영, 2004.1,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830 페이지, 125x185mm, 22,500원
동시통역사로서의 다년간 경험을 지닌 저자가 내어 놓은 이 책은 초판이다 보니 일부 실수나 오타가 있는 점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개념의 한영사전으로 보아, 필자로서는 상당히 점수를 주고 싶다. 가나다 순 배열이 아니라, 사회, 문화, 언론 등 24개 분야로 나누어 관련 항목을 한국어와 영어로 설명하고 예문까지 깃들여 있으니 어떤 분야에 대한 통번역에 관심을 가지신 분은 이 책을 이용해서 자기만의 단어장을 만들어 나가면 좋을 것이며, 그럴 경우 앞에서 소개한 picture dictionary나 photo dictionary처럼 사진, 그림은 없지만, 역시 관련 단어를 한꺼번에 공부할 수 있는 효율적인 단어 학습법이라 하겠다.

 

긴 글이 끝났다. 이 글에서 언급하지 못한 사전이 있다면, 그 사실은 그 사전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필자가 게을러서 그것까지 미처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의미할 뿐이다(Cambridge 계열 사전이 통째 빠졌다는 점은 알고 있지만 필자는 이 계열 사전에서는 특이성을 발견하지 못하여 필요하면 on-line으로 이용할 뿐이다.) 또한 외국책에 비해 영한사전이 너무 빈약한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영어는 외국어라는 점, 국내 서적에 대해서야 다들 경험이 충분하리라는 생각, 또 사실 더 이상 써본 국내사전이 없다는 점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행여 이 글을 보고 그럼 이 많은 사전을 다 사서 읽으라는 뜻이냐고 얼굴 붉힐 필요는 없다. 영어가 수단이지 어디 목적이냐고 힐난할 이유도 없다. 韓擄逐塊 獅子咬人!(한로축괴 사자교인: 돌을 던지면 X개는 던진 돌을 따라 가지만, 사자는 당장 던진 사람을 물어버린다) 내게 필요한 책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든지, 그렇지 못할 경우에라도 아! 이러이러한 책은 사면 안 되겠구나! 하면 그뿐.

전자사전을 주로 보시던 보조로 보시던 꼭 필요하신 분들이라면 전자사전 선택에 위의 정보를 쓰시면 된다. 사고자 하는 전자사전에는 과연 어떤 종류의 사전이 포함되어 있는지는 알고 사야 되지 않겠는가? 목적에 따라, 예를 들어 SAT, GRE, GMAT 공부하시는 분은 반드시 Merriam-Webster's Collegiate Dictionary나 American Heritage Dictionary가 포함된 것으로 해야 하고, 초중급자로서 동사 문형이나 idiom 공부가 목적인 분은 OALD가 들어 있는 것으로 사야 후회가 없을 것이다. 

“영어사전 가까이 하는 사람이 영어 잘 하더라”라는 평범한 말을 가슴에 두고 꾸준히(몇 달 수준이 아니다! 몇 년, 몇 십년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진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그만큼 외국어로서의 영어 공부는 어려우니, 일찍 출발해서 부지런히 발품을 판 사람이라야 저물 녘에는 쉴 곳을 찾을 수 있으리라. 

 

* 미국 Standardized Test(SAT, TOEFL, GRE, GMAT) 보실 분들을 위한 패키지(5권)

1 - (5) Merriam-Webster's Collegiate Dictionary : 단어의 뜻

1 - (7) Macmillan Enlgish Dicionary for Advanced Learners: 동사 문형 및 Idiom

3 - (3) The Oxford Study Thesaurus: 간단한 유의어 반의어 사전

4 - (2) The Elements of Style: style, usage 및 일반적인 영작문 요령

4 - (7) The American Heritage Book of English Usage: style and usage(usage guide에서 주의할 점은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어떤 한 권이 그렇게 주장한다고 100%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점이다. Official Guide가 있는 시험은 그 OG에 따르는 것이 우선이고, 여러 책들이 달리 주장하는 경우에는 가능하면 보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안전하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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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키노 > I remember Miles- 그 두 번째 이야기

스타일의 대가 마일스 데이비스에 대해 알아보고 있습니다. 지난 편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마일스는 모던 재즈사에 길이 남을 스타일의 대가라 할만합니다. 쿨을 시작으로 하드밥, 모달, 그리고 재즈 퓨전에 이르는 재즈 역사의 방대한 지형도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창조해 낸 업적이었습니다.

마일스는 동시대 다른 트럼펫 주자들과 비교할 때 뛰어난 연주력과 작곡실력을 가지진 않았지만 그의 업적은 일반적인 연주인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10년을 주기로 재즈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인물은 바로 마일스 데이비스 말고는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스타일의 대가가 이룬 업적은 모두 그의 힘으로 된 것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분명 마일스는 이런 스타일에 대한 주요 컨셉을 생각해 낸 장본인이었지만 완성된 스타일이 제시되기까진 수많은 걸출한 재즈 뮤지션들이 도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일스는 어떤 연주의 영감을 떠오르면 이런 그의 컨셉을 제대로 구현해 줄 연주자를 찾아 나섰던 겁니다.

마일스는 퀸텟, 마일스 데이비스 노넷, 마일스 데이비스 재즈 퓨전 밴드는 마일스가 내세운 연주 스타일을 구현해내는 주체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마일스 데이비스 사단'이런라고까지 불리는 재즈계의 스타 군단을 거느리게 됩니다. 오늘은 스타일의 대가 마일스 데이비스가 일궈낸 또 하나의 업적, '마일스 데이비스 사단'에 대해 알아봅니다.

1. '버스 오브 쿨'의 또 다른 주역 길 에반스(Gil Evans)

주지하시다시피 마일스의 '버스 오브 쿨'(1949)는 재즈의 뉴웨이브 '비밥'의 대한 마일스의 대응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쿨'은 백인적인 감수성으로 흑인 즉흥 연주 비밥을 해석하는 마일스의 의지이자 연주 스타일이었던 셈입니다. 클래식적 사고와 악보에 근거한 연주의 형식미에 일가견있던 마일스는 비밥에서 한발짝 나간 '쿨'이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연주를 원하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선 악보에 근거한 작곡과 편곡은 필수적인 사항이었습니다.

이를 가능하게하기 위해선 클래식 대위법에 능통한 인재가 필요했습니다. 캐나다 출신의 편곡자 길 에반스는 마일스의 이런 의도를 실현화 시킬 수 있게 해준 절대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마일스의 처녀작 '버스 오브 쿨'의 실현 주체는 그가 조직한 9인조 노넷이었고 그들이 연주한 곡들은 모두 길 에반스의 손과 감성에 의해 '세련된 편곡'이란 방법으로 창조된 것입니다.

길은 마일스 데이비스가 찰리 파커 퀸텟에 재적하던 시절 작곡한 '도나 리'(1947)의 악보를 얻기 위해 마일스를 찾아갑니다. 이것이 둘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었는데 마일스는 그 댓가로 역시 길이 작곡한 악보 하나를 요구합니다. 이를 계기로 둘의 음악적 교분은 자연스레 이어졌고 마일스는 길이 자신을 위해 뭔가 해줄 수 있을거란 기대를 갖게 됩니다. 얼마후 길은 마일스에게 바리톤 색소폰주자 제리 멀리건을 소개해줬고 셋은 길의 자취방에 모여 '버스 오브 쿨'에 대한 구상을 해 나갑니다.

'쿨'이란 연주 컨셉은 마일스가 생각해 낸거지만 그것을 연주를 통해 실현할 수 있게 뼈대와 살, 그리고 옷을 맞춘 것은 길 에반스의 몫이었습니다. 마일스는 길을 평하길 '자신에게 유일하게 평등한 백인'이었다며 그의 인품과 재능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길 에반스는 쿨의 탄생에 있어서 마일스에게 바늘과 실처럼 땔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둘의 만남은 마일스 데이비스가 메이저 레이블인 콜럼비아 레코드에 진출하면서 다시 이어집니다. 마일스와 길은 9인조 노넷의 경험을 다시살려 19인조 재즈 오케스트라를 결성해 이젠 쿨을 넘어서 좀더 다양한 스타일의 재즈를 오케스트라로 재현하는 실험을 시도합니다. 그 결과 나온 '마일스 어헤드'(1957) ,'포기 앤 베스'(1958), '스케치스 오브 스페인'(1960)은 재즈와 클래식 오케스트라의 접목이라는 미증유의 명작으로 기억됩니다. 바야흐로 재즈를 클래식에 버금가는 연주 예술로 승격시켰다는 평과 함께 말입니다.

2.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이 발굴한 숨은 거장- 존 콜트레인과 빌 에반스

1955년, 헤로인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난 마일스는 자신이 들고 나온 '하드밥'에 걸 맞는 밴드를 조직하기위해 나섰습니다.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은 이렇게 조직되게 됩니다. 마일스의 크럼펫과 필리 조 존슨의 드럼, 폴 체임버스의 베이스, 레드 갈런드의 피아노로 라인업을 확정지은 상태에서 자신의 연주에 응수해 줄 테너 색소폰 연주자를 물색하고 있었습니다.

마일스는 1954년작 '백스 그루브'에서 함께했던 소니 롤린스를 노렸습니다. 끈질긴 회유와 설득을 통해 마일스는 자신의 팀에 소니를 가입시키려고 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이미 소니 롤린스는 당대 최고의 트럼펫 주자였던 클리포드 브라운 밴드에 합류하기로 돼 있었기 때문에 마일스와는 연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에다 소니는 이미 마일스 데이비스를 겪어 본 인물이었고 이미 물망에 오른 자신이 마일스 밑에 들어가 일한다는 것이 그리 탐탁치 않았던 것도 마일스 데이비스의 요구를 거절한 한 요인이었습니다.

수소문끝에 마일스는 자신의 연주 초년병시절 뇌리를 스쳐지나간 한 테너 연주인을 기억했으니 바로 무명의 존 콜트레인이었습니다. 당시 존 콜트레인은 헤로인의 빠져있어 이렇다할 활동 없이 보내고 있었습니다. 마일스의 말을 빌리자면, '확 날려주는' 테너 연주를 원하던 그에게 등장한 존 콜트레인은 자신의 퀸텟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1955년부터 57년까지 존은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에 몸담으며 모던 재즈의 걸작 '라운드 미드나이트'를 녹음하고 뉴욕에 카페 보헤미언을 근거지로 활동합니다. 마일스의 침착하고도 우울한 톤은 존 콜트레인의 활화산같이 뿜어내는 테너 연주에 대비되며 연주의 정중동을 순간을 만끽게 했습니다.

그러나 존은 여전히 헤로인 중독에 시달렸고 이로 인해 마일스와의 불화로 얼마후 팀을 떠납니다. 그 사이 퀸텟은 캐논볼 에덜리라는 알토 주자를 받아들이며 섹스텟으로 확장되고 연주도 코드 중심이 아닌 스케일 중심의 즉흥연주를 기반으로 하는 '모달 주법'으로 진화해가고 있었습니다. 바야흐로 '카인드 오브 블루'라는 모던 재즈 역사의 큰 방점을 찍기 위해 마일스는 창조의 몸부림을 치게 됩니다.

변화되는 코드에 연주를 맡기는 게 아닌 그때그때 떠오르는 영감으로 스케일(음계)에 즉흥연주를 맡기는 모달 주법은 말처럼 쉬운 시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연주인은 정해진 코드 내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음계를 가져와 듣기 좋은 선율을 그려가야 하는 겁니다. 기껏해야 블루스 스케일에서 맴돌던 하드 밥 연주의 제한성에서 벗어나 마일스는 이런 자신의 의도를 받쳐줄 풍성한 선율 연주에 능한 피아노 주자의 도움이 필요했고 역시 수소문끝에 클래식에 정통해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를 찾아내게 됩니다. 당시 리버사이드 레이블을 통해 활동하던 빌 에반스는 라벨과 스트라빈스키, 바르톡에 정통한 보기 드문 재즈 피아니스트였습니다. 클래식으로 탄탄한 음악 이론을 겸비한 빌 에반스는 마일스가 원하는 모달 주법에 가장 적격이라 여겨진 연주인이었습니다.

1959년 3월 '카인드 오브 블루' 녹음을 위해 마일스는 한동안 소원했던 존 콜트레인을 다시 불렀습니다. 그리고 마일스의 숨은 카드 빌 에반스를 녹음을 위해 참여시켜습니다. 단 한번의 재녹음 없이 진행된 '카인드 오브 블루' 세션은 앨범 전면에 투명하고도 거침없이 선율의 극치를 창조하는 빌 에반스의 공력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특히 Flamenco Skethches 같은 곡)

빌 에반스는 마일스에게 '필요이상 연주하지 말라'는 주문을 했고 자신의 피아노 솔로에서도 리듬 파트를 제외한 다른 악기 연주를 동원하지 않고 빈 공간으로 남겨뒀습니다. 물 흘허가듯 자연스런 즉흥 연주로 가득한 '카인드 오브 블루'의 모달 주법은 마일스는 물론이고 조연으로 참여한 빌 에반스 자신에게도 값진 연주 경력으로 남게 됩니다.


3.젊은 피들을 수혈받은 마일스-마일스 데이비스 2기 퀸텟

프리재즈,아방가르드가 어느덧 재즈의 중심에 자리한 60년대 중반, 마일스는 다시 변화의 몸부림에 들어갔습니다. 기존의 퀸텟 형식을 유지하면서 좀더 새로운 시도가 느껴지는 퀸텟을 구상하던 중 마일스는 개별 연주인의 즉흥성에 한층 무게를 실은 퀸텟을 구상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연주력이 뒷받침되는 실력있는 신예 뮤지션들이 필요했습니다.

여러 수소문과 오디션을 통해 마일스는 2기 퀸텟을 꾸렸습니다. 바로 아트 블레이키 재즈 메신저에서 활동한 테너 색소폰주자 웨인 쇼터를 중심으로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 베이스의 론 카터, 그리고 17살이란 어린 나이에 들어온 드러머 토니 윌리엄스입니다. 1965년부터 68년까지 6장의 앨범을 발표한 마일스 데이비스 2기 퀸텟은 리더의 솔로에 바탕을 둔 제한적인 즉흥성에서 벗어나 좀더 자발적인 즉흥성으로 연주를 이끌어 가는 총체적 즉흥성을 연주의 모토로 삼았습니다. 여기에 기존 스탠더드보다는 멤버들의 아이디어에 기반한 창작곡 중심의 연주를 통해 좀더 펄펄 살아있고 생동감있는 연주를 펼칩니다.

마일스는 멤버들을 마치 자신의 자식마냥 멤버들을 다루고 훈련시켰습니다. 멤버들 모두 재즈 초년병들이었지만 마일스와의 연주 경험은 멤버들 모두 탁월한 솔리스트로서 향후 재즈계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각각의 멤버들의 업적을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이름만 들어도 현 재즈계의 주역들임엔 틀림없습니다.


4.마일스 사단의 완성-비치스 블루와 그 주역들

60년대 말 유럽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을 바탕으로 재즈가 자리를 옮겨가며 차츰 활기를 잃어간 재즈와 달리 록은 젊은이들의 감성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비틀즈를 위시해 지미 헨드릭스와 크림이 들고 나온 강성 록은 반전평화운동 흐름과 맞물리며 그 열기는 더해갔습니다. 마일스는 이런 상황을 주시하면서 재즈 역시 록의 기운을 이식받아 환골탈퇴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재즈를 중심으로 록의 기운을 수혈받자는 것이 마일스의 의도였습니다. 그렇게 할 때 재즈도 젊은이들의 호감을 얻을 수 있을 거라 마일스는 생각했습니다.

1968년 마일스는 지미 헨드릭스를 만났습니다. 일렉트릭 기타의 귀재와 한 스타일의 대가의 만남은 이후 지속되진 않았지만 이를 통해 마일스는 재즈에 전기증폭과 비트감을 입혀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일스는 이를 위해 새로운 개념의 밴드를 조직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그의 2기 퀸텟을 과감히 해산시켰습니다. 그리고 어쿠스팃 피아노 대신 일렉트릭 키보드 주자 조 자위눌과 칙 코리아를, 드러머엔 잭 드자넷과 레니 화이트를, 어쿠스틱/일렉트릭 베이스엔 데이브 홀란드를, 록의 상징과도 같은 기타리스트엔 존 맥클러플린을 영입시켰습니다.

록의 미디움을 다각도로 표현한 1969년작 '인어 사일런트 웨이'는 새로 영입된 건반주자 조 자위눌의 곡으로 채워진 앨범이었습니다. 펑키한 리듬연주와 풍부한 색채감의 선율연주에 능통하고 'Mercy Mercy Mercy'라는 히트 연주곡을 만든 조 자비눌은 마일스가 들고나온 재즈 퓨전 물결에 빼놓을 수 없는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마일스는 드럼의 비트감과 펑키한 리듬이 더 중요할 거란 생각으로 후속작이자 재즈계의 최고 문제작 '비치스 블루'를 이듬해 발표합니다. 이 앨범에서도 조 자위눌은 'Pharao's dance'를 작곡했습니다.

마일스의 재즈 록 퓨전은 1970년을 기점으로 일반 록 페스티벌 무대에도 진출합니다. 비치스 블루에 동원된 걸출한 신예 연주인들을 포함해 이국적 리듬을 선사한 퍼커션주자 에알토 모레이라도 추가됐습니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도 1970년 한해 마일스 밴드를 거쳐갑니다. 앨범 '비치스 블루'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마일스의 자식들은 존 맥클러플린의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 칙 코리아의 리턴 투 포에버, 조 자위눌과 웨인 쇼더의 웨더 리포트라는 인기 재즈 록 퓨전 밴드로 이어지며 70년대 재즈계를 마일스 사단의 시대로 장식했습니다.


여기까지 읽어내려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그러고보니 수많은 재즈 대가들이 마일스 데이비스를 통해 데뷔했고 알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존 콜트레인을 위시해,빌 에반스, 허비 행콕, 거기에 키스 자렛까지 마일스 데이비스를 거쳐갔으니 재즈의 역사의 50%는 마일스 데이비스를 통해 창조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겁니다. 1940년대 미약하나마 자신의 연주 개념을 실현하려고 했던 마일스는 70년대 이르러 바야흐로 한 재즈 사단의 수장으로 군립하게 됩니다. 이수만 사단의 가요계, 퀸시 존스 사단의 팝계라면 재즈쪽에선 마일스 데이비스입니다. 그런데 마일스 데이비스 사단은 앞에 언급된 사단과 크게 다른점이 하나있습니다.

스타일의 대가 마일스의 업적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결국 그런 마일스의 생각에 동조하고 청춘을 바쳤던 수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마일스와 함께 했던 뮤지션들은 이후 100% 성공가도를 달렸다는 겁니다. 그것도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인정받는 뮤지션으로 말입니다. 모든 음악계에서 한 사단의 수장이 수많은 뮤지션들을 키웠지만 이후 그 사단을 통해 데뷔한 뮤지션이 지속적으로 창작력을 발휘하면서 사단의 수장의 업적을 빛나게 하는 사례는 마일스외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일스 데이비스 사단이 끈질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요. 그건 마일스가 현 시대를 읽어내는 지혜와 주변 아티스트의 진면목을 집어내는 뛰어난 프로듀싱 감각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 두가지는 결코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갈 때 음악으로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겁니다. 쿨에서부터 퓨전까지 마일스는 시대가 원하는 소리와 리듬이 무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민 끝에 나온 컨셉을 실현할 신예 뮤지션들의 감각을 찾아 나선겁니다.

지금까지 글을 통해 얘기하고 싶었던 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왜 마일스 데이비스가 연주인이자 스타일리스트를 뛰어 넘는 시대의 본보기가 된 사단의 수장으로 기억될 수 있는 지? 이 글이 그 질문에 대한 조그마한 답변이 됐으리라 생각됩니다.

다음편에 계속...



  2006/01 정우식 (jasbso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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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키노 > I Remember Miles! - 그 첫 번째 이야기


밝고 희망찬 순간보다 우울하고 어두운 순간들로 가득했던 2005년을 뒤로하고 어느덧 병술년 2006년의 밝은 해가 떴습니다. 2006년이라 뭐 새로운 게 있을까? 이렇게 푸념조로 한해를 시작하시는 분도 있을 줄 압니다. 하지만 어쩝니까? 주어진 시간은 그냥 흘러가라고 있는 것은 아니겠죠. '인생이 뭐있나'하는 자조 속에도 우린 내심 뭔가 2006년을 '의미와 가치'라는 묵직한 것으로 채워줄 수 있는 무엇을 기대하게 됩니다.

대중음악계의 2006년의 전망, 딱히 뭐라 얘기할 순 없어도 그다지 밝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이 음악적 난세에 조용필이나 서태지 혹은 비틀즈와 너바나와 같은 '영웅'의 출현을 행여 기대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과거의 단순한 재현이 아닌 이전보다 진일보한 색다른 그 무엇을 이 나라의 대중음악이 제시해주길 기대하는 실낱같은 소망입니다. 그러기에 결국 우리는 과거에 명멸한 음악 영웅들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의 현재와 미래는 과거 역사의 필연적인 반복이니까요.

저는 2006년을 맞이하면서 바로 이 사람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바로 쿨의 전설 마일스 데이비스입니다. 올해 2006년은 바로 마일스 데이비스의 탄생 8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올해 재즈계는 이 명멸한 트럼펫 주자에 관한 여러 추모행사가 있을 거라고 합니다.

그럼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겠네요. “왜 21세기가 시작된 지 한참지난 지금까지도 마일스 데이비스인가?” 구체적으로 들어가 물어본다면 과연 내가 듣고 있는 가요 한곡, 팝 하나, 재즈 앨범 하나와 마일스 데이비스는 어떤 관계가 있는건가요? 그가 죽은 지 어느덧 1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마일스의 65년 인생동안 남긴 음악적 유산은 분명 이 난국의 대중 음악계에 뭔가 시사해 주고 있다는 겁니다.

'재지한 재즈속으로' 지면을 통해 앞으로 3회에 걸쳐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명쾌한 답변을 찾아보겠습니다. 이번 마일스 데이비스 탄생 80주년 특집은 '스타일의 창조자 마일스 데이비스', '뛰어난 전략가 마일스 데이비스', '블랙 파워의 지존 마일스 데이비스'란 타이틀로 3회에 나눠서 진행됩니다. 먼저 '스타일의 혁신자 마일스 데이비스'입니다.


1.스타일의 창조자 마일스 데이비스
재즈 역사가 100년이 조금 넘은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수많은 아티스트가 있었습니다. 루이 암스트롱, 듀크 엘링턴,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존 콜트레인 등등, 우린 그들을 음악적으로 일가를 이뤘다는 의미에서 '대가'라는 호칭을 붙였습니다. 일일이 그들의 업적을 빼곡히 밝힐 순 없어도 다들 혁신과 실험이란 기치아래 재즈의 진보를 일궈낸 인물들입니다. 마일스 데이비스 역시 앞에 언급한 대가들 중에 한 사람입니다. 고혹적인 선율과 담백한 주법이 느껴지는 쿨 재즈를 창조했고, 이어 10년마다 새로운 연주 스타일을 제시해 낸 대가입니다. 그런데 마일스 데이비스는 앞에 언급한 다른 재즈 뮤지션들과 사뭇 다른 점이 발견됩니다.

록 전문지 롤링스톤 2003년 겨울호는 “역사상 위대한 500대 록 명반”을 선정한 특집호였는데 이 순위에서 바로 마일스 데이비스의 1959년 역작 'Kind of Blue' 가 12위에 랭킹 돼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재즈 록 퓨전의 효시를 알린 1970년작 'Bitches Brew'가 94위, 1960년작 'Sketches of Spain'이 356위를 차지했습니다. 재즈 아티스트의 앨범이 하나도 아니고 무려 3장씩 록 음악 잡지에 명반으로 거론된다는 것은 마일스의 음악이 재즈의 영역을 넘어 전체 대중음악에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쿨을 시작으로 하드밥, 모달, 그리고 퓨전에 이르기까지 마일스의 음악 인생은 부단한 '스타일과의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백인의 관점에서 흑인의 비밥을 해석한 처녀작 'Birth of cool'(1949), 비밥(Bebop)을 한층 구조적이고 세련되게 창조한 하드밥 명반 'Round Midnight'(1956), 재즈를 클래식 오케스트라의 버금가는 음악성으로 끌어올린 'Miles Ahead'(1957), 코드 변환에 의거한 연주가 아닌 음계(스케일)가 연주의 중심이 되는 모달 주법을 시한 'Kind of blue'(1959), 대중적인 록 음악을 재즈의 관점에서 해석한 재즈 록 퓨전의 효시 'Bitches Brew', 환갑의 나이에 아랑곳없이 첨단 일렉트로닉 재즈를 연주한 'TuTu'(1986)를 선보입니다.

마일스는 기존에 익숙해진 연주 스타일을 과감하게 내던지고 오로지 새로운 연주법을 찾기에 골몰했습니다. 사람이 뭔가로 유명해지면 자칫 나태해지고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매너리즘이란 말은 그럴 때 쓰는 거죠. '쿨'의 창조자란 명성만으로도 마일스는 충분히 재즈 계를 군림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일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갑자기 국가 대표 축구 감독 히딩크의 명언이 떠오르네요. 16강에서 8강을 거쳐 꿈에도 없었던 4강전을 앞둔 상황이었습니다. '이정도면 됐다'라는 여론 속에서 히딩크의 답변은 명작이었습니다. '난 여전히 배가고프다'라고.

그의 음악적 야망의 끝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혁신적인 연주법이라도 조금 시간이 지나 익숙해진 것이 됩니다. 마일스는 이럴 때 마다 기존의 스타일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걸 찾아 골몰했습니다. 일례로 마일스는 1986년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카인드 오브 블루의 명연 'So What'을 다시 연주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마일스는 '그 똥 같은 연주, 다시는 하지 않아'라고 일축했답니다. 새로운 스타일에 늘 목말라하는 마일스의 면모가 드러나는 대답입니다.

재즈뿐 아니라 모든 음악장르를 막론하고 하나의 명반을 낳기 위해선 엄청난 산고를 겪게 됩니다. 기존의 익숙한 것을 과감히 버리고 무(無)의, 백지의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무모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을 두고 볼 때 그런 음악인들의 무모한 결단은 경험은 명반이란 결실을 낳았고 결국 음악계 전반을 풍성하고 생명력 있게 했습니다.

스타일의 창조자, 마일스 데이비스가 재즈를 뛰어넘어 모든 음악계의 귀감이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쿨 에서 퓨전에 이르기까지 그가 일궈낸 창조를 위한 고군분투는 재즈 스타일을 한층 다양하게 했고 재즈가 클래식에 버금가는 창조의 예술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줬습니다. 아울러 재즈가 고상한 일부 계층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재즈를 접할 수 있는 대중화의 방법론도 제시했다고 봅니다.

1991년 9월 25일 불꽃같은 예순 다섯 해의 인생을 살고 마일스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원로이길 거부하고 영원한 현역이길 고집한 마일스 데이비스. “음악은 한때 하다가 그만두는 유행이 아니다. 평생, 죽을 때까지 씨름해야 할 업(業)이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지금 이 순간 이 시대 대중음악들에게 전하고 싶은 심정일 겁니다.

다음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2006/01 정우식 (jasbso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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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키노 > 10명의 음악평론가들이 뽑은 2005년 베스트 음반 [1]

마돈나부터 시작해야겠다. 이어 로비 윌리엄스, 뉴 오더, 디페쉬 모드, 케미컬 브러더스, 로익솝, 모비, 켄트, 오아시스, 콜드 플레이, 스타세일러, 폴 매카트니, 에릭 클랩튼, 롤링 스톤스, 헬로윈, 빌리 코건(스매싱 펌킨스), 드림씨어터, 시스템 오브 어 다운, 스완 다이브, 하바드,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 자미로콰이 등등이 신보를 내놓은 2005년(취향이 쏠렸고 사대주의에 절었고 네임 밸류만 따진다고 비난해도 좋다. 귀는 두짝밖에 없고 지갑은 텅 비었는데 세상의 모든 음악을 다 듣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최고의 음반을 꼽아달라고 대중음악평론가 10명에게 부탁했다. 어불성설인가? 그렇다면 ‘2005년 그들만의 베스트 음반’이라고 해두자. 10명의 평론가가 각각 한장의 베스트 음반을 추천했고 10장의 베스트 리스트를 보내왔다. 어떤 이들은 순위를 매겼고, 어떤 이들은 무순으로 응답했다. 대부분은 (우리의 요청에 따라) 국내 발매본에 한정해 리스트를 만들었지만 어떤 이들은 수입 음반을 포함했다. 제아무리 각자의 취향대로 음반을 골랐다 해도 제법 중복 언급된 음반들이 있는 것을 보면 명반은 명반으로 평가받게 마련인 듯하다. 대중음악평론가 10명이 선정한 100개의 음반 목록이 2005년 당신이 놓친 보석 같은 음반을 발견케 하는 계기도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 아티스트 여제후의 사랑의 서사시, 이선희 <사춘기>

강헌/ 대중음악평론가·한국대중음악연구소장

한 시대를 일인제국으로 평정한 조용필의 역사적 권위에 비견할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을 지닌 여성 아티스트는 단연 이선희일 것이다. 그는 2005년 봄에 펼쳐놓은 열세 번째 노래의 향연 중 <장미> 단 한곡으로 여제후로서의 그것을 완벽하게 증명한다. 당당하며 단호한, 그러면서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숙한 향기를 머금고 있는 이 노래가 흐르는 4분39초 동안 우리는 마치 감전된 것처럼 이선희가 펼쳐놓는 사랑의 서사시의 흐름에 빠져들게 된다.

물론 우리는 보컬리스트로 출발하여 자신의 음악의 주재자로 진화한 몇 안 되는 여성 뮤지션의 목록을 알고 있다. 이상은과 한영애, 그리고 장필순 등등. 하지만 이들은 언더그라운드의 영웅들의 보이지 않는 조력을 받았거나 스스로 언더그라운드로 걸어들어간 이들이다. 거품 같은 인기를 상실하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비정한 주류의 경기장에서 예술가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연금한 이선희의 경우는 대단히 예외적인 풍경이며 그래서 더욱 소중한 성과인 것이다. 하지만 이 앨범은 이 지점에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도탄에 빠진 지금-여기의 한국의 대중음악사는 여성의 손으로 한뜸한뜸 만들어진 이 정교하고도 따뜻한 앨범에 겸허한 경의를 표해야 한다.

오프닝 트랙 <인연-동녘바람>부터 여덟 번째 트랙 <사랑이 깊어지고 있습니다>를 지나 이 앨범의 에필로그인 피아노 솔로곡 <피아노>에 이르는 동안 우리는 단 한순간도 빈틈이 없이 완벽하게 직조된 사랑의 찬가와 조우하게 될 것이다. 이 고귀한 트랙들은 그저 붕어빵 찍어내듯 공장에서 생산된 숱한 사랑 타령과 구별된다. 이 노래들의 갈피마다 피상적인 매너리즘으로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성숙한 성찰이 음악적 장치로 전환되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속류화한 리듬앤블루스의 발라드가 어지러이 쏟아지는 현시점에서 <사춘기> 같은 곡의 담백한 발성은 어쩐지 밋밋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 노래야말로 수많은 격정의 표현력을 넘어 이선희가 오늘 도달한 투명성의 높이이다.

<사춘기>는 오랜 불황을 넘어 권토중래를 꾀하는 2005년 봄 시즌 한국 대중음악계의 빛나는 축복이다. 이 앨범 역시 시장의 천민적인 논리에 좌절하고 모욕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앨범을 듣고 난 뒤 그 모든 위협도 이 앨범이 분만하는 아름다움의 한 자락을 해칠 수 없다는 확신이 스치고 지나간다.

BEST MUSIC 10(무순)

유열 <Largo>(신나라뮤직)
윈디시티 <Love Record>(T엔터테인먼트)
김건모 <Be Like>(예당엔터테인먼트)
거미 <For The Bloom>(YG엔터테인먼트)
이선희 <사춘기>(Hook엔터테인먼트)
드렁큰타이거 <1945 해방>(도레미)
한대수 <The Box>(서울음반)
김용우 <어이 얼어자리>(서울음반)
웅산 <The Blues>(Blue Note)
스윗 소로우 <Sweet Sorrow>(서울음반)

삶의 향기 품어낸 민중음악의 새로운 길, 연영석 <숨>

박준흠/ 대중음악평론가·대중음악웹진 <가슴>(www.gaseum.co.kr) 편집장·광명음악밸리축제 예술감독

‘90년대 중반 꽃다지의 앨범 이후 가장 완성도 높은 노동가요 음반’이라는 평가를 받는 연영석의 2집 <공장>(2001, 맘대로레이블)을 듣고 있으면 한국에서 ‘노동가요’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생각하는 노동음악은 ‘노동자의 정체성, 노동자로서의 계급의식을 갖고 그들이 향유하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형태를 노래하는 것’이다”라는 신념하에 ‘반복되고 밀려오고 넘쳐나다 죽어가는 신자유주의 사회 민중의 삶을 통렬하게 고발하며’(<공장>) ‘결코 시키는 대로 다하다가 당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이씨 니가 시키는대로 내가 다 할 줄 아나>) 연영석의 목소리는 참으로 간절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가 대부분 피해갈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는 시점에서 그의 노래는 절절함 이상의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1천만 노동자’가 있다는 한국에서 역설적이게도 연영석과 같은 ‘노동음악가’의 노래를 들어주는 이가 너무나 적어 보인다. 지난해 광명음악밸리축제의 ‘민중음악30년’ 코너에 연영석은 그의 음악적 파트너인 고명원(편곡, 기타)과 함께 록밴드 체제로 참여하여 1만여명의 관중 앞에서 연주했는데, 이는 아마 그의 음악생활 10년 만에 처음일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연영석과 고명원, 이 둘이 이를 악다물고 ‘질주’하는 자세로 노래 부르는 것을 보면서 정말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 점에서 이번 3집 <숨>(The Breathe)은 ‘드디어’ 발표되었다고 얘기하고 싶을 정도로 소중하면서도 의미있는 앨범이다. 지난번 <공장>을 듣고 받았던 감동은 이 앨범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고, 그의 노래가 갖는 통찰력은 현재의 민중음악가 중에서도 그를 단연 돋보이게 한다. 일례로 ‘이주노동자’ 문제를 신랄하게 노래하는 <코리안 드림>은 ‘누구나’ 쉽게 만들어서 불렀을 법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았음에 놀라게 된다. “때리지 마세요 욕하지 마세요 내 돈을 돌려주세요/ 내 몸이 아파 마음이 아파 여기서 도망치고 파”라는 식의 직설적인 표현은 ‘읽었을 때’는 생경하게 들리겠지만, 그의 해학(?)이 담긴 목소리를 통해서 폭발적인 록사운드를 깔고 ‘들었을 때’는 뉘앙스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런 게 바로 그와 같은 노동‘음악가’만이 해낼 수 있는 작업인 것 같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피해자’의 위치에서 어느덧 ‘가해자’의 위치가 되어버린 우리의 자화상을 이렇게 노골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표현해서 불편함과 분노를 동시에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 찬사를 보낸다. 전체적으로 인간과 노동의 문제를 다루는 그의 음악은 한마디로 ‘간절’하면서도 ‘통쾌’해서 나와 같은 평론가에게는 음악평가에서의 기준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자신의 현장작업을 “비현실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게 가능해야 세상이 변할 거라고 생각한다”라는 그의 답변은 참으로 경청할 만하지 않는가?

BEST MUSIC 10

1. 연영석 <숨>
2. 스왈로우 <Aresco>(샤레이블)
3. DJ Son <The Abstruse Theory>(한량사)
4. 문샤인 <Songs Of Requiem>(아트로미디어)
5. 관악청년포크협의회 <Vol.1 꽃무늬 일회용휴지/유통기한>(붕가붕가레코드)
6. 나윤선 with Refractory <Nah Youn Sun with Refractory>(AMP)
7. 트리오로그 <Speak Low>(풍류)
8. 미스티블루 <너의 별 이름은 시리우스 B>(파스텔뮤직)
9. 게토밤즈 <Rotten City>(쌈넷)
10.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소규모아카시아밴드>(Soulshop)

아프리카 말리의 블루스+마누 차오의 비트, 아마두와 마리암 <Dimanche a Bamako>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EBS-FM <성기완의 세계음악기행> DJ

이 앨범은 정확하게는 2004년 11월에 발매되었지만 2005년에 소개되고 유통되었다. 2005년 한해 동안 월드뮤직 신에서(특히 프랑스에서) 가장 주목의 대상이 되었던 음반이라 할 수 있다. 아마두와 마리암(프랑스어로는 Amadou et Mariam)은 아프리카 말리 출신의 맹인 부부 듀엣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아프리카 말리는 미국 남부의 흑인 떠돌이 음악에서 출발한 ‘블루스’의 진정한 아프리카적인 고향으로 여겨진다. 말리는 특히 20세기 후반에 미국의 흑인 음악, 로큰롤이 역수입되면서 블루스적인 전통과 결합, 독특한 록 음악을 생산해내는 지역이 되었다. 마틴 스코시즈의 블루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중에서 마틴 스코시즈가 직접 만든 <Feel Like Going Home>을 참고하라.

<Dimanche a Bamaco>(바마코에서의 일요일, 바마코는 말리의 수도) 앨범은 아마두와 마리암의 블루스와 마누 차오의 비트가 만나 빚어낸 독특한 화학작용의 결과물이다. 마누 차오는 지금은 해체된 전설적인 프렌치 월드비트 펑크 밴드인 ‘마노 네그라’의 리더로서, 또 솔로 아티스트로서 너무도 유명하다. 한때 남아메리카를 돌아다니며 게릴라들을 후원하기도 했던 그의 편곡과 샘플링은 아마두와 마리암의 블루스를 월드뮤직의 ‘스탠더드’ 비트로 포장한다. 말리인들의 절망, 희망, 아프리카 특유의 순수함이 그 스탠더드로 인해 세계인들에게 이해 가능한 음악 언어를 얻는다. 그것을 좋게, 또 나쁘게도 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은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싱글 커트되어 좋은 반응을 얻은 <Senegal fastfood>를 비롯, 모두 15곡이 담겨 있다. 절망 속에서 꿈꾸는 듯한 힘을 느끼게 하는 마리암의 멋진 보컬과 아마두의 칼로 끊어내는 듯한 날카로운 블루스 프레이즈의 기타 사운드가 마누 차오의 라틴풍 리듬과 버무려져 우리의 귀를 깨어나게 한다.

BEST MUSIC 10(무순)

아마두와 마리암 <Dimanche a Bamako>(수입)
영화 <Kill Bill> O.S.T(워너뮤직)
영화 <오로라 공주> OST(서울음반)
윈디시티 <Love Record>(T엔터테인먼트)
화이트 스트라입스 <Get Behind Me Satan>(서울음반)
롤링 스톤스 <Bigger Bang>(EMI)
고릴라즈 <Demon Days>(EMI)
에이머리 <Touch>(소니BMG)
카니예 웨스트 <Late Registration>(유니버설뮤직)
시구르 로스 <Takk>(EMI)

몇 광년 앞선 밴드의 신나는 파격, 시스템 오브 어 다운 <Mezmerize>

성우진/ 대중음악평론가

신선하지는 않지만 꼭 “유쾌, 상쾌, 통쾌”라는 카피를 빌려 써야만 직성이 풀릴 듯한 밴드가 ‘시스템 오브 어 다운’(System of A Down, 이하 시스템)이다. 일반적인 팝 팬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겠지만 2005년 한해 이들이 보여준 활약이나 성과는 역대 사상 최고였다. 헤비메탈 형태의 음악으로는 매우 드물게 거의 모든 음악 관계자들이나 팬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낸 이들은 인디 팝/록 웹진들로부터도 압도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아마추어 시인이기도 한 이 밴드의 기타리스트 대런 맬러키언의 자작시였던 ‘Victims of a Down’을 두고 멤버 전원의 찬사를 얻었던 덕분에, 그 시의 제목에서 첫 단어만 더욱 강렬한 이미지를 주는 ‘System’으로 바꾸어 지금의 밴드명을 결정했다고 하는데, 이 팀은 1995년 미국의 문화도시 LA에서 특별하게도 아르메니아 태생의 보컬리스트 세르이 탄키안을 중심으로 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 그리고 드러머의 4인조 라인업으로 결성됐다.

할리우드 클럽가에서 활동하다가 1997년에 레이블 사장이자 명프로듀서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앨범으로도 유명한, 릭 루빈에게 발탁된다. 2005년 이들은 <Mezmerize> 앨범 외에도 공언한 그대로 그 후속편인 <Hypnotize>까지 발매해서 지금까지 차트를 점령 중인데, 시스템의 현재 특징이라면 곡의 중간 중간에 튀어나오는 놀랍고도 재치있는 구성 능력이다. <뉴욕타임스>에서는 이들을 “여타 밴드보다 몇 광년 앞선 밴드”라 표현했는데, 갑자기 중동풍의 멜로디가 흘러나오는가 하면, 코믹한 오페라식 창법도 들이민다. 그야말로 21세기 트렌드 중 하나인 엽기 코드를 사용해 변칙의 극단을 달리는 다른 트랙으로 인해 헤비메탈도 재미있고 즐거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세르이의 보컬톤이 가장 돋보이는데 빠른 랩, 샤우팅 그리고 슬로 템포 멜로디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압도한다.

첫 싱글인 <B.Y.O.B.>는 전쟁에 대한 비판을 담아 빠른 속도를 보여주는 기타 리프로 시작해서 변칙적으로 속도를 조절하는 트랙이면서도 멜로디를 정확히 전한다. <Revenga>는 북유럽풍의 멜로딕 메탈을 연상케 하는 화음이 멋지고, 가장 돋보이며 웃음을 자아내는 엽기 메탈 오페라 <Cigaro>는 탄키안의 코믹하고 능청스러운 노래 연기력이 뛰어난 트랙이다. 블랙 메탈 대부인 킹 다이아몬드가 연상될 정도로 보컬 연기력이 뛰어나다.

BEST MUSIC 10(무순·라이선스 발매 음반에 한함)

시스템 오브 어 다운 <Mezmerize>(소니BMG) 두번째 달 <2nd Moon>(라임라이트뮤직) 오디오슬레이브 <Out of Exile>(유니버설뮤직) 카니예 웨스트 <Late Registration>(유니버설뮤직) 블록 파티 <Silent Alarm>(서울음반) W <Where The Story Ends>(Fluxus) 프란츠 퍼디난드 <You Could Have It So Much Better>(소니BMG) 제임스 블런트 <Back To Bedlam>(워너뮤직) 트리비엄 <Ascendancy>(소니BMG) 윈디시티 <Love Record>(T엔터테인먼트)

한국 포크록 대부의 멀고 먼 37년 음악인생, 한대수 <The Box>

송기철/ 대중음악평론가

‘영원한 자유인’ 한대수의 음악여정을 집대성한 박스세트 <The Box>에선 음악인생의 ‘결산’과 앞으로의 ‘행보’를 느낄 수 있다. <The Box>앨범은 타이틀에 걸맞게 데뷔앨범인 <멀고 먼-길(‘74년작)>을 필두로, <고무신(’75년작)> <무한대(‘89년작)> <기억상실(’90년작)> <천사들의 담화(‘91년작)> <1997 후쿠오카 라이브>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99년작)> <Eternal Sorrow('00년작)> <고민(‘02년작)> <상처(’04년작)> <2001 Live/2CD('05년작)> <Et Cetera>까지 12장의 앨범과 1장의 DVD, 그리고 사진과 글이 곁들여진 두툼한 책자로 구성되어 있다. 항상 ‘불후의 명반’이란 평가를 지겹도록 들어온 1,2집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그간 구하기 어려웠던 여러 앨범과, 70년대 말 뉴욕시절 결성했던 그룹 징기스칸의 곡들과 미발표 곡들이 함께 수록된 <Et Cetera>앨범은 오직 박스세트에서만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다. 2집 이후 14년 만에 발표했던 명반 <무한대>는 한대수의 천재적 재능이 번뜩이는 앨범이며, 90년대에 발표한 일련의 문제작들은 그가 ‘행복의 나라’와 추억과 향수 속에 박제된 70/80 가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박스세트의 또 하나의 미덕은 ‘디자인’에 있다. <The Box>앨범은 외국의 그것과 비교해도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모든 음반이 마치 한 권의 책처럼 예쁘게 포장된 네모난 상자를 처음 열어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번 앨범은 뛰어난 음악과 아름답고 실용적인 디자인이 보기 좋게 어우러진 걸작 박스 세트이다. ‘트리뷰트’열풍이 몰아쳤던 지난 90년대에도 한대수에게는 그 흔한 헌정앨범 하나 없었다. 이제 그 미안함을 <The Box>앨범으로 조금이나마 대신하고 싶다. 한대수는 자신의 저서 <영원한 록의 신화 Beatles VS 살아있는 포크의 전설 Bob Dylan>에서 이들을 ‘록큰롤의 정액’이라고 설파했다. 한대수, 그는 분명 한국대중음악의 정액이다. 그리고 그 정액은 여전히 음악의 자궁 속을 힘차게 헤엄쳐 다니고 있다.

BEST MUSIC 10(무순·라이선스 발매 음반에 한함)

한대수 <The Box>(서울음반)
유근상, 김준, 박신영 <Kafka>(뮤직마운트)
편집음반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The Best Of Latin American Music>(알레스뮤직)
베보 발데스 & 카를링유스 브라운 영화 <The Miracle Of Candeal> O.S.T(소니BMG)
오마라 포르투온도 <Flor De Amor>(워너뮤직)
초민 아르톨라 & 아마이아 수비리아 <Folk-Lore-Sorta-1>(서울음반)
폴로 몬타네즈 <Guajiro Natural>(코레뮤직)
엔조 엔조 <Paroli>(소니BMG)
유진 프리센 <Arms Around You>(세일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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