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지나치게 미련이 많은 스스로가 답답하다. 연애에 대해 내가 믿는 절대진실 하나는 '타이밍'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그렇지 않다. 한순간 스친 인연에 오래도록 끙끙거리고, 이미 지나간 사람이 그리워 날만 흐려도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유난히 정이 많은 어머니는 내게 튼튼한 치아나 물려줄 것이지, 망할 감상만 잔뜩 짐지웠다.
일본 여자는 타이페이 여행중 잠시 만난 남자를 오래도록 마음에 둔다. 그가 있던 타이페이를 자주 찾고, 그곳에서 일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의 음식, 언어, 느긋한 흐름을 좋아하게 된다. 남자도 여자를 오래도록 기다린다. 그녀가 사는 곳에 지진이 나자 직접 찾으러 일본에 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 그들의 간절한 바람은 인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서로를 향한 마음을 잊지 않은 그들은 8년후 재회한다. 여자는 타이베이에서 남자는 일본에서 각자의 일에 몰두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번 잃었던 인연을 애써 이으려고도, 자신의 삶을 바꾸려고 하지 않으면서 그대로 살아간다.
일본이 타이베이를 지배할 때 태어나 종전후 본국인 일본으로 건너간 남자는 노인이 될때까지 타이베이를 한번도 방문하지 않는다. 나고 자란 곳을 마음한켠 업신여겼던 과거가, 또 일본인으로서 그곳에서 벌어진 불행한 현대사에 대한 죄책감이 고향으로 그를 '돌아가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국적을 떠나 죽음앞에 그가 돌아가고 싶은 고향은 타이베이였다.
그 땅의 후끈한 기후와 길거리의 음식냄새와 한낮의 나른함까지 전해지는 소설이다. 운명을 믿는다. 놓친 인연이 안타깝고, 재회는 소중하다. 그러나 너를 만나 변화된 지금의 나도 소중하다. 너로 인해 변화된 나를 소중히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그 길 끝이 너에게 닿지 않더라도 나를 품어주었던 너의 마음에 대한 응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