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온전히 둘이서만 보내는 주말이다. 
광주 무등산과 묘역을 다녀오려 했는데, 
비가 많이 온단 소식에 포기하고
게으른 주말을 보낸다.  

미뤄뒀던 집안일을 하고,
옥수수도 쪄먹고, 만두도 구워먹고, 
과자도 먹고, 매운오뎅탕이랑 맥주도 마셨다. 

아주아주 오래 자고
세수도 하지 않고 홈웨어 차림으로 집 앞 찻집까지 걸어가
말차 한잔을 하며 책을 읽었다. 

나가수를 보고
임재범이랑 같이 울고,
김연우가 탈락해서 분개하다,
 
겨우 책을 다시 집어든다. 

벌써 하루가 다가다니 어리둥절. 

톰소여의 모험을 읽으려니 도저히 일요일 밤 내 마음과 맞지 않다.
런던이 사랑한 천재들을 뽑아들고 왔는데 역시 런던의 찬란하고 그리운 사진들이 나의 우울을 부추겨 던져버린다.
건조하게 해방일기 어떨까하며 가져오다(딱딱한 글이라는 얘긴 아니다) 옆에 던져둔 허수경의 특별판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이 보인다. 특별하긴 했으나 하나 좋을 것 없었던 판형 때문에 내게 미움을 받고 있다. 그러게 일반본으로 사면 될 것을 왜 그랬을까?  

   
 

울지 마, 라고 누군가 희망의 말을 하면
웃기지 마, 라고 누군가 침을 뱉었어  

- 비행장을 떠나면서 中 

울지 마 울지 마 결혼반지 잃어버린 육십 넘은 동백꽃처럼 울지 마
울지 마 울지 마 내일 헐려나갈 천년 넘은 집처럼 울지 마
울지 마 울지 마 십수 년째 거짓말만 하고 있는 시인처럼 울지 마
울지 마 울지 마 이런 것도 눈 감는 거라고 이 대륙에서 저 대륙으로 건너가는 철새처럼 울지마
울지 마 울지 마 포유류와 조류의 갈림길에서 어류와 갑각류의 갈림길에서 중세와 르네상스의 갈림길에서 언제나 틀린 결정만 해온 존재처럼 울지 마 울지 마 울지 마 

- 여기는 이국의 수도 中

 
   


신형철이 느낌의 공동체에서 그녀의 시에 대해 <절대적으로 부도덕한 세계 앞에서 절대적으로 절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름다웠다.(중략) 문학은 절망의 형식이다. 우리의 나약하고 어설픈 절망을 위해 문학은 있다. 그리고 희망은 그 한없는 절망의 끝에나 겨우 있을 것이다>고 평한다. 

무엇도 읽을 수 없을 듯한 일요일밤 그녀의 언어를 꼭꼭 내가 씹고 있는 것은 아마 그래서 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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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5-22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무슨 책을 읽을까 지금 엄청 고민하고 있어요. 그러나 그보다도 사실은 이제 일요일이 다 가고 있기 때문에 책 읽어도 집중을 못할 것 같아서 그냥 일찍 잠자리에 들까 싶기도 하구요. 전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싫어요, 휘모리님. ㅜㅡ 일요일밤이요.

무해한모리군 2011-05-23 08:3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는 한 열권을 집적거린 후에 티브이를 멍하게 보다 잠들었어요 ㅠ.ㅠ

비로그인 2011-05-22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몰락의 에티카 읽는 중인데,, 왠지 반갑습니다.
휘님 :D

무해한모리군 2011-05-23 08:36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굿모닝 ^^

제겐 참 어렵고도 아름다웠던 책으로 기억되요..
왜.. 내용은 생각이 안날까요? ^^;;

굿바이 2011-05-23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연우의 노래를 들으며 커다란 유리볼에 밥을 비벼 씩씩거리며 먹었습니다. 분해서요^^
밥은 너무 맛있고 김치는 왜 그렇게 잘 익었는지요.
그리고 분한 마음으로 다시 윤대녕의 소설과 박정대의 시집을 읽었어요. 좋은 밤이었죠~

무해한모리군 2011-05-23 12:47   좋아요 0 | URL
굿바이님 모습이 왠지 눈에 그려지네요.
아 저도 다음주엔 윤대녕을 읽어야겠어요 ^^

하늘바람 2011-05-23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기는 신혼이라는 느낌
아주 편안해보이고 좋아보여요
나도 그랬던가 싶기도 하고요

무해한모리군 2011-05-23 12:48   좋아요 0 | URL
너무 편안한 문제가 아닌가 싶기도 해요 ㅎㅎㅎ
하늘바람님만큼 아이 키우며 일해낼 수 있을까요? 휴..

노이에자이트 2011-05-23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차 한 잔이라고 했는데 그게 뭔가요? 말젖으로 만든 몽골 음료 같기도 하고...

무해한모리군 2011-05-25 11:05   좋아요 0 | URL
가루로된 녹차요 ^^

노이에자이트 2011-05-26 16:33   좋아요 0 | URL
음...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