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 한 생을 함께 보낸 이에게 주는 최고의 찬사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덦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 글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고르는 궁금해 합니다. 자신의 삶에 모든 것의 주요한 열쇠였던 아내, 그리고 매력있고, 강인하며 능력있고 친구도 많았던 그녀를 자신의 책에서 그토록 의존적이며 부수적인 존재로 다루었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찾아갑니다.

 지금은 집필하고 있는 대단한 작품이 없습니다. 나는 더 이상 - 조르주 바타유의 표현을 빌리자면 - '실존을 나중으로 미루'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나는 내 앞에 있는 당신에게 온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그걸 당신이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은 내게 당신의 삶 전부와 당신의 전부를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 동안 나도 당신에게 내 전부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이제 막 여든두 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요즘 들어 나는 당신과 또다시 사랑에 빠졌습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 내가 그 남자입니다. 관 속에 누워 떠나는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든 납골함을 받아들지 않을 겁니다. 캐슬린 페리어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그러다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 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 

2006년 3월 21일 ~ 6월 6일 

(89~90쪽)


그리고 이 글의 마지막은 위와 같습니다. 이 글을 쓰고 일년후 아내 도린의 불치병 발병후 이십여년간 검소하게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던 그들의 보금자리에서 함께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한평생 그랬던 것처럼 둘이 함께 그들의 의지대로 말이지요. 

책의 서두에 던졌던 질문에 대해 그는 아내 도린에 대해 그동안 그의 저작들에서 잘못 말해왔다는 고백합니다. 사실 그녀는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사람이라고 말이지요.  

요즘 다시 언급되고 있는 일자리 나누기와 최저임금제의 초기이론가 중 한사람인 고르의 어떤 글보다 이 글을 통해 그가 왜 그토록 인간적인 사상을 내놓을 수 있었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이토록 지극한 사랑과 관심입니다. 


표지의 젊은 그들보다 더 아름다운 노년의 두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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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1-18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사람" 이란 글은 몇 번을 들어도 듣기 좋은 말입니다. 좀 깨는 말이긴 하지만 역시 백지장도 맏들면 나은 건가봐요^^

캐슬린 페리어의 음성이 제게도 들리는 듯 하네요^^

무해한모리군 2010-01-19 13:21   좋아요 0 | URL
혼자라면...
짐승이랑 다를바 없겠지요..
언젠가 읽은 소설에서 정말 홀로 남겨진 사람이 짐승과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 ㅎㅎㅎㅎ

치니 2010-01-19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여기서 읽어도 눈물이 왈칵, 하네요.

무해한모리군 2010-01-19 13:21   좋아요 0 | URL
응응응 그래요!

같은하늘 2010-01-19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음이 뭉클해져요. ㅜㅜ

무해한모리군 2010-01-20 08:30   좋아요 0 | URL
저 마지막 글이 참 좋았어요.
고르의 책은 이게 두번째지만 글은 많이 접했는데 이 책을 읽고 정말 이사람이 좋아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