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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깐한 독서본능 - 책 읽기 고수 '파란여우'의 종횡무진 독서기
윤미화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이 책의 저자 파란여우는 영세 축산업자다. 서른마리 염소와 함께 산다. 생활인인 그녀가 5년간 천권의 독서와 리뷰를 책으로 묶어냈다.
농촌의 삶이란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만만찮은 노동의 삶이다. 마흔이 되기 전까지 제대로된 독서를 해본 적이 없다는 저자는 어쩌다 책과 이리 지독한 사랑에 빠져들게 되었을까?
책읽기와 글쓰기를 다룬 무수한 책들 사이에 이 책의 장점을 뽑으라면 삶의 현장 한가운데 있는 책읽기요, 누구나 쉽게 저자를 따라 첨벙 읽기 시작해도 좋을 책읽기기 때문이다.
글의 시작은 책읽기의 즐거움을 말한 허균의 한정록이다. 한정록의 산골, 고요한 밤 차향기와 난로 온기에 기대 앉아 시집을 펼쳐드는 풍경 속에 저자의 모습이 보인다. 리뷰 사이사이에 놓인 그녀의 에세이들은 그녀가 사랑하는 책, 작가, 서평쓰기, 헌책방 이야기까지 책읽기의 온갖 즐거움과 애정을 펼쳐놓는다. '오늘부터 책 한번 읽어 볼까'하는 독자라면 그녀의 추천 목록을 그대로 가져가 읽어도 좋다. 이 깐깐한 저자의 눈에 든 책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와 공감을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실존을 말하지 않는 책은 사이비고, 상상력으로 위로해주지 않는 책은 관 속에 넣어야 하고, 최후의 질문조차 남기지 않는 책은 불쏘시개로 끝나야 한다. 밥 먹고 똥 싸고 욕하고 웃고 우는 조촐하고 소박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 책이 열어준 새 세상에서 좀 더 많이 더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76쪽)
그녀의 리뷰들은 이렇듯 철저히 실존에 기반을 두고 쓰여졌다. 그녀는 박근혜의 자서전 책 한구석에 실린 '기름때전 작업복 차림으로 앉아있는 무표정한 남자 기계공과 대조적으로 샤넬 칼라 달린 흰 투피스를 차려입은 박근혜의 진지한 얼굴'의 사진 한장으로 책에 '유감'이라고 간략히 말한 유신정권의 실체를 보여준다. 부두 노동자 작가인 에릭 호퍼의 다소 밍밍한 자서전에선 읽고 쓰고 사유하며 일생을 산 구도자의 가이드를 본다.
책과의 사귐이 낯설고 어렵기만한 독자들은 저자가 말하는 삶에서의 의미있는 시간, 물질이 아닌 행복한 사유의 시간으로의 독서를 따라오시라. 책은 그녀에게 그랬듯 당신에게도 곁을 내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