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자들은 그래, 잊어버릴 수 있어"아유미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잊지 못해."
"물론이지." 아오마메는 말했다.
"역사 속의 대량학살하고 똑같아."
"대량학살?"
"저지른 쪽은 적당한 이론을 달아 행위를 합리화할 수도 있고 잊어버릴 수도 있어. 보고 싶지 않은 것에서 눈을 돌릴 수도 있지. 하지만 당한 쪽은 잊지 못해. 눈을 돌리지도 못해. 기억은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대대로 이어지지. 세계라는 건 말이지, 아오마메 씨, 하나의 기억과 그 반대편 기억의 끝없는 싸움이야."
(중략)
"내 경우를 말하자면, 실은 남자가 두려워. 아니, 뭐랄까, 특정한 누군가와 깊은 지점에서 서로 관계를 맺는 것이. 그리고 상대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거나 하는 것이. 생각만 해도 몸이 움츠러들어. 하지만 혼자라는 건 때로는 좀 그래. 남자한테 안기고 싶고 내게 넣어줬으면 싶어. 참을 수 없을 만큼 하고 싶어져. 그런 때는 완전히 낯선 사람 쪽이 편해. 훤씬 더."
(중략)
"티베트의 번뇌의 수레바퀴와 같아. 수레바퀴가 회전하면 바퀴 테두리 쪽에 있는 가치나 감정은 오르락 내리락해. 빛나기도 하고 어둠에 잠기기도 하고. 하지만 참된 사랑은 바퀴 축에 붙어서 항상 그 자리 그대로야."
1권 624~626쪽
여자들이 타인의 감정에 훨씬 민감하고,
다른 사람이 해준 일에 훨씬 더 크게 감사하는 건,
여자에서 여자로 학대와 고통의 기억들이 전해져 오기 때문일까?
참 그다운 글이다.
별 이야기 없이 몇 백페이지라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감상적이고, 쿨하고 멋지다.
그래서 싫지만, 또 빠져들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