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펭귄 - Fly, Pengui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유머 만큼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기법은 없다. 
모처럼 박장대소하면서 영화를 보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웃기려고 하고 있지 않다. 
그저 '어 우리 회사 박과장님이랑 똑같다'  
'어 저거 우리 언니랑 똑같군' 
나는 저 케릭터 하나하나에 내 주변 사람들의 이름을 붙여줄 수 있을 듯 하다. 

그런데 왜 웃기는가?
이 세상의 일상만큼 황당한 사태가 어디 있는가?
한국말도 못하는 애를 영어시키겠다고 혀수술까지 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처자식 유학보낸 홀아비가 여기저기 

초등학교 일학년 아들은 학원이 다섯개,
술마시고 들어오는 아버지보다도 늦게까지 숙제를 해야한다. 
엄마는 으리짜한 생일 파티를 열어주지만 학원가느라 친구생일 파티에 다닐 여유 따위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없다.   

스물아홉 직장 초년병들, 베지테리언에 술못먹는 남자의 직장생활은 왕따에 고달프고,
흡연녀는 뒷담화에 고달프다.

아비는 돈벌어 오느라 뜨믄뜨믄 자식 얼굴이나 보고,
맞벌이 어미는 아무리 발버둥처도 남들만큼 충분히 가르치기가 쉽지 않다.

이게 싫으면 '인간답게 살라고' '영어라도 배워오라고' 자식을 외국으로 보내는 법인데,
일년에 한두번이나 보는 자식들은 남이나 진배없고,
자식 따라간 마누라는 품에 안기도 어색해진지 오래다.
그러니 청소기와 티비를 벗삼아 늙어가는 수 밖에 없다. 

여기 또 다른 한 남자, 
일흔줄에 들어서 늙은 여편네에게 음식타박하며 집에 콕 쳐박혀 지낸다.
여편네는 여기저기 어디 다닐 곳이 많은지..
큰소리 땅땅 쳐봐도, 마누라 없이는 입에 밥퍼넣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 엉뚱한 한둘쯤은 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대부분은.. 가족이며 직장이며 습관이며 온갖것들이 몸통에 마구 붙어서
안그래도 쪼그마한 날개를 더 무겁게 한다..

결국 해피앤딩이었던 것은 변화된 사회에 순응하여 '내 마음 하나'만 바꾸면 되는 늙은 부부 뿐인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이 영화속 노인 부부는 사회적 문제인 빈곤노인층이 아니었기에 그남아 가능한 일이다 --;;)
목숨을 걸고 술을 마시면 타고난 술 못먹는 체질인 것은 인정 받을 수 있으나, 담배피는 여자라 차별 받는 것은 죽도록 담배를 펴도 인정받을 길이 없다. 하루 18시간 공부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는 자살하거나 아프지 않는 이상 탈출 방법이 없고, 강남 아줌마라 욕하지만 번듯한 대학나와 1%안에 못들면 어찌 살아야 하는지 매일 목도하는데 내 새끼를 구할려면 달리 방법이 없다.   

개인의 선택과 책임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을 하게 한 사회와 국가의 책임이 더 크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약자를 끊임 없이 만들어내고 그들을 밟고 나가야만 하는 이 구조를 바뀌지 않고서는 모두가 고르게 불행한 삶의 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 (고로 누가 나좀 터트려주라 아무리 기다려봐야 누가 대신 그래주지 않는다!!)

내가 주절주절 무겁게 리뷰를 썼지만, 영화는 흥겹고, 시사회장 여기저기 박수소리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영화는 끝나는 그 순간까지 흥겹다. 그 점이 단 하나의 아쉬움이었다. (꽤나 큰 단점이다. 110분이라는 러닝타임을 생각해보라 --;;)

덧글 1 : 이영화를 보고나면 남자들은 밥하는 거 꼭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듯 하다.
나는? 이해찬씨가 말했다. 힘들면 쉬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꾸물꾸물 나아가라고.  
주류에 못비집고 들어간 내 삶이 조금은 위안이 되더라.. 응?! 

덧글 2 : 이 작품은 '워낭소리', '우리학교'를 배급한 스튜디오 느림보에서 맡고 있다. 앞서 말한 두작품처럼 일반 극장 상영과 이 영화가 걸리기 어려운 지역을 찾아가 상영하는 공동체 상영을 같이 한다고 한다. 독립영화 다운 내용과 배급방식까지 참 신선하지만, 인권위가 지원을 했다고 알고있는데, 최근에 인권위 흘러가는 동향을 보면 당분간은 이런 작품을 만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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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9-22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덧글을 읽고나니 꼭 봐야겠다는 다짐을...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9-22 09:48   좋아요 0 | URL
사실은요.. 오이지군과 보면서 머큐리님 얘기를 했어요 ㅎㅎㅎ
사모님하고 꼭 보세요~

본문에는 짧게 언급했지만 전 직장생활 묘사가 제 직장과 너무 똑같아서 엄청 웃었습니다~ 여성직장인들 공감백배할듯 ㅋㄷ

머큐리 2009-09-22 10:51   좋아요 0 | URL
아~ 오이지군에게 제 설명을 잘해주셔야 해요
나쁜 사람인 줄 알면 안되잖아요...ㅎㅎ

2009-09-22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2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2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2 1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2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9-09-22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보고싶어요, 저도!! 음..

전 어제 S러버 봤어요. 애쉬톤 커쳐 엉덩이만 실컷...쿨럭.

무해한모리군 2009-09-22 10:46   좋아요 0 | URL
보세요 재미있습니다.
엉덩이가 실컷 나온단 말입니까!!
꼭 봐야겠네요 ㅎㅎㅎ

치니 2009-09-22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이랑 같이 보기 좋은 영화일 거 같아서 찜 해두었는데, 리뷰를 보니 저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무해한모리군 2009-09-22 13:30   좋아요 0 | URL
전 그냥 내아이는 농부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어요.

2009-09-22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9-09-22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밥 잘해요. 전기밥솥으로 안하고 가스불로 해요. 누룽지 나오는 건 물론이고요. 다만 반찬 만들기는 아직 취약하네요.

여자가 담배 피우는 모습은 멋있죠.

무해한모리군 2009-09-23 08:01   좋아요 0 | URL
이야 멋진걸요~ 저는 누룽지 나오게는 못하는데~

저희 회사에서도 흡연실에는 남자들만 있어요..
전 담배를 안펴서 불편하지 않지만 담배를 폈다면 꽤나 괴로웠을듯 --;;

꿈꾸는섬 2009-09-22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보고 싶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09-23 08:01   좋아요 0 | URL
응 재미있어요 ^^

2009-09-23 0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3 07: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3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