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외우는 시 한 편

수묵(水墨) 정원·9
- 번짐

                            장석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_이 시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너는 나고, 나는 너다'라는 선문답같은 말을 이해하게된다.

   내가 있으니 네가 있고, 빛이 있으니 어둠이 있고, 사랑이 있으니 미움도 있고, 만남이 있으니 헤어짐도 있다. '번짐'은 모든 경계를 생성하고, 동시에 모든 경계를 허문다. '번짐'없이 인생도 없고, 우주도 없다. 번져야 비로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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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 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가자." <아가서 2장 11-13절> *비둘기

_하루 반나절을 오롯이 어머니와 보낸 오늘. 우리는 춘천의 호반을 거닐며, 쌓아두었던 그간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우리 가족의 요즈음을 곱씹으며, 어머니는 마치 시인이라도 된 것처럼, 암송한 아가서의 한 구절을 낭송하기 시작한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고, 어머니도 덩달아 목소리가 떨린다. 간신히 눈물을 참고는 이렇게 생각해본다. 어쩌면 우리는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미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건만 웅크리고 앉아 일어설 줄 몰랐는지도, 날지 않아 나는 법을 잊어버린 오리처럼 아픔에 익숙해져 일어서는 법을 잊은 채 살아온 것은 아닐런지. 잠깐 이런 상념에 잠겨있던 나에게 어머니가 건넨다. "우리 이제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아름다움은 본래 "앓음다움"이라고 했던가. 하고보면 그동안 참 많이도 '앓았다'. 이젠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으니 아름다움의 문을 열자. 그 태고의 모습으로 회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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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미러브 2007-02-24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앓음다움...... 다시금 화천여행이 떠오르는 밤이네요~
 

이번 설의 가장 큰 변화는,

'결혼'이라는 화두가 나에게도 적용되었다는 사실이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이를 묻는다.

그러고는 하나같이 할 때가 되었다고들 하신다.

결혼을.

 

스물 일곱,

나도 할 때가 됐나보다.

결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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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존재 그 자체다." _김봉석, '이터널 선샤인 20자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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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경, 거리에서

노래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한 줄 한 줄 마음을 파고든다.

고개는 떨구고, 가슴은 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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