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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밥상 - 유기농 대표농부 10집의 밥상을 찾아서
안혜령 지음, 김성철 사진 / 소나무 / 2007년 2월
평점 :
아 좋은 글들이다. 꼭 푸진 밥상 대접받은 기분이다. 맛깔나게 빚어낸 글들이 뼈 속까지 뜨끈한 기분이다. 반면에 영혼은 한결 산뜻해진 듯 싶으니 그야말로 든든한 마음이다. 어느 구석 하나 빠질 것 없이 옹골찬 느낌이다.
몇 해전부터 불어닥친 웰빙의 바람탓일까? 요즈음 우리네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한층 높아진 듯하다. 서점엔 먹거리에 관한 책들로 즐비하니 아마도 대세는 대세인가보다. 그런데 나로선 이러한 현상이 마뜩찮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란, 먹거리는 많은데, 먹거리 철학은 빈곤해보였던 탓이다. 단순히 '잘 먹고, 잘 살기'위한 밥(먹거리)이란 그저 '나'만을 위한, 소아小我적인 가치만을 드러내보여줄 뿐이었다. 그러한 관심의 자리엔 나와 우주가 조화와 평화를 이루는 궁극적인 '먹음'의 경지가 결여된 듯 보였다.
'농부의 밥상'을 펼쳐들며, 이러한 나의 욕구불만을 채워주리라 내심 기대했음은 당연하다. 그리고 바람대로 책은 밥상을 빚어내는 이들의 삶과 철학을 비교적 세심하게 보여주고 있었고, 그에 못지 않게 밥상을 채우는 음식 하나 하나 빼꼼히 소개해놓았다. 그리고 책에 소개된 열 분의 밥상을 통해 이 시대, 우리에게 결여된 삶의 방식들을 은근하게 수놓고 있었다. 기대했던대로 그들의 밥상이란, "지구를 살리는 근원이고 생명을 살리는 시작"인 동시에 "못 먹고 잘 사는 법"(178쪽)이었다. 그 뿐이랴, 그들은 밥을 먹어치우는 게 아니라 "모신다." 이는 우주의 그릇인 우리의 몸이 우주와 통通하고, 조화하는 길이자 (생명)살림의 길인 것이다.
그들이 살아내는 방식은 도심의 생활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그들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살고, 기계적 사유가 아닌 인문적 방식으로 살아가며, 그리하여 순간을 살되 영원을 산다. 전남 진도의 김종북, 장금실 부부에게 농사짓는 일과 마음 비우는 일은 한 가지이다. 그리고 깨친 바가 있으니, "만물이 절로 절로 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연의 섭리대로 산다는 뜻일 터인즉, 그 절로에 내맡기면 평화가 온다. 절로에 내맡긴다 함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한다는 뜻을 품고 있으니 사람의 삶을 두고 말하자면, 있는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소중하다는"(22쪽)것이다. 이처럼 사람이 자연 위에 있지 않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은 조화의 극치이다. 아마도 이러한 모습은 인간이 주체가 되어 '먹는', 세간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말그대로 "풀어놓기"(116쪽)이며, "모심"이자, "별의 노래"(65쪽)이다. 그리고 그러한 근간에서 그야말로 '위대한 밥상'이 오롯이 차려진다.
이 풍성한 삶의 향기와 더불어 전하는 이의 빼어난 글맛을 빼어놓을 수가 없다. 한 가지만 예를 들면, "시어머니와 시누이 모시던 결혼 초부터 비가 오나 맑으나 일 많이 하고 살았다는 그이는, 그러나 그 고된 세월을 수굿이 견뎌내면서 도리어 어지간한 사람은 감당 못할 두름손을 키우고 뒷심을 다지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바지런하고 너글너글한 심성에 끌끔한 일솜씨가 더해지고 여문 손맛이 더해져 느닷없는 저녁 밥상을 허둥대지 않고도 맛깔지게 차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77쪽)와 같이, 글이 어느 한 군데 여물지 않은 곳 없이 옹골차다. 정말 든든하고, 좋은 글이다. 아마도 좋은 이들과 더불어 나눈 숱한 시간들과, 밥상이 이처럼 좋은 글들을 빚어낼 수 있었을 게다. 또한 토막을 채우는 사진들 또한 군더더기없이 가지런한 게, 참 좋은 느낌이다.
무튼 책 한 권 다 읽고 나니, 참된 삶이란 결코 멀리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부터 든다. 어쩌면 우리의 밥상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 밥상을 멩글어 내기까지가 결코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그저 지금-여기에서부터 '간결하게, 단순하게', 생명과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하는 그 애틋한 마음이, 물릴 것 없는 아름다운 삶의 밥상이 되리라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