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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 - 다섯 지식인이 말하는 소통과 공존의 해법
신영복 외 지음, 프레시안 엮음 / 프레시안북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지난 2001년, 한국의 수구적, 보수적 언론 지형도 속에서 일종의 대안언론 혹은 대항언론적 성격을 모체로 프레시안<presian>은 탄생했다. 그리고 지난 5년여 간, 프레시안의 행보는 몇몇 대형언론(예컨대 조,중,동과 같은)이 주류담론을 잠식해가던 ‘판’에 작은 균열을 만들어냈다. 그 자신의 수구적 성격을 국민들에게 강요하고, 선동했던 기존의 수구 언론들의 작태와는 달리 프레시안은 일정한 당파성을 견지해가면서 일획적인 주류담론적 가치관에 도전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프레시안의 열혈 독자는 아니면서도 그들의 행보에 관심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중에 지난해 열린 <프레시안 창간5주년 연속 기획 강연>은 프레시안의 저널리즘, 그리고 그들의 기본 노선을 정위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물론 새삼스러운 것이었지만 나의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특히 나의(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시대의) 사상적 은사라고 생각하는 신영복 선생님과 김종철 선생님의 연속 강연은 역시 주목의 대상이었다. 아쉽게도 나는 프레시안 홈페이지를 통해 두 분의 강연 녹취록을 들여다보는 수순에서 만족해야했지만, 다시 한 번 오늘날의 한국사회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숙고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5월, 총5회에 걸친 연속 강연을 책으로 엮어 발간하였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사실 이미 두 분의 강연은 녹취록으로 읽었던 터라 구입을 주저하였지만 나머지 세 분 역시 각기 다른 영역 속에서 지배담론과 쟁투하며, 오롯이 자신의 길을 가고 계시는 분들이라 소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약간의 주저 끝에 한 달이 넘도록 지나서야 책을 손에 들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바로 5명의 각 강연자들이 지니고 있는 학문적 소양의 진보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각자의 사상적 프리즘을 통해 한국사회를 분석해내고, 오늘날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이 대안들이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의 근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근원적이고도 본질적인 문제제기를 포함한다. 나아가 수구,보수적 기치 아래 길들여져 온갖 병폐들을 낳아왔던 한국사회의 올바른 지향성에 대한 제언들을 또한 담아낸다. 때문에 이러한 제언들이 소위 ‘진보적’이라고 불리는 것도 타당성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그간 우리 사회 속에서 지속되어져왔던 불합리한 보수 의식에서 기인한 탓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들의 진보성은 차라리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며, 그들의 주장은 무리가 없다. 그렇다면 5명의 강연자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먼저 신영복 선생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로 보고, 진정한 소통을 회복하기 위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 길은 바로 인문학의 회복으로 대변되는 참다운 인간사회의 회복이다. 이 사회는 사람의 가치가 돈이나 물질가치로서 환산될 수 없고, 모든 사람이 하나의 그물망처럼 관계적으로 얽혀있는 사회이다. 그래서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뜻을 모으고, 우직하게 걸어감으로써 조화와 균형을 회복하고, 참된 회복에 이르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여기의 현실 속에서 자신을 사람에 비추어 보아(鏡於人) 성찰할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종철 선생은 한미 FTA를 통해서 ‘경제중심주의와 에콜로지의 갈등’에 봉착한 오늘날의 위기를 진단하고, 적극적인 연대와 용기있는 행동으로 성장주의 패러다임이라는 ‘타이타닉호’에서 뛰어내리자고 호소한다. 또한 <한미 FTA 타결 유감>이라는 보론을 통해서 초국적 자본의 세계 경제 지배방식을 넘어 상부상조와 호혜적 경제를 배우고 실천하자고 역설한다. 바로 그것이 인간 공동체, 그리고 생태를 지키고, 살리기 위한 대안인 것이다.
또한 최장집 교수는 민주주의가 대면하는 오늘의 문제가 바로 ‘보통 사람들의 삶의 조건과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서 시작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실제로 민중들의 삶의 현실에 동참하고, 이를 위해 복무하는 참다운 민주주의적 정당 정치를 주장한다. 한편 ‘희망제작소’의 설립자인 박원순 상임이사(사실 그에겐 인권변호사라는 닉네임 더 걸맞는다.)는 ‘시민운동의 위기’로 회자되는 오늘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들을 통해 시민운동의 새로운 시작을 요청하고 있다.
끝으로 백낙청 교수의 강연은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다고 할 만큼 주목할 만하다. 그는 강연에서 ‘6.15 남북공동성명’ 제2항(“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하였다.”_189쪽)을 한반도식 통일의 기본 방안으로 삼아야하며, 이를 골자로 한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의 강연에서 토론자를 맡은 박경순(진보운동연구소 소장), 이대훈(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장)씨의 팽팽한 토론은 현장의 진지하고, 열띤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생동감 있게 진행되고 있었다. 나 또한 북핵에 관한 나름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두 토론자의 발언을 보면서 나의 입장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이처럼 다섯 명의 강연자들은 각기 다른 관점들을 통해서 오늘의 현실을 진단하고, 적실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내가 정리해본대로라면 인문사회(신영복), 생태사회(김종철), 민주사회(최장집), 시민사회(박원순), 통일사회(백낙청)로 그들의 관점을 파악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여하한의 관점들은 그 모두가 ‘더불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라는 하나의 목표로 합류한다는 사실에서 다르지 않다. 오히려 현실의 문제를 푸는 이 다섯 가지 열쇠들이 빠짐없이 우리 사회 속에서 기능하게 될 때, 아마도 우리가 꿈꾸던 사회는 비로소 (너무나도 완벽하게)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최장집 교수의 말처럼.
“보수적인 사람들이 비전을 갖고 만드는 것은 쉽습니다. 기존 틀의 연장선에서 합리적으로 이끌어 가면 되죠. 그러나 기존 질서에 대응하고 이를 변화시키려는 개혁은 기본적으로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조직하는 일입니다.”(136쪽)
그러나 지금과 다른 미래를 조직하는 일이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희망은 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인간다운 삶을 동경한다. 온갖 현장에서 이들은 돕고, 나누고, 사랑한다. 그런 이들이 있는 한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혼자가 아니라면 괜찮다. ‘여럿이 함께’라면 괜찮다. 정말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