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게 도를 묻다 - 이현주 목사의 마르코 복음서 읽기
이현주 지음 / 삼인 / 2005년 5월
장바구니담기


네가 애써서 요한처럼 먹고 요한처럼 입는다 해도 네 마음이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결국 자신과 세상을 속이는 것일 뿐이다. 요한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었나에 눈길을 머물지 말고, 그가 그렇게 해서 누렸던 자유를 보고 그것을 배우도록 하여라.-21쪽

죽임은 죽음을 낳고 살림을 삶을 낳는다. 남에게서 바라는 바를 남에게 해줄 때, 그 바라는 바가 이루어진다.-32쪽

인생이란, 누구의 것이든, 연습을 위한 연습을 위한......연습니다. 그래서들 인생을 곧 수행(修行)이라고 말하는 것 아니겠느냐?-42쪽

군사혁명은 대개 수도를 장악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하늘 혁명은 언제나 변두리에서 아무도 모르게 비롯된다. 겨자씨처럼, 처음에는 잘 보이지도 않게 싹을 틔우는 것이 하늘나라다.-45쪽

'엉뚱한 데'란, 지금-여기가 아닌 다른 모든 곳, 다른 모든 때를 뜻한다. 하느님 나라는 태곳적 과거도 아니고 먼 미래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고 사마리아도 아니고, 지금 너 있는 곳, 바로 여기에 있는, 그런 나라다. 사람들이 저마다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면서 행복하게 못 사는 것은, 행복을 있는 데서 찾지 않고 없는 데서 찾기 때문이다. 명심해라. 너에게 있는 것은 지금-여기 밖에 없다. 어제도 없는 것이요 내일도 없는 것이요 저기도 없는 것이요 거기도 없는 것이다. 사실은 그 모든 것이 '없는 게'아니라 지금-여기에 들어와 '있다.'-47쪽

내 말을 보았으면 또한 말에 머물지 말고 그 뜻을 보아야 할 것이며, 뜻을 보았으면 거기에 머물지 말고 그대로 살아야 한다.-61쪽

병이 낫고 마귀가 쫓겨나는 '현상'에 눈이 어두워져서 밥 먹고 길 걷는 평범한 행위 속에 감추어진 아버지의 사랑과 은총을 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67쪽

장자(莊子)가 거울처럼 마음을 쓴다고 했는데, 근사한 말이다. 사물이 오면 받아들이되 환영하지 않고, 가면 보내되 등 떠밀지 않는 마음, 그런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주어진 상황에 온몸으로 참여하되 그 상황에 얽매이지 않는다. 네가 전에 '초연한 참여'라는 말을 썼거니와, 역시 근사한 말이다. 그게 바로 흔들리면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열매다.-85쪽

사람이 자기 생각이나 말의 한계를 스스로 알고 그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알면, 바로 그 사람이 참된 학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배워서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은 자기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 뿐임을 안다. 그러기에 자기가 알고 있는 바 지식의 내용을 언제든지 비울 수 있고 바꿀 수 있다. 그에게는 '굳어진 지식'이 없다. 머리와 가슴이 열려 있어서 언제나 새로운 지식이 들어올 수 있고 낡은 지식이 나갈 수 있다.(......)학문도 생명이다. 열려 있으면 살고 닫혀 있으면 죽는다. 초목이고 사람이고, 부드러운 것은 생명에 가깝고 딱딱한 것은 죽음에 가깝다고 하지 않았느냐? 생각도 마찬가지요 학문도 마찬가지다.-94쪽

천국을 밖에서 찾으려고 하면 종신(終身)토록 헤매어도 결코 찾지 못한다. 그것이 없는 데서 어찌 그것을 찾겠느냐? 하느님은 '바깥'이 없으신 분이다. 따라서 그분의 나라 또한 '바깥'에서는 찾을 수 없는 나라다.-99쪽

나는 '새로운 사람'을 탄생시키려고 세상에 왔다. 내가 살기 위해서 너를 죽여 온 사람을, 내가 살기 위해서 나를 죽이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내가 세상에 온 목적이었다. 내 가르침대로 살고자 하는 자는, 이제까지의 패러다임을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살아야 한다. 따라서 낡은 전통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아무도 내 가르침을 좇아서 살 수 없을 것이다.-115쪽

"......그들은 마비된 사람들인데 한 사람은 몸이 오그라붙었고 나머지는 마음(생각)이 오그라붙었다."
"몸이나 마음이 왜 마비되는 겁니까?"
"열려 있어야 할 곳이 막혀서 그렇다."
"왜 열려 있어야 할 곳이 막힙니까?"
"......근본은 무지(無知)에 있다. 무지가 욕심을 낳고 욕심이 집착을 낳고 집착이 막힘을 낳고 막힘은 마비와 죽음을 부른다."-124-125쪽

미래를 보느라고 현실을 놓친다면 그것은 지혜가 아니라 어리석음이다.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희생한다는 말이 듣기에는 근사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위험한 함정이 숨어 있다. 그가 바라던 '내일'이 영원토록 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일'은 네 머리 속에나 있지 실제로는 없는 날이다. 너에게는 다만 '오늘'이 있을 뿐인데, 그것도 네가 잡을 수 있는 날은 아니다.-135쪽

물유본말(物有本末)이요 사유종시(事有終始)이 지소선후(知所先後)면 근도(近道)라, 물(物)에는 뿌리와 가지가 있고 일에는 앞뒤가 있어서 먼저 할 게 있고 나중 할 게 있거니와 그것을 제대로 알면 하느님 법에 가깝다고 했다.-147쪽

명심하여라. 나는 언제나 네 머리 위에 있다. 그러나 네가 보아야 할 것은 내가 아니라 내 빛에 드러난 세상이다. 내가 세상에 온 것은 나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로 하여금 세상을 밝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그러니, 세상을 밝게 살아가려면 눈을 들어 위를 쳐다보지 말고 아래로 발밑을 살피라는 얘기다. 하늘 가는 길은 하늘에 있지 않고 땅에 있다.-167쪽

같은 이슬을 뱀이 마시면 독이 되고 꽃이 머금으면 향기가 된다. 아버지께서는 욕심이 있는 자에게는 더 많은 욕심을 주시고 욕심이 없는 자에게는 그 있는 욕심마저 거두어 가신다.-174쪽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서 배워라. 때가 되면 눈이 열려, 네 참모습을 보게 되리라. '앎'은 두뇌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삶'에서 맺어지는 열매다. 나를 따라서 내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삶'이 없으면 '깨달음'도 없다.-183쪽

언제 어디서나, 어떻게 하면 지금 네 눈 앞에 있는 대상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인지 그것만을 생각해라. 그리고, 떠오르는 게 있으면 겁내지 말고 그대로 하여라. 사람들 눈치 보지 말고, 결과를 계산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사랑'만을 생각하고 그렇게 움직여라. 때가 되면 나와 아버지를 네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이다!-198쪽

오늘 하루, 숨결에 마음 모으고 깨어 있어라. 어떻게 하면 지금 네 눈앞에 있는 것을 사랑할 수 있겠는지 오직 그것만 생각하면서 순간을 살아라. 그 방법을 모르겠으면 너보다 더 너와 가까운 나에게 물어라. 인생이란 얼마나 단순하고 쉬운 것이냐? 네 어깨에 멘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210쪽

욕심이 없으면 겉모습이 보이고 욕심이 없으면 안 보이는 게 보인다고 했다. 어떤 마음을 품고서 보면 보고 싶은 대로 보이고 아무 마음 없이 보면 있는 그대로 실상(實相)이 보인다.-215쪽

위도일손(爲道日損)이라, 길을 가려면 날마다 덜어내라고 하지 않았느냐? 성서에 관한 지식뿐 아니라 네가 지니고 있는 모든 지식을, 오직 진리로 나아가는 발판으로 삼아라. 앎이 너를 위해 있는 것이지 네가 앎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226쪽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선이냐? 선 자체를 위한 선이 아니면, 선한 의도마다 삿된 기운을 품게 마련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한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 들어보지 않았느냐?-248쪽

만물의 중심이 하느님 아버지시다. 그분은 우주의 중심이시요 우주가 하나밖에 없으니 네 중심인들 어디 다른 데 있겠느냐? 누구든지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면, 천지가 저와 한 뿌리요(天地與我同根) 만물이 저와 한 몸(萬物與我一體)임을 저절로 알게 된다.-253쪽

어디를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네 맘대로 하지 말고 내가 이끄는 대로 하여라. 제자가 스승에게 자기를 온전히 내어맡기는 것이 곧 자기를 버리는 것이다.-299쪽

네 십자가를 지라는 말은, 네가 네 뜻을 스스로 비우고 내 뜻에 좇기로 서원(誓願)한 다음에는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그것을 취사선택 없이 받아들이라는 얘기다.-301쪽

하느님 나라는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하느님이 여기 계시다 할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가 동산에 떠서 서산에 지지만 실은 뜨고 지는 별이 아니듯이, 나 또한 이 세상에 왔다가 이 세상을 떠난 존재물(a being)이 아니라 모든 존재물을 있게 하는 존재(the being)다. 그것이 나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307쪽

결국, 저절로 그렇게 될 때까지는 일삼아 그렇게 하려고 거듭 거듭 시도해 보는 수밖에 없다. 내 말은, 사물이나 사람을 대할 때, 일그러지고 때 묻은 겉모양에 눈길을 머물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의 본질을 보려고 애쓰라는 말이다.-349쪽

내가 세상에 제시한 길은 쉽고 편한 길이다. 내 짐은 가볍고 내 멍에는 편하다. 너로 하여금 그 쉽고 편한 길을 가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너의 '에고'다. 에고는 어둠과 마찬가지로 본디 없는 것이다. 있지도 않은 가위가 너를 무겁게 짓누르듯이, 있지도 않은 '에고'가 너를 움켜잡고서 쉽고 편한 '자유, 자연'의 길을 가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는 걸 알고 있느냐? 네 원수가 바깥 어디에 있지 않고 네 속에 있음을 알고 있느냔 말이다.-357쪽

깨달은 사람에게는 현재도 과거도 미래도 없다. 오직 영원한 지금과 무한한 여기가 있을 뿐이다.-366쪽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견해나 기대 따위를 치우고, 그냥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기를 꾸준히 연습하여라. 하되, 네가 본 것이나 들은 것을 고집하거나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 다만 겸손하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하고 거기서 그쳐라.-374쪽

참 자유인은 남을 섬김으로써 자기를 제대로 섬기는 사람이다.-375쪽

믿음이란, 믿겠다는 의지의 산물이 아니다. 저절로 믿어지는 그게 진짜 믿음이다.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데 억지로 믿어보려고 애를 쓴들 그 믿음이 참된 믿음일 수 있겠느냐? 가짜 믿음으로는 네 손가락 하나 맘대로 움직이지 못한다.-395쪽

위선자들이 위선을 하는 것은 그 성품이 나빠서도 아니요 위선자로 태어났기 때문도 아니다.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몰라서다. 거짓의 어둔 밤을 겪고 때가 되어 진실의 아침을 맞이하면 그들은 비로소 자기가 여태껏 무엇을 했는지 깨우친다. 바로 그 깨우침이 지금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아는 참된 깨달음의 바탕으로 된다. 그러니 위선자들을 경멸하거나 미워하지 마라. 오히려 힘든 과정을 밟고 있는 그들을 측은히 여길 일이다. 그것이 그들을 조심하여 그들과 한 통속으로 되지 않는 비결이다.-428쪽

"무엇을 보든지, 그것이 있기 전과 그것이 없어진 뒤를 함께 보아라. 그렇게 사물을 통하여 사물의 근원(모든 것이 거기에서 왔다가 거기로 돌아가는)을 보도록 하여라."
"예, 선생님."
"그윽한 눈길, 사물과 사물의 앞뒤 위아래를 함께 보는, 그윽한 눈길이 수련의 열쇠다."-433쪽

네 속에 있는 두려움과 싸워서 몰아내려 하지 말고, 진실을 깨닫고자 힘쓰도록 하여라. 네가 진실을 알면 진실이 너를 사랑으로 충만케 하여 온갖 무지와 두려움과 그 열매인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것이다.-453쪽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이루는 힘은 인간의 견해(이데올로기)들이 아니라 그 가슴에서 샘솟는 사랑이다.-460쪽

사랑하는 대상 앞에서 내가 없어지는 것! 그것이 참사랑의 길이다.-467쪽

네가 먹고 마실 때뿐만 아니라 숨을 쉴 때에도 나를 기억하여, 먹는 너와 먹히는 내가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알 때에, 그 앎이 네 삶으로 옹글게 실현될 때에, 나는 더 이상 너를 '너'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472쪽

날마다 순간마다 어떻게 사면 이 상황에서 내가 살 수 있을까를 궁리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를 궁리하면서 살아보아라. 때가 되면 아버지께서 너의 '나'를 모두 거두어 가시고 그 빈자리를 당신의 '나'로 채워주실 것이다. 그것이 십자가요 그것이 부활이다.-51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8월, 당신의 추천 도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한 주간 나는 이현주 목사의 <예수에게 도를 묻다>와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읽었다. 전자가 내 '신앙 수행'의 한 방편으로서의 글 읽기였다고 한다면 후자는 그야말로 '만신'열풍에 대한 모종의 관심에서 촉발된 '흥미'로서의 그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내용상으로 볼 때 충분히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 있겠거니와 특별히 <만신>은 어느 조용한 기도원에서 읽었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게다가 두 책이 가리키는 곳마저 판이하게 다르고, 두 분의 글쓰기 또한 교차의 지점이 전혀 없으니, 읽는 나로서는 그 '파찰음'을 감당해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종교와 비종교의 차이, 동양과 서양의 간극을 좁힐만한 그 어떤 여지도 없이 묵묵히 읽어내려가는 수밖에, 여하한 도리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두 책 모두 충분히 훌륭하다고 생각되지만 아무래도 단순비교는 힘들겠고, 다만 한 명의 '종교인'으로써 <만신>에 대한 입장과 견해만은 조금이나마 밝혀야겠다고 생각된다. 물론 리뷰를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만신> 을 읽으신 분들을 위해서 그와 관련된 읽을 꺼리들을 조금 소개해볼까 한다. '종교 논쟁'이 촉발된 만큼 어느 한 견해를 채택하기 위해선 반대 혹은 그와 관련된 논의들을 찬찬히 훑어봄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나름의 생각에서이다. 도킨스가 굉장한 석학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에서 발견되는 여러 문제점들을 적시할만한(혹은 일정부분 연관된) 몇 권의 책들을 소개해본다. (이러한 작업의 이유로서) 나는 단지 종교를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종교에 대해 더 깊이 있게 고민하고, 사유하는 이들의 '지평'을 생각할 뿐이다. 그 뿐이다.

 현재 조지타운 대학교의 토머스힐리 석좌교수로 재직중이며, 조지타운 과학.종교연구센터의 소장을 맡고 있는 존 호트(John F. Haught)의 <다윈안의 신>은 지금과 같은 '과학 시대에 종교와 신학이 생명을 이해하는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을지'에 관한 기록이다. 이 책은 생명에 대한 다윈주의의 설명이 전반적으로 정확할 뿐만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풍성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며, 이를 통해 21세기의 참된 종교, 신학의 자세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다. 특별히 책의 6장은 "도킨스보다 더 깊이"라는 제목하에 도킨스의 견해에 대한 저자의 비판이 담겨져 있다는 점에서 퍽 흥미롭다.

 또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하고, 생물학 분야에서 신과학운동을 일으키고 있는 영국왕립협회 소속 과학자인 루퍼트 쉘드레이크(Rupert Sheldrake)와 미국 도미니크수도회에서 파면을 당하고 현재는 성공회 사제로 있는 '창조영성(Creation Spirituality)' 신학자 매튜 폭스(Matthew Fox)의 대화를 엮은 <창조, 어둠, 그리고 영혼에 관한 대화>라는 책 또한 색다른 안목을 제시한다. 책에서 두 사상가들은 오늘날 과학과 영성을 결합하는 새로운 비전이 요구됨을 직시하여 세계를 인식하는(과학과 종교의) 또 다른 '길'을 열어놓는다.

 부가적으로 기독교인이면서도 오늘날의 기독교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분들, 혹은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문제의식을 갖고 계신 분들에게 스퐁(John S. Spong) 의 책 몇 권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만신>에서도 스퐁이 언급되는 부분이 있다. 책에서는 <성경의 죄악사>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였으나, 사실 그의 책은 이미 <성경과 폭력>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상태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하였던 매튜 폭스의 책 두 권, 신부이자 생물학자인 떼야르 드 샤르댕의 <자연 안에서 인간의 위치>, 독일 신학자인 클라우센의 책도 약간의 도움이 될 것이다.

       

 

아참, 그리고 나는 짬짬히 읽고 있던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를 다시 손에 들 참이다. <만신> 이후 약간의 해독제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모든 것을 이성의 잣대로 가늠할 수 없다'는 일종의 신념 때문일지 모르겠다.(그리고 원체 그런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의 견해는 말그대로 견해일 뿐이다. 견해가 진리를 담보하진 않는다.) 본디 '큰 생각은 느슨하고, 작은 생각은 촘촘하다'(김지하)고 생각하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 그만하자.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8-24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독교인인데 -_-...
제 정체성에 회의가 온 2007년 입니다. 만들어진 신은 쉬엄쉬엄 읽고 있는데요,
페이퍼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람결 2007-08-24 20:2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신앙적으로 볼 땐, 2007년이 참 힘겨운 한 해가 되시겠어요. 모쪼록 힘내세요, 체셔고양이님.
<만들어진 신>은 그리 만만치 않은 책이더라구요. 전 워낙에 과학 분야 쪽으로는 영 문외한이라 초집중 상태에서 읽었답니다.^^;

프레이야 2007-08-28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결님, <만신>은 저도 아직 못 읽어본 책입니다. 하도 명성이 자자하여 좀 있다 읽어
보려고 미루고 있습니다. 종교에 몸담고 계신 님 맞지요? 그런 분의 '견해'가 정말 듣고
싶습니다. 견해가 진리를 담보하진 않는다,는 님의 견해가 참 신실하게 들립니다.
우리집도 시어른(기독교)과 그런 점에서 좀 이견이 있어서요. 전 세례만 받은,
신앙심 없는 신자거든요. 하지만 신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서요. 혼돈스럽습니다.
확장해서 읽어야할 책들을 이렇게 꼼꼼히 골라두셨군요. 좋은 정보 될 것입니다.^^
찜해두고 갑니다~~

바람결 2007-08-28 18:04   좋아요 0 | URL
<만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써야할지를 아직도 고민중입니다. 워낙에 방대한 분량인데다가 저자의 날카로운 시선이 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기때문이죠. 하지만 조만간 써 볼 요량으로 관련 책들을 조금씩 훑고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무신론을 반대하고 싶진 않지요. 그러나 모든 것을 현상, 혹은 물질적 근거로 판단하는 인간의 이성이란게 진짜 허상은 아닐까하는 생각은 하지요. 무튼 혜경님께 좋은 정보가 되었으면 좋겠네요.ㅎㅎ
 

8월 23일

아랍어로 '영'(Spirit)은 여성(女性)이다. 그래서?

그래서 뭐 어쨌단 말인가?

영은, 남성 여성에 상관없다.

영이 어떻게 마르거나 젖는단 말인가?

영은 빵을 먹어도 살찌지 않는다.

기분이 이랬다저랬다 해도 영은 괴롭지 않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람결 2007-08-24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에는 양식이 없다. 그러니 '빵을 먹어도 살찌지 않는다.'
하지만 영에는 양식이 있다. '그분'의 충만함, 바로 그것이다.
 

8월 22일

여어, 내 가슴의 동지여!

잠시 피곤을 잊고서

아름다움에 바치는 나의 사랑 노래를 들어다오.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되비치는 내 그림을 보아다오.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터질 것만 같구나.

나는 거대한 곡물 창고에서

제가 지기에는 너무나도 무거운 밀알 하나 끌고 가는 행복한 개미와 같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람결 2007-08-24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몸보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저 개미처럼,
나도 그렇게 짊어지고 가는 '사랑'이고 싶다.
 
8월, 당신의 추천 도서는?

말그대로 '혼자 좋아서'(?) 페이퍼에 루미의 글을 올리고 있는 중입니다만, 그 와중에도 함께 읽어주시는 분들이 더러 있는 듯 싶어 짧게나마 루미에 대해 소개해볼까 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추후로도 기회가 있을 듯 싶고, 오늘은 <루미 잠언 읽기 "사랑 안에서 길을 잃어라">에 소개된 글을 올립니다.

 

메블라나 젤랄룻딘 루미 Mevlana Jelaluddin Rumi(1207-1273)

"13세기 페르시아의 신비주의 사상가이자 시인으로,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중앙 지대 북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발크에서 신학자이자 법률가였던 바하웃딘 왈라드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가르침을 받고, 청년 시절에는 아버지의 친구인 사이드 부르하넷딘에게 9년 동안 '예언자들과 성자들의 학문'을 배웠다.

저명한 종교학 교수요 탁월한 신비가로 이름을 날리던 루미는 서른 일곱 살이 되던 해 영혼의 방랑자 타브리즈의 샴스를 만나면서 영감에 넘친 시인이자 인간에 대한 사랑에 빠진 연인으로 바뀌었다. 샴스와 루미가 함께 한 기간은 짧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완벽한 거울이었다. 샴스는 자신이 루미에게 끼치는 영향을 좋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을 피해 두 번이나 종적을 감추었다가, 결국 그들의 손에 살해당한 것으로 보인다. 샴스를 만난 뒤로 십년이 넘도록 루미는 송시와 영가들을 영감이 떠오르는 대로 지었는데, 그것들을 <디반-이 카비르 Divan-i kabir>라는 이름의 방대한 책을 묶었다.

샴스가 죽은 뒤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던 후사멧딘 첼레비의 권유로 루미는, 세속의 욕망과 비천한 일에서부터 극도로 높은 형이상학과 우주적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갖가지 차원들을 높은 영적 각성의 수준에서 다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신적 걸작품으로 평가받는 <마드나위 Madhnawi>를 지었다. 1273년 12월 17일 터키의 코냐에서 죽음에 이르면서 루미는 정신과 육체 모두 '신과 완전한 합일'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런 '신과의 합일'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12월 2일에서 17일 사이에 코냐에서 그가 창시한 이슬람 신비주의(수피) 교단인 메블라나 교단의 축제가 열리고 있다. 루미는 현재 코냐의 메블라나 박물관에 그의 아버지와 함께 안치되어 있다."

................

*'루미'를 만날 수 있는 책들.

 

 

 

 

 

 

 

 

 

(안타깝지만 '루미시초'는 절판되었네요. 개인적으로 '사랑 안에서 길을 잃어라'를 읽으며 참 많은 감동을 받아더랬습니다. 이현주 목사의 풀이는 여전히 폐부를 찌르더군요.)

* 그리고 '수피즘'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도울만한 책은 다음 두 권을 추천합니다.

 

 

 

 

저 또한 이 책들을 모두 읽지 못했음은 물론입니다만 앞으로 찬찬히 읽어볼 작정입니다. 관심있는 분들에겐 도움이 되었음 싶네요.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우람 2012-01-19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수년전 게시물에 댓글을 다는게 우습지만, 고맙습니다. rumi에 대해 너무 궁금했거든요

바람결 2012-01-19 22:01   좋아요 0 | URL
도움이 되셨으면, 저로서는 참 기쁜 일이지요.^^

정화 2012-08-26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미에 관심이 있어 검색하다가 이 글을 보시는 분들...루미와 샴스의 이야기 '40가지 사랑의 법칙' 추천합니다. 저도 이 글들을 보니 기뻐서...^^

바람결 2012-10-03 02:0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