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5일

고백한다. 나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내 망상은 나를 사랑에 해방시키고

네 망상은 너를 감옥에 가두어둔다.

 

8월 26일

장미와 꾀꼬리는 말을 못한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가는지 귀 기울여 들어라.

촛불이 나방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귀 기울여 들어라.

하지만, 너는 그것을 사람의 말로 옮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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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쓸것도없으면서괜시리끄적이고싶어한자적어보려는심산으로페이퍼를펼쳤는데그러고보니정말이지할말이아무것도없어민망하기도하고심심하기도하여최대한호흡이긴문장을만들어보기로하고 이렇게끄적이며써보고있는중이긴한데내모습이한심하기도하고미련해보이기도하는것이딱소세끼의고양이가그집주인을바라보는심정이아닐까싶기도하니아참난감한이상황에잠을청해야만한다는 주술이밀려와결국은눈을껌뻑이다마치게된다.

본래 말이란게 이렇다. 진실은 사라지고,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말들을 위로한다. 바벨탑을 쌓다가 바벨탑에 갇혀버린 이들을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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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27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결님, 정작 하고픈 말은 못하고 말지요.^^
말들의 추모를 보니 문득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이 생각납니다.

바람결 2007-08-27 21:17   좋아요 0 | URL
얼마전 읽던 책에 '언유종(言有宗)'이라 하여 '말'자체가 아니라 '말의 중심'에 귀를 모으라고 하더군요. 저도 글을 쓰거나 읽다보면 '말'이 그저 '말'일 때가 적지 않더라구요.

혜경님, 저는 아직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말의 표면보다는 말의 중심에 천착해야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프레이야 2007-08-27 23:15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님의 글을 읽노라면 정말 '말의중심'에 계시려고 하는 마음이 엿보여요.
저도 글을 읽을때는 물론 쓸때에도 그래야겠다 다시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남한산성은,, 공중누각에 불과한 말들의잔치를 공허하게 보여주더군요. 그의 '말'이 어떤 면에서 좀
그런 성질이 있구요. 언유종, 말의 중심에 귀를 모으라! 소통의 본질이기도 하네요.
오늘 이 구절 마음에 담아갑니다.^^ 고맙습니다. 편안한 밤 그리고 멜랑콜리 나이트~ 되세요^^

바람결 2007-08-28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멜랑콜리 나잇을 너무 과하게 보낸 탓인지...그 여파가 여전합니다. 오늘도 많은 말을 지껄였고, 가뭇없이 그 '말'들은 사라져버렸습니다. 얼른 서둘러 귀가해버렸죠.
무튼 김훈이 좀 그런 면이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네요. 하지만 적어도 <내가 읽은 책과 세상>에서는 '말', 혹은 '글'이 어떻게 심장에 와 박힐 수 있는지를 절절히 느끼게 해주었었죠. 하지만 말그대로 그의 '말'들은 혼곤하다 여겨질 때가 많더라구요.

아...또 많이 떠들었습니다. 그럼 이만 총총.
 




나를 위로하며

 

삐뚤삐뚤
날면서도
꽃송이 찾아 앉는
나비를 보아라

 

 

마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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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25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도 사진도 너무 좋습니다. 흰나비의 날갯짓과 결고운 촉감이 느껴지는 듯해요^^

바람결 2007-08-25 17:23   좋아요 0 | URL
어젯밤 마음이 허천난 듯해서 간만에 시집을 들었더니 이 시가 저를 위로하더라구요. 사진은 다른 곳에서 가져왔답니다ㅎㅎ;;
 

8월 24일

그래서 감히 나는 알라를 내 '연인'(Lover)이라 부른다!

나를 비난하지 말라!

그분이 한 순간이라도 나를 버려두신다면

나는 욕먹을까 두려워서 입을 다물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계속해서 나를 부추기며

용기를 북돋아주신다.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았다.

계속 떠들어라. 그것이 너의 신성한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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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에게 도를 묻다 - 이현주 목사의 마르코 복음서 읽기
이현주 지음 / 삼인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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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간에 누구나 한번쯤은 성서를 접해 보았을 것이다. 몇 대목을 직접 읽어보았거나, 다른 이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전해 들어본 이도 있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라는 수식어답게 아마도 많은 이들이 성서에 대해서 한 마디씩은 할 수 있을 만큼 성서는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는 듯싶다. 하지만 성서만큼 어려운 책이 또 있을까? 비기독교인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성서가 기독교인들에게조차 까다롭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차원에서 사실 성서는 ‘널리’알려져 있을지는 몰라도 ‘깊이’ 이해되고 있지는 않은 형편이다. 

 이에 대해서 논하자면 많은 지면이 할애되니 짧게나마 원인을 짚어보자. 아마도 성서 자체가 갖고 있는 난해함이 근본 원인일 테고, 그러다보니 많은 이들이 주눅이 들어 웬만해선 읽으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 다음 원인일 테고, 정작 그에 대해 설명해준다고 하는 신학자들의 사변적인 개념들에 또 한 번 주눅이 드는 것 또한 원인일 테고, 목사들에 의해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들이 자꾸만 말씀 자체의 내용과는 동떨어진 것 같아 헷갈리다보니 그게 또 원인이 되어 성서가 그렇게도 따분하고, 지루할 뿐만 아니라 어렵고 딱딱한 것으로 간주되기에 이른 것 같다. 뭐 사실 나도 성서를 마주할 때마다 독해의 어려움을 느끼지만;;;

 어쨌거나 이처럼 성서는 어렵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신약성서의 복음서들은 단연 어렵다. 예수의 온갖 비유들과 행적들, 그리고 복음서 기자들이 갖고 있는 문체상의 특징과 그를 이루고 있는 구조들 때문에 사실 복음서는 진짜 까다롭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읽어도 그 뜻을 헤아리거나 이해하지 못하기 일쑤다. 그러다보니 자꾸만 성서는 ‘성서로써’ 고립된다. 더 이상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읽는 기쁨’을 주지 못하고, 책장 한켠에 한가롭게 전시될 뿐이다. 그래도 조금 성의 있는 이들은 시중의 주석서들을 통해서 본문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가상함을 보인다. 하지만 예의 주석책들이 남발하는 따분한 어휘들이 금새 질리고, 지치게 만든다. 그런데 이 따분하고 어려운 성서를 ‘새롭게’ 마주한 이가 있다. 이현주 목사다.

 <예수에게 도를 묻다>는 말 그대로 ‘자기 나름대로’ 풀어서 마치 소설처럼 쓴 주석서이다. 그는 (자기 안의) 선생님과 오롯이 마주하고 앉아서 대화를 나눈다. 마르코복음(마가복음)을 한 구절 한 구절 읽어가면서 제자는 묻고 스승은 답하는 식으로 말이다. 철없는 제자의 물음에 스승은 호통을 치기도 하고, 조곤조곤 타이르기도 한다. 때론 제자의 적실한 한 마디에 맞장구를 쳐주기도 한다. 그리고 제자인 이현주 목사는 마르코복음을 한 절 한 절을 읽어 내려가며 궁금했던 것들을 스승께 여쭌다. 물론 그 제자의 모습에는 삿됨이 없으며, 무리도 없다. 그저 선생께서 일러주시는 말씀들을 겸손하게 듣고, 받들 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선생님은 성서의 예수님과 같은 분은 아니다. 그저 이 대화가 한 인간의 내면에서 ‘자연 발생한 혼잣말’인 것처럼 자기 내면에 계신 ‘스승님’일 따름이다. 그러니까 결코 일반적인 예수상(像)으로 이해하려들지 않는 것이 좋다.

 아무튼 ‘소설같은 주석서’인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어느덧 내가 제자의 입장이 되어 스승의 말씀을 구하고 있는 모양새처럼 착각하게 될 때가 없지 않았다. 게다가 구차한 물음이나 궁금증에 얽매이지 않고, 말씀의 본뜻을 전해주려는 스승의 마음이 전달되는 듯한 느낌 또한 받았다. 늘 이성의 잣대로 성서를 분석하거나 독해하려던 시도를 내려놓고, 말씀 자체에 천착하라는 음성이 들리는 것도 같아 놀랍고, 신비로웠다. 그리고 말씀이 온갖 현자들의 말씀(노자, 장자, 석가, 루미 등등의)과 더불어 교차되고, 이해되니 한결 더 새롭고, 옹글게 감응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모든 성서의 말씀들이 ‘사랑’에 가닿아 ‘사랑’과 한 몸이신 ‘그 분’과 잇닿게 하니 영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한 시간이었다. 스승의 당부처럼 ‘사랑’으로 깨어있음이 모든 것(everything), 즉 전부임을 깨달아, 깨달음대로 살아야겠다는 깨달음이 진하게 여운을 남겼다. 

언제 어디서나, 어떻게 하면 지금 네 눈 앞에 있는 대상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인지 그것만을 생각해라. 그리고, 떠오르는 게 있으면 겁내지 말고 그대로 하여라. 사람들 눈치 보지 말고, 결과를 계산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사랑'만을 생각하고 그렇게 움직여라. 때가 되면 나와 아버지를 네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이다! – 198쪽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간에) 많은 이들도 충분히 공감하고, 감응할만한 책이거니와, 이처럼 정직하게 써내려간 스승과의 대화록을 나는 오래고 곁에 쟁여두고 읽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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