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등사
다와다 요코 지음, 남상욱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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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렸을 때 주말의 명화로 처음 혹성탈출이란 영화를 보았다. 찰톤 헤스톤이 주연한 오리지널 영화였다. 낯선 혹성에 불시착한 주인공 일행이 인간을 사냥하고 짐승처럼 다루는 원숭이들과 대면하는 내용이었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마치 이물감을 느끼는 것처럼 낯설고 기괴한 세계를 접한 느낌이었다. 특히 주인공이 말을 타고 해변가로 탈출하면서 일부만 드러난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절규하던 장면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혹성탈출이 여러 차례 리메이크 될 때마다 제일 먼저 극장에 달려가서 보았지만,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

[헌등사]를 책을 읽으면서 혹성탈출이란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은 시종일관 낯설다. 소설은 시작부터 아무런 설명 없이 일본의 낯선 풍경을 묘사한다. 요시로라는 사람이 개를 대여해서 달리기를 한다. 집에 들어오니 남자인지 여자인지 자세한 설명이 없는 무메이라는 어린아이가 요시로를 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점점 요시로의 독백을 통해 요시로가 백 살이 넘은 것과 70 정도이면 젊은 늙은이로 부르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무메이의 건강 상태도 이야기한다. 무메이는 근육의 마치 연체동물처럼 힘이 없고, 이가 빠지고,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늙은이들은 점점 건강해지고, 아이들은 점점 건강을 잃어가는 조금은 황당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정부가 통제를 한다.

"건강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아이들이 없어진 세상에 소아과 의사들은 노동시간이 늘어났고, 부모들의 분노와 슬픔을 일거에 받아들여야 했을 뿐만 아니라, 실정을 신문기자 등에게 말하면 어딘가로부터 압력이 들어왔다. (P 32)"

"최근 아이들의 90퍼센트는 미열을 반려해 살아가고 있다. 무메이도 언제나 미열이 있다. 매일 열을 재면 오히려 신경질이 되고 마니까 열은 재재 말아 달라는 학교 측의 지시가 있었다. '오늘은 열이 있네요'라고 말하면 아이는 몸의 노근함을 떠올린다. 열이 나올 때마다 학교를 쉬게 한다면, 거의 학교에 갈 수 없게 되는 아이도 많이 나올 것이다. 어느 학교에나 제대로 된 의사가 반드시 한 명은 대기하고 있으니까 병에 걸렸을 때야말로 등교하는 편이 낫다. (P 50)"

더 특이한 것은 언어이다. 쇄국정책으로 인해 외국어 사용이 금지되고, 모든 언어가 일본어로 대체된다. 언어가 바뀌면서 인간의 생각들도 바뀐다. 이전에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것을 이제는 낯설게 받아들이고, 또 그 반대의 현상도 나타난다.

"아이가 태어나면 곤란해서 여성의 경우는 55세 이상, 남성의 경우는 이미 불임수술을 받은 사람이 우선시되었다. 얼굴에 주름을 그리고 머리카락을 탈색해 나이를 속여서 취업하려고 한 여성의 이야기가 신문에 실렸는데 실제 연령보다 많아 보이도록 하는 것은 의외로 어려운 일이었다. 오래된 농기구 스위치에 영어로 'ON'과 ;OFF'로 쓰여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수상하게 비추어져, 아직 젊다는 것이 탄로 나버린 모양이다. 영어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나이 먹은 증거이다. 전기 제품에 'ON' 'OFF'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젊은 사람은 그런 영어 단처조차 몰랐다. 영어를 학습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P 67)"

소설이 진행되며 요시로의 가족사가 등장하고, 아내인 마리카와 딸인 아마나, 그리고 손자인 도모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리고 조금은 기괴한 무메이가 태어나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이 모든 과정을 인생에서 겪은 요시로의 삶을 통해 일본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암시한다. 지진이나 쓰나미라는 단어가 등장하지만 원전 폭발이나 방사능 유출 같은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것들이 생태계와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쳤음을 암시하는 내용은 곳곳에 등장한다.

소설은 대부분 요시로의 시점으로 진행되다가 갑자기 마리카나 무메이의 시점으로 변하기도 하고, 소설 말미에는 갑자기 15살이 된 무메이의 미래가 등장한다. 그 미래는 마치 혹성탈출의 마지막 장면처럼 끔찍하면서도 충격적이다.

다와다 요코의 작품은 처음 읽어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이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세계문학에 대한 낭독이나 감상에 관심이 있어서 다와다 요코의 작품의 부분적인 부분을 읽거나 그녀의 작품 세계에 대한 해설을 읽은 적이 있다. 22세 때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낯선 독일이라는 세계로 이주해 낯선 독일어를 통해 세상을 다시 접한다. 이런 언어와 세상이 주는 낯선 경험이 그녀의 소설의 주된 주제였다. 그러나 동일도 지진 이후 침묵하는 일본 사회에 대해 사명감을 느끼고, 사회적인 소설들을 쓰고 있다. 그녀가 상상한  본의 미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모두들 침묵하고 있는 일본의 일그러진 사회의 모습은 또 어떤 모습일까? 일본 이란 사회 내부에 있기에 스스로 느끼지 못한 채 기괴하게 변해가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낯선 타자의 입장에서 다시 바라보는 다와다 요코의 시각은 무엇일까?

이 소설을 읽으며 내가 좋아하는 미국 작가 필립 딕의 SF 소설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낯선 미래 세계와 그 세계에서 변형된 인간성을 그리고 있는 필립 딕의 작품성이 다나와 요코의 작품에서도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의 제목인 '헌등사'는 여러 가지 악양향으로 휠체어에 의지해 생명만 유지하게 된 미래의 일본 아이들 중 외국으로 밀항을 해서 자신의 건강상태를 검사를 받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일본의 실체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아마 이 헌등사라는 단어 속에 아직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많은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생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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