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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인간을 말하다 - 권력에 지배당한 권력자들의 이야기
리정 지음, 강란.유주안 옮김 / 제3의공간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언론을 통해 전직 대통령의 비리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드는 생각은 결국 인간은 권력 앞에서 부패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권력만큼 인간의 본모습을 적나라하게 들춰내는 수단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순수하고 정직했던 사람들도 일단 권력을 잡으면 부패하게 되어 있다. 비단 왕이나 대통령과 같은 절대권력만이 아니다. 주변에서 작은 회사나 공동체에서 리더가 되면 소통을 닫고, 독단적으로 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아래에 있었을 때의 총명과 결단력은 없어지고, 상황의 흐름을 판단하지 못하고 현실의 안주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하물며 이런 작은 권력도 이런데 봉건국가에서 절대권력인 왕이나 권력자들은 어떠했을까? 이런 권력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 주는 책이 [권력, 인간을 말하다]라는 책이다.
[권력, 인간을 말하다]라는 책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화려했던 당나라를 배경으로 당나라의 권력을 잡은 사람들과 그들이 어떻게 권력에 잠식되어 부패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초반에 등장하는 인물은 이밀과 당태종 이세민, 그리고 이세민의 밑에서 권력을 잡았던 장손무기 등이다.
이밀은 수나라 말기의 혼란을 틈타 이 씨가 왕이 된다는 도참사상을 통해 반란을 일으키고 권력을 잡는다. 진취적인 사상과 빠른 결단력으로 순식간에 중국 대부분의 지역을 장악했으나, 막상 권력을 잡자 우현실을 판단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인다. 특히 원래 자신의 상관이었으나 자신에게 지위를 양도한 적양을 제거함으로써 민심을 잃고, 결국 이세민에게 투항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저자는 이밀이 참모로 있을 때는 뛰어난 판단력을 가졌지만, 막상 자신이 지도자가 된 후에는 상황을 판단하지 못해 실수를 했다고 말한다.
"한편 여전히 군웅들이 천하의 패권을 다투고 있는 그때, 이밀은 왕세충과 낙양에서 격전을 벌이며 승부를 다투고 있었다. 이연과 이세민은 진양에서 군사를 일으켜 장안을 점령해 천하를 얻으려 했다. 이때 이밀은 치명적인 과실을 범하고 말았다. 그의 책사인 시효화는 지금 낙양을 두고 다투지 말고 정예 부대를 선발해 서쪽으로 장안을 습격하라고 충고했다. 역사는 어찌 이렇게 똑같은가! 이는 일찍이 이밀이 양현감에게 제안한 계획이었다. 당시 양현감은 이밀의 충고를 듣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이밀이 시효화의 충고를 듣지 않은 것이다. 이밀은 남에게 충고를 잘했지만 남의 충고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른바 '방관자는 정확히 볼 수 있으나 당사자는 제대로 보지 못한다'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 (P 31)"
권력을 잡은 후 후계 구도 때문에 붕괴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은 당 태종 이세민이다. 역사에 보면 일단 권력 앞에는 부모형제도 없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당나라 역시 계속해서 이런 싸움이 있었다. 당태종은 당나라를 세우고 절대권력을 잡았지만 아들들 간의 싸움으로 반란과 정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뛰어난 두 아들이 권력싸움으로 축출되고, 조금 부족한 셋째 아들 이치가 왕이 된다. 그리고 그 이치가 바로 측천무후에게 권력을 넘겨주어 당나라를 나락으로 빠뜨린 당고종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권력을 휘둘렀던 사람이 당태종과 함께 당나라를 세운 장손무기였다. 그는 이인자로 군림하며, 권력을 휘둘렀다. 그의 반대파들은 모두 역모로 몰려 사라졌다. 그러나 결국 그 자신도 역모로 몰려 사라진다. 장손무기의 편에서는 권력의 비정함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권력의 속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은 양귀비에게 빠져 나라를 무너뜨리 당 현종 이융기이다. 측천무후와 위 황후로 이어지는 당나라의 여인천하의 혼란기를 수습한 인물이 바로 이융기이다. 그는 27세의 젊은 나이에 군대를 이끌고 들어가 위 황후의 세력을 제거하고, 뒤 이어 자신과 함께 위 황후를 제거한 측천무후의 딸이자, 자신의 고모인 태평 공주까지 제거한다. 그리고 백성을 생각하는 검소한 정치로 당나라 역사상 가장 태평한 시대를 만든다. 그러나 절대권력이 오래되자 그도 부패하게 된다. 자신의 비위를 맞추는 재상 양국충에게 모든 권력을 넘기고, 자신의 은밀한 궁에 들어가 양귀비와의 향락의 세월을 보낸다. 결국 그가 총애하던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키고 그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양귀비마저 자신의 손으로 죽이며 권력에서 쫓겨난다. 저자는 이융기의 부패를 통해 절대권력이 반드시 부패할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한다.
"이융기의 비극은 '물이 차면 넘치고, 해도 한낮이 지나면 저문다'라는 간단한 변증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 권력의 부패가 가져다준 인간성의 타락에 있다. 황산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을 부식시킬 수 있는 것처럼 절대 권력도 세상에서 자기 절제력이 가장 강한 사람을 자기도 모르게 변하게 만들 수 있다. 그것은 영민하고 용맹스러웠던 이융기를 무능하고 어리석게 만들었고, 자신의 욕심을 누르고 예의범절을 따르던 자를 무절제한 사치에 이르게 만들었다. 또한 마음속에 천하를 품었던 자를 호화로운 생활에 빠지게 했고, 겸허하게 간언을 받아들이던 자를 강퍅하고 독선적으로 변하게 했다. 권력을 누리는 것은 칼끝에 묻은 꿀을 핥는 것과 같아서 달콤함을 맛보았을 때 이미 칼끝에 상처를 입고 만다. 이융기는 권력이 가져다주는 달콤함에 빠져서 나날이 계속되는 상처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P 127)"
저자는 이것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와 시스템의 문제라고 말한다. 당태종은 당시 누구나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킬 것을 짐작하고 있는데, 오로지 자신만이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간신인 양국충의 인의 장막에 가려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것도 있지만, 권력자가 가지는 특유의 인지적 딜레마에 빠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각 시대의 황제들은 모두 가장 우수한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가장 뛰어난 스승에게 보고 배웠으며 사서오경을 읽고 도덕적 소양을 키웠다. 다시 말해 결코 어떤 황제도 천하를 잘 다스려 역사에 길이 남기를 원하지 않는 이가 없었고, 또 욕망을 억누르고 어진 정치를 베풀어야 함을 모르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일단 황제가 절대 권력의 최면에 걸려 인지적 딜레마에 빠지면 욕망과 이성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렵고, 옳고 그름과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어려워진다는데 있다. 또한 황제에게 진리의 기준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자기 자신을 진리와 동등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황제의 욕망은 결국 제멋대로 분출된다. (P 144)"
마지막으로 당나라 말기의 황소라는 인물은 권력을 잡은 후의 계획이 없다면 그가 잡은 권력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를 보여 주는 인물이다. 당나라 말기에 황소는 농민 반란군을 이끌고 황소의 난으로 유명한 전쟁을 일으킨다. 황소는 높은 기개와 강인함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중앙절이 오기를 기다려, 나 국화가 활짝 핀 후에는 100가지 꽃이 시들 것이다. 하늘을 찌를 듯 짙은 국화향이 장안성에 가득하니 온 장안성을 노란 국화색 황금 갑옷으로 덮어버리리... 이 시는 황소가 반란의 미학을 극치로 발휘한 작품으로서, 그의 격정적인 글에는 유구한 중국 역사 속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자극하는 강인한 아름다움이 있다. (P 300)
그러나 황소의 군대는 일단 장안을 장악하자 더 이상 목표를 잃고 조직이 무너진다. 그리고 장안에서 쫓겨나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많은 지도자들이 막상 권력을 잡은 후 우왕좌왕하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결국 권력을 잡기 전에 얼마나 준비되었는지가 그가 잡은 권력이 얼마나 유지되는지를 말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치인이나 지도자들이 역사를 조금만 참고해도 좀 더 지혜롭게 권력을 사용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과연 권력 앞에 부패되지 않고 넘어지지 않는 인간이 누가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결국 절대권력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권력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권력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역사를 통해 인간을 알고 싶다면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