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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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아 연대기]의 초반부에는 주인공들이 옷장을 통해 나니아라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어쩌면 소설이라는 것이 이런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소설을 읽으면서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경험을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최근에는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 감수성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소설의 흡입력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인지. 그럼에도 아직도 나를 소설 속의 새로운 공간으로 빨아들이는 책들이 있다. 얼마 전에 읽었던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책이 그랬다. 읽는 내내 내가 소설 속의 여름 별장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는 슈베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그 숲속의 길을 운전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기다리던 마쓰이에 마사시의 신작이 나왔다고 해서 읽어 보았다. 제목은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이다.

소설은 주인공 다다시가 아내와 이혼을 하면서 시작된다. 다다시는 출판사의 중간 직책 정도 되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증권회사 연구원이라는 잘 나가는 아내를 두고 있었다. 아들은 이제 다 커서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 그런 다다시의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이혼을 요구해 왔고, 다다시는 아무런 변명 없이 집과 가구를 모두 놔둔 채 혼자 집을 나온다. 소설 초반에는 왜 이혼을 했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다다시는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은 집을 구하다가 근교의 오래된 낡은 집을 구한다. 집주인인 소노다 씨는 나이 든 여성으로서 혼자 생활을 하다가 아들이 있는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이 집을 헐 수가 없어서 집을 잘 관리해 줄 세입자를 구했고, 다다시가 적임자가 되었다. 다다시는 낡은 목조주택을 고쳐 가면서 그곳에서 다시 추억을 쌓아간다. 그러다가 아내와의 이혼의 원인이 되었던 가나라는 여성이 근처에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다다시는 가나와 우연히 마주치며 다시 가나와의 관계를 이어간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끊아지는 것도 아닌, 그렇게 유지만 되어 간다. 그 과정에서 그는 타인들이 말하는 혼자만의 '우아한?" 생활을 즐긴다. 결국 소설은 그렇게 느리게 흘러가며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은 언뜻 보면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지루함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한 그의 뛰어난 묘사력이 소설 곳곳에 존재한다. 특히 전편과 마찬가지로 인물에 대한 묘사력이 매우 뛰어난다. 소설을 읽다 보면 마치 그 인물을 옆에서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이 있다. 이 책에서는 아내와 가나를 묘사하면서 전혀 다른 두 여성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 이 힐은 인도를 급히 걸으라고 만든 게 아니란 말이야!- 아내는 긴자의 미유키 거리를 걸으며 너무 빠르다, 더 천천히 걸어라, 하고 내게 불평을 했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아내가 신는 힐은 굽이 높고 가늘어서 엘리베이터 홈 이나 길도랑의 격자에 끼면 부러지거나 안 빠지거나 했다. 콘크리트 위를 걸으면 가죽 밑창이 순식간에 찢어졌다. 그러니 건물 밖으로 나오면 차를 타는 게 옳다고 아내는 내게 가르쳤다. (P 39)"

 "가나는 주황색이나 녹색 같은 선명한 색깔이 어딘가에 들어 있는 옷을 곧잘 입었다. 묘하게 품위 있는 코디네이션으로 세상의 유행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자연스럽게 입었다. 하지만 그를 처음에 매료한 것은 머리 모양도, 패션도 아니고 그녀의 눈이었다. 가나는 다른 사람을 볼 때 아주 약간 밑에서 올려다보듯 한다. 눈동자 아래, 흰자위 부분이 살짝 벌어지는 것이다. 일과 관련된 미팅을 할 때도 그녀가 꼼짝 않고 쳐다보면 내 감정이며 비밀까지 꿰뚫어보는 느낌이 들었다. (P 51)"

특히 주인공이 살고 있는 낡은 목조 주택에 대한 묘사는 주인공의 감정과 함께 썩여서 특유의 소설적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나는 북쪽으로 난 이 창문이 좋았다. 옆집에서 보이지 않도록 사이에 가시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나무만 보인다. 창문에는 차양을 깊게 쳤다. 지붕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내뻗은 서까래가 차양을 지탱한다. 오랫동안 아파트에 살았더니 이층 어느 방에서나 창문으로 차양이 보인다는 게 생각 외뢰 신선했다. 서까래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오래된 집에  산다는 게 실감 났다. 보자챙처럼 내민 차양은 집 내부의 연장 같고 나무도 불그스름하게 변색되어 마치 잘생긴 귀를 몰래 엿보는 기분이 든다. 아주 짧은 커트머리였을 때 가나의 귀. 저번에 국숫집에서 만났을 때는 머리가 가려 보이지 않았다. 가나의 귓바퀴는 얇고 커브가 작은 데다 고양이처럼 언제나 차가웠다. 아아...... 틀렸다. 차양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한다면 비누를 봐도 계단 난간에 손을 얹어도 문 손잡이를 잡아도 가나를 떠올리지 모른다. ( P63)"

사실 전작의 감동을 기대하고 읽었지만, 전작만큼의 감동은 느끼지 못했다. 소설적인 스토리나 묘사의 부분도 전작에 비해 무언가 조금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 특유의 필체가 나를 소설 속의 목조주택으로 끌고 들어간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가끔 오래된 고향집에 가면,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생각날 때가 있다. 결국 사람은 사라지고, 사람의 감정은 사라져도, 그 사람과 함께 했건 공간은 남아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공간은 그 시절의 추억과 감정을 그대로 담아둔 채 나이가 들어간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집이란 이런 느낌이 아닐까. 올해도 계속해서 아파트들이 입주를 하고, 인터넷에서는 서로 자기 집값인 높다고 아웅다웅하며 싸우고 있다. 이런 우리들에게 집은 무엇일까. 단순히 재산을 증식하기 위한 수단일까. 비록 낡은 목조주택이라도 추억과 감정이 담겨 있는 값어치 있는 집들이 많아지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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