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히어로즈
기타가와 에미, 추지나 / 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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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직장을 출근하거나 자기 일을 시작할 때는 누구나 열정이 넘친다. 그러나 일을 하고 사람과 부딪히다 보면 점점 그 열정들이 사라지고, 마지못해 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렇게 돈을 벌고, 그렇게 가정을 꾸리고, 그렇게 자녀들을 키운다. 때로는 이런 삶에 회의를 느끼지만 다른 길을 생각할 수는 없다. 오로지 그 길만이 내가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서도 즐겁게 할 수는 없을까. 조직의 시스템에 끼어 맞춰진 삶이 아닌, 스스로 기쁨과 즐거움 때문에 일을 할 수는 없을까. 이제 이런 생각들을 허황된 생각이라고 말할 정도로 나이가 들었지만, 가끔은 아직도 이런 삶들을 꿈꿔본다.

일본 작가 기타가와 에미는 바로 이런 꿈을 꾸는 작가이다. 다들 세상은 그런 거야! 직장은 그렇게 다니는 거야!라고 말을 할 때, 이 작가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다른 삶이 있다고 말을 한다. 처음 이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라는 작품이었다. 하루의 일과가 숨이 막히고 모든 것이 옥죄며, 그래서 육체와 마음이 망가져 가는 직장인이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주식회사 히어로즈]도 직장이나 일과 관련된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자기 분야에서 열정을 잃어버리고 실패를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다나카 슈지는 한때 직장에서 성실히 일하고 인정을 받았다. 또한 사내연애를 하며 여자친구와 만들 행복한 가정도 꿈꾸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버스에서 치안으로 몰려 구타를 당하고, 직장도 잃고 애인도 잃게 된다. 나중에 이것이 누명으로 밝혀지지만 한 번 찍힌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마음의 병까지 얻어 공공장소나 버스 안에서 숨쉬기 힘든 호흡곤란까지 느낀다. 이제는 세상과 사람 일에 관여하지 않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평범하고 조용히 살려 한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아르바이트 자리가 들어왔다. 주식회사 히어로즈라는 곳에서 잠시 시간제로 일하는 것이다. 이름부터 이상한 이 회사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회사일까. 슈지는 이상한 회사 이름과 이름만큼 이상한 회사 분위기에 혼란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서 열정을 잃어 버리고, 지치고, 낙담해 하는 사람들을 찾아간다.

슈지가 처음 만난 사람은 꿈과 열정이 넘쳐 만화가 되어 지금은 일본 최고의 인기 만화가가 되었지만, 주변의 기대와 압박에 점점 무너져가는 도조 하야토라는 만화가이다. 그는 슈지와 친해지면서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한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내가 그린 만화를 읽어주는 사람만 있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 나에게는 만화밖에 없으니까, 나에게 만화라는 재능이 있었다면 그 대신 다른 재능이 부족했던 것 같아. 그 무렵에는 그것조차 행복이라고 믿었지만...... 지금은 무서워졌어. 만화 말고 도망칠 곳이 없다는 사실이 때로는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어." (P 107-8)

두 번째 만난 사람은 인기 절정의 여자 아이돌이다. 힘들게 인기를 얻었지만 이 인기와 사랑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초조해하고 두려워하는 철없는 소녀이다. 그녀는 우연히 슈지와 애완동물 가게를 지나친 후 이렇게 고백한다.

"애완동물 가게는 정말 싫어. 어린 강아지가 애교를 부리며 다가오는 모습...... 나를 사랑해 달라고 꼬리를 흔들면서. 꼭 나를 보는 것 같아. 가여워서 못 견디겠어. 이 아이들은 팔리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팔리지 않은 상품은 망가진 로봇처럼 버려지고 마는 걸까" (P 207)

"그러니까 재고가 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아양을 떠는 거야. 더 많은 사람들이 귀엽다며 쓰다듬도록. 좋아해 줄 만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거지 자신을 데리고 가 평생 귀여워해 주기를 바라면서." (P 208)

주식회사 히어로즈는 이렇게 자신의 일에서 꿈과 열정을 잃은 사람들에게 다시금 꿈과 열정을 주어 자신의 삶에서 히어로즈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슈지는 이 일을 해 가면서 다시금 자신의 삶에 열정과 꿈을 회복해 간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해 본다. 사람이 살아가고 일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냥 돈을 벌고, 가정을 이루고, 그렇게 주어진 삶을 사는 것이 전부일까? 아니면 자신의 꿈을 찾아 즐겁게 일을 하는 것이 전부일까? 이 두 가지를 모두 만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항상 이 두 가지가 갈등을 일으키고, 대부분은 전자의 일상적인 삶이 후자의 꿈과 열정을 갉아먹는 것이 현실이다. 바쁜 직장인이나 자신의 꿈을 잃은 사람들에게 다시금 꿈을 꾸게 해 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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