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사람을 죽여라
페데리코 아사트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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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오래전에 개봉했고 그렇게 큰 인기를 얻은 영화는 아니지만, 계속해서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다. 감우성이 주연한 [거미 숲]이란 영화이다. 이 영화는 시작에서 기자인 강민(감우성 분)이 유령이 나온다는 거미 숲을 취재하러 갔다가 남녀를 죽이는 살인 사건을 목격한다. 그곳에서 도망 나오던 주인공은 사고로 인해 기억을 잃게 되고, 겨우 정신을 차려서 자신이 목격한 사건을 경찰에게 이야기를 해 준다. 경찰이 정말 그곳에 가니 남녀의 시체가 있는데, 그 시체는 강민의 연인이었던 아나운서와 방송국 국장이었다. 당연히 강민은 살인 용의자로 의심을 받게 되고, 그는 살인의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잊어버린 기억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의 어린 시절의 상처와 그 상처로 그가 벌인 끔찍한 살인사건의 실체를 만나게 된다. 당시 결론에서 매우 충격을 받았던 영화로 기억이 난다.

이 영화는 인간이 자신이 경험한 끔찍한 과거를 잊기 위해 스스로 기억을 조작해 나간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페데리코 아사트의 소설 [다음 사람을 죽여라]는 [거미 숲]이라는 영화보다 더 정교한 플롯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이지만, 주제는 비슷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 역시 자신의 경험했던 끔찍한 어린 시절과 자신이 행한 끔찍한 일을 잊기 위해 스스로 기억을 왜곡하고 있다. 그리고 소설은 그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놀라운 것은 그 기억이 하나하나 어둠 속에서 드러날 때마다 독자들은 계속해서 충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소설은 주인공 '테드'가 자살을 하려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뇌종양으로 시한부 인생을 판결 받고, 아내와 두 딸을 여행을 보낸 후 혼자 남은 집에서 권총 자살을 하려 한다. 그런데 그가 자살하기 전에 누군가가 계속해서 문을 두드린다. 잠시 자살을 미루고 문을 열어 주자 '린치'라는 남자는 그에게 충격적인 제안을 한다.

'린치'는 테드가 자살하려는 모든 과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속한 조직은 사법제도가 해결하지 못하는 악인들을 처단하고 있다고 말한다. 주로 테드와 같이 자살을 하려는 사람을 통해서이다. 자살 직전의 사람이 사회의 악인을 죽여주면, 다음 선택된 사람이 자살을 하려는 사람을 죽여주는 것이다. 물론 테드는 애인을 살해하고도 완전범죄로 법망을 빠져나간 인간쓰레기인 '블레인'과 또 자신의 앞선 자살 대상자인 '홀리'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뒤에 선택된 자살 대상자가 테드를 죽여주는 것이다. 테드의 입장에서는 남은 가족이 자신이 자살했다는 것보다 살해당했다고 믿는 것이 남은 생을 살아가는데 훨씬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비록 어려움은 있었지만 블레인과 홀리를 죽이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다음 장에서 테드는 자살을 시도하고 있는 자신을 다시 발견한다. 장소 역시 자신의 서재와 똑같다. 그리고 똑같이 린치가 문을 두드린다. 린치가 하는 제안 역시 똑같다. 테드는 이것이 여러 번 반복되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다시금 테드가 정신을 차렸을 때 테드는 정신병원에서 깨어난다. 이 모든 것은 테드가 만들어 놓은 환상이었다. 테드 옆에서는 로라라는 의사가 테드가 이 환상의 동굴에서 빠져나오는데 계속해서 도움을 주고 있다. 사실 이만큼만 이야기해도 이 소설의 스포가 반절 정도는 공개가 된 것이다. 그러기에 더 이상 이야기는 금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로라의 도움으로 테드가 자신의 왜곡된 기억에서 빠져나오면 나올수록 점점 더 끔찍한 현실을 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빙산을 통해서 설명한다. 인간의 의식은 마치 수면에 드러난 빙산의 일각처럼 10분의 1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기억의 심연 속에 무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꿈의 해석]라는 책에서 이런 무의식을 탐사하는 과정을 지형 지도를 그리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꿈과 여러 가지 기억의 단편들을 통해 인간 내면 깊은 곳은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지도의 실체를 드러내기 싫어하는 방어기재들과 싸워야 한다.

이 소설은 테드라는 한 인간의 기억의 심연을 탐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테드는 여러 가지 인물들과 사건들을 통해 왜곡된 기억, 즉 방어기제를 만들어 놓는다. 독자는 로라와 함께 테드의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면서 점점 테드의 끔찍한 기억의 실체를 접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반전과 반전이 거듭되면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과연 테드는 연쇄 살인마일까? 아니면 단지 기억을 왜곡한 피해자일까? 속도감과 완벽한 구조, 그리고 계속되는 반전들, 독자를 숨을 쉬게 하지 못하는 내가 올해 읽은 최고의 스릴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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