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팡의 소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한희선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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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끔찍한 범죄와 살인사건 등이 보도된다. 수법 역시 매우 악랄하고 잔인하다. 사람을 죽인 후 토막을 내어서 강에 버리거나 산에 묻는다. 사람을 트렁크에 태우고 다니면서 카드로 돈을 인출하기도 한다. 점점 사람들이 잔인해지는 것은 현대화가 되는 길목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일까?

[루팡의 소식]은 비록 범죄 사건을 다룬 추리소설이지만, 조금은 순수했고, 조금은 어설펐던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물론 이들의 범죄는 의도하지 않은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지만...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작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이 책의 작가는 '요코야마 히데오'이다. 일본의 유명 추리소설상과 미스터리상을 휩쓴 작가이다. 특이한 요코야마 히데오가 나오키상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순수문학상의 대표가 아쿠타가와 상이라면 대중문학적인 성격의 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상이 나오키상이다. 수상을 거부한 이유가 예전에 자신의 작품에 대해 혹평을 했기 때문이라나...

소설은 공소시효가 끝나가는 15년 전 고등학교 여교사 자살 사건에 대한 제보로 시작한다. 제보의 내용은 이 사건이 자살이 아니며 타살이고, 이 사건의 범인은 루팡 작전이라는 범죄에 가담했던 세 명의 고등학생이었던 기타로와 다쓰미, 다치바나라는 것이다. 공소시효 마감이 24시간 밖에 남지 않자 경찰은 이들 세 명을 긴급 수배하고 체포한다. 이제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인 기타로가 먼저 경찰서로 잡혀 들어와 취조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15년 전의 비밀이 드러나게 된다.

대학입시라는 목표는 이미 포기한 채 학교에서 겉돌기만 하던 불량학생 세 명은 자주 루팡이라는 카페에 모인다. 3학년인 이들은 무언가 자극적인 사건을 찾다가 기말고사 시험지와 답안을 훔치기로 결정한다. 시험지는 항상 시험 전날 교장실의 금고 속에 보관된다. 이들의 계획은 수업이 끝나고 모든 학생들이 하교할 때 한 명이 학교에 숨어있다가 나머지 두 명에게 사다리를 내려주고, 세명은 함께 조용히 교장실로 잠입한다는 계획이었다. 이것이 이들이 세운 대범하고도 조금 어설픈 루팡 작전이었다. 시험 전날 시험지와 답안지를 훔친다는 것은 어쩌면 모든 학생들의 로망? 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들은 그 로망을 실현시킨다. 나름 완벽한 계획이라고 생각했지만, 후에 많은 허점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런 허점보다 더 심각한 사건이 발생한다. 시험 셋째 날 마지막 과목의 시험지만 훔치는 상황에서 금고를 열어보니 시체가 나오는 것이다. 시체는 다름 아닌 학교에서 모든  모든 남학생들과 남자 선생님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글래머라는 별명을 가진 영어 선생인 '미네 마이코'였다.  너무 놀란 세 명의 남자들은 다시 금고를 닫아 놓고 도망을 온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다음날 미네 마이코가 학교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것으로 신문에 보도가 된 것이다. 과연 마이코를 죽인 사람은 누구이고, 살해당한 마이코는 누가 옮겨서 옥상에서 떨어뜨린 것일까?

소설은 공소시효의 압박이라는 배경과 함께, 세 친구가 학교로 숨어드는 긴장감 넘치는 과정을 매우 빠른 속도로 묘사한다. 무엇보다도 읽으면 읽을수록 도대체 범인이 누구인지를 모르겠다는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비록 끔찍한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하지만, 세 친구의 고등학교 때의 우정, 그리고 가난하고 힘든 친구에 대한 배려, 선생님과 학생의 풋풋한 사랑 등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런 이들의 배후에는 끔찍하고 잔혹한 음모를 가진 사람들도 등장한다. 순수함 속에 뒤틀린 사회 배경, 그 순수함을 잠식해 거는 타락한 시대의 물결들이 잘 표현된 소설이다. 소설 말미에서 세 친구를 취재하던 형사는 당시의 배경을 이렇게 말한다.

"아아 맞다, 다치바나 소이치가 고교 시절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죠. 아폴로가 달에 착륙했을 때 정도로 실망한 적은 없었다. 이미 세상은 갈 데까지 가버린 느낌이다...... 그런 말이었습니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딱히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지만, 듣고 보니 전쟁도 전후의 분위기로 퇴색한 쇼와 후반이란 분명히 그런 시대였을지도 모릅니다. 무엇이든 부풀리고, 늘이고, 또 늘여서 충분히 풍요로워졌는데도, 어쩐지 현 상태에 고개를 갸우뚱거렸어요. 어떻게 풍요로워졌는지, 어디가 풍요로워졌는지 다들 점점 알 수 없어져버렸지요. 아폴로의 구조도 기술도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텔레비전 영상으로 달 표면을 뛰어다니는 남자들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그 기묘한 감각이 쇼와 후반까지 계속 이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 걸 질질 끌어오면서도 누구나 현대인으로 있으려 하죠. 전쟁으로 사람이 죽고, 학생운동으로 피를 흘렸습니다. 그것은 그것으로 끝났다고 단념하고 영문을 알 수 없는 풍요로움에 둘러싸이다 보니, 사회는 묘하게도 점잔 빼는 어른의 얼굴이 되어버렸죠. 얼굴을 맞대고 싸우지 않고, 하물며 피 같은 건 흘리지도 않고, 대신 규칙이나 분멸이 세력을 떨치고, 선생이니 타인을 위해서라느니 하는 정론의 여과기가 세상의 모든 것을 걸러버렸어요. 그렇지만 애당초 성숙한 사회란 있을 수 없는 환상이니까, 정론으로 전부 여과할 수 없는 모순 투성이의 토막들이 남아버린 거죠, 뭐랄까, 정론 사회에 대한 의심과 증오가 뒤섞인 버거운 토막들이......"

작가의 데뷔 소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소설은 치밀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자극적이고 액션 위주의 스릴러보다는 정통적인 느낌의 추리소설을 찾는 독자라면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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