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
장자자 지음, 정세경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던 피천득의 인연이라는 수필에서 주인공과 아사코의 세 번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세계에 살 던 사람들이 우연이라는 접점에서 부딪히게 된다. 마치 거대한 빙하가 충돌하듯이, 멘틀과 멘틀이 부딪히듯이, 두 세계가 겹치게 된다. 한차례의 거대한 충돌이 일어난 후 서서히 두 세계는 멀어지고, 다시 서로의 세계로 돌아간다. 피천득 작가의 글처럼 인생에서 이런 세 번씩의 충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보통은 한 번의 거대한 충돌 이후 두 세계는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가 다른 세계에 산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서로를 그리워하며 인생을 살아가단다.

중국 작가 장자자의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장자자는 왕가위 감독과 양조위와 금성무 주연으로 유명한 [파도인]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로도 유명한 사람이다. 중국에서는 그의 소설도 매우 인기가 있는데. 특히 이 소설은 중국의 웨이보 블로그에서 올린 작가의 시리즈이다. 한때 뜨겁게 사랑했던 남녀의 이별 이야기들이 47개가 올려져 있다. 하나같이 가슴 아픈 사연들이다. 이런 아픈 사연들은 작가의 특유의 감각적인 필치로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작품마다 하나의 이미지를 강하게 떠오르게 하는 내용들이 많은데, 첫 번째 소설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에서는 모래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떠오른다. 도시가 오래되어 모래로 변하는 이미지이다. 작가는 그 모래에 파묻히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모래로 변해가는 것은 한때 절실했던 사랑의 순간을 의미한다.

소설에서는 작가인 '나'는 인터넷 게임을 통해 알게 된 친구인 마오시바와 리즈라는 여자와의 사랑을 이어준다. 마오시바는 리즈에게 청혼하고, 선물로 내비게이션을 선물한다.  그 내비게이션에는 마오시바의 목소리가 친히 녹음되어 있다. 리즈는 운전을 할 때마다 남자친구의 익살스러운 목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리즈는 선물로 받은 내비게이션을 '나'에게 던져주고 마오시바를 떠난다. 마오시바가 선물을 돌려받지 않았기에 나는 마오시바의 목소리가 나오는 내비게이션을 들으며 운전을 한다. 그리고 마오시바의 절실했던 사랑, 그리고 변해버린 사랑에 안타까워한다. 우연히 마오시바가 리즈에게 프러포즈했던 다오청을 갈 때 다시금 마오시바의 절실한 사랑고백을 듣게 된다.

내비게이션 속 마오시바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어.
그날 마오시바는 구름이 드리운 산 중턱에서 부드러운 풀 위에 무플을 꿇고 그녀에게 말했겠지.
"리즈야, 사랑해."
오늘도 마오시바는 구름이 드리운 산 중턱에서 부드러운 풀 위에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말했어.
"리즈야 사랑해."
다오청은 아름다운 곳이지만 마오시바와 리즈에게는 이미 모래 도시가 되어 버렸어.
사람의 기억은 도시와 같아. 시간은 모든 건물을 좀먹고 높은 빌딩과 도로를 사막으로 만들어버리지. 만약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금세 모래에 파묻히고 말 거야. 그러니 얼굴이 온통 눈물로 범벅되고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뒤돌아보더라도, 앞으로 나가야만 해. (P 22)

소설에는 작가 장자자의 사랑 이야기와 주변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가 실화인지 소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모호함 속에서 작가의 특유의 냉소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필치로 펼쳐져 있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이 소설에 실린 여러 편이 영화화되고 있다니 한국에도 개봉되면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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