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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평점 :

최근에 언론의 뜨거운 감자였던, 삼성그룹 이재용 회장의 구속 적부심 판결이 오늘 기각되었다. 이로 인해 방송과 인터넷이 온통 난리이다. 서민들은 단 돈 몇 천원 때문에 감옥에 가는데, 몇 백억 원을 제공한 사람은 왜 멀쩡하느냐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판사가 자신의 판결에 불복해 행패를 부린 피고인에게 1년 징역에서 3년 징역을 선고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판사가 자신의 감정대로 피고를 판결한다는 비판이 뜨겁다. 이로 인해 법조계의 판결이 국민의 법감정과 거리가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럴 때면 가끔 영화에서 컴퓨터가 통제하는 미래사회를 생각해 본다. 영화에서는 인간이 하는 일은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하고 실수가 있기 때문에, 미래에는 컴퓨터가 인간의 일을 대치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컴퓨터가 인간의 모든 부분을 지배하고 재판까지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보다 더 공정한 판결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현직 판사인 문유석 작가가 지은 [미스 함무라비]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깨어졌다. 이 소설에는 신임 판사인 박차오름이라는 여판사가 44호 법정의 좌배석판사로 배정받으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박 판사는 어린 시절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과외 교사에서 성추행까지 당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폭력적인 남성이나 성추행범을 보면 참지를 못한다. 객관적으로 판단을 해야 사건에서도 감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로 인해 언론의 주목을 받고, '미스 함무라비'라는 별명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박 판사는 이런 좌충우돌의 경험을 통해 점점 판사의 역할을 배워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죽일 놈이지만, 그 사람의 살아 온 환경과 상황을 보면 동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다. 또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동정이 가는 피고인이지만, 속에는 매우 사악한 의도로 재판장과 주변 사람들을 속이는 경우도 있다. 박 판사는 동표 판사의 도움으로 이런 사건들을 접해가면서 판사로서의 시각을 키워간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이 객관적인 시각이 아닌, 감정으로 사람을 재판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자책하는 박 판사에서 선배 판사는 이렇게 말해 준다.
"박 판사님,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박 판사님은 상처가 많은 사람이어서 누구보다도 더 좋은 판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남의 상처를 누구보다 더 예민하게 느낄 줄 아니까요." (P 194)

어쩌면 우리는 판사가 컴퓨터와 같은 인간이 되기를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외부적인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고 온갖 데이터를 종합해 정확하고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판사를 기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될 때만이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쩌면 감정이 있는 사람이 하는 판결이기에 그 판결이 더 정의로운 판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무조건 정해진 잣대를 통해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컴퓨터보다는 그 다른 사람과 함께 아파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기에 더 정의로운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경우 판사가 자신의 감정에 이끌려 주관적인 판단을 할 위험도 있다. 그럼에도 이 부분까지도 판사가 극복해야 할 또 다른 시험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의 박 판사처럼, 단순히 사법시험을 통과해서 판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과 싸워 정의를 추구하는 판사가 되는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순히 판사뿐만 아니라, 우리가 기대하는 정치인, 종교인, 기업인 모두에게 해당될 것이다. 비록 지금 우리는 여러가지 사건으로 인해 사람에게 실망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마지막까지 희망을 가져야 할 대상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만이 타인의 아픔을 동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람만이 사람을 재판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