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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자 2
장용 지음, 양성희 옮김 / 조율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중국 영화나 드라마 중 많은 작품들이 1930-40년대의 상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영화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배우인 탕웨이의 [색계]라는 영화이다. 영화가 너무 탕웨이라는 여배우에게 집중되어 있어서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영화는 당의 시대상황과 이런 시대 속에서 자신의 역할에 혼란을 느끼는 배우들의 감정연기가 잘 드러나고 있다.
영화에서 탕웨이의 위장 신분인 막부인이 암살하려는 대상이 친일인사인 미스터 이(양조위)이다. 당시 중국은 중일전쟁으로 인해 상해와 난징을 비롯한 대부분의 해안도시가 일본에게 점령당한다. 이 과정에서 홀로코스트에 버금간다는 끔찍한 난징 대학살이 발생한다. 난징의 인구 100만명 정도가 잔인하게 학살 당하고 20만명의 여성이 강간 당하고 살해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동족들이 끔찍한 고통을 겪는 중에서도 일부 친일파 세력과 국민당에서 장제스에게 밀린 왕위가 상해에 친일정부를 세운다. 상해에서는 이런 친일정부와 함께 국민당과 공산당의 스파이들이 활동하고, 이런 스파이들에 의한 친일인사들의 암살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영화에서의 미스터 이는 이런 친일파의 대표적인 인물이고, 막부인과 동료들은 이런 친일파를 암살하는 스파이로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미스터이와 막부인은 둘 다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우리에게 영화로 잘 알려진 [색계]라는 영화는 사실 장아이링이라는 중국의 대표적인 여류작가의 소설이 원작이다. 그녀 역시 당시 상해의 왕위정부로 알려진 친일정부의 인사와 결혼을 하는 등 당시의 시대상황을 직접 경험한 여성이기도 하다. [위장자] 같은 시대 배경인 원작 소설을 드라마와 했다. 그리고 한국에 출간된 [위장자]라는 책은 원작소설이 아닌 드라마의 시나리오 작가인 장용에 의해 쓰여진 작품이다.

[위장자]는 상해의 재벌 가문인 명씨 가족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집안의 사업을 관할하고 있는 누나 명경, 왕위 정부의 재무 장관이 되어 친일인사로 비난을 당하는 형 명루, 그리고 부잣집 막내 도령으로 한량 역할을 하는 막내 명대가 등장한다. 그러나 외부에서 보이는 역할과 달리 그들은 다른 직책을 가지고 있다. 명루는 사실 공산당 후원세력이었고, 명루는 암호명 독사로 활동하는 국민당 스파이였다. 막내 명대 역시 암호명 독전갈로 활동하는 국민당 스파이였으나, 후에 국민당의 부패에 염증을 느끼고 공산당으로 전향하게 된다.
1권에 이어서 2권에서는 이들의 치열한 첩보 싸움이 전개된다. 명루는 자신의 신분을 감춘채 자신의 옛사랑이자, 지금은 왕위정부의 첩보조직인 76호의 정보처장인 왕만춘을 이용해 자신의 첩보 작전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겉으로는 친일인사로 활동하고, 속으로는 옛연인인 왕만춘 뿐만 아니라 누나인 명경과 동생이 명대까지 이용해야 하는 잔혹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심한 갈등을 느낀다. 그는 자신의 냉혈함을 비난하는 동료에게 이렇게 토로한다.
"내가 감정도 없는 냉혈한인 줄 알아? 일본 놈들이 내 나라를, 내 고향을 수탈하고 우리 민족의 존엄을 말살하는 걸 보면서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 목숨을 버리려는 전사를 어떻게 감정도 없는 놈이라고 욕살 수 있지? 생사를 넘나들며 투쟁하는 전사들에게 어떻게 냉혈한이라고 말할 수 있어? 뭣 때문에? 내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고귀한, 절대 버릴 수 없는 가족마저 희생시키니까? 그래, 난 동포와 가족을 희생시켜가며 이 가면을 쓰고 있지. 나도 이 가면이 가증스럽고 혐오스러워 견딜 수가 없어! 그런데 꼭 그렇게 내 상처를 후벼 파야겠나? 정말 의리 있는 동지군!" (P 289)
명대 역시 자신의 형을 죽여야 하는 임무에 까지 감당할 정도로 극단으로 내 몰린다. 특히 그는 이렇게 모든 것을 내던지고 활동하고 있는 국민당 정부가 왕위 정부와 밀무역을 하고 있는 부패한 장면을 보고 낙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훈련소에서 부터 함께 했던 동료인 우만려와의 사랑 대신, 공산당 스파이이자 자신의 약혼녀인 정금운과의 사랑을 선택한다. 결국 국민당 정부가 만든 함정 임무에서 우만려는 주고, 명대까지 포로로 잡히게 된다. 그러나 그것까지도 이미 또 다른 계획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속고 속이는 첩보전 속에서 명대는 선택의 갈등에 놓이게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며 중국의 현대사 역시 우리나라처럼 굴곡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위장자의 삶을 살면서 이름도 없이 죽어간 많은 생명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결국 그들의 죽음이 가치가 있을까? 시대의 아픔을 느끼게 하는 멋진 소설이었다.
- 이 책은 리뷰어스 클럽의 지원을 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