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4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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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은 있다. 너무나도 행복하고 달콤해서 마치 신들의 품 속에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시절에 대한 기억들이 있다. 내게는 어린 시절 언덕 위의 작은 집에 살던 기억이 바로 그 기억이다. 그곳은 시골의 작은 집으로 기억한다. 마을을 통과하는 작은 길을 따라 언덕 위로 올라가면, 마을 맨 끝 집이 내가 살던 집이었다. 날씨가 따스한 봄날이면 어머니는 도시락을 만들고, 나와 형제들을 데리고 뒷산 언덕으로 올라갔다. 코스모스가 만발하던 날 그곳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놀았던 기억들이 아직도 내 의식 속에 남아있다. 이미 그 공간은 재개발이 되어 다 사라지고 없다. 그 당시의 집도, 그 당시의 언덕도 다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그 기억만은 여전히 내 의식 속에 남아 있다. 결국에 내가 죽고, 내 의식이 사라져야 비로서 그 기억도 끝날 것이다. 그 전까지는 나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계속 그 기억을 좇아가며 살아갈 것이다. 내게는 그 기억이 가장 따스한 신들의 품 속에서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이런 신들의 품속에 있었던 따스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남자를 만났다. 아일랜드 작가인 존 밴빌이 쓴 [바다]라는 소설의 주인공 맥스이다. 나이가 든 맥스는 아내 애나가 암으로 죽은 직후 어린 시절 자신이 자랐던 고향 마을의 바닷가를 향한다. 그곳에는 시더빌이라는 별장과 그 별장을 지키는 베베수어라는 나이 든 여성이 있다. 맥스에게 시더빌과 베베수어는 자신의 기억 속의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신들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은 맥스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신들은 떠났다"

 

맥스에게 신들의 장소와 신들의 시기를 선물한 사람들은 그레이스 가족이었다. 어린 시절의 맥스는 시더빌에서 여름휴가 차 내려 온 그레이스 가족을 보았을 때, 마치 그리스의 신화의 신들을 만난듯한 착각을 느낀다. 가난한 시골에서 항상 거칠고 폭력적인 부모님과 살던 맥스에게 여유롭고 신사적인 그레이스 가족은 신들, 그 자체였다. 포세이돈을 닮은 듯 권위가 있는 아버지 칼로 그레이스, 여신과 같은 그레이스 부인, 그리고 그의 딸 클로이와 쌍둥이 동생 마일스, 이들은 맥스가 살던 세계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었다. 어린 맥스는 그 신들과 만나고 싶었고,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고 싶어했다. 그 중에 가장 처음 맥스가 동경했던 여인은 마치 여신과도 같았던 그레이스 부인이었다. 나이가 든 맥스는 시더빌 근처를 지나는 차 안에 있던 그레이스 부인을 처음 보았던 날의 어린 맥스를 회상한다.

 

 

옆에 앉은 여자는 내린 창문 밖으로 팔꿈치를 내밀었는데, 그녀의 머리 역시 뒤로 젖혀져 있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강한 바람에 노르스름한 머리카락이 흔들렸지만, 그녀는 소리는 내지 않고 그냥 웃고만 있었다. 그 남자만을 위한 웃음이었다. 회의적이고, 관용적이고, 나른하면서도 즐거운 듯한 웃음, 여자는 하얀 블라우스에 하얀 뿔테가 달린 선글라스를 쓰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어디 있었을까? 어느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고 숨어 차를 보고 있었을까? 나 자신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곧 사라졌다. (P 17)

 

 

맥스는 그레이스 부인에게 접근하기 위해 그레이스 부부의 딸 클로이와 아들 마일스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그들과 친구가 되어 그레이스 가족과 함께 피크닉을 다닌다. 맥스의 기억 속에서 그들과 함께 지낸 시간은 그리스 신화의 그림들처럼 황홀하고 달콤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어머니뻘 여성에게 가졌던 환상이 모두 그렇듯 맥스의 환상은 곧 깨어진다. 어느 날 그레이스 가족과 숨바꼭질 놀이를 하다가 그레이스 부인의 품에 안겼을 때, 그 모두 동경과 환상은 사라진다. 그리고 이제 그 동경과 환상은 다시 클로이에게 향한다.

 

조금은 자기 중심적이고 멋대로인 클로이와의 만남을 통해 그는 자신이 처한 누추한 현실을 벗어나 신들의 세계 속의 일원이 된듯한 환상을 느낀다. 그녀와 함께 극장도 가고, 수영도 하면서, 적극적인 클로이의 육체적 접촉에 당황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날 우연한 사고로 클로이와 마일스는 맥스를 남겨둔 채 물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소설은 성인이 되고, 이제는 늙은 맥스가 황량해진 바닷가 별장인 시더빌에서 죽은 아내와 클로이를 회상하는 부분으로 전개된다. 맥스가 그리워한 것은 죽은 아내일까? 아니면 아내의 이마고였던 클로이였을까? 아니면 단지 그레이스 가족과 보냈던 달콤했던 신들의 시절에 대한 기억뿐이었을까? 그레이스 가족도, 아내였던 애나도 모두 사라지고, 이제는 신들에 대한 기억만 남은 맥스는 자신이 쫓던 세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인간은 어린 시절, 부모님의 품에서, 또는 자신이 신뢰하던 사람들의 품에서 따스하고 달콤한 경험을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은 우리의 의식 속에 깊이 새겨진다. 우리는 이렇게 어린 시절의 그 따스하고 달콤해서, 마치 신들의 세계 속에 있었다는 환상을 일으키는 기억을 평생 좇아 다닌다. 고향 마을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맥스에게 맥스의 딸인 클레어가 비꼬듯 말한 것처럼, 우리는 과거 속에 사는 인생일지도 모른다.

 

 

과거 속에 사시네요.” 클레어가 말했다. 나는 신랄하게 대꾸하려다가 말을 끊었다. 사실 아이 말이 옳았다. 진정한 삶이란 투쟁. 지칠 줄 모르는 행동과 긍정, 세상의 벽에 뭉툭한 머리를 들이대는 의지, 그런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돌아보면 내 에너지의 많은 부분은 늘 피난처, 위한, 또 그래, 솔직히 인정하거니와, 아늑함, 그런 것들을 찾는 단순한 일에 흘러들어가버렸다. 이것은 충격까지는 아니라 해도 놀랄 만한 깨달음이었다. 전에는 나 자신을 단검을 입에 물고 다가오는 모든 사람과 맞서는 해적 같은 사람으로 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망상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숨겨지고, 보호받는 것,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었다. 자궁처럼 따뜻한 곳으로 파고들어 거기에 웅크리는 것, 하늘의 무심한 눈길과 거친 바람의 파괴들로부터 숨는 것, 그래서 과거란 나에게 단지 그러한 은둔일 뿐이다. 나는 손을 비벼 차가운 현재와 더 차가운 미래를 털어내며 열심히 그곳으로 간다. 하지만 정말이지 그것이, 과거가 어떤 존재를 가지고 있을까? 결국 과거란 현재였던 것, 한때 그랬던 것, 지나간 현재일 뿐이다. 그 이상도 아니다. 그래도. (P 62)

 

 

내게 하늘의 거친 바람과 거친 바람의 파괴들로부터 숨고 피할 수 있는 어머니의 자궁처럼 따뜻한 기억은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 기억 속을 쫓고 있는 것일까? 존 밴빌의 [바다]를 읽으며 외롭고 거친 삶을 산 한 남자의 따스한 기억 속을 여행하다 온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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