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으로 인해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 사건을 접한 사람들은 분노나 경악을 넘어 충격에 빠지고 있다. 자신이 믿고 있던 세상이 무너지고, 자신이 알지 못한 세상 속에 던져진 느낌이다. 마치 지금 우리 사회가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상황을 보면서 오래전에 보았던 위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보았을 때의 충격적인 장면이 떠오른다.

 

처음 매트릭스라는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이 영화를 단순한 SF 영화라고 생각하고 보았다. 영화 초반부터 무언가 낌새가 이상했다. 주인공 네오(키아누 리브스)에게 이상한 전화가 걸려오고, 경찰관이 다른 사람으로 변하고, 주변의 현상들이 왜곡되며, 무언가 비현실적인 일들이 벌어진다. 결정적으로 모피어스라는 인물을 만나며 네오는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모피어스는 레오에게 빨간약과 파란약을 내민다. 빨간약을 먹으면 그동안의 이상한 일들은 모두 잊고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현실이라고 믿는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 반면 파란약을 먹으면 진짜 현실을 접하게 된다. 결국 레오는 파란약을 먹게 된다. 그리고 레오가 매트릭스의 기계 안에서 깨어나는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수많은 인간들이 벌거벗은 채 매트릭스라는 기계의 영양분을 공급하는 장치 속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들은 꿈에서 보는 환상을 현실이라고 믿으며 그들이 믿는 현실에 순응하고 있었다. 관객들은 레오와 함께 자신들이 믿던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충격적인 현실을 함께 접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느끼는 충격이 이와 같지 않을까? 바로 얼마 전까지 우리는 정치적으로는 자유 민주주의를 이루고, 경제적으로는 선진적이 자본주의 사회를 이루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현실에 눈을 뜨게 되었다. 지금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도 아니고, 자본주의 경제도 아니었다. 봉건시대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매트릭스와 같은 거대한 무속신앙의 지배를 지도자와 국민이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우리 사회의 현실을 미리 예견하고 지적한 책이 있다. 차인석 교수의 [근대성과 자아의식]이란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 사회가 근대화를 이루었지만, 실질적으로 시민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근대적인 이성이 아닌, 기복제화(祈福除禍)의 무속신앙이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무속문화는 생산력의 합리화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그 도를 더해가는 경향이 보인다. 그 원인이 아마도 자본주의의 소비문화와 기복제화의 쾌락주의적 무속문화 간에 어떤 친화력이 작용하는 데 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상품 숭배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오관에 주어지지 않는 것들은 인식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일고의 가치도 없게 된다. 모든 것이 현세적이며, 초월적 존재나 이념의 세계는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상대성을 넘은 절대적 윤리 규범은 상상될 수도 없다. 오로지 쾌와 불쾌가 도덕 기준이 될 뿐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소비문화는 세속적 행복만을 추구하는 무속신앙과 상통하면서 외래의 상품 숭배와 토속의 물신 숭배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화적 특징이 되어버린 셈이다." 차인석, [근대성과 자아의식] (아카넷, 2016) P 29

 

여기서 저자가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무속신앙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를 자본주의와 무속신화의 '친화력'에서 보았다. 즉 우리들 마음속에는 기복제화에 맹신하는 무속신앙적 사고가 남아있고, 그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물신숭배와 너무나 닮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처럼 현대 자본주의에 열광하는 이유가 어쩌면 우리 안에 있는 물신숭배를 만족시키기 위한 이기심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분석은 우리와는 다른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에도 적용이 된다. 중국 학자인 '리쩌허우'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진 사상가는 아니다. 그나마 이택후라는 이름으로 그의 중국 미학 사상이 소개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중국현대사상사의 굴절]이란 책에서 중국의 사회주의 과정에 의문을 제기한다. 역사상으로 중국 사회처럼 최단 시간에 그토록 광범위한 지역이 사회주의화 된 일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사회는 마르크스가 이야기하는 사회발전단계에서 자본주의사회를 경험하지도 못한 채 급속이 사회주의화가 되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중국의 사회주의는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말한다. 몇 천년 동안 중국 시민 속에 있었던 유교사상이 사회주의의 탈을 쓰고 나타난 것이라고 말한다. 그 증거로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유교사상과 음양사상 등을 유물론과 변증법에 비교한다.

 

"그러나 중국 근대에는 이와 같은 자본주의라는 역사의 전제가 없었으며, 기나긴 봉건사회와 반식민, 반봉건 사회 이후 곧바로 사회주의가 들어섰고, 따라서 사회의 정치, 경제적 구조에서건 사람들의 문화심리구조면에서건 결코 자본주의의 세례를 거친 적이 없었다. 이것은 또한 기나긴 봉건사회가 낳은 사회, 심리구조가 자본주의사회의 민주주의와 개인주의에 의해 결코 파괴되지 않았으며, 날은 습관, 세력과 관념, 사상이 여전히 완고하게 존속되면서 심지어는 사람들의 의식과 무의식의 싶은 곳에까지 침투해 있었다는 점을 얘기해 준다. 그것들이 사회주의적 집단주의라는 옷을 입고, 자본주의적 자유민주주의와 개인주의를 반대한다는 명목 아래, '문화대혁명'에서나 심지어는 그 이전에 각종 복벽을 순조롭게 진행시킬 수 있었던 것도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이다." - 이택후, [중국현대사상사의 굴절] (지식산업사) P 49

 

지금의 현상황은 지도자나 지도자의 측근의 비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이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의 배후에 있는 우리의 의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무속신앙과 비합리적인 물신숭배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전히 지식의 전당이라는 대학교에서 축제 때마다 굿판이 벌어지고 있고, 개인이나 단체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고사상을 차리고 있으며, 정치인들은 선거때마다 묏자리를 보러 다니고 있다. 심지어 여러 종교에서 그 종교의 교리와는 다르게 이런 기복제화의 신앙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이런 무속의 과정을 통해 개인의 입신양명과 물질적인 복이다. 그를 위해서는 도덕이나 정의도 모든 차후의 문제가 된다. 그것이 마치 거대한 매트릭스 기계처럼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어쩌면 이런 의식이 국정 농단의 핵심세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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