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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소녀 - 개정판
델핀 드 비강 지음, 이세진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이 갑자기 어려워진 적이 있었다. 그로 인해 아버지는 외국에 나가 계셨고, 어머니는 다른 도시에서 일을 해야 했다. 나와 형제들은 시골에 있는 할머니댁에 맡겨졌다. 엄하기로 소문이 난 할머니는 새벽에 우리들을 기상시켰고, 마당 청소부터 여러가지 일들을 교육시키셨다. 시골학교의 텃새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왕따 비슷한 경험까지 당해 보았다. 당시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의 그 무거웠던 발걸음을 지금도 기억한다. 할머니의 집은 따스하고 포근했던 예전에 어머니가 있던 집과는 너무나 달랐다. 학교 운동장에서 혼자 놀다가 해가 져서 더 이상 놀 수 없을 때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해가 지던 그 쓸쓸한 하늘과 텅비고 적막한 학교 운동장의 이미지가 여전히 내 마음에 각인되어 있다. 다행히 1년만에 아버지가 돌아오셔 다시금 사업을 회복했고, 우리는 다시 따스한 가정을 회복할 수 있었다.
가끔 저녁이 되어 아내와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갈 때면, 그때 생각이 난다. 그리고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나는 지금 가족이 기다리는 따스한 집으로 돌아가지만, 지금도 돌아갈 곳이 없어 쓸쓸히 거리를 배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들이 느끼는 그 쓸쓸하고 무거운 마음을...

[길 위의 소녀]라는 책을 읽으며 다시금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 소설은 프랑스 작가 '델핀 드 비강'의 소설로 원제는 [노와 나]이다. 소설의 주인공 '루'가 거리의 소녀 '노'와의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노의 원래 이름은 '노웰'이며, 18살의 소녀이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에게 버림을 받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처녀시절 여러 명의 남성들에게 강간을 당해 노를 낳았다. 어머니는 노를 낳았지만, 노를 한 번도 따스하게 안아주지 않고 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맡겼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가 더 이상 노를 보살펴 줄 수 없을 때, 노는 어머니는 찾아갔다. 그러나 어머니의 차가운 반응으로 인해 그녀는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루는 노와는 달리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고 있다. 더군다나 그녀는 13살의 나이로 몇 번의 월반을 경험한 천재 소녀이다. 그러나 겉보기와는 달리 루 역시 어머니의 따스한 품을 경험하지 못했다. 루의 동생이 갓난아이때 엄마의 품에서 죽은 이후, 루의 어머니의 정신은 마치 루의 동생과 함께 딴 곳으로 간 것 같다. 루가 넘어져 피를 흘리고 있어도 멍한 눈으로 바라볼 뿐, 그녀를 안아줄 수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 모든 것을 감당하지 못해 욕실에서 혼자 눈물만 흘리다가, 루를 기숙학교에 보내었다. 지금은 비록 다시 가정을 이루며 살지만, 가정의 따스한 공기는 이미 빠져나가고 없다.
루는 발표수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리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게 된다. 그리고 우연히 노를 만나 인터뷰하게 된다. 루는 노와 대화를 하면서 노의 어린시절의 아픔과 저녁이 되면 돌아갈 곳 없는 쓸쓸한 마음을 공감하게 된다.
"나는 저녁이면 집으로 간다. 노가 오늘 어디서 잘지도 모르는채 나만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물어봐도 그 애는 대개 대답하지 않는다. 어떨 때는 문 닫을 시간이라고 하면서 그 애가 먼저 서둘러 일어나기도 한다. 그 애는 대기번호 혹은 방번호를 받기 위해 파리의 반대쪽 끝까지 달려가 줄을 서야 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이미 지저분하게 버려놓은 욕실에서 샤워라도 하고, 도키토리에서 자기 침대를 얻어 벼룩이 들끓는 이불을 덮고서라도 잘 수 있다. 어떨 때는 노도 자기가 어디서 잘지 모른다. 긴급보호쉼터는 언제나 대기자가 많아 거의 포화상태이거나 더는 자리가 없기 때문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애가 가방을 덜컹덜컹 끌면서 늦가을 저녁의 습기를 가르고 다시 떠나도 나는 그냥 보고만 있다." (P 68)
루는 노와의 인터뷰가 끝났지만, 그럼에도 노와의 관계를 이어간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설득해서 노를 자신의 집에서 살게 한다. 노와 함께 지내며 어머니는 우울증으로부터 회복이 되고, 노 역시 직장을 가지며 회복이 된다.
소설은 그렇게 모두들 아픔에서 회복이되고, 행복한 상태로 해피앤딩을 맞을 것 같은 분위기가 된다. 그러나 노는 쉽게 회복이 되지를 못한다. 직장에서는 악독한 사장에 의해 혹독한 근무에 시달리고, 결국에는 바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때부터 노는 다시금 망가지기 시작한다. 알콜 중독과 약물 중독에서 시달리게 되고, 결국 루의 부모님에게서 쫓겨 나게 된다. 루와 친구인 뤼카는 끝까지 노를 돌보려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결국 노는 스스로 떠난다.

이 소설은 지적인 부분에서는 천재인 13살의 소녀의 눈을 통해 파리의 거리와 그 거리에서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처음에 루는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왜 과학이 최첨단으로 발전하고 있는 이 시대에 거리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는지, 왜 사람들은 길거리의 개는 돌보면서 길거리의 사람을 돌봐주지 않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한 가정에서 한 명씩만 돌본다면 그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루의 이상처럼 간단하지가 않다. 루는 노를 돌보면서 그 현실을 접한다. 그럼에도 소설은 현실 앞에 무력한 인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소설의 끝에서 루의 선생님인 마랭은 루에게 책을 건내며 이렇게 말한다. "포기하지 마요."
소설은 우리의 노력으로 세상을 바꾸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할 수 있는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물론 내 개인의 느낌이지만, 이 소설에서 저자는 우리가 길거리에 놓인 사람들의 그 마음을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생각한다. 저녁이 되어 돌아갈 곳이 없는 쓸쓸함을, 한 번도 따스한 엄마의 품에 안겨보지 못한 아이의 마음을, 아무 곳에도 기댈 곳이 없어져 무너져 가는 절망감을... 잠시라도 그것을 함께 느끼고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이 돌봄이 아닐까? 루가 노에게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