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유명한 스릴러 작가인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는 주로 인간의 원시성과 그로부터 나오는 공포를 주제로 소설을 쓴다. 그의 작품 중에서 [악의 숲](문학동네)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소설은 끔찍한 연쇄 살해로 시작된다. 살해 현장에서 시신은 잔인하게 잘려 있고, 시신이 있는 벽면에는 시신의 피와 배설물로 해독할 수 없는 주술적 모양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주인공의 사건을 추적하면서 이 사건이 원시부터 내려온 친부 살해의 관습과 관련이 있고, 그런 관습을 이어받은 어디에게 존재하고 있는 원시 종족의 행위가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한다.

 

[악의 숲]이란 소설에서 나오는 친부 살해와 원시 종족의 모티브는 프로이트의 [토템과 타부]라는 논문에서 가져온 것이다. 모두 4편의 논문을 묶여 있는 이 책은 주로 토템과 타부를 주제로 한 논문들이다. (우리나라에도 대부분 토템과 타부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열린책들의 프로이트 전집인 [종교의 기원]이라는 책에 수록된 부분을 읽었다.) 이 논문들에서 프로이트는 원시 종족에서 발견되는 특정한 동물에 대한 토템과 근친상간에 대한 타부를 방대한 조사와 책들을 인용하며 언급한다.  그리고 이런 관습이 현대 유럽에서도 형태만 바뀐 채 여전히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이런 토템과 타부는 어떻게 생겼을까? 프로이트는 다윈의 진화론을 근거로 태초의 원시 종족의 형태를 언급한다. 태초의 원시 종족은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한 명이 여러 여성들을 거느리는 부족 형태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들들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아버지의 여성들과 관계를 맺었다. 그들은 죄책감을 나누기 위해 아버지의 시신을 먹었고, 이 풍습이 유전되면서 종교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토템과 타부]라는 논문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지만, 현대에는 대부분의 학자가 이 논문의 이론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 논문에 등장하는 친부 살해와 원시적 의식의 과학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환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여러 가지 강박증을 진화론적 심리학으로 해석하다 보니, 나름 하나의 신화를 만들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신의 존재나 종교의 허구를 주장하는 학자들의 경우에는 자신들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진화심리학적 이론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학자가 [이기적인 유전자]나 [만들어진 신] 등으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이다. 그는 인간이 진화의 과정에서 부모의 관습을 따르는 유아기적 심리가 종교성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니콜라스 웨이드는 [종교 유전자]라는 책에서 도킨스와는 다른 각도로 진화심리학을 통해 종교를 접근한다. 그는 다른 진화심리학자들과는 다르게 종교의 유용성을 언급한다. 인류가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우두머리가 전체를 관활하는 유인원 무리와 다르게, 인간은 모두 평등한 관계를 통해 공동체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정한 우두머리가 없이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종교가 필요는 것이다. 종교는 공동체의 존립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동기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종교의 유익성은 현대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종교의 나무'라는 이론을 주장한다. 언어가 원래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것처럼 종교도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종교란 특별한 종류의 언어다. 종교는 커뮤니케이션의 한 형식이며, 의식적으로 또는 정서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몸짓과 언어적 상징으로 표현되는 커뮤니케이션의 한 형식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만일 이 '특별한 언어'가 언어와 거의 동일한 패턴으로 변화하고 분화해가는 것이라면, 이론적으로 볼 때, 전 세계의 언어를 포괄하는 계통수를 그릴 수 있는 것처럼 세계의 모든 종교를 포함하는 종교의 나무(종교의 계통수)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P265-6)



 

이런 신념에 의해 저자는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의 기원을 설명한다. 저자의 설명의 공통점은 이런 종교들이 결국은 국가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서 기존의 종교나 관습들을 변형하며 발전했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론은 프로이트의 이론처럼 일관성이 있다. 프로이트가 현대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강박증을 해석하기 위해 원시의 토템과 타부를 언급하여 인류의 심리상태의 커다란 줄기를 그리고 있다. 니콜라스 웨이드 역시 종교의 존재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원시사회에서부터 부족국가, 근대국가와 현대 국가에 이르기까지 종교의 역할과 변화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문제는 이런 이론들이 이론적으로는 완벽하나, 프로이트의 이론처럼 실질적으로는 밝혀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과연 유인원에서 수렵-채집 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종교가 탄생했지는, 그 종교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인지, 또 그런 유익을 위해서 여러 종교가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한 문헌이나 유물로 발견된 것이 없다. 단지 종교가 인류의 진화의 과정에서 형성되고, 그것이 유전적으로 계승되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여러 가지 상황을 언급할 뿐이다.  

이런 비슷한 상황은 인문학에서 종종 발견된다. 인문학자들은 무언가 인류와 사회를 하나로 해석할 수 있는 거대담론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다. 마르크스, 칸트, 헤겔 등 역사상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학자들마다 역사와 인류 정신을 해석하기 위해 거대 해석이론을 만들었다. 그리고 학문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이론 하나로 모든 역사와 인류 정신을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그들의 이론이 전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전부를 설명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니콜라스 웨이드는 종교심리학의 관점에서 종교의 기원과 진화를 해석하는 이론들을 제시한다. 그중에서는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고, 예리한 부분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이란 한 가지 분야, 그리고 그 진화심리학 중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한 가지 이론으로 과연 세상의 방대한 종교의 기원과 진화 과정을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 먼 훗날 인류의 과학이 발전하고, 인간의 유전자를 통해 과거를 완벽하게 읽을 수 있다면, 그때는 또 어떤 이론이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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