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에 유난히 관심을 가진 인문학 분야가 윤리학이었다. 그 시절 윤리학은 내게 너무나 매력적인 학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종교적인 울타리 안에서 자라다 보니, 때로는 종교적이라는 것이 위선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종교 없이 도덕의 기초를 세우겠다는 현대 윤리학자들의 거창한 포부가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었다. 그때 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탐독했던 책이 두 권이 있었다.

한 권은 H.J.페이튼의 [칸트의 도덕철학]이란 책이었다. 신이나 영혼의 언급 없이 이성의 범위 안에서 인간 안에 보편타당한 정언명령을 통해 도덕의 기초를 세워가는 칸트의 글들을 읽으면서, 마치 거대하고 아름다운 건물을 세우는 거장의 손길이 느껴졌다.

다른 한 권은 실천윤리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피터 싱어의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라는 책이었다. 피터 싱어는 현대의 물질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개인주의를 비판하며, 종교 없이 합리적인 생각만으로도 윤리를 세울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책들을 읽어가며 결론 부분에 이르렀을 때, 그 결론을 통해 과연 종교 없는 도덕이 가능한가를 물었을 때 대답의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말처럼 무언가 대단한 것을 소개하는 것처럼 수많은 이론과 체계를 제시했지만, 결론은 너무 초라해서 과연 이런 결론으로 현대의 복잡한 세상에서 윤리가 가능할까 하는 회의가 들게 되었다.

 

 


니콜라스 웨이드의 [종교 유전자]라는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그 시절 생각이 났다. 저자는 종교를 진화심리학의 입장에서 해석한다. 즉 인간이 진화의 과정에서 필요에 의해서 종교를 만들었고, 종교가 유익하기에 유전자를 통해 유전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유인원 사회의 특징은 철저한 계급주의인 반면, 처음 유인원에서 진화한 인류의 수렵-채집 사회의 특징은 평등주의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평등주의가 가능했던 것은 인간에게 종교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물사회처럼 힘으로 지배하는 우두머리가 없는 사회에서 개인들이 집단을 위해 희생하기 위해서는 종교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종교성이 자손들을 통해 유전되었다는 것이다. (3장 종교적 행동의 진화 참조)

그렇다면 이런 종교성이 없는 도덕적인 사회는 가능할까? 존 로크나 막스 베버와 같은 학자들은 종교성이 경제적이 도덕적인 사회를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무신론자들에게 신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다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존 로크는 종교가 사회의 작동에 불가결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는 [관용에 대한 편지]에서 사회가 기독교의 다양한 분파를 허용할 수는 있지만, 무신론자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는 무신론자의 서약과 약속은 무가치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신의 징벌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신론자들은 자신들이 한 서약과 약속을 지킬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 구조에 대한 로크의 생각은 역사적으로 유지됐고 지금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P349)



 

반면 마크 하우저나 리처드 도킨스 같은 학자들은 인간이 신의 존재를 생각해야 도덕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인간을 너무나 낮게 보는 형태라고 말한다.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 역시 도덕적 판단을 하는데 종교가 필요하지 않다고 보는 하우저의 주장을 지지한다. 도킨스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신이 없다고 악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신의 징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선량한 사람이 된다고 하는 생각을 비웃는다. 신의 감시가 없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는 신앙인이 있다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만일 신에 대한 신앙이 일순간에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인간은 모두 친절함, 자비심, 관대함 등 인간의 모든 미덕을 버리는, 자각 없는 이기적인 쾌락주의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는 대단히 낮은 수준의 인간적 자존심을 가지는데 만족해야 할 것이다." (P 377)



 

저자는 종교인이 모두 도덕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종교가 없는 무신론자로만 구성된 사회에서 도덕이 가능하다는 주장에는 회의를 제기한다.



 

"전적으로 무신론자들로만 구성된 사회는 공동체로서 유효하게 기능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도덕과 신뢰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까? 흥미진진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 사회가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을 대는 별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이나 불경기 등으로 인해 긴박한 상황에 처했을 대에도, 공동체는 질서와 시민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P 379)

 

 

서양의 윤리는 근대 이후 신의 존재 없이 인간의 이성이 가진 합리성만으로 도덕적 기초를 쌓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대 윤리학은 수많은 도덕적인 이론을 제시해가며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자신과 타인, 공동체에게 모두 유익하다는 것을 제시한다. 대표적인 예가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이론들이다. 결국 진화론적이고 무신론적인 서양 윤리학의 핵심은 피터 싱어의 책의 결론과 같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이익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주장이다.

젊은 날에 이런 결론에 도달했을 때 문득 섬뜩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었다. 만약 이것이 현대 윤리학의 기초라면,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것도 지켜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인간이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원인이라면, 만약에 자신이 지킬 것이 없는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궁지에 몰려서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의 최후의 선택은 무엇일까? 그리고 얼마 전부터 이런 내 섬뜩한 생각이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죽음 후에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믿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들이 마지막으로 하는 행동이 뉴스나 신문에서 보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과 같이 종교적인 타락과 광신자들에게 의한 테러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종교적인 믿음이 딱히 도덕적인 사회를 만든다는 희망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현대 윤리학이 인간의 이성을 너무나 신뢰하며, 리처드 도킨스처럼 인간이 도덕적 존재임을 너무 과신하는 것은 분명히 착오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말처럼 평화시에는 이런 인간은 종교없이도 도덕적일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개인이 궁지에 몰리거나 사회적인 재난이 접했을 때,  자신을 제어할 아무런 신념이 없는 사람들이 벌이는 행동은 광기와 공포의 수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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