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두 편의 소설을 읽었다. 한 권은 올해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이혁진 작가의 [누운 배]라는 소설이다. 주인공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국 현지의 신생 조선소에서 3년 동안 경험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건조 중이던 배가 침몰해서 누워 버리고, 이것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주먹구구식 운영과 조직적인 무능이 드러난다. 이것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조직사회의 억압 속에서 회사를 떠나고, 회장과 조직의 방침에 순응하는 사람들만 남게 된다. 주인공은 일부 사람들은 나름 회사를 혁신하기 위해 분투를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회사를 나오면서 이야기가 결말이 난다.

다른 한 편의 소설은 최근 영화화되어 더욱 관심을 받고 있는 소재원작가의 [터널]이라는 소설이다. 한 가정의 가장이 운전 중 터널에 갇힌다. 언론과 네티즌들의 동정으로 사건이 관심을 받고, 부실 공사에 관련된 기업인들과 정치인들이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구조 과정으로 인해 터널 개통이 늦어지고 인근 주민들이 고통을 받자, 언론과 네티즌들은 무리한 구조작업을 강행하는 가족들과 구조자들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결국 언론과 네티즌의 횡포 속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주인공도, 가족들도 자살로 비참한 결말을 맞는다.


 


이 두 소설을 접하면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거대한 조직문화 속에서 한 개인이 조직문화의 부속품이 되어 버리는 현실과 획일적이고 자극적인 인터넷 문화 속에서 한 개인의 생명권조차도 철저히 짓밟히는 현실을 보게 되었다.

아카넷에서 출간한 차인석 교수의 [근대성과 자아의식]이라는 책을 읽으면서도 두 소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저자는 이 책에서 철학의 목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모두들 이제는 철학의 역할이 끝났다고 말하지만, 철학의 기능은 각 시대마다 개인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철학이 그동안 제기했던 물음들은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철학은 여러 학문들에 많은 것을 양보하면서 많은 것을 잃기도 했으며, 근래에 와서는 철학이 아직도 필요한가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한다. 철학의 종언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논의가 있지만, 철학이 할 수 있는 역할에 관해 많은 견해가 여전히 제시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철학이 끝가지 버릴 수 없는 것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다." (P113)

"인간다운 삶이란 다름 아린 바로 개개인의 자아실현이 가능한 삶을 가리키며, 철학은 이 삶의 영위가 소수집단에만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집단에서 그러한 실현이 이룩될 수 있도록 이론을 모색한다. 또한 그 이론은 가능한 많은 사회가 용인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일반성을 갖추어야 할 것이나 이것이 그리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만도 아니다. 그러나 역사가 인간의 해방이라는 보편적인 목표를 향해 진행한다면 철학도 자유와 권리라는 보편적 이념들의 실현이라는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P119)



 

저자는 철학은 각 시대마다 개인이 사회와 관계를 맺어가며, 그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고 말한다. 고대 플라톤에서부터 근대의 헤겔에 이르기까지 철학은 주어진 환경인 자연과 세계를 극복하고 개인의 자아성을 찾아가며 자유로운 존재로 성장하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근대 이후부터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조직화되면서 개인은 그 조직사회의 한 부속품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다. 그러기에 근대 이후의 철학자들은 과학사회 속에서 어떻게 한 개인이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며,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단지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한 가상공간이 우리 삶에 지배하면서, 이런 가상공간 속에서 어떻게 개인의 자아성을 실현할지를 고민한다.

 



"과학기술 시대에서, 문명 비판가들은 개체성의 종언을 염려해왔다. 이들은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의 주체로서 인간의 위치가 점차로 위축되어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이 이 두려움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의 자율성이 억제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없을 만큼 일상적인 삶이 과학과 기술에 의해 규정되었다는 것이다. (P132)"



 

결국 지금의 철학은 과학 문화의 조직사회에서,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매체 속에서 개인이 매몰되지 않고, 그 자아의식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자아의식이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는 것처럼 주체성과 개체성은 만들어져야 한다. 한 개인이 스스로 평화의 의미를 배우고, 일을 통해서 자신의 창의성을 구현하고, 자신의 사적 선택이 이웃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책임을 지는 태도와 행동은 그가 다른 개인들과 공존 관계에서 성취하는 것이다. 이 개체성은 개인들이 놓인 사회체제의 환경에 의해 크게 규정되는 만큼, 앞에서 언급된 것처럼 정신적, 문화적 여건이 중요한 요인이라고 한다면, 이 여건 조성은 철학 교육에 의해 개인들의 내적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기존의 사회적 환경이 교육의 형태를 규정하고, 교육이 사회 성원들의 사유와 삶의 양식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가 교육을 통해 새롭게 구성되어야 하며, 철학은 이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P139-40)



 

현대 시대는 조직문화의 생각이 개인의 생각을 대체하고, 인터넷 여론이 개인의 생각을 대체한다. 한 개인이 주체적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세계를 규정하려는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성과 자아의식이 사라지고, 저자의 말처럼 현대 사회의 개인들은 아무런 비판 없이 눈에 보이고, 귀로 들려지는 대로의 세계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권력의 힘이 작용하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개인이 그렇게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냥 조직의 생각에, 대중의 생각에 따라가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비난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남들이 옳다고 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 편하기에 개인들이 그렇게 선택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앞에서 언급한 소설처럼 한 개인들이 매몰되고, 피해를 입는다. 

그나마 이것에 대한 경고가 철학과 인문학에서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인 노 교수 역시 자신의 평생 몸담아 왔던 학문인 철학이 이런 시대에 개인의 자아실현의 길을 제시해 주는 학문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 마음에 이런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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