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4대 비극 - 레어 에디션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형욱 옮김 / 문예춘추사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우연히 몇 편의 고전들은 생애의 중요한 시기마다 반복적으로 읽게 된다. 몇 번 읽은 고전들은 이미 스토리를 알고 있지만, 읽을 때마다 그 시기에 느끼고 있었던 아픔이나 고민, 감동 등과 결합되어 매 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번에는 문예춘추사에서 새로 발간한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4개의 비극인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를 한 권으로 묶은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읽게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책들은 어렸을 때 문고판으로 읽고, 청년의 시기에 온전한 번역본으로 읽었다. 그리고 이제 중년의 입구에 이르러서 다시금 읽게 되었다. 예전에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읽으면서는 주인공들의 어리석은 선택들이 안타깝기도 하고, 악당들의 술수가 얄밉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기에 읽는 셰익스피어의 비극들은 내게 씁쓸함을 남겨준다. 이 나이에 들어서 비극들을 읽다 보니, 이것이 단지 책 안의 이야기만이 아님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비극들이 우리 삶에서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깨닫는 아니가 되었다.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는 대사로 유명한 [햄릿]을 읽으면서는 여전히 햄릿의 우유부단함 때문에 답답함을 느꼈다. [햄릿]의 죽은 햄릿의 아버지이자, 덴마크 왕의 유령의 등장으로부터 시작된다. 햄릿의 아버지의 유령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어머니와 숙부가 공모해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음을 알게 된다. 그는 미친척하면서 시기를 엿보지만 계속해서 고민만 하다가 오히려 모든 문제가 더 복잡해지게 된다. 그리고 그 자신 역시 그 복잡한 문제 속에서 죽임을 당하게 된다.


역사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결국엔 과감하고 잔인한 사람이 권력을 차지한다. 우리 역사에서도 정도전이나 이방원, 김종서와 수양대군의 대결에서도 먼저 과감하고 잔인하게 상대를 죽인 이방원이나 수양대군과 같은 사람이 권력을 차지하는 것을 보게 된다. 현대 정치사나 재벌가의 싸움 등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먼저 자기편을 모으고, 주저 없이 상대편을 빠르게 짓밟는 사람이 결국엔 권력을 차지한다. 문제는 이것을 알면서도 햄릿처럼 빠르고 과감하게 상대를 짓밟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정의인지, 어떤 것이 옳은 선택인지를 고민하다가 때를 놓치고, 결국엔 빠르게 행동하는 악인들의 술수에 모든 것을 빼앗기는 경우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무언가를 결단할 때 점점 더 고민하고 망설이게 된다. 과연 이 선택이 옳은 건지, 이 선택으로 오는 그 무거운 책임을 내가 다 짊어질 수 있을는지, 이 선택으로 인해 희생 당하는 사람들의 아픔은 어떻게 할 건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시기를 놓치고 있음을 깨닫는다. 젊은 시절 그렇게 싫어하던 우유부단한 햄릿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내가 가장 읽기 고통스러워하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인 [오셀로]는 다시 읽어도 마찬가지였다. 유능한 베니스의 무어인 장군인 오셀로는 군대의 지휘권과 아름다운 아내인 데스데모나를 얻게 된다. 그러나 오셀로를 시기한 아이고의 계략으로 자신의 충직한 부하인 카시오와 데스모나의 관계를 의심하게 되고, 결국엔 자신의 아내 데스모나를 죽이고, 자신도 자결한다.


내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괴로운 이유는 눈에 뻔히 보이는 아이고의 계략에 넘어가는 오셀로와 주변 사람들을 보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괴로움을 현실에서도 경험한다는 것이다. 아이고와 같은 사람들은 항상 상관에게 동료를 위하는 척하면서 은근히 상관의 질투심이나 권력욕을 자극한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자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처럼 교묘히 뒤로 빠진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이런 아이고와 같은 술수에 넘어가고, 현실에서 아이고는 비극의 결말을 교묘히도 피해 간다.




노년에 아랫사람의 아부에 눈이 먼 권력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리어왕] 역시 비극의 정수를 보여준다. 영국의 리어왕은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세 딸에게 자신의 영지를 물려주려 한다. 그리고 세 딸들에게 자신에 대한 사랑을 고백해 보라고 한다. 큰 딸 거너릴과 둘째 딸 리건은 번지르르한 말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셋째 딸 코넬리라는 아버지의 대한 진실한 사랑을 차마 말로 고백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결과 아버지의 증오를 얻게 된다. 결국 두 딸이 아버지의 영지를 나누어 가지고, 막내딸은 무일푼으로 프랑스 왕과 결혼한다. 나중에서야 두 딸의 홀대 속에 속았음을 깨달은 리어 왕은 미처가고, 아버지를 구하러 영국으로 돌아온 코넬리아는 전쟁에서 패전하고 죽는다.


다시 읽어도 자신에게 가장 멋진 아부를 하는 딸에게 영지를 물려주는 리어 왕의 선택은 너무나도 어리석어 보인다. 당연히 그런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는 것은 뻔한 세상 이치인데... 그럼에도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자신에게 좋은 말만 받아들이고, 조금의 비판이나 서운한 말에도 순식간에 분노하는 것이 나이 든 권력자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권력으로 인해 미쳐하는 한 인간의 내면을 너무나도 잘 표현한 [맥베스]는 다시 읽어도 명작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세 마녀에 코더의 영주와 스코틀랜드의 왕이 된다는 예언을 받은 맥베스는 자신이 코더의 영주가 되자, 왕이 된다는 예언까지도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아내의 부추김에 결국 왕을 살해하고, 자신이 왕이 된다. 그 후 마녀의 다른 예언들을 두려워하여 경쟁자들을 죽이고, 권력에 미쳐 스스로 파멸해 간다.


맥베스에 나오는 마녀의 예언은 어쩌면 인생의 미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우리에게 '저기까지만 가면 된다!' '저것만 얻으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곳에 가면 또 다른 목표가 생기고, 또다시 쟁취해야 할 것이 생긴다. 결국 많은 사람은 인생이 만들어 놓은 허상을 잡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것은 아닐까? 결국 맥베스는 인생에게 속았음을 깨닫고 이렇게 절규한다.


"내게 그렇게 말하는 혓바닥에 저주 있으라.
그 함마디가 나의 용기를 꺾는구나.
그 요망한 악마들을 절대로 믿을 수 없구나.
이중의 뜻으로 우리를 속여
귀에는 약속의 말을 늘어놓고,
막상 소원하면 그것을 깨뜨린다."
- 셰익스피어의 [멕베스] 중에서 -



앞으로 또 얼마 후에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읽게 될까? 그리고 그때에는 이 작품들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그때도 이런 비극들을 읽으며 인생의 씁쓸한 맛을 느낄까? 아니면 이제는 다 지나간 이야기라고 관조하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게 될까? 조금 긴 내용이지만 구차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햄릿의 명대사로 이 서평을 마치려 한다.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이 가혹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참고 견디는 것이 고상한 일인가?
아니면, 밀려오는 고난의 바다에 대항해
무기를 들어 싸우다가 끝장을
내는 것이 더 고상한 일인가?
죽는다는 건 잠든다는 것 - 그것뿐이다.-
잠들어 버림으로 육신이 물려받는 가슴앓이와
수천 가지 타고난 갈등이 끝난다 말하면,
그런 우리가 간절히 바라야 할 결말이다.
죽는다는 건, 잠든다는 것.
잠든다면, 아마 꿈을 꾸겠지. 아, 그게 문제로구나.
우리가 이 삶의 굴레를 벗어났을 때,
죽음이란 잠 속에서 어떤 꿈을 꾸게 될 건지가
우리를 망설이게 하는구나.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을 그리 오랜 불행으로 이끄는 이유로다.
그렇지 않다면 어느 누가 이 세상의 채찍과 비웃음,
폭군이 횡포 건방진 자의 무례함,
버림받은 사람의 고통, 재판의 지연과
관리들의 거만함, 참을성 있는 대인배들이
소인배들에게 당하는 수모를 참을 수 있겠는가?
한 자루의 단검이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끝장낼 수 있는데,
어느 누가 이 지루한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땀을 뻘뻘 흘리고 투덜대며 살겠는가?
하지만 죽음 뒤에 올 그 무엇에 대한 두려움과
한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우리의 의지를 혼란스럽게 하고,
알지도 못하는 미지의 세계로 날아가느니
차라리 현세에서 당하는 저런 고통들을
참고 견디도록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양심은 우리 모두를 겁쟁이로 만들고,
그에 따라 결심의 자연스러운 색조도
생각의 창백한 색조로 그늘져,
심오하고 중요한 계획들이 이런 식으로 길을 잃어버리고,
마침내 행동이라는 이름을 상실해버리고 만다.
- 셰익스피어의 [햄릿]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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