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차일드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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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같은 또래 아이들은 동화책을 읽을 때, 나는 SF 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주로 어린이용으로 나온 '공상 과학 소설'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소설 속의 미지의 세계나 새로운 생명체와의 만남을 무척 마음을 설레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나이가 들어서는 여러 SF 소설들을 읽으면서, SF 소설이 단순히 흥미 위주의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SF 소설에는 각자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그 세계관에서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SF 소설에 대한 시야를 넓혀 준 작가를 한 명 들라면 단연코 '필립 k, 딕'을 들것이다. 그의 소설 속의 세계는 항상 음울했으며, 그 세계 속에 던져진 등장인물들은 '이 세계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리고 그 질문 속에는 나란 존재, 더 나아가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인가에 대해 묻곤 했다. 인간은 과연 기억으로만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왜곡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는 내가 아닌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세상과 나란 존재는 정말 진실일가? 이런 질문들 속에서 항상 충격적인 세계로 맞다드릭는 그의 소설적 트릭에 한동안 매료되었었다.

 

요사이 유행하고 있는 아포칼립스적인 좀비 소설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소설들은 인류 멸망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묘사하며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소설로는 좀비 소설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리처드 매디슨 [나는 전설이다]와 최근에 좀비 소설의 붐을 다시 일으킨 맥스 브룩스의 [세계대전 Z]등이 있다. 이런 소설들은 단순히 흥미 위주의 SF 소설을 넘어서, 인간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이제 이렇게 SF 소설을 통해 인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또 한 명의 독특한 작가를 만났다. '옥타비아 버틀러라'는 흑인 여성 작가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SF 소설은 주로 YA 문학이란 탄탄한 자양분 속에서 많은 독자층을 거느리며 성장해 왔다. 대표적인 3대 작가로 로버트 하인라인,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인 등을 들고 있다. 대부분이 모두 남성이고, 또한 백인들이었다. 이런 미국에서 흑인 여성으로서 SF 소설계에 뛰어들어 휴고상과 네블러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가가 '옥타비아 버틀러'이다. 특히 그녀의 소설은 단순히 미래 세계를 그리는 SF소설이 아니라, 인간의 세계와 닮아있는 그녀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그리고 있다. 그녀는 그 세계 속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 또는 인간과 외계 생명체의 관계에서는 미묘한 감정 등을 다루고 있다. [블러드 차일드]는 그런 그녀의 단편소설들과 함께 그녀 자신의 직접 쓴 후기 등이 실려 있는 단편 소설집이다.

이 소설에는 모두 7편의 단편소설을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중 [블러드 차일드]라는 소설과 [특사]라는 두 편의 소설을 최고의 소설로 선택하고 싶다.  [블러드 차일드]는 '간'이란 소년과 그 소년의 가족, 그리고 그 가족과 함께 사는 외계 종족인 '트가토이' 등장한다. 소설의 배경은 인간이 외계 종족에게 점령 당해 보호구역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상황이다. 트가토이는 자신의 알을 통해 간과 간의 가족들을 돌보아 주고 있다. 특히 간에게는 특별히 많은 돌봄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간과 트가토이는 특별한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겉으로 보면 단란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들의 가정에 갑자기 고통을 당하며 쳐들어 온 남자가 있었다. 트가 토이는 그 남성의 고통을 덜어주며 수술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남자의 배 속에서 몇 개의 애벌레를 꺼낸다. 그 남성은 트가토이와 같은 외계 생명체와 결합을 통해 외계 생명체의 알을 배 속에서 자라게 하는 숙주였다. 그리고 간은 자기 역시 트가토이의 숙주임을 알게 된다. 이제 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자신을 숙주로 여기는 트가토이에 대해 역겨운 감정을 느낀다. 그럼에도 그는 트가토이로 부터 도망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트가토이의 알을 자기 배 속에 잉태하게 한다. 소설에서 분명 트가토이는 인간인 간을 지배하는 지배층이고, 트가토이는 지배 당하는 인간이지만, 그 곳에는 미움이나 증오보단 그럴 수밖에 없는 숙명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간다. 그리고 둘의 관계는 글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애증관계가 된다. 이런 관계는 그녀의 소설에서 계속 등장한다.

 

[특사]라는 소설 역시 외계 생명체를 다루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외계 생명체를 '커뮤니티'라고 부른다. 그들은 나무나 수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작은 생명체들이 하나의 집단을 이루어 행동한다. '노아'라는 여성은 이 커뮤니티와 인간과의 대화를 연결해주는 일을 한다. 인간 고용인들은 노아를 혐오한다. 어떻게 외계 생명체 편에서 일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특히 그녀는 외계 생명체에게 납치 된 2세대이다. 노아는 고용인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담담히 이야기한다. 그녀는 외계 생명체에게 끌려갔지만, 후에 자유의사로 그들에게서 나와서 인간 세상으로 돌아왔다. 정부는 오히려 그녀를 통해 외계에 대한 정보를 알기 위해 그녀를 가두고 고문 한다. 오랜 고문 끝에 변호사를 통해 그곳을 탈출한 그녀는 이제 중립적인 입장에서 외계 생명체와 인간을 교류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과연 인간이란 존재가 절대적으로 선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앞의 소설 [블러드 차일드]에서처럼 자신을 이용하는 외계 생명체에 대해 노아는 증오와 함께 애정을 담고 있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들은 이런 미묘한 감정들을 잘 묘사한다.

필립 K. 딕 만큼은 아니지만, 그녀의 소설들도 암울한 배경들을 가진 소설이 대부분이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소설이 [저녁과 아침과 밤]이란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는 DGD라는 질병을 가진 한 여성이 등장한다. DGD란 질병은 부모에게서 유전되는 질병으로 일정한 나이가 되면 발발해서 자기를 파괴하는 질병이다. 스스로를 죽을 때까지 자학하고, 심지어는 상대방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한다. 이 과정을 소설에서는 아주 끔찍하게 묘사한다. 소설 속의 여성 주인공은 이런 질병을 숙명처럼 안고 살면서 절망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앨런이라는 남자 친구의 어머니를 병문안 하러 갔다가 자신의 호르몬을 통해 DGD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그 질병을 다스리는 것일까? 아니면 환자를 환각상태에서 지시를 따르게 하는 것일까? 그렇게 살아가는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것일까? 그럼에도 주인공은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들은 대부분 처럼 절망적인 상황들이 묘사된다. 그럼에도 소설 속의 주인공들을 그런 상황을 만든 외계 생명체나 세상에 대해 증오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과 묘한 관계를 가진다.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들과 관계할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 한다. 소설의 후기에서 그녀는 조금도 인종에 대한 문제, 자신의 어린 시절의 과거의 아픔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소설을 그렇게 해석하려는 주변의 시선을 경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소설이 그런 그녀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미국이라는 나라, 백인과 흑인이 공존하고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있지만, 서로 사랑하고 공존할 수밖에 없는 모순적인 세상을 소설 속에서 그리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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