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에는 임진왜란 당시의 혼란 상황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은 순식간에 국가 시스템이 무너진 상황이었다. 일본군이 부산진 앞바다에 상륙한 날짜는 1952년 4월 13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한양을 점령한 것이 같은 해 5월 2일이었다. 일본군은 상륙한지 20일 만에 한양까지 진격해서 점령한 것이었다. 당시의 조선의 왕부터 신하까지 모두 혼란에 빠졌고, 대응체계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부산진과 동례성은 쉽게 함락 당하고, 이일과 신립 장군은 패배하고, 한양을 도우러 왔던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의 3도 연합군 5만 명은 우왕좌왕하다가 전투다운 전투도 못하고 패배해서 도망쳤다.

이런 총체적인 혼란 상황에서 리더십의 문제가 발생했다.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도망하고, 백성들은 그런 선조와 조정에 대한 원망으로 경북궁을 불태운다. 평양으로 피난 가서도 마찬가지이다. 일본군이 임진강 가까이 다가오자 백성들이 산으로 도망을 가기 시작한다. 그러자 선조는 신하들을 시켜 자신은 끝까지 평양에 남아있을 테니 함께 평양을 지키자고 말한다. 이 말을 듣고 산속에 숨어 있던 백성들이 평양성으로 모여든다. 그러자 며칠 후 선조는 평양성을 버리고 도망간다. 이러니 어떤 백성이 리더의 말을 따르겠는가? 징비록에는 그 당시의 혼란 상황을 몇 가지 기록한다.

임금이 도망가다가 수라상을 차리니 군사들이 그 수라상을 먹어버리고 도망을 간다. 임금이 평양성을 버리려 하니 백성들이 모여들어 도망갈 거면 굳이 왜 숨어있는 우리를 평양성으로 불러들여 몰살시키려 하느냐며 임금이 있는 처소로 몰려간다. 각 고을마다 곡식창고에 약탈이 일어나고 방화가 일어난다. 군인들은 모두 뿔뿔이 도망가고 싸우려는 자가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리더십을 세울 수 있겠는가? 당시 조선의 관리들이 리더십을 세우기 위한 방법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무조건 목을 베는 것이다. 법이 세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공포로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제일 먼저 일본군을 맞으러 간 이익 장군은 적이 온다고 소식을 전하는 백성의 목을 친다. 군사를 동요시켰다는 죄목이다. 신립 역시 청주에서 적이 온다고 보고하는 병사의 목을 친다. 평양에서는 동요하는 백성들 중에서 노약자나 부녀자를 잡아다 목을 치고 메단다. 약탈을 하는 사람들도 목을 친다. 징비록에 반복되는 말들은 바로 '목을 친다'는 말이다. 리더의 말이 안 먹히는 상황에서 공포로 사람들을 다스리는 것이다. 결국 애꿎은 백성들만 일본군에게 죽어나가거나 자기 나라 관리들에게 죽어나가는 상황이었다.

 

징비록에는 유성룡이 당시 이런 난국을 수습했던 과정이 나온다. 먼저는 임금에게 군사의 배치를 이야기한다.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장군들을 보내어 급한 부분부터 막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명나라와 협상을 해서 원군을 이끌어 낸다. 더 나아가 도망가는 군사들과 백성들을 다독거린다. 무조건 목을 치기보다는 이 난국을 잘 수습하면 후에 공을 인정해 주겠다며 그들에게 비전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저녁 소곶역에 도착하지 아전과 병사들은 모두 달아나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기에, 군관을 시켜서는 마을에 가서 수색케 하니 그들이 몇 사람을 데려왔다. 나는 "나라가 평소에 너희들을 기른 것은 이런 날을 위해서인데 어찌 차마 달아날 수 있는가? 바야흐로 명나라 군대가 도착하야 나랏일이 참으로 급하니, 지금이 바로 너희들이 노력하여 공을 세울 때이다"하고 힘껏 타이르고는, 빈 책자 한 권을 꺼내 먼저 온 자들의 성명을 적고는 그것을 보여 주면서 "나중에 이것으로 공로를 평가하여 상을 내릴 것을 논하자고 임금께 아뢸 것이다. 이 기록에 실리지 않은 자는 난리가 끝난 뒤에 일일이 조사하여 처벌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 중략- 나의 이 명령을 들은 자들은 앞다투어 나와 땔감을 나르고 집을 짓고 솥과 가마를 설치하니, 며칠 사이에 모둔 일이 조금씩 갖추어졌다. 나는 나리를 만난 백성들을 채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오로지 지성으로 깨닫도록 타일르 뿐 한 사람도 매질을 하지 않았다. (P302-3)


 


 

그는 또 굶주림에 죽어가는 백성들로 인해 함께 마음 아파하며 군량미 중 일부를 풀어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다.

이때 적이 한양을 점거한 지 벌써 2년이 되었으므로 전쟁의 참화 때문에 천리가 황폐해지고 백성들은 농사지을 종자도 얻지 못하여 태반이 굶어 죽었다. 성안의 살아남은 백성들은 내가 동파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도와 이고 지고 하며 수없이 동파에 이르렀다. 총병 사대수는 경기도 파주의 마산으로 가는 길에 아기가 엉금엉금 기면서 죽은 어머니의 젖을 빠는 모습을 보고는 슬퍼하며 아기를 거두어 군대에서 기르게 하였다. 그리고 내게 "왜적이 아직 물러가지 않아 인민들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장차 어찌하겠습니까!"라고 말을 하고 또 "하늘이 근심하고 땅이 슬퍼합니다"하며 한탄하였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P413-4)

결국 이런 백성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 백성들을 움직이게 한다. 그리고 함께 싸우게 된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서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이다. 한국에서 살기가 너무 힘들다는 의미이다. 그래서인지 정치권이나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비판이 심하고, 인터넷에서는 입에 담지 못할 막말까지 이어진다. 이런 반응에 대해 장년층이나 노년층은 "우리 세대는 얼마나 힘들었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고생을 안 해 봐서 그래..."라는 말을 한다. 아마 정치 지도자들도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지만 같은 의미일 것이다. 그러기에 젊은 세대를 어루만지는 정책보다는 강압적인 정책을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과연 이 시대의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리더십이란 어떤 리더십일까? 목을 치는 리더십일까? 백성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는 리더십일까? 징비록을 읽으며 다시금 이 시대의 리더십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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