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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플레
애슬리 페커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남편들에게 최대의 미덕은 아내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다. 아내가 해 주는 요리를 불평하는 사람은 흔히 이야기하는 '간 큰 남자'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멸종해 가는 '간 큰 남자'의 마지막 종이다. 물론 매 번 불평하는 것은 아니다. 아내가 요리가 입맛에 맞을 때는 너무 맛있게 먹는다. 그러나 한껏 기대하던 요리가 입맛에 맞지 않을 때는 신랄하게 비판을 한다. 그러면 하루 종일 집안의 냉기가 돈다. 나도 진화에서 살아남은 현대의 남성들처럼 아내의 요리를 맛보며 '당신이 해 준 음식이 최고!'라고 말하고 싶지만, 유전적으로 그런 변죽은 타고나지 못 했다.
개인적인 생각을 변명처럼 이야기하자면 음식이란 건 항상 맛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도 있고, 맛없는 음식도 있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맛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음식이란 오히려 맛없을 때가 더 많지 않을까? 그리고 그 맛없는 요리도 요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인생이란 어떨까? 인생도 항상 해피엔딩일까? 썸을 타던 남녀는 항상 달콤한 사랑에 빠지고, 갈등에 빠져 있던 가족은 항상 서로를 용서하고, 고생을 하던 삶은 나중에 항상 성공으로 결론이 날까? 아쉽지만 사랑에 실패도 하고, 가정이 깨어지기도 하고, 실패도 경험하고, 그렇게 맛없는 인생도 인생이 아닐까?

흔히 음식에 관련된 소설을 읽게 되면, 음식처럼 달콤하고 맛있는 이야기를 기대하게 된다. 썸을 타던 남녀가 달콤한 디저트로 사랑에 빠지고, 갈등을 겪던 가족들이 따스한 밥 한 끼로 하나가 되고, 실패를 경험하던 인생이 구수한 된장찌개를 먹고 새 힘을 내는 그런 이야기를 기대하게 된다. 오르한 파묵 이후 최고의 기대작가로 주목을 받고 있는 애슬리 페커의 장편소설 [수플레] 역시 음식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다양한 음식들이 등장하고, 가장 어렵다는 수플레라는 디저트를 요리하는 과정을 매개로 뉴욕과 파리, 이스탄불에 사는 세 명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의 삶은 모두 해피엔딩은 아니다. 한 명의 삶은 지독히 불행하고, 한 명은 어정쩡한 해피엔딩이고, 마지막 한 명의 삶은 불행도 행복도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삶으로 결론 난다.
먼저 지독한 불행을 맛보는 뉴욕의 '릴리아'라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60세가 넘은 필리핀계 이민 여성이다. 필리핀에서는 촉망받는 화가로서 젊은 시절에 미국에 이민을 와서 미국에 동화된 여성이다. 그녀는 '아니'라는 남성과 결혼을 하고, 베트남 고아인 '장'과 '덩'이란 아이를 입양했다. 그녀는 남편과 아이에게 헌신하기 위해 시골로 이사를 하고 오로지 가정에 헌신을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자 남편은 그녀와 최소한의 대화만을 하고, 아이들은 그녀를 외면한다. 심지어 아이들은 그녀가 자신들을 이용해 정부의 돈을 타내 부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던 중에 아니까지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그녀는 아니의 치료비를 유지하기 위해 하숙생들을 들인다. 일본, 스위스, 스페인 등 다양한 곳에서 온 하숙생들을 위해 요리하며 그녀는 잠시 인생의 행복을 맛본다. 특히 수플레라는 요리를 연구하며 삶의 의욕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하숙생들은 모두 떠나고, 아이들과는 의절하고, 끊임없는 남편의 요구에 그녀는 지쳐간다. 그렇게 그녀의 인생은 쉽게 꺼져버리는 수플레 요리의 거품처럼 가라앉게 된다.
나름 해피앤딩 끝나는 두 번째 삶은 파리에 사는 '마크'이다. 그는 항상 자신에게 따스하고 맛있는 요리를 해 주는 '클라라'라는 아내와 살고 있다. 마크에게 있어 클라라는 그의 삶의 전부이다. 그런 클라라가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 마크는 도저히 그 절망에서 해어 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아내를 연상하는 주방의 모든 물품을 버리고 새로 시작한다. 서툴레 요리도구를 사고, 요리책을 사서 요리를 한다. 그 과정에서 수플레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서서히 회복을 경험한다.
가장 관심을 끄는 분야는 마크가 주방도구를 사러 백화점에 가서 '사비나'라는 여성 점원을 만나는 과정이다. 난생처음 주방 도구를 사러 온 마크는 도무지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모른다. 특히 아내가 죽은 뒤 얼마 되지 않아 그의 모습에 고독과 절망이 배어있다. 그런 그에게 사비나가 다가와 친절히 주방도구를 설명한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사비나의 도움으로 주방도구를 장만하며, 둘은 서서히 마음을 열어간다. 소설의 마지막에는 마크가 사비나를 자신이 처음 여는 파티에 초대하며서 끝난다. 나름 해피엔딩이라고 해도 될까?
마지막 삶은 이스탄불에 사는 '페르다'라는 여성의 삶이다. 페르다는 어머니는 거칠고 욕을 달고 산다. 페르다는 그런 어머니에게 떨어지기 위해 일찌감치 시난이라는 남성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녀의 행복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커피와 함께 파리에서 사는 딸과 통화를 하고, 가끔씩 찾아오는 아들의 손자들과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소박한 행복은 그녀의 어머니 '네시베 부인'이 넘어져 걸을 수 없게 되면서부터 깨어지게 된다. 어머니를 자시의 집에서 돌보게 된 페르다는 하루 종일 어머니의 시중을 든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계속해서 불평을 해대고, 곳 치매가 와서 페르다에게 귀에 담지 못할 욕들을 해댄다. 결국 페르다의 모든 삶은 무너지게 된다. 페르다는 요리를 통해, 쉽게 거품이 꺼지는 수플레 요리를 하며 잠시나마 위안을 받는다. 소설의 끝에서는 잠시 제정신이 돌아온 어머니는 페르다에게 자신이 정신이 들지 않았을 때 했던 행동들을 용서해 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페르다가 잠시 딸과 통화하러 간 사이에 스스로 삶을 끝낸다. 이건 행복일까? 불행일까? 아니면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삶일까?

이 책에서 등장하는 '수플레'란 요리는 쉽게 거품이 꺼지는 최악의 난이도의 디저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그 수플레라는 요리에 도전하고, 그 거품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소설에는 끝내 그 요리에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작가는 우리 인생이 마치 이 수플레란 요리와 같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항상 성공할 수는 없는 요리, 쉽게 거품이 꺼져버리고, 그 거품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해야 하는, 그럼에도 그 요리를 하는 과정 속에서 위안과 행복을 누리는... 있는 그대로의 요리와 인생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소설을 따라가며 삶의 씁쓸함과 달콤함을 동시에 맛보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