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의 조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0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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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폭력조직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홍콩 영화 [무간도]라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는 경찰이면서도 폭력조직에 잠입한 양조위(진영인 역할)와 폭력조직의 일원이면서 경찰로 잠입한 유덕화(유건명 역할)가 주연으로 등장한다. 양조위는 경찰이지만 점점 범죄자의 모습이 되어가고, 유덕화는 점점 경찰처럼 되어 간다. 양조위가 경찰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모두 사라지자, 유덕화는 그를 포섭하려 한다. 그러자 양조위가 말한다.

"미안하지만 난 경찰이야!"

그러자 유덕화가 되받아 친다.

"그걸 누가 아는데!"

이 영화는 거대한 조직 속에 잠입했지만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결국 인간은 거대한 조직 속으로 들어가면, 그 조직 속에 함몰되고 만다. 자신이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자신이 처음 가졌던 이상은 무엇인지, 심지어는 자신의 정체성까지도...

 



[무간도]라는 영화처럼 경찰이라는 조직의 특성과 그 속에서 잠식되어 가는 인간성을 예리하게 그리고 있는 '사사키 조'라는 소설가가 있다. 사사키 조는 일본 경찰 소설의 3대 명장으로 추앙을 받으며 [경관의 피]라는 작품으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일본에서 매년 평론가, 작가, 동호회 멤버 등이 미스터리 소설의 랭킹을 정하여 수여하는 상,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야경]이나 [용의자 X의 헌신] 등이 1위 작품이다.) 1위를 차지하기도 했었다. 최근에 출간된 [경관의 조건]은 [경관의 피]라는 작품에 이어지는 스토리로서 3대째 경관이 '안조 가즈야'와 그의 라이벌인 '가가야 히토시'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안타깝게도 [경관의 피]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 [경관의 조건]을 읽어서 전작의 내용을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전작을 읽지 않고서도 이 책을 읽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전작을 읽지 않은 사람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스토리였다.)

 



'안조 가즈야'는 갓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형사부 수사 4과에서 조직폭력배를 담당하는 전설적인 형사 '가가야 히토시'의 밑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가가야는 혼자서 하나의 부서에 감당할 만큼 뒷골목의 방대한 정보량을 가지고 있는 형사이다. 그는 고급 양복을 입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조직폭력배들과 거래를 해서 타의 추종을 불허 나는 실적을 남긴다. 그러면서 자신의 동료의 아들이었던 가즈야를 밑에 두고 가르친다. 하지만 가즈야는 이미 윗선에서 가가야의 뒷조사를 하라고 잠입시킨 형사이다. 당시 경시청의 세력 판도는 변화하고 있었고, 새로 경시총감이 된 세력은 가가야를 제거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가즈야의 애인이 그를 버리고 가가야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가즈야는 결국 가가야를 각성제 소지죄로 밀고하고, 자신의 애인이었던 여성까지도 함께 체포되게 한다. 결국 가가야는 조직의 힘에 의해 경찰에서 쫓겨나게 된다. 가즈야는 상관을 밀고했다는 동료들의 따돌림과 함께, 윗선에 의해서는 신임을 받고 고속 승진을 하게 된다.

그렇게 9년이 지난 후, 도쿄 뒷골목에서는 새로운 세력이 등장한다. 그들은 각성제를 팔기 위해 새로운 판매상들을 모으고 있다. 새로 창설된 조직폭력부의 계장이 된 가즈야는 이들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함정수사를 벌이다가, 잠입한 경찰이 피살되는 일까지 발생한다. 경시청 내에서는 수사가 겉돌고, 뒷골목의 정보를 접할 수 없자, 가가야를 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결국 자신의 부하의 죽음을 계기로 9년만에 가가야가 복귀를 한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눈부신 성과를 낸다. 하지만 가즈야를 비롯한 일부 경찰들은 가즈야가 이미 조직폭력과 유착된 변질된 경찰이라고 생각을 한다. 가즈야가 과연 경찰이라는 조직과 폭력배라는 조직, 어느 쪽에 더 가까운 인물일까? 소설은 계속해서 가가야의 정체성을 혼란시키고, 끝에서야 가가야가 어떤 인물인지를 밝힌다.

 


이 소설은 저자가 마치 전직 경찰관이었던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정도로 일본 경찰 조식의 생리를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경찰 내부의 권력싸움과 조직폭력배와의 관계, 그리고 말단 형사들의 애완까지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 소설은 가즈야와 가가야와 같은 인물의 심리묘사가 뛰어나다. 특히 가가야에 대한 가즈야의 심리가 마치 경찰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심리와 같은 선에서 묘사가 되고 있다. 가즈야에게 있어서 가가야는 어머니를 폭행한 아버지처럼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존재이다. 가가야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함께, 상대를 뛰어넘고 싶은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한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양가감정이라 한다. 양가감정은 아이가 부모에 대해서 사랑이나 증오를 동시에 느끼는 감정을 말하는데. 자신 역시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기가 미묘한 상태를 의미한다. 소설은 가즈야뿐만, 아니라 가가야의 미묘한 이런 감정들을 직접적인 묘사보다는 인물의 행동이나 말투 등을 통해 간접적이면서도 예리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작가의 묵직한 이야기 전개 방식에 있다. 주인공 가가야처럼 저자도 세밀하고 자세한 설명이나 묘사가 아닌, 툭툭 던지듯이 사건과 상황을 묘사한다. 어떤 때는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천천히 사건 주변의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마치 폭주하는 기계처럼 급박한 상황을 전개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경찰 내부의 안력 관계, 수사 과정, 총격신 등이 급박하게 펼쳐져 간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현장감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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