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그리고 엄마
마야 안젤루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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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여러 번의 실패를 경험했었다. 그중에서는 너무 큰 좌절을 맛보아서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어떤 때에는 주변의 비난이 너무 심해서 사람을 피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또 어떤 때는 나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이 너무 후회가 돼서 스스로 자책감에 빠지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를 찾게 되었다. 낙심하고 지친 모습으로 찾아간 나를 어머니는 그때마다 반겨 주셨다. 그리고 '괜찮다!' '다시 하며 된다!' '나는 내 아들을 믿는다!' 이런 위로와 용기를 주셨다. 그렇게 어머니의 품에서 쉬고 나고, 어머니의 위로의 말을 듣고 나면, 다시금 힘이 나서 세상과 싸울 수 있었다. 결국 어머니는 영원한 내 편이었고, 내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존재였다.

마야 안젤루는 무용가이자 가수이며,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그녀는 또한 흑인과 여성 인권운동에 헌신한 미국 흑인들의 정신적인 스승이기도 하다. '오프라 윈프리'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멘토로 꼽기도하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에 한 명이다. 그러나 그의 출생과 성장과정은 너무나 불우했다. 그녀는 어려서 이혼한 부모님 품을 떠나 세 살부터 13살까지 아칸소에 있는 친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중간에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어머니에게 간 적이 있지만, 그곳에서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이 책에서는 이 부분에서는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고 있다.) 16살에는 미혼모로 아이를 낳고, 그 후에도 여러 풍파를 겪으며 이 아이를 키웠다.

사실 그녀가 유명한 예술가이자 문학가, 그리고 세계적인 인권 운동가가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녀는 이 책의 초반에 자신이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지금의 자신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를 '어머니'라는 존재에서 찾는다.

나는 종종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백인의 나라에서 흑인으로 태어났는데, 돈이라면 다들 사족을 못 쓰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부자가 되려 하는 사회에서 가난뱅이로 태어났는데, 겨우 대형 선박과 몇몇 기관차에 여성형 대명사를 쓰면서 생색내는 환경에서 여성으로 태어났는데 어떻게 마야 안젤루가 되었느냐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나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 나오는 흑인 소녀 톱시의 말을 따라 하고 싶어진다. "몰라요, 그냥 이렇게 컸어요." 이렇게 말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내가 단 한 번도 그렇게 대답하지 않은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십 대 초반에 그 책을 읽고 무식한 그 아이를 보며 창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이런 여자로 성장한 것은 사랑하는 할머니와 흠모하게 된 어머니 덕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P9)

사실 그녀가 어린 시절에 '레이디'로 부르고, 장성한 후에 주로 '비비안 여사'로 부르는 마야 안젤루의 어머니는 우리의 시각에서 보기에 그렇게 훌륭한 어머니는 아니다. 그녀는 거친 흑인 가정에서 자랐으며, 남성들과 함께 주먹다짐을 하며 자랐다. 어린 마야와 오빠를 어린 나이에 할머니에게 보냈고, 5살부터 청소년 시기까지 중요한 시기를 어머니와 떨어져 보낸 오빠는 끝내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평생을 마약 중독자로 살았다. 마야와 함께 살면서도 마야의 잘못된 행동에 손이 먼저 나가기도 했고, 도박장과 당구장, 술장사를 하며 거친 삶을 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야의 어머니는 항상 마야에게는 커다란 그늘이고 우상이었다. 그녀는 흑인이 무시당하고, 여성이 차별받는 세상에 당당하게 맞서 자신의 것의 권리를 찾는 삶을 살았고, 딸에게도 그런 삶을 살 것을 조언했다. 어느 날 마야의 어머니는 그녀를 데리고 갓 흑인의 입장이 허락된 호텔을 찾아간다. 직원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당당히 호텔 로비로 들어가 자신신이 예약한 객실로 딸과 함께 들어간다. 객실에서 마야는 어머니의 가방에 38구경 리볼버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의아해하는 딸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조언한다.

"호텔측에서 인종 통합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으면 본때는 보여줄 참이었다. 얘야, 맞닥뜨리게 될 모든 상황에 대비하는 자세를 길러야 해. 틀렸다고 생각하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마. 옳다고 생각하는 일만 하고, 거기에 네 목숨을 걸 태세를 갖춰라. 네 입으로 한 이야기는 뭐든 다시 한번 반복할 수 있어야 해. 그러니까 한 번은 네 방 벽장 안에서, 또 한 번은 시청 앞 계단에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야. 이십 분 동안 모은 청중 앞에서 말이다. 뉴스감이 되려고 그래선 안 된다. 너와 네 이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언제나 네 이름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리려는 게 목적이 되어야 해. 안 좋은 상황이 닥칠 때마다 폭력을 쓰겠다는 협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란다. 네 머리로 해결책을 생각해낼 수 있을 거라 믿고, 그런 다음 용감하게 그 해결책을 밀어붙이면 되는 거야." (P184)

무엇보다도 마야의 어머니는 이 자신의 딸을 믿고 응원해 주었다. 마야가 17살에 미혼모로서 아들을 낳고 힘든 삶을 살고 있을 때에도 마야의 어머니는 그녀를 믿고, 그녀에게 힘을 준다.

한 블로 반쯤 지났을 대 필모어 스트리트와 풀턴 스트리트가 만나는 모퉁이의 피클 공장에서 풍겨오는 시큼한 식초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때 나는 앞장서서 걷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얘"하고 나를 불렀다.
나는 어머니 옆으로 걸어갔다.
"얘, 계속 생각해봤는데 이제 분명히 알겠구나. 넌 지금까지 내가 만난 여자 중에서 가장 대단해."
나는 완벽하게 화장을 하고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걸고 은색 여우털 목도리를 두른 그 아담하고 아리따운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샌프란시스코 흑인 사회의 대다수가 우러러보고, 심지어 백인들까지도 좋아하고 존경하는 여인이었다.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너는 마음씨가 아주 착하면서도 아주 똑똑하잖니. 이 두 가지를 겸비한 사람은 드문데 말이야.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 메리 맥리오드 배순 박사 그리고 내 어머니, 그래. 넌 그런 사람이야. 자, 키스해주렴."
-중략-
입안에서 아직도 빨간 쌀밥 맛이 느껴졌다. 그때 나는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욕을 하는 나쁜 습관을 고쳐야겠다고 결심했다. 술과 담배는 몇 년이 흐른 뒤에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욕은 그 즉시 고쳤다.
생각해봐. 내가 진짜 대단한 사람이 될지도 모르잖아. 언젠간 말이지.(P111-2)

마야 안젤루는 어머니의 말에 용기를 얻어 세상과 맞서 싸운다. 어머니의 방식으로... 그럼에도 그 싸움이 너무 지치고 용기가 나지 않을 때면 어머니에게 전화를 한다. 그러면 어머니는 비행기 값을 보낼 테니 당장 내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딸이 오면 항상 딸을 반기고, 딸에게 힘을 준다. 후에 마야 안젤루가 성공을 해서 스웨덴에서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할 때 주변의 사람들에게 너무 심한 반대를 당해 일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번에는 그녀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비행기 표를 사드릴 테니 당장 내일 이곳으로 와 줄 수 없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렇게 딸에게 달려간다. 어머니가 주는 위로와 용기로 마야는 그 일을 포기하지 않고 마친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 자신의 가능성을 알아주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힘들 때마다 힘이 되어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세상에 한 명만 있다면, 누구나 어떤 진흙 구덩이 속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젠 나도 그런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버이의 날이 포함되어 있는 5월에 어머니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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