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
모리 아키마로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봄날이 되고, 벚꽃이 피면 가끔은 대학 신입생 시절이 생각난다. 모든 긴장감이 사라지고, 사람을 나른하게 만드는 대학 캠퍼스의 봄날. 당시는 지금 느끼는 삶의 긴장감도,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조바심도 없었다. 50분 수업의 10분 쉬는 시간처럼, 그렇게 쉬는 듯이 봄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황금가지에서 나온 '블랙 로맨스 클럽' 시리즈의 [이름 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라는 소설의 표지를 보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내가 다니던 대학교 앞의 커다란 벚꽃 나무였다. 아침에 강의실로 들어가기 위해서 언덕 위를 걸어가다 보면, 학교 입구에서 오래된 커다란 벚꽃 나무를 만났었다. 벚꽃이 만발할 때는 차마 그곳을 그냥 지날 수 없어서, 나무 밑의 벤치에서 한참을 앉아있다가 강의에 늦곤 했었다. 그 시절이었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이 소설은 '술잔'이란 별명을 가진 한때 잘 나가던 아역배우 출신의 '사카즈키 조코'가 '취연'이라는 술 마시기만이 유일한 활동인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조코는 원래 '추리'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어 했지만 이름을 착각해 '취연'에 가입한다. 그리고 두 번이나 유급을 당해 3년 동안 1학년인 동아리 회장인 미키지마 선배에게 약점을 잡혀 계속해서 '취연'에 남게 된다. 조코의 약점이란 그녀가 숨기고 싶은 어린 시절의 연기 경력이다. 어찌 된 일인지 미키지마는 첫눈에 사카즈키 조코를 알아 본다.(이유는 맨 마지막에 나온다.)

그렇게 해서 '취연'과 얽히게 된 그녀는 '취연'을 중심으로 한 사건들에 휘말리게 되고, 미키지마 선배의 도움으로 그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게 된다. 그렇다고 사건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추리소설 마니아인 조코는 살인사건과 같은 큰 사건을 기대하지만 대부분의 사건은 남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오해로 인한 황당한 사건들이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누구나 그렇듯 그런 사소한 오해들이 인생의 전부를 담고 있다.

첫 번째 사건은 봄날 벚꽃이 만발한 술자리에서 취연의 미모의 여학생 '에리카'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미쓰토리'라는 선배도 사라져 한참 만에 돌아온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에리카는 영영 술자리에 돌아오지 않는다. 이런 분위가 너무나 익숙하다. 대학시절 술자리에서 보면 항상 사라지는 남녀가 있다. 그리고 얼마 후 둘이 사귀던지, 어색한 사이가 되던지... 이 사건에 담긴 진실은 무엇일까?

두 번째 사건은 대학 대항의 야구 경기에서 벌어진다. 취연의 삼수생 오야마 선배가 썸을 타는 여자친구에게 함께 야구를 보러 가자고 요청했다가 바람을 맞는다. 대학 캠퍼스에서 벌어지는 스포츠 경기와 얼큰하게 취한 학생들, 그리고 그 가운데 벌어지는 미묘한 남녀 관계...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세 번째 사건은 동아리 MT에서 벌어진 미키지마 선배의 옛사랑이 이야기이다. 항상 추억으로 기억되는 대학 MT. 이때면 꼭 졸업한 선배 한두 명이 방문하는데, 이번에는 미키지마와 사귀었던 미우 선배라는 여자이다. 미우는 지금 잘 나가는 여배우이다. 미키지마와 미우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미키지마를 좋아하는 조코는 조바심이 나고... 동아리 MT에서의 남녀간의 미묘한 감정과 그 감정 속에 숨겨진 사건들... (글 쓰면서 감정이입이 너무 되는 듯^^ )

네 번째 사건은 대학 축제 때 벌어진 사건... 동아리 퇴출 위기에 빠져서 대학 내 주점도 열지 못하게 된 취연이 살아남기 위한 궁여지책을 낸다. 대학 축제의 술판? 문화가 생각난다^^

마지막 사건은 대학교라는 배경을 떠난 조코와 미키지마가 낯선 곳에서 만난다. 그리고 미묘한 사건들 속에서 둘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다.

조코와 미키지마를 중심으로 한 '취연'의 사람들은 어쩌면 한심한 사람들이다. 하는 일이라고는 매일 술판만 벌이는 것이다. 모두 취해서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마시고, 장래나 미래에 대한 계획은 없다. 조코 역시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 낭비인 것 같은 시간들 속에서 그들은 미래를 찾아간다.

그 시절 그런 낭비 아닌 낭비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달릴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러기에 봄날이면 그 낭비의 시간들이 그리워진다. 다시금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유롭게 봄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들이 다시 올 수 있을까? 그때의 그 미묘하고 떨리는 감정들이 다시금 찾아올 수 있을까? 봄날의 캠퍼스의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이색적인 추리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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