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여자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 지음, 윤병언 옮김 / 비채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아이가 태어났다. 아내가 밤새 힘들게 진통을 한 후, 결국 수술을 하고 아이가 태어났다. 다음날 저녁에 병실에서 회복 중인 아내를 간호하다가 병원 측으로부터 아이의 호흡수가 빨라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덜컥 겁이 나서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아내와 함께 신생아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날 밤 역시 꼬박 세었다. 그렇게 이틀을 거의 잠을 자지 못하면서 아내와 아이를 챙겨야 했다. 어느 순간 무서운 세상 앞에 혼자 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혼자 아내와 아이를 감당해야 한다는 무게감... 그럼에도 피하거나 숨을 수가 없음을 느꼈다. 이것이 내가 감당해야 할 무게라는 것을 처절하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아이는 곧 호흡수가 정상으로 돌아왔고, 아내도 비교적 빠른 회복을 하고 있다.

이 경험을 통해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다. 사랑이란 달콤하고, 짜릿하고,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사랑은 때로는 거친 풍랑 속에서 내 몸 하나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도 상대의 잡은 손을 놓지 않는 것이다. 때로는 숨고 싶고, 때로는 도망가고 싶어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도망가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그 무게감을 견디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그 사랑의 무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겁다는 것을 삶을 통해 배워간다.

아내와 육아전쟁을 벌이면서 틈틈이 [못생긴 여자]라는 소설을 읽었다.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는 작가가 쓴 소설로서 칼비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레베카'(성경의 리브가의 이탈리아식 이름)는 못생긴 아이로 태어난다. 그냥 못생긴 것이 아니라, 보는 이의 얼굴까지 돌리게 할 정도로 끔찍하게 못생긴 아이다. 그것도 남자아이가 아니라 여자 아이다. 아버지는 외면하고, 어머니는 숨어 버린다.

엄마는 다음 날이 되어서야 나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저지른 일생일대의 실수를, 자신이 만들어낸 찌그러진 머리와 잔인한 얼굴 윤관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엄마는 나를 안아보려 하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감히 젖을 먹여보라는 말 한 마디조차 건넬 수 없었다. P12


이렇게 아이는 엄마의 젖 한 번 물어보지 못하고, 커다란 저택의 2층 구석방에서 갇혀서 자라게 된다. 레베카의 부모들은 그녀가 아버지와 바깥세상에 나가면 사람들의 놀림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아이는 아버지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며 그렇게 커간다. 아이 역시 자기가 못생겼다는 것을 인지한다. 그리고 그렇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히 사는 법을 배워간다.

아주 어릴 적부터 여자아이들은 크면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사도 될 수 있고 선생님이나 배우, 심지어 공주님도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못생긴 여자아이는 다르다. 그녀가 아는 것은 하나, 자신은 영원히 못생긴 여자로 남으리라는 것뿐이다. P92


아버지는 레베카에게 따스한 손길 한 번 주지 않고, 어머니 역시 그녀를 안 아주지도 않는다. 심지어 그녀가 넘어져서 얼굴에 피멍이 들어도 그냥 멍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점점 그녀는 레베카와 남편, 그리고 주변 사람으로부터 도망을 가서 자신의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다. 그렇게 레베카의 어머니는 우울증에 걸려서 결국 강물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한다.

그래도 레베카에게는 부모에게 받지 못하는 사랑을 주는 '에르미니아' 고모와 유모 '마달레나', 그리고 초등학교에 가서 유일하게 사귄 친구인 수다쟁이 친구 '루칠라'가 있었다. 피아니스트인 에르미니아 고모는 레베카의 소질을 일찍이 알아보고 그녀에게 피아노를 가르친다. 음악은 넘어진 그녀를 일으켜 세워주고, 또 음악으로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하게 된다.

레베카가 음악으로 소통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피아노 스승인 '렐리스' 선생님의 어머니이다. 렐리스의 어머니 역시 한때 유명한 피아니스트였으나 지금은 피크병(치매의 일종)에 걸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그녀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피아노를 치고, 그 피아노 소리를 듣고 레베카는 렐리스의 어머니와 친구가 된다.

레베카는 죽은 어머니의 일기장과 렐리스의 어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이 못생겼기에 자신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어머니와 가정에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고, 자신의 어머니가 그 모든 것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숨어 버린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어머니처럼 도망가거나 숨지 않기로 한다. 그녀는 인생에 당당히 맞서 그녀만의 삶을 살아간다.

앞에 이야기 한 것처럼 사랑은 그 무게를 감당하는 것이고, 도망가거나 숨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도망가거나 숨은 사람을 비난할 수 있을까? 주변에 가정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포기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주변 사람들은 무책임하다고 그들을 비난하지만, 막상 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그들 역시 자신의 무책임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럼에도 그 무게를 감당할 능력이 없기에 그렇게 도망갈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이 소설에서도 가정의 얽히고설킨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자신으로 숨어버린 어머니, 자신에게 둘러싼 미묘한 상황에서 피하기만 한 아버지, 자신의 욕망대로의 삶을 살기만 한 에르미니아 고모... 과연 그들을 비난할 수가 있을까? 그들 역시 자신의 무거운 짐을 견디지 못한 피해자 일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그렇게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사람들과 달리 삶을 당당히 맞선 레베카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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