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의 [신앙과 지식]은 모두 55개의 단문으로 되어 있고, 전반부인 1~26번은 주로 칸트의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라는 책을 통해 종교가 이성의 한계 안에서 도덕적으로 사유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밝히고 있다.

27번 이후부터는 '추신(POST-SCRIPTUM)'이라는 제목 하에 끝까지 이어지는데, 그중 37번까지는 <지하 납골당>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이 부제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정확히 파악을 하지 못 했다. 다만 데리다의 글 주에서 이 부제의 의미를 암시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것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벌판에 널려 있는 동일한 수의 지하 납골당과 같다. 때로는 불모지대인지 아닌지 알지 못하는 사막처럼, 아니면 잔해들과 지뢰와 우물과 동굴 묘와 묘지 터와 종자 즐이 흩어져 잇는 벌판처럼, 우리가 이미 가까이 다가서고 있지만, 아직 확인되지 않은, 심지어 세계로서도 확인되지 않은 벌판의 지하 납골당. P148


이 부분에서 데리다의 종교에 대한 사유를 이끌고 있는 두 가지 개념은 '믿음의 경험'과 '신성함'이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의 데리다가 베르그송의 [종교와 도덕의 두 원천]이란 책의 개념에서 가져온 것이다.

베르그송은 [종교와 도덕의 두 원천]이란 책에서 자신의 집단의 이익만을 고집하는 닫힌 사회에서 타인과 세계의 이익을 존중하는 열린 사회로의 도약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또한 정적인 종교에서 동적인 종교로의 도약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도약의 과정에서 종교의 두 원천인 '믿음의 경험'과 신성의 경험'으로 제시한다. '믿음의 경험'이란 반복적인 약속을 위해 물리적인 수단에 의존하는 경험이고, '신성의 경험'은 신비적인 경험이다.(번역자의 해제에서) 베르그송은 정적인 종교에서 동적인 종교로의 도약은 두 경험이 서로 보완하며 발전할 때 가능하다고 말한다. 데리다는 이런 종교의 도약 과정을 '세계 라틴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종교의 신성성이, 믿음이의 경험인, 원격 과학기술(현대의 미디어 기술)과 결탁하여 종교성을 확대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데리다는 이런 '세계 라틴화' 과정에서 '종교의 자기 면역성'이 등장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자기 면역성'이란 데리다 철학에서 사회와 종교를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인데, 이 개념은 911테러 이후 하버마스와의 대화를 다룬 [테러의 시대]라는 책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개념을 번역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생명과 죽음은 단순히 대립적인 것이 아니다. 생명 내부에는 죽음의 자리가 처음부터 기입되어 있다. 자가면역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생명 활동을 철학적으로 정식화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자가면역은 의학용어다. 데리다는 [신앙과 지식]에서 이 개념을 종교 현상에 적용하여 종교가 자신의 신성을 보호하기 위해 동원한 면역적 기제, 즉 원격 과학기술을 부지불식간에 신성을 다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자가면역적 반격을 가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테러 시대의 철학]에서 이 비평적 개념은 국제정치에 적용되어 다시 한 번 그 적절성 및 효용성을 입증받았다. 해체가 하난의 구조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면 자가면역성은 하나의 시스템을 스스로 붕괴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처럼 자가면역은 자기 해체의 논리를 밝힌 후기 데리다의 핵심적인 비평 개념인 것이다. P47


즉 종교의 자기 면역성라는 것은 종교가 세계 라틴화 과정을 스스로 해체한다는 것이다. 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확장해 가던 종교가 다시금 미디어를 통해 자기를 파괴해 가는 것이다. 그리고 데리다는 이것을 현대의 종교전쟁의 원인으로 파악한다.

오늘날 종교는 자신이 전력을 다해 반작용하고 있는 원격 과학기술과 동맹을 맺고 있다. 종교는 한편으로 진정한 세계 라틴화이다. 종교는 자본과 미디어에 의해 원격적으로 전파되는 지식을 생산하고, 받아들이고 활용한다. 그렇지 않다면 교황의 방문과 세계적인 이슈화도,'살만 루슈디 사건'의 국가 간 공조도, 전 세계적 테러리즘도 이런 리듬으로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징후들을 무한히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종교는 곧바로, 동시에 반작용한다. 종교는 자신을 자신의 모든 고유의 장소로부터, 사실상 장소 자체로부터, 자신의 진실의 장소-가짐/일어남으로부터 쫓아내기 위해서 자기에게 이 새로운 권력을 부여하는 것에 전쟁을 선포한다. 종교는 이러한 모순적인, 즉 면역적이면서 자가면역적인 이중의 구조에 따라 자신을 위험하기 위해서만 자신을 보호하는 것에 맞서 끔찍한 전쟁을 수행한다. - 데리다의 [신앙과 지식] P159-160


이 부분의 데리다의 글들은 사실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앞의 글들이 칸트의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헤겔의 [믿음과 지식],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대한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야만 이해가 가능했다면, 이 부분은 베르그송의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이라는 책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또한 이 부분에서 제시하는 데리다의 개념들, '세계 라틴화'나 '자기면역성'의 개념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데리다가 말하는 현대의 종교 전쟁의 개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종교가 미디어와 관련하여 종교성을 발전시키다가 어느 순간 종교 내부 안에 있는 모순으로 인해(데리다는 이것을 유령이라는 개념으로 설명) 스스로를 해체시키고, 이 과정에서 종교 전쟁이 발생한다는 정도만 이해할 뿐이다.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앞에 언급한 책들과 함께 데리다와 하버마스의 대화 책인 [테러 시대의 철학]이란 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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