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우리나라에 '질 들뢰즤'의 철학이 한참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들뢰즈이 [천개의 고원]이 출간되고, 그 후 한국 학자가 들뢰즤의 책을 해석한 [노마디즘]이란 책이 출간되었다. 철학책을 완독하기보다는 소장하기를 더 좋아하는 개인적 성향으로 인해 얼른 이 책들을 구입했었고, 여러 차례 읽기를 시도했지만 끝내 포기했다. 내용도 어렵거니와 방대한 분량, 그리고 마침 그 시기에 밀어닥치는 일들로 인해 집중해서 읽을 수가 없었다. 그 후 이 책들은 내 책꽃이 맨 위에 꽃인 채로 나의 오래된 숙제가 되었다.


[니체를 읽는다]라는 책의 부제는 '막스 셸러에서 들뢰즈까지'이다. 니체에 대한 여러 해석자의 사상을 제시하며 '들뢰즈'의 사상을 맨 마지막에 놓고 있다. 들뢰즈의 이름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니체의 사상이 여러 철학가들에게 해석되고, 들뢰즈까지 이르는 과정이 매우 기대가 되었다. 그러나 들뢰즈에 이르는 순간, 역시 들뢰즈의 사상은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시금 들뢰즈에 대한 숙제가 생각나게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니체에 대한 들뢰즈의 해석을 '힘에의 의지'와 '영원회귀' 부분에 초점을 두고 설명하고 있다. 들뢰즈는 힘을 '능동적인 힘'과 '수동적인 힘'으로 나눈다. 능동적인 힘은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 가고 세워가는 힘이라면, 수동적인 힘은 타인의 힘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로 인해 능동적인 힘이 생의 다양성을 긍정한다면, 수동적인 힘은 이것을 부정한다.


능동적인 힘과 반동적인 힘의 차이는 양적인 것만이 아니라 질적인 차이이며 유형론적인 차이에 해당한다. 그것은 생과 세계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다른 태도를 취하는 힘에의 의지에 입각한다. 능동적인 힘은 생의 고통과 즐거움 그리고 다양성을 긍정하는 힘에의 의지에서 비롯되는 반면에, 반동적인 힘은 생의 고통과 즐거움 그리고 당야서을 부정하는 힘에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생의 고통과 즐거움 그리고 다양성을 긍정하는 힘에의 의지는 건강하고 진정한 것임에 반해서, 생의 고통과 즐거움 그리고 다양성을 부정하는 힘에의 의지는 병약하고 왜곡된 것이다. - [니체를 읽는다] 중에서 P272-3


영원회귀 역시 마찬가지이다. 들뢰즈가 해석한 니체의 영원회귀는 똑같은 삶의 반복이 아니다. 들뢰즈에게 있어서 영원회귀는 매 순간 다른 삶이며, 능동적인 힘을 가진 사람은 매 순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 그에게 세상은 다양성과 우연성들로 넘쳐나며, 우주는 목적성이 없다. 그에게 삶이란 게임이며, 세상이란 놀이터이다.


이에 대해 우주가 아무런 목적도 없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우주 안에서 잘 놀기 위해서 필요한 확실성이다. 모든 놀이는 그때그때 주어지는 사건을 우연적인 것으로 보는 것과 동시에 예측할 수 없고 소망되는 것으로 보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숙명적이고 필연적인 것으로 보면서 긍정하고 사랑할 때 진정으로 행해질 수 있다. 우연적인 것들은 필연적인 것으로서 모두 서로 연결되 있다. 따라서 진정한 놀이꾼은 개연적이 아니라 숙명적이고 필연적인 수를 긍정하기 위하여 바로 우연의 전체를 긍정하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안다. - [니체를 읽는다] 중에서 P284-5


사실 이 책에 나온 들뢰즈의 니체에 대한 해석에 대한 분량은 16페이지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이 짧은 분량으로는 들뢰즈가 니체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완전히 이해하는 것을 불가능하고, 들뢰즈의 사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더군다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들뢰즈를 비롯한 많은 현대학자들이 니체의 철학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해 접하면서 니체를 바라보는 다양성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 철학을 접할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틀과 경험으로 그 철학을 해석한다. 그러기에 일단 철학은 개인의 영역으로 들어가 해석이라는 과정을 거치면 왜곡되고 뒤틀릴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런 왜곡되고 뒤틀리는 과정을 최소화하는 것은 다른 사상가들의 글들을 접하면서 다양한 해석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니체를 읽는다]라는 작은 책을 통해 니체를 향한 나의 생각이 넓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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