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철학의 해석에서 가장 권위있는 현대 철학자를 이야기 한다면 당연히 '마르틴 하이데거'를 언급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이데거 철학은 어렵기로 소문이 나 있다. 젊은 시절에 개인적으로 존경하던 노교수님이 계셨다. 독일까지 가서 학위를 받으신 분이였는데도 하이데거를 이야기 하면서 자신은 아직도 [존재와 시간]이라는 책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셨다. 당시에는 참 겸손하신 분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하이데거의 책을 접해 본 후 그 말이 이해될 정도였다.


그럼에도 니체의 해석에서 있어서 하이데거는 들뢰즈와 함께 독보적인 인물로 꼽힌다. 오래 전에 읽은 프랑스학자 앨런 슈프리트가 쓴 [니체와 해석의 문제]에서는 주로 하이데거와 데리다의 니체 해석에 대해 언급하는데, 두 학자의 상반된 니체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하이데거는 니체의 저작들에서 하나의 '총체성'을 발견해서 니체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를 밝히려 하고 있다면, 데리다는 그 총체성이 니체를 해석하지 못하게 하는 병폐라고 이야기 한다. 여기서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니체의 저작들에서 나타나는 총체성이란 기존의 형이상학적 세계를 부정하고, 니힐리즘의 세계를 긍정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말 역시 인격적인 신의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신적인 세계관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니체를 읽는다]에서는 하이데거는 니체철학이 기존의 형이상학적인 세계관을 거부하고 '힘에의 의지'에 의해 니힐리즘적인 세계관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는 니체의 철학이 '힘에의 의지'를 통해 지배하는 철학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광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철학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현대인은 자신을 힘에의 의지의 주체로 간주하지만, 사실은 힘에의 의지의 수단에 불과하다. 현대 기술사회에서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자들만이 인간을 위한 에너지를 내놓도록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마저도 존재자들에 대한 지배를 위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다 발휘하도록 강요당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존재자들에 대한 지배를 위해서 자신의 심신을 혹사한다. - 니체를 읽는다 P192


이 글을 읽으면서 아무 것에도 지배당하지 않는다고,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자부하던 니체와 그가 창조한 '차라투스트라'가 사실은 그 안에 있는 힘의 의지, 다른 말로 하면 '광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저자는 하이데거의 해석이 니체 자체의 사상이 아닌, 파시즘 사상가인 '윙거'의 해석에 영향을 받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이데거가 주로 니체의 '초인사상'과 '권력의 의지'에 관심을 가졌다면, 칼뢰비트는 니체 사상의 '영원회귀'에 관심을 가졌다.(칼 뢰비트의 책도 민음사에서 출간된 책으로 읽었는지만, 그 방대함과 난해함 속에서 길을 잃었다.) 그는 고대에 기독교적 신관과 그리스적 자연관이 대립했었는데, 니체에 의해 후자가 다시 부활한 것으로 본다. 그는 니체의 '영원회귀'사상은 세계의 근거를 신의 존재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게서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뢰비트는 니체의 사상이 공개적인면과 비교적인면에서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한편으로는 니체가 김나지움 학생이었을 때부터 가졌던 "인간의 우연적 존재를 구원하는 것은 세계(자연)인가 인격적 하느님(비자연)인가"라는 고민, 혹은 자유의지와 필연성의 종합에 관한 고민의 연장선상에 있는 사상이다. 그러나 고민에 대한 답변으로서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윤리적이면서도 형이상학적인 명법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공개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반그리스도교적 복음으로서 이교주의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종교의 창립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적인 성격을 갖는다. 다시 말해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단순히 윤리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사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죽음'이 후 우연한 운명만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새로운 종교를 건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 [니첼를 읽는다] P203-4



얼마 전 읽은 아지트 바르키의 [부정본능]이란 책에서는 인간이 동물과 다르게 진화할 수 있는 이유를 현실에서 죽음과 소멸을 부정하고, 현실 이후의 세계를 생각할 수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말을 한다. 이 말은 결국 인간의 존재와 문명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과 그 존재의 근거가 되는 본질에 대한 사유가 인간을 살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이란 존재자체는 자신이 서 있을 수 있는 세계관, 다른 말로 하면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세계와 세계 밖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생을 이어갈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망치의 철학자'라는 별명처럼 모든 것을 부순 니체는 그 텅빈 공간에 혼자 서 있을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의 '영원회귀'사상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부수고 난 뒤에 찾아오는 그 허무함과 고독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세계관이 아니었을까? 비록 니체의 직접적인 생각은 들을 수 없지만, 니체의 해석자들을 통한 니체의 사상을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니체의 저작을 읽는 것과는 다른 또 다른 매력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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