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관 1~3 세트 - 전3권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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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국가나 사회가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꿈틀거리는 생물과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역사는 그 생물이 무언가를 향해 꿈틀거리며 기어가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그 꿈틀거림의 대부분이 좋지 않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스스로 절벽으로 떨어지는 거대한 벌래처럼, 국가나 사회라는 벌래는 역사라는 길을 꿈틀거리며 파국으로 향해 기어 간다. 그럴 때는 아무도 그것을 멈추게 할 수가 없다. 때로는 그것을 멈추게 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그 속도를 더 하게 한다.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은 왜 스스로를 멈추게 할 수 없는 것일까? 왜 자신들 앞에 멸망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역사를 접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콜린 매컬로가 쓴 [마스터 오브 로마] 시리즈는 저자가 20년이란 세월을 걸쳐 지필한 로마 공화정 말기의 110년의 기간을 다루고 있는 역사 소설이다. 당연히 이 소설의 주인공은 우리가 잘 아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이다. 이 소설은 모두 7부작으로 되어 있고, 지난 해 문학동네의 임프린트 출판사인 교유서가에서 1부인 [로마의 일인자]부터 출간되기 시작했다. 1부에서는 로마 안의 내부적인 갈등과 이민족의 침입 속에서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두각을 나타내는 내용을 그리고 있었다. 저자는 역사적 사실에 나름대로 해석을 가하기 위해 마리우스와 술라를 같은 카이사르 가문의 여성과 결혼한 동서간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로인해 마리우스와 술라의 초창기 관계가 협력관계였던 이유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역사라는 스포로 인해 결국 둘은 서로에게 칼을 겨누게 되고, 그로 인해 로마가 피로 물든다는 것은 것을 변치 않는 사실이었다. 2부인 [풀잎관]에서는 그 갈등의 시작과 비극적인 결말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풀잎관]의 초반에 주로 등장하는 인물은 '마리우스'나 '술라'가 아니다. 역사상 로마 공화정의 마지막 개혁자로 알려진 '마루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라는 인물이다. 이미 로마 공화정 안에서의 귀족과 평민, 로마인과 이탈리아인의 갈등은 수습할 수 없는 단계까지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명감을 가지고 마지막 로마의 개혁을 위해 몸부림치다가 '그라쿠스 형제'처럼 암살 당한 인물이 바로 '드루수스'라는 인물이다. 그는 집정관을 지낸 로마 귀족 가문 출신이었지만, 게르만민족과의 전투에 참여해서 로마의 무능을 보았다. 그리고 정치적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다. 평민들에게 토지와 식량을 나누어 주고, 이탈리아 민족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는 길만이 로마 공화정이 유지될 수 있는 길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로 인해 호민관이 되고 개혁을 시작한다.


원로원으로 대표되는 로마 공화적의 보수세력들은 호민관으로 대표되는 개혁자들이 나올 때마다 그들을 암살하거나 그 지지자들을 폭도로 몰아서 학살을 자행했다. 그들은 토지를 나누어 주고, 로마 시민권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먹이를 빼앗긴 짐승처럼 사납게 돌변했다. 이런 원로원의 습성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두루수스는 철저히 원로원과 소통을 하면서 그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기 시작한다.


'이 개혁은 평민들이나 이탈리아인을 위한 개혁이 아니다! 로마와 원로원을 위한 개혁이다! 공화정이 유지되려면 이 개혁은 필수적이다! 이 개혁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


두루수스의 열정과 뛰어난 논변으로 평민들뿐만 아니라 원로원까지 그의 개혁에 동조하는 세력이 생긴다. 그리고 차례로 빈부의 격차를 해소하는 법률들이 통과되고,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인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는 법이 제정되려는 단계에 이른다. 그러나 그 법이 통과되기 전 날 두루수스는 처참하게 암살 당한다. 그리고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예전과 똑같이 체제를 뒤흔드는 반란자들로 몰려 학살 당하거나 추방 당한다.



두루수스의 죽음으로 더 이상 희망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된 이탈리아인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그제서야 상황의 심각함을 깨달은 원로원은 다시금 마리우스를 부른다. 로마를 누미디아와 게르만 민족에게서 구한 마리우스는 이번에도 패전 가능성이 짙었던 전쟁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이미 마리우스는 너무 노쇄해져 있었다. 그로 인해 다시금 뇌졸증으로 쓰러진다.


그런 마리우스를 자리를 매꾼 인물이 술라이다.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권력에 대한 야망을 누르느라 괴로워하던 술라는 기회가 오자 마치 먹이를 향한 달려드는 맹수처럼 이탈리아인에 대한 살육을 시작한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쟁의 승리를 거머쥐고, 드디어 그렇게 바라던 풀잎관을 받고 집정관이 된다.


이 때 기회만 노리던 폰토스가 로마의 영토를 침략하고 점령지에 있던 17만명의 로마인을 학살한다. 원로원은 로마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노쇄한 마리우스 대신 술라를 사령관으로 선택한다. 이제는 70이 넘은 나이와 악화된 건강에도 7번의 집정관이 된다는 예언에 집착하며 자신이 유일한 로마의 영웅이라는 착각에 빠진 마리우스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자신을 대체할 로마의 지휘관은 존재하지 않으며, 폰토스와의 전쟁을 승리로 가져 올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마리우스는 집정관의 권한과 로마 군대의 지휘권을 빼앗아 오기 위해서  술라를 정치적인 코너로 몬다. 힘든 성공 끝에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린 술라는 아무도 하지 못한 선택을 한다. 자신의 군대를 이끌로 로마 시내로 들어 온 것이다. 그리고 로마를 점령하고 학살을 시작한다. 


겨우 생명만 건져서 외국으로 망명한 마리우스는 점점 병세가 심해진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7번째 집정관이 될 거라는 야망을 놓지 못한다. 그리고 그 야망은 그에 안에 있는 복수심과 함께 점점 그를 괴물로 만들어 놓는다. 술라가 폰토스와 전쟁으로 국외로 나가자, 그는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군대를 이끌로 로마로 들어온다. 그리고 술라가 했던 것보다 더 끔찍한 살육을 시작한다.




콜린 매컬로는 역사상 7번의 집정관을 지낸 마리우스의 몰락과정과 술라 안의 권력에 대한 광기가 폭발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리고 있다. 저자는 역사상 7번 집정관을 지낸 마리우스가 오래 전 누미디아 전투에서 이런 예언을 받은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예언에 집착하던 마리우스가 어떻게 그 예언을 이루는지를, 그리고 그 예언이 얼마나 끔찍하게 실현되는지를 묘사한다.


[풀잎관]에서 로마라는 생물은 거대한 벌래가 되어 파국이라는 거대한 절벽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원로원들의 욕심이, 7번의 집정관이 되려는 마리우스의 집착이, 권력을 향한 술라의 광기가 이 모든 것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리고 결국 로마는 스스로를 피로 물들인다. [풀잎관]에는 끊임없는 학살장면이 등장한다. 개혁을 시도하려는 평민들을 학살하는 원로원, 자신들을 억압하는 로마인들을 학살하는 이탈리아인, 그런 이탈리아인에게 보복의 학살을 하는 로마인, 마리우스파를 학살하는 술라, 술라파를 학살하는 마리우스, 그리고 폰토스의 로마인 학살까지... [풀잎관]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다.


왜 그들은 스스로를 멈출 수 없었을까? 이미 막대한 권력과 부를 누리고 있던 로마는 그 정도에서 멈출 수 없었던 것일까? 로마의 원로원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자신들의 공화정이 멸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역사상 아무도 하지 못했던 6번의 집정관을 지낸 마리우스는 70이 넘은 나이에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 놓을 순 없었을까? 정치적 코너에 몰린 술라는 군대를 몰고 로마로 진군하는 것 대신 다른 방법으로 정치적 재기를 노릴 수는 없었을까?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것이 없지만, 누구든 조금만 멈추었다면 로마의 공화정은 더 존속하지 않았을까? 체제가 존속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더라도, 그 체제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학살되는 그 많은 생명들의 책임은 누가 지는 것일까?


역사는 항상 극단적인 대립이 발생하면 결국에는 파국을 부른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스스로를 극단을 몰아붙였고, 결국 로마 공화정은 피에 잠식되어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타협할 수 없는 극단적인 대립들이 발생하고 있다. 자신의 것만을 지키려는 기득권의 아집이, 가진 자를 증오하는 없는 자의 분노가 대화와 타협이라는 것을 무너뜨리고 있다. 어쩌면 우리도 로마라는 생물처럼 절벽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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