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만큼 니체에게 영향을 미친 사람은 음악가인 '바그너'이다. 사실 니체나 바그너 모두 쇼펜하우어의 제자라고 해도 무방할만큼, 한 때는 둘 다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표상의 세계에 갇혀 있기에 고통 속에 있다고 말하고, 그 표상의 세계에서 의지의 세계로 도구 중 하나로 음악을 들었다. 쇼펜하우어는 음악이 표상의 세계에서 객체화 된 육체를 넘어서 내면의 의지를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로 여겼다. 그리고 바그너는 이런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감명을 받아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했다.


같은 스승을 두었으니 둘은 처음부터 통했다. 특히 니체의 저서 [비극의 탄생]은 니체가 거이 바그너에게 바치는 책과 같았다. 니체는 디오니소스적인 인간을 바그너의 음악에서 발견했고, 바그너를 게르만적 이상을 표현하는 음악가로 칭송했었다. 그러나 후기에 이르러 니체에게 쇼펜하우어를 비판한 것처럼 바그너를 비판한다. 니체는 바그너가 대중들의 인기에 영합해서 그들에게 독재자처럼 군림한다고 비난을 했다.


이런 맥락에서 니체는 바그너의 음악을 결코 독장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대중들의 신경을 사로잡는 교묘한 선전술로 파악했다. 바그너의 언어는 대중들의 열광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교묘하게 고안된 극장의 언어이며, 바그너는 대중을 사로잡고 지배하려는 폭군적인 배우라는 것이다. 니체의 바그너 비판은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에 대한 근대 대중의 열광과 복속에 대한 비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바그너의 음악의 대두기가 독일 제국의 도래와 일치하는다는 것은 이 점에서 깊은 의미를 갖는다. 후기 니체는 바그너 음악을 니힐리즘적이고 민족주의적이며 반 유태주의적 음악으로서 데카당스의 전형이라고 본다. (P129-130)


개인적으로 바그너의 음악과 오페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러기에 니체가 바그너의 어떤 부분을 보고 실망을 했는지는 정확히 묘사할 수가 없다. 그러나 니체와 바그너의 결별이 단지 사상적인 면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니체는 바그너의 인간적인 다른 면을 보고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쇼펜하우어에게 실망했던 것처럼... 니체가 추구하고, 본받으려고 했던 인간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리고 과연 그것을 현실에서 발견할 수는 없었을까? 그러기에 그의 초인사상이 더 견고해지지 않았을까? 쇼펜하우어는 바그너를 뛰어넘는 초인... 어쩌면 니체는 자기 신에게도 실망하지 않았을까? 니체 역시 초인이 될 수 없었을테니까... 그렇다면 아무도 기대할 수 없고, 자기 자신에게도 만족할 수 없는 한 인간이 겪었을 고독은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니체의 책들을 읽을 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며, 철학자 니체가 아닌 인간 니체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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