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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 제21회 전격 소설대상 수상작
기타가와 에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놀 / 2016년 1월
평점 :
가끔은 인생이 마치 어린시절 운동회에서 있었던 오래 달리기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을 달리고, 부모님들과 주변 사람들이 응원을 한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체력을 아끼며 달려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지치고,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것 같은 시간이 온다. 그러나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단순히 옆 친구에게 지기 싫다는 생각때문만은 아니다. 나를 보고 있는 부모님과 주변사람들의 기대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서 포기하면 1년 내내 친구들에게 패배자로 놀림을 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를 악물고 달린다.
이 소설에서도 이렇게 열심히 달리고 있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이름은 '아오야마', 일본에서 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힘겹게 회사에 취직을 했다. 그도 회사에 취직을 하기 전에는 자신만만해 했다. 직장생활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우울증을 겪고 있는 선배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은 그러지 않을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었다.
"진짜로 잘난 사람이란 어떤 환경에서나 잘나게 돼 있어. 사회에 나가서 가장 중요한 건 체력도 참을성도 아니야, 머리가 얼마나 잘 돌아가는가 하는 점이지. 어떤 사람과도 일해 나갈 수 있는 적응력이랑. 말하자면 '생존 능력'이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한 거야. (P15)"
그러나 막상 힘겹게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그의 삶은 매일같이 쫓기는 시간의 연속이다. 아침 6시에 기상을 해 전철을 타고 회사에 출근하고, 저녁 9시가 넘어서 퇴근을 하는 생활을 일주일간 반복을 한다. 그리고 일요일이면 그저 쓰러져 잠만 잔다. 그럼에도 상사의 잔소리와 일의 압박은 점점 커져가고, 심지어는 퇴근 시간이나 일요일 휴식시간까지 일에 대한 제촉전화가 걸려 온다.
하지만 아오야마에게 사직이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여기까지 너무나 힘들게 왔기에, 그리고 여기서 관두면 다시는 직장을 못 잡을 것 같다는 압박감에 그는 계속해서 달려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놓고 싶다는 유혹에 지하철에서 난간을 바라본다. 그 때 그를 아는채 하는 '야마모토'를 만난다.
자신의 초등학교 친구라고 말하는 야마모토는 아오야마를 만나 너무 반가워하지만, 아오야마는 그런 야마모토가 기억에 없다. 간신히 초등학교 친구에게 연락을 해 오사카로 전학을 간 친구 중에 야마모토라는 친구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아오야마는 자주 야마모토를 만나 회사생활에 대한 고충을 이야기하고 그를 통해 위안을 받는다.
조금 나아질 것 같던 회사생활은 그의 실수로 인해 거래처를 잃을 뻔한 위기에 처한 이후부터 점점 더 최악을 향해 나간다. 직장 상사의 호통은 더 거세지고, 주변의 따돌림도 심해진다. 더 결정적인 것 자신의 실수로 알았던 것이 사실은 자신의 거래처를 빼앗기 위한 직장선배의 속임수였다는 것이다. 막다른 골목까지 이른 아오야마는 힘들게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힘겹게 이야기를 꺼낸다.
"만약에...... 만약에 말인데,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면 어떡할 거야?"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어머나, 뭐 어떠냐?"
그러면서 힘들면 돌아오라고 말한다.
어머니와 야마모토의 위로와 도움으로 그는 결국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물론 책의 후반에는 야마모토의 정체?가 밝혀지지만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한다.
나 역시 젊은 시절에 아오야마처럼 주변에서 압박감으로 인해 무너지는 사람들을 보면 정신력이 약하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요사이는 점점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한계에 직접적으로 대면할 때가 많다. 예전에는 몸을 혹사하고 정신적으로 압박을 당해도 하룻밤 자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회복되었다. 그러나 요사이는 점점 정신적인 압박에 몸이 반응을 한다. 아마 그 때도 몸에 표시만 나지 않을 뿐 이미 속에서는 압박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자주 인간의 '한계'라는 것을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한계'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훈련이나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 조절을 할 수 있지만, 누구나 결국 한계라는 것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한계까지 자신과 타인을 몰아붙인다.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몸과 마음이 병들어간다. 어리시절은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고, 그저 살기 위해 달리는 무의미한 삶을 살게 된다. 모두들 다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자조하면서...
이 책을 읽으며 가족과 친구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다. 아오야마는 한계에 몰린 상황에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한다. 더 이상 달릴 수 없다거나 한계에 이르렀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아오야마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내려 오라고 말한다.
나 역시 가끔 사회 생활에 힘들 때거나 일을 쉴 때면 오랫동안 고향집에서 쉬고 온 적이 있었다. 남들은 비난을 해도 어머니만은 항상 반겨주시며 쉬고 싶을 만큼 쉬고 가라고 말한다. 만약 우리에게 그런 어머니나 가족, 친구가 한 명만 있어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아오야마에게는 그런 어머니와 야마모토라는 친구가 있었다.
가끔 자신이나 타인을 한계상황까지 몰아 붙이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은 충분히 인간은 그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그렇게 자신과 남을 몰아 붙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인간은 없다. 만약 내가 그 한계를 뛰었다면,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닐 것이다. 예전의 나를 버리면서까지 과연 그 한계를 뛰어넘을만한 가치가 있을까? 그러기보다는 잠시 내려놓고 쉬면서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결정은 어차피 자신의 몫일 것이다. 아오야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