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3 - 승자의 혼미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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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는 워낙 오랫동안 그 명성을 듣고 있었기에 항상 읽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15권이라는 방대한 분량과 저자의 역사시각에 대한 비판들이 워낙 많아서 읽기가 망설여졌다. 최근에 콜린 멕킬로가 쓴 [마스터스 오브 로마]를 읽으며 다시금 [로마인 이야기]가 생각났다. 과연 시오노 나나미는 마리우스와 술라, 그리고 폼페이우스를 거쳐 시저로 이어지는 로마 공화정 말기를 어떤 시각에서 보고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그로인해서 [로마인 이야기]를 3권부터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3권의 제목을 '승자의 혼미'이다. 로마가 카르타고와의 3차 전투를 치룬 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정권을 잡기 전까지의 혼란한 상황을 다루고 있다. 로마가 카르타고와의 전쟁 후 혼란을 겪게 된 것 가장 큰 이유 두 가지는 빈부의 격차와 로마와 이탈리아인의 갈등이다.


첫 번째의 빈부격차는 카르타고 전쟁 이후 극대화되기 시작했다. 로마는 보통 상비군보다는 유사시 일반 평민들이 지원을 하는 징집제였다. 일정한 이상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군장비를 준비해서 군대에 복무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카르타고 전쟁 이후 귀족과 기사계급들의 부의 확대로 평민들이 재산이 줄어들고, 결국에는 군대에 복무할 수 있는 일정한 재산 이상을 가진 평민들이 사라지게 되었다. 로마는 계속해서 이 재산의 기준을 낮추었지만, 결국에는 감당할 수 없어서 무산계급들까지 군인으로 징집해야 했다. 이런 상황은 로마 군대의 질적인 수준 저하로 나타났다. 카르타고 전쟁 이후에도 에스파냐와 시리아에서 계속해서 반란이 일어났는데 진압을 해야 할 로마 군대가 오히려 패배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 혼란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의 로마와 이탈리아인의 갈등은 로마 시민권의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보통 로마는 로마사람들에게는 로마시민권을, 그리고 주변 이탈리아 도시국가에게는 라티움시민권을 주었다. (콜린 맥컬로의 책들에서는 라티움시민권 조차도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준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로마시민권에게는 투표권과 세금 면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권한이 있었고, 라티움 시민권자들은 병역과 세금의 의무를 지면서도 해택은 누리지 못했다. 그리고 인해 로마의 도시 국가들의 불만이 커지고 로마연합의 붕괴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두 가지 문제점을 파악하고 처음 개혁을 시도한 사람이 그라쿠스 형제이다. 그들은 형제가 차례로 호민권에 당선이 되면서 빈부격차 해소와 로마시민권의 확대를 주장했었다. 그러나 보수집단인 원로원의 반대로 결국 두 명 모두 다 암살 당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로마는 더 큰 혼란을 맞게 되었다.

 


 

이런 혼란기에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등장한다. 이탈리아 출신이었던 그는 천재적인 군사 지략가로서 서쪽 에스파냐의 반란, 남쪽 북아프리카에 있는 누미디아 왕국과의 전쟁, 북쪽에서 내려오는 게르만 민족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막아낸다. 로마는 보수층인 원로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사적인 위협에 처할 때마다 마리우스를 찾고, 그 결과 마리우스는 로마 역사상 누구도 불가능했던 7번의 집정관을 역임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개혁을 단행에, 무산자들에게도 군대의 의무를 지게 하는 대신 토지를 나누어 줌으로 빈부의 격차를 해소하는 법률을 만든다. 하지만 그는 로마와 이탈리아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그 결과 이탈리아의 반란이 일어난다.


이 때 등장한 사람이 루키우스 코넬리우스 술라이다. 그는 원래 마리우스의 부관이였으나 마리우스와는 태생적으로 반대인 사람이었다. 마리우스가 이탈리아인으로 평민 출신이었다면 술라는 뼈속 깊이까지 '파트라키(로마의 정통 귀족)'였다. 카리스마와 지략에서 남달랐던 술라는 이탈리아 남부 전선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다.(북쪽에서는 마리우스가 있었지만, 이미 노쇄했기에 별 활약을 펼치지 못한다. )


이탈리아 반란이 평정된 후 로마시민권의 확대문제와 서거권 문제로 마리우스와 술라가 갈등을 하게 된다. 마리우스는 이탈리아 사람이기에 로마시민권 확대와 서거권 확대에 긍정적이었지만, 술라는 귀족출신의 보수층이었기에 이에 반대한다. 그 결과 마리우스가 술라를 축출하고, 이에 반대하여 술라는 처음으로 로마 안으로 군대를 들여보내 마리우스 일파를 학살한다.(개인적으로 그동안 루비콘 강을 건너 처음 로마로 군대를 들여보낸 사람을 울리우스 케이사르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술라가 소아시아의 폰토스 왕국을 정벌하러 간 사이 국외로 도망갔던 마리우스가 칸나오 다시 정권을 잡고, 똑같은 방식으로 술라 일파를 학살한다. 그럼에도 술라는 흔들림없이 천재적인 전략으로 2만 5천 정도의 병력으로 10만이 넘는 폰투스의 대군을 격파하고, 다시 로마로 돌아와 마리우스와 칸나를 제거한다.(이 때 이미 마리우스는 죽은 이후였다.) 그 후 술라의 독재가 이루어진다. 저자는 술라를 독재자로 묘사하기보다는 그가 로마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인물로 본다. 그 증거로 그가 로마의 원로원의 권한을 확실히 한 후 독재자의 권한을 내려 놓은 것을 든다.


술라가 죽은 후 그의 부장인 루클루스와 폼페이우스가 대립하지만, 결국 젊은 폼페이우스의 승리로 끝난다. 폼페이우스는 젊은 나이에 군대로 원로원을 압박해 집정관이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저자는 원로원 체제를 공고히 하려고 했던 술라체제는 술라의 후계자들로 인해 막을 내렸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며 어느 사회든 보수층과 진보층의 대립이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대립은 대부분 부의 분배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부의 균형이 너무나 깨어지고, 그로 인해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극대화되면 어느 사회이건 결국의 파국에 이를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당시 로마의 원로원을 비롯한 귀족계급들은 "세계는 이탈리아가 지배하고, 이탈리아는 로마가 지배하고, 로마는 원로원이 지배한다!"는 계층적 지배사상이 강했다. 로마제국의 확대로 더 이상 이 체제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사방에서 문제점이 드러나고 반란이 일어났지만, 보수층들은 수많은 개혁요구에도 이를 반대하며 끝내 체제를 지키려 했다. 그리고 그 체제의 옹호자가 바로 술라이다. 저자가 술라를 독재자로 보지 않는 이유도 이와같다. 그는 독재를 위해 독재를 한 것이 아니라, 체제를 지키기 위해 독재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술라 이후 이런 체제는 급속히 붕괴되고, 다시금 폼페이스나 카이사르같은 군사 독재자가 등장하게 하며, 결국은 역사상 보기 드문 고대 공화정정치가 막을 내리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이런 체제를 꼭 옹호하는 것만은 아니다. 저자는 체제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체제가 갖는 강점은 누가 실행자가 되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성과가 보장된다는 데 있다. 반대로 체제가 갖는 단점은, 그럭저럭 괜찮은 정도의 성과밖에 거둘 수 없는 현실이 패배로 이어지게 되는 경우, 공동체가 입을 수밖에 없는 실질적인 피해가 너무 크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체제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은 평상시뿐이고, 비상시에는 아무리 체제에 충실하고 싶어도 현실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지기 쉽다. 그렇기 대문에 유연성을 갖는 체제 확립이 요구되는 것이지만, 이것처럼 어려운 일도 드물다. 예외는 또 다른 에외를 부르는 숙명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P238)


군국주의를 옹호하고, 힘의 논리를 지지한다는 비판으로 인해 시오노 나나미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3권만 읽어보았을 때는 로마 역사와 사회 문제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시각에는 놀라울 뿐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콜린 메컬로의 [마스터 오브 로마]와 비교했을 때 로마 체제의 찬양과 힘과 권력의 지배를 당연시 여기는 분위기는 콜린 메컬로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둘 다 이런 부분에서 비판을 당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비판해도 불구하고 로마공화정의 붕괴과정을 보면서, 지금 세계화를 통해 극단적인 빈부격차로 홍역을 앓고 있는 우리사회가 깨달아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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