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생각과의 대화 - 내 영혼에 조용한 기쁨을 선사해준
이하준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이하준 교수의 [오래된 생각과의 대화]라는 책을 읽는 내내 한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오래 전에 보았던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한 [매트리스]라는 영화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레오는 [매트리스]라는 세계 속에 갇혀 있으며, 자신이 보는 세계가 '실재'라고 믿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레오는 자신이 '실재'라고 믿는 세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가상의 매트리스에서 빠져 나와 진정한 실재의 세계에서 눈을 뜬다. 영화의 화면이 화려한 도시의 세계에서 갑자기 어둡고 음침한 인체 공장같은 곳으로 전환되며, 그 곳에서 눈을 뜨는 레오를 보여 주었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도 모두 '매트리스' 속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존재론적으로 실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냥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말해주는 것이 전부 진리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성공'과 '부'를 이야기 하니, 나도 그 '성공'과 '부'를 향해 쫓아간다. 그러다가 가끔 삶에서 의문점이 생기면 유명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지식검색란에서 질문을 해 본다. 현실의 답만을 제시할 뿐, 우리가 진정 알아야 할 깊이 있는 답은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점점 그런 것들이 진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는 현대문명이 만든 매트리스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저자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읽었던 고전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이렇게 말하면 요즘 유행하는 인문학에 관련된 많은 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혹은 고전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나 시험을 준비할 때 인문학에 대한 얄팍한 지식을 얻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고전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저자가 고전을 읽으며 그 고전 속에서 치열하게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해 고민했던 과정들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책의 첫 부분에서 '나'를 찾기 위해 고전들과 씨름했던 과정들을 담고 있다. 우리가 진정한 '나'를 찾으려면 세상과 사람들이 말해 주는 '나'의 모습이 아니라, 내 자신 스스로가 나의 모습을 볼 수가 있어야 한다. 저자는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이란 고전을 소개한다. 이 책은 근대철학의 시작과 같은 '코키도 에르그 숨(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담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악마가 존재하고, 자신이 그 악마가 만든 허상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마치 매트리스 영화와 같은 상황) 그렇다면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고, 아무 것도 믿을 수가 없게 된다. 이 과정에서 데카르트는 절대 의심할 수 없는 한 가지, 생각하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데카르트는 그냥 눈에 보이는 것이나 타인이 말하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믿은 것이 아니라, 의심을 통해 의심할 수 없는 것을 진리로 믿었다. 저자는 진정한 '나'라는 존재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비슷한 고전으로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언급한다. 이 책에서 니체는 인간의 정신의 단계를 낙타-사자-어린아이의 세 단계로 제시한다. 낙타는 세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단계이고, 사자는 세상에 대항하는 단계이고, 마지막 어린 아이는 자신만의 놀이를 만드는 단계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진정한 '초인(위버맨쉬)'이 탄생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세상이나 타인이 가르침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 보다는 자신 스스로가 자신을 만들어 가라고 말을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주체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흔히 '나'라는 존재를 타인과의 관계에서 규정한다. 그러기에 타인의 시선에 예민하고,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나를 바라보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실패자라고 부르면, 나 역시 나를 실패자로 인식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다. 바쁘고 고단한 세상살이에 그 대답을 미룰 수는 있어도, 살아 있는한 결코 도망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이다. 이 질문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의 시작, 즉 자기 관찰과 자기 탐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 준엄한 질문에 대답하려면 내면에서 우리를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면의 여행이라는 과정을 통해 본래적인 자신이 누구인지를 탐구해야 하는 것이다. (P89)



책의 중반부는 '사랑'과 '관계'에 대한 고전들을 언급한다. 우리는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나를 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면서 나를 없애고 가정의 일부가 되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고전들을 인용하며 진정한 사랑은 서로 독립된 인격체로 존재하는 것이고,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그런 독립된 인격체로서 계약을 맺는 것이며, 자녀를 생산하는 것은 이런 독립된 인격체를 생산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헤겔의 [법철학]이란 책을 통해 가정은 정신적 통일을 통해 '인륜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인륜성'이란 자유가 실현되는 것을 말한다. 즉 가족이란 세계정신이 가지고 있는 자유로운 정신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헤겔이 말하는 인륜성이란 무엇일까? 인륜성은 가기 자신을 실현하는 과정으로서, 정신이 타자와의 관계성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말하며, 자유가 실현되는 장소를 의미한다. 인륭성은 관계를 전제로 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주관적 정신이 아니라 개관적 정신의 형식으로서 가족, 사회, 국가에서 드러난다.(P120)


저자는 영화 [카미유 클로텔]을 예로 들며 자유적인 존재가 종속적인 사랑으로 인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언급한다. 결국 상대를 사랑한다면서 그 상대를 자유로운 인격체가 아닌 종속적인 인격체로 만들 때 그것은 상대를 파괴하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의 가정에 이런 부분이 많으며, 특히 자녀 양육에서도 이런 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삶'에 대한 고전들을 언급한다. 저자는 헤겔과 칸트가 언급한 '이성의 간계(cunning of reason)를 통해 인생이 우리를 속인다고 말한다. 이 말은 자신의 인생이 자신이 계획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인생은 노력한 부분에서는 실패를 하게 되고, 노력하지 않는 부분에서는 엉뚱하게 성공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순간 뒤바뀌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이성의 간계에 흔들리지 않기 위하여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갈 것을 제시한다.


우리 삶의 도처에도 루소의 경우와 같이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미묘함, 삶의 역리가 숨어 있따. '행운 없음'에 대한 체념적 태도가 당신을 우울하게 한다면, 그 체염은 가벼운 피해망상으로 번질 수 있다. 그런 비생산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 설령 당신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은 일에 대한 결과가 없을 때에도, 절망해서는 안된다. 분노와 절망의 시간은 짧을 수록 좋다. 그리고 부당한 방법과 기술에 눈을 돌리지 말고 당신이 왔던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 적어도 당신을 당신답게 했던 가치를 부정하지는 말아야 한다. 영혼을 파는 행위를 함으로써, 그리고 당신의 영혼을 위탁함으로써 당신의 영혼은 죽어간다. (P242)



요즘들어 뉴스와 신문을 보다보면 도대체 무엇인 사실이고, 무엇인 거짓인지 헛갈릴 때가 너무 많다. 매스컴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들 자신의 주장을 절대진리처럼 이야기 하고, 사람들은 그곳에 맹신하며 따라간다. 그러다가 다음날이면 그 주장이 허위임이 드러나고, 그러면 사람들은 또 반대쪽으로 몰려 간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불안해하지 않는 이유는 그렇게 몰려 다니는 사람들 중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며 삶을 치열하게 살기를 거부하고, 많은 사람들이 흘러가는 쪽으로 쉽게 몸을 맡기며 사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먼저는 저자가 읽은 방대한 고전의 양에 감탄을 했고, 다음은 어려운 고전을 영화 등을 예로 들며 쉽게 이야기하는 부분에 감탄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책의 가장 뛰어난 부분은 고전을 통해 남이 말하는 진리가 아닌, 자신이 발견하는 진리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몸부림치는 저자의 글들이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발견하는 진리만이 진정한 자신의 진리가 되는 것일테니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을벚꽃 2016-02-10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blog.naver.com/isaiah423/220623104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