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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자오선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6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코맥 매카시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그의 작품 [로드]가 영화로 개봉되던 시기에 원작을 읽게 되면서였다.
핵전쟁 이후 멸망한 잿빛 세상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걸어간다.
아무런 희망도 없고, 신도 없다.
오직 끔찍한 살육과 약탈, 그리고 불탄 잿빛 세상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은 잿빛 세상을 오직 살기 위해서만 걸어간다.
이 소설을 읽고 암울한 묵시록적인 분위기를 너무도 담담히 그려내는 작가의 기교에 반했다.
그리고 코맥 매카시라는 작가에 대해서, 그의 작품에 대해서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핏빛자오선]은 코맥 매카시가 1985년도에 발표한 소설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코맥 매카시가 비로서 대중작가로서의 발을 내딛었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로드]에 비해서는 상당히 읽기 어려운
편에 속했다.
[로드]를 거이 하루만에 읽은 반면, [핏빛자오선]은 거이 나흘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분량이 방대하기도 하고, 문체가 읽기 쉬운 편은 아니다.
또 그의 특유의 배경과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 담담한 사실적인 문체로 인해 이야기의 진행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소설은 후에 발표되는 [국경을 넘어서]와 [평원의 도시] [모두 다 이쁜 말들]과 같이 서부시대의 국경을 배경으로 한다.
이 소설의 배경인 1840년대는 미국의 서부 켈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던 시기여서 미국의 영토가 서부로 팽창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미국 서부에는 대부분 인디어들이 있었고, 남부의 텍사스의 방대한 영토는 멕시코 소유였다.
텍사스에 미국인들이 정착하면서 멕시코와 국경 분쟁이 생겼고, 멕시코와의 전쟁 이후 텍사스는 자치국가가 되었다가 후에 미국으로
편입된다.
그러나 그 후에서 미국과 멕시코와의 작은 분쟁들은 계속되고, 일부의 약탈자들은 애국주의라는 이름 아래 멕시코까지 넘어가 약탈을
한다.
또한 멕시코에서도 인디언들을 학살하기 위해 미국 사냥꾼들을 불러 인디어의 머리 가죽을 벗겨오게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소년'은 미국 동부 테네시에서 가출을 한 후 텍사스까지 흘러 들어간다.
그는 그 곳에서 '판사'라 불리는 '홀든'이라는 인물과 '토드빈'이라 불리는 인물을 만난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일 수도 있는 '판사'라는 인물은 신의 존재나 도덕 등을 믿지 않고, 살육과 피만이 진리라고 믿는
사람이다.
후에 소년은 멕시코를 약탈 하는 군대에 들어갔다가 인디언의 습격으로 겨우 목숨만 건져서 멕시코 치와와 감옥에 갇힌다.
그는 그 곳에서 다시 토드빈을 만나고, 토드빈의 주선으로 글랜턴과 판사가 이끄는 인디어 사냥꾼 무리에 함류하게 된다.
그 후 이 소설은 대부분은 소년이 함류한 글래턴의 군대가 멕시코 북부 지역을 휩쓸고 다니면서 인디언이나 일반 멕시코인들을 학살한
잔혹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가운데서도 저자의 특유의 매혹적인 문체로 주변의 배경이나 상황을 묘사한다.
그들이 나아가는 동안 동녘 태양이 창백한 빛줄기를 뿜어내다 느닷없이 핏빛을 뚝뚝 흘리며 평원을 불태웠다. 땅이 하늘로
빨려드는 삼라만상의 끝에서 태양은 미지의 테두리가 걷힐 때까지 불은 남근처럼 불쑥 솟구쳐 단호히 버티고 앉아 그들 뒤에서 악의로 약동했다.
자잘한 돌의 그림자가 연필처럼 가느다랗게 모래 위로 늘어지고, 사람과 말의 형체가 지난밤이 떨구고 간 가닥인 양 혹은 다가올 밤으로 이끌 촉가인
양 앞으로 길게 서렸다. 모자 아래 얼굴을 지우고 고개 숙인 채 나아가는 모습은 행군 도중 깜빡 잠든 군대 같았다. 아침나절 또 한 사람이
죽었다. 마차의 식량 자루를 더럽히며 누워 있던 그를 묻고서 부대는 다시 길을 나섰다.(P 67)
글랜턴의 부대는 인디언의 머리 가죽을 팔기 위해 전투적인 아파치뿐만 아니라, 선량한 인디언들, 심지어 노인과 여자, 아이까지 학살하고
그들의 머리가죽을 벗긴다.
또한 술집마다 들어가 멕시코인과 싸움을 하고, 그들을 학살해 그들의 머리가죽도 인디어 머리가죽처럼 벗겨서 팔아버린다.
이런 잔인한 과정을 저자는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고 마치 남일인듯 사실적으로 담담히 묘사할 뿐이다.
셋째 날 밤 그들은 1.6킬로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사막에서 타오르는 적의 모닥불을 바라보며 폐허의 벽 속에 웅크렸다.
판사는 모닥불가에 그 아파치 아이와 같이 앉아 있었다. 아이는 검은 딸기 같은 눈으로 모든 것을 지켜 보았다. 몇몇은 아이를 놀리며 웃어 땠고,
육포를 주기도 했다. 아이는 고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진지한 눈으로 사람들을 주시했다. 그들은 아이에게 담요를 덮어 주었다. 아침에 군인들이 말에
안장을 얹는 동안 판사는 아이를 한쪽 무릎에 앉히고 얼러 댔다. 토드빈은 안장을 들고 지나가며 그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10분 후 말을 끌고
그 자리에 오니 아니는 머리 가죽이 벗겨진 채 죽어 있었다. (P219)
글래턴의 군대는 점점 더 잔혹해지고, 글래턴을 비롯한 군인들은 점점 살육의 광기에 사로잡혀 간다.
마치 지옥으로 향하는 묵시록의 군대처럼 저자는 그들의 암울한 미래를 암시적으로 그린다.
그들은 밤새 사와로 선인장 숲을 통과해 서쪽 구릉지로 향했다. 하늘이 온통 구름으로 뒤덮이고, 세로로 홈이 팬 선인장 기둥이
마치 폐허가 되어 버린 광대한 신진처럼 엄숙하고도 질서정연하게 어둠을 수놓았다. 나직이 울리는 올빼미 울음소리 말고는 덩벗이 고요했다. 촐라
선인장이 빽빽한 지대에서는 선인장 가시가 말에게 들러 붙어 말발굽을 뚫고 뼈까지 침투하기도 했다. 바람이 언덕을 타고 불어오고, 끝도 없이
이어진 능선을 따라 야생 독사의 노래가 번져 갔다. 행군을 계속해 나가면서 분위기는 점점 황량해졌고, 급기야 물도
떨어졌다.(P316)
결국 부대는 켈리포니아 경계의 콜로라도 강에 이르러 나룻배를 약탈하고 버려진 요새에 머문다.
글랜턴과 판사, 부대원들은 주변 인디언과 멕시코인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여인들을 성적 노리게로 삼으며 광기를 이어간다.
그러나 어느날 밤 보복에 나서 유마 인디언의 습격으로 글랜턴과 대부분의 부대원들이 죽고, 판사와 소년, 토드빈과 전진 신부인 토빈만이
살아남는다.
마지막 생존을 위해 판사와 소년은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소년은 겨우 판사의 손에서 빠져나온다.
오랜 시절이 지나 소년은 어느 술집에서 우연히 판사를 만난다.
그때 판사는 자신의 니체적 인간관을 이야기 한다.
그는 인생을 춤으로 보고, 그 춤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인생의 잔혹함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 하나는 알지. 전쟁이 불명예가 되고 전쟁의 고귀함이 의문시 된다면 피의 신성함을 아는 명예로운 이들은 무도회에서 쫓겨날
거네. 춤이야말로 전사의 권리기이게 결국 무도회는 가짜 무도회가 되고, 춤을 추는 이도 가짜가 되는 거지. 하지만 언제나 진정한 춤을 추능 니가
한 명 정도는 있다네. 누군지 아나? - 중략 - 전쟁에 피에 자기 자신을 오롯이 바친 사람만이, 저 밑바닥으로 내려가 생생한 공포를 맛보고
급기야 참된 영혼으로 공포와 이야기 나누는 법을 배운 자만이 진정한 춤을 출 수
있다네.(P427)
비록 두 편밖에 코맥 매카시의 작품을 읽지 않았지만, 두 번째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의 작품세계가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코맥 매카시는 사람들이 종교나 신앙이 없어지고, 도덕이 없어지고, 오로지 생존만이 존재하는 세상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 세상과 인간의 실체라고 말하려고 한다.
아마 그것이 그가 살아왔고, 느꼈던 세상이었을 것이다.
10살짜리 아들을 바라보며 썼다는 [로드]와 비교를 해 보니, 그나마 [로드]를 쓸 당시의 저자의 심경이 예전보다는 부드러워졌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코맥 매카시의 작품은 점점 생존경쟁이 치열해 지는 현대인의 가슴을 잔혹하게 위로해 주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