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 게임 헝거 게임 시리즈 1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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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사는 것이 영화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루 하루 숨쉬는 것이,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남을 넘어서야 하는 현실이,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쓰러져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면, 이것이 마치 현실이 아닌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장르소설, 특히 SF소설을 즐겨 읽지만 장르소설들은 분명히 한계가 있다.

가장 큰 한계는 현실과의 괴리감이다.

현실는 소설에서 등장하는 스파이나, 총기난사, 미래적 무기나 유전자적 괴물 등이 없다.

반면 이런 것을 제거하고 현실과 비슷하게 장르소설을 쓴 다면 아마 그 소설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과는 다른 미래적 세계를 그리면서도 현실에서 느끼는 그 잔혹감을 그대로 소설에 담고 있는 작품이 바로 [헝거게임]이라는 책이다.

 

사실 영화나 드라마를 본 후에 그 원작을 거이 보지 않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일단 영화나 드라마도 스토리를 알게 되면 원작을 읽을 때 몰입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오래 전에 헝거게임 세트를 구입하고도 읽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전 비밀독서단이란 프로그램에서 이 책을 다루는 것을 보고 문뜩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다.

 

 

 

이 소설은 줄거리를 알고 있어도 읽는데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소설은 영화에서 담고 있지 못한 주인공의 심리묘사와 저자의 메시지가 더 분명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철저하게 주인공 캣니스의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어 간다.

그러기에 헝거게임이란 자인한 세계 속에 처한 주인공의 심리가 확연히 드러난다.

먼저 소설은 추첨 날 눈을 뜬 캣니스의 시점에서 자신이 처한 가난함과 헝거게임의 잔혹함을 보여주고 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침대 옆자리가 싸늘하다. 프림의 체온을 찾아 손을 뻗어보지만, 내 손가락에 와 닿은 것은 거친 무명 침대보뿐이다. 프림은 악몽을 꾸고 엄마 옆으로 기어든 모양이다. 그럴 수밖에, 오늘은 '추첨'하는 날이니까. (P6)

 

캣니스는 미래사회의 판엠이라는 독재 국가에 살고 있다.

판엠은 캣피톨이라는 도시가 12개의 구역을 무력으로 다스리고 있는 독재국가이다.

캣피톨 외의 대부분의 도시는 가난하고 특히 캣니스가 살고 있는 탄광이 대부분인 12구역은 특히 가난하다.

오래 전 구역들이 연합해 캣피톨에 반란을 일으켰고, 그 판란은 캣피톨에 의해 진압되었다.

그리고 캣피톨은 다른 구역들에게 복종과 두려움을 주기 위해 매 년 각 구역에서 남녀 두 명씩을 추첨해서 '헝거게임'이라는 잔혹한 게임을 연다.

헝거게임은 24명의 남녀가 단 한 명만 살아남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다.

12살은 청소년들은 헝거게임의 추첨 대상이 되고, 한 살이 늘어날 때마다 자신의 추첨 표를 한 장씩 더 넣는다.

그러나 캣니스처럼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배급표를 받기 위해 한 장씩을 더 추가하게 된다.

결국 공정한 확률게임 같지만 사실은 가난한 자에게 불리한 확률게임이다.

마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캣니스는 아버지가 탄광사고로 죽은 후부터 숲에서 불법으로 사냥을 하면서 어머니와 동생 프림을 부양하고 있다.

사냥을 하며 숲 속에서 만난 게일이라는 남자와는 사랑하는 사이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미래란 없다.

하루 하루 현실을 버텨내는 것만이 지금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추첨날 동생 프림이 뽑히고, 캣니스는 프림 대신 자원한다.

그리고 남자로는 오래 전 굶주린 캣니스에 빵을 주었던 피타라는 아이가 뽑힌다.

캣니스는 피타와 함께 헝거게임을 준비하면서 끊임없는 갈등을 느낀다.

그녀는 피타가 헝거게임에서 오직 승리만을 바라며, 타인을 죽이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기를 은근히 바란다.

그것이 그녀가 그를 죽이기 편할테니까......

 

그런 생각에 나는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착한 피타 멜라크는 나에게 못된 피타 멜라크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다. 착한 사람들은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뿌리를 내리는 성향이 있따. 피타가 내게 그런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가는 곳에서는, 그래서는 안 돼.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순간부터 빵집 아들과 엮이는 일을 최소화해야겠다고 결심한다.(P53)

 

하지만 피타는 계속해서 캣니스를 도와주고, 심지어는 사랑까지 배푼다.

또한 피타는 자신히 단순히 헝거게임에서 살기 위해 버둥치는 남과 똑같은 존재가 되기를 거부한다.

헝거게임 전 날 피터는 캣니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니, 때가 되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죽일 거라는 걸 의심하지는 않아. 싸우지 않고 죽어 버리리지는 않을 거야. 그저 내가 계속 바라고 있는 것은....... 캣피톨이 나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줄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뿐이다. 나는 그저 헝거에임의 작은 한 부분이 아니고, 그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P148)

 

현실이 버겁고, 살아남아 엄마와 동생을 돌보는 것이 전부인 캣니스에게 이런 것들은 모두 허상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넌 그냥 한 부분이잖아. 우리 모두 마찬가지지. 헝거 게임은 그렇게 굴러가는 거잖아.

 

 

헝거게임이 시작되고, 잔혹한 게임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죽여간다.

우승을 위해 헝거게임에 자원한 프로들은 한 패가 되어서 약한 자들은 사냥한다.

그리고 그 속에 피타도 들어가 있다.

캣니스는 처음에는 피타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그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피타는 캣니스를 구하고,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

피타의 부상은 점점 더 심해지고, 먹을 것은 떨어지고, 진행자들은 조작으로 추위와 더위의 극단적인 환경이 만들어진다.

이런 환경에서 캣니스와 피타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후원자들로 인해 식량과 약품을 지원받는 것이다.

헝거게임은 모든 과정이 생중계되고 있고, 사람들은 그 게임에 배팅을 하며, 후원자들은 각자가 후원하는 사람에게 거금을 내고 약품이나 식량을 지원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후원자들과 시청자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캣니스와 피타에게서 원하는 모습은 로맨스이다.

결국 캣니스는 피타를 살리기 위해 그에게 키스를 하며 연인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가 캣니스는 자신의 마음과 사랑이 진짜인지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스스로 알지 못하게 된다.

 

이 부분을 보며 마치 요즘 유행하고 있는 가상 결혼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예인들 역시 대중이 원하는 모습으로 거짓으로 연애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 역시 어떤 것이 자신의 모습인지 헛갈려 하고 있을 것이다.

단지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모든 개인은 살아남기 위해 결국 타인이 원하는 모습대로 연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는 사이에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잃어가고 있을지도....

 

1편에서 결국 캣니스와 피터는 공동우승을 한다.

그러나 그 우승 역시 캐피톨이 만든 헝거게임이라는 잔혹한 현실 속의 한 부분밖에 되지 못한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사는 사회 역시 하나의 헝거게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화살이니 칼로 상대를 죽이는 게임은 아니지만......

어쩌면 더 잔혹한 방법으로 내가 살아남기 위해 상대방을 죽여야 하는......

그리고 그 게임의 승자나 패자 모두 사회가 만든 잔혹한 게임 속에서 하나의 부속품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는 생각이든다.

그 속에서 캣니스와 피터처럼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처절함이 필요할 것이다.

과연 우리 청소년들에게 이런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미국보다도 더 잔혹한 헝거게임 속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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