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다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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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도시인들에게는 친구와 같은 소설가이다.

현대인들은 도시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살아간다.

정신없는 일들과 많은 친구들이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의 내면 속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하루키는 이런 외로움을 도시적인 감성으로 위로해 준다.

특히 그의 소설 [애프터 다크]는 이런 하루키의 도시적인 감성이 너무나 잘 표현되어 있는 소설이다.


[애프터 다크]의 시간적인 배경은 자정이 가까운 시간무렵부터 시작해서 그 다음날 해가 뜨는 아침까지이다.

배경은 일본의 어느 도시의 변두리 정도가 될 것 같다.

소설은 주로 두 자매인 마리와 에리를 마치 카메라로 보는 것처럼 그녀들의 하루 밤의 일과를 담담하게 묘사한다.

일과라고 하지만 사실 소설의 줄거리가 될만한 일과는 아니다.


동생 마리는 자정 무렵 데니스라는 레스토랑에서 책을 읽다가 언니의 동창인 다카하시를 만난다.

그리고 그의 소개로 근처 러브호텔의 지배인인 가오루의 일을 돕는다.

폭행당한 중국인 창녀의 통역을 돕는 일이다.

그 후 다시 다카하시를 만나 공원으로 산책을 가고 도둑고양이 밥도 준다.

그렇게 어찌보면 별 일 아닌 일들로 새벽까지의 시간을 보낸다.


반면 언니 에리의 밤은 마리의 밤과는 대조적이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자고있다.

그런데 그녀의 자는 모습이 무언가 이상하다.

마치 무언가 빼앗긴 사람처럼 넋을 잃고 자고 있다.

그녀가 자고 있는 방에서는 텔레비젼이 켜져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녀의 방은 텅 비고 그녀는 텔레비젼 안에 갇힌다.


하루키의 다른 소설들처럼 이 소설 역시 하루키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쉽게 감히 잡히지 않는다.

다만 하루키의 다른 소설들처럼 이 소설에서도 상실을 이야기한다.

하루키의 소설의 주인공들을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들이다.


처음 우리나라에 하루키를 널리 알리 [상실의 시대(원제 :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친구의 죽음 이후 깊은 상실의 경험하는 이야기이다.

[태엽갑는 새]에서는 어느 날 오데코롱 향수를 뿌리고 나간 아내가 사라진 후 상실의 경험하는 이야기이다.

최근에 출간된 [1Q84]에서는 주인공 아오마메가 고가도록 계단으로 내려간 뒤 다른 세계 속으로 상실을 경험하는 이야기이다.

하루키의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어떤 종류든 깊은 상실을 경험한다.

그 상실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일 수도 있고, 어떠한 충격적인 사건의 경험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상실은 우물과 같은 어두운 공간 속으로 빠지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 책에서 마리의 언니 에리는 어느 날 잠을 자겠다고 이야기 한 후 깊은 잠에 빠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잠 속에 보낸다.

그리고 소설은 그녀를 카메라로 비추며 그녀가 텔레비젼 안의 공간에 갇힌 것으로 묘사한다.

하루키의 다른 소설에 나오는 상실 속에 갇힌 상황을 묘사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그녀는 마리와 소통하고자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고 혼자 깊은 상실의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마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책에서는 마리가 어떤 상실에 빠져있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보내고 있는 밤의 도시가 그녀가 빠져있는 상실의 세계이다.

소설은 다카하시의 말을 통해 그 세계의 형체를 그리고 있다.


 

"예를 들자면, 그래, 문어 같은 거야. 바다 속 깊은 곳에 사는 거대한 문어.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긴 다리 여러 개를 꾸불꾸불 움직여서 어딘가를 향해 어두운 바다 속을 나아가. 난 재판을 방청하면서 그런 생물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어. 그건 다양한 형태를 취해. 국가란 형태를 취할 때도 있고, 법률이란 형태를 취할 때도 있고. 더 복잡하고 성가신 형태를 취할 때도 있어. 잘라내도, 잘라내도 다리가 자꾸 생겨. 아무도 그놈을 죽이지 못해. 워낙 강한 데다, 워낙 깊은 곳에 사니까. 심장이 어디 있는지 그것도 몰라. 내가 그때 느낀 건 심한 공포였고. 그리고 아무리 멀리 도망친들 그놈한테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 같은 감정하고. 그놈은 내가 나고 네가 너라는 걸 조금도 생각해주지 않아. 그놈 앞에선 모든 사람이 이름을 잃고 얼굴을 잃어. 우리는 모두 한낱 기호가 되고 말아. 한낱 번호가 되고 마는 거야."

- 본문 중에서(P117-8)-

 

결국 하루키의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그들을 둘러 싸고 있는 거대한 상실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일단 그 세계로 빠져들어가면 나올 수가 없다.

그 세계 속을 헤매다가 모든 것을 상실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어둠으로 묘사되는 상실의 세계가 아침을 맞는다.

[1Q84]에서 아오마메와 덴코가 고가도로 계단으로 올라와 상실의 세계를 벗어나듯이, 이 소설에서도 찬란한 아침을 맞는다.

물론 하루키는 우리가 완전히 이 상실의 세계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암시한다.


 

"도망치지 못해" 다카하시는 초승달을 올려다보며 소리내어 말해본다. 그 말의 수수께기 같은 느낌은 하나의 은유로 그의 마음 속에 괴어 있게 된다. 도망치지 못해. 넌 잊어버릴지도 몰라. 우리는 잊지 않아. 전화를 건 남자는 말한다. 말의 의미를 생각하는 사이에 다른 어떤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한 말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어쩌면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P216)


새로운 하루가 바로 저 앞에 와 있지만, 낡은 하루도 아직 무거운 옷자락을 끌며 움직이고 있다. 바닷물과 강물이 강어귀에서 힘을 겨루듯 새로운 시간과 낡은 시간이 대항하며 하나로 뒤섞인다. 자신의 중심이 지금 어느 쪽 세계에 있는지 다카하시도 잘 가늠하지 못하겠다.(P217)

 



이 소설을 읽으며 오랫동안 상실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 온 작가의 삶이 느껴진다.

그는 힘겹게 싸워가며 독자들에게 희망을 이야기 해 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자신있게 희망을 이야기 하기엔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계가 너무 강렬하다.

다음 번 소설에서는 그가 상실의 세계에서 완전히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그는 그 세계를 헤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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