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안의 낯선 자들 버티고 시리즈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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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나에게 가장 충격을 준 소설은 도스트옙스키의 [죄와벌]이란 소설이었다.

[죄와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노코프는 자신이 나폴레옹같은 초인이고, 그러기에 인류의 이익을 위해 한 노파를 살해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나폴레옹과 같이 선택된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스스에게 말한다.

그리고 노파를 살해한다.

그 뒤 그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어둠의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는 때로는 자신이 위대한 일을 했다고 부축이기도 하고, 때로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몰아붙이기도 한다.

심지어 그 어둠은 악마의 형상을 하고 나타나서 그를 궁지로 몰아 넣기도 한다.

그 어둠은 라스꼴리노코프 안에 있는 어둠이자 그 자신이었으며, 도스트옙스키 안에 있는 어둠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금 [죄와벌]을 떠올리게 하는 충격을 받았다.

그 소설은 고전문학도 아니고, 순수문학도 아니다.

오래 전에 쓰여진 장르소설이다.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고전적 장르소설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작품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가이는 촉망받는 젊은 건축가이다.

어느 날 가이는 열차를 타고 가다가 라스꼴리노코프가 만났던 어둠과 만난다.

그 어둠은 브루노라는 이름을 한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이는 브루노의 도발적인 대화를 피하려하지만 점점 그의 대화에 말려 들고 만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미리엄이라는 여자와 이혼을 하러 가는 중이고,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으면서도 자신과 이혼을 해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브루로는 자신이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으며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완전범죄를 위해 서로의 대상을 교환 해 살인하자고 제안한다.

아무 연관도 없는 사람에게 살해를 당했기에 아무도 범인을 찾지 못한 완전범죄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가이는 브루노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를 떠나간다.

그러나 브루노는 혼자 그 제안을 실행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가이를 압박하며 그도 브루노의 아버지를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을 떠벌리겠다고 말한다.


이 소설에서 가이는 브루노에 대해서 계속 이중적이 모습을 보인다.

어떤 때는 브루노를 끔찍히 싫어해 그를 보자 마자 주먹질을 하며 달려든다.

어떤 때는 그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를 형제처럼 생각한다.

브루노는 가이의 다른 모습이었다.

억압된 가이의 내면에서 있는 어둠이었다.


자정 가까운 시각에 졸음이 오는 것 같았다. 가이는 혹시나 잠이 달아날까 두려워 옷도 벗지 않고 책상에서 곧장 침대로 갔다. 그는 꿈을 꾸었다. 매일 밤 잠을 청할 때마다 경계하는 듯한 느린 숨소리에 잠이 깨는 꿈이었는데, 이번에는 창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잠이 깨는 꿈이었다. 누군가 담을 타고 올라왔다. 박쥐처럼 커다란 망토를 두른 키 큰 남자가 갑자기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나예요"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가이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그와 싸우려 했다.

"누구냐?" 가만히 서서 보니 브루노였다.

브루노는 맞서 싸우기보다는 저항했다. 가이가 점 먹던 힘까지 짜낸다면 브루노의 어깨를 바닥에 밀어붙일 수 있었고, 계속 되풀이되는 꿈속에서 가이는 온 힘을 짜내야만 했다. 가이는 브루노를 바닥에 눕혀 무릎으로 고정하고 목을 졸랐지만, 브루로는 아무 느낌도 없는 것처럼 씩 웃고만 있었다.

"내가 누구냐고? 바로 너야." 브루노는 마침내 그렇게 대답했다.

- 본문 중에서(P227-228)-

 

 

브루노라는 어둠은 계속해서 가이를 공격하고 가이는 저항하기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가이는 점점 부루노라는 어둠에 의해 자신이 잠식 당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 안에 있는 두 가지 모습에 눈을 뜨게 된다.


가이는 마치 두 사람의 인격체 같았다. 하나는 신이 그를 창조했을 때처럼 조화롭게 창조하고 느낄 수 있는 인격체였고, 다른 하나는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인격체였다. "사람이라면 누구든 살인을 저지를 수 있어요." 부루노가 열차에서 그렇게 말햇었다. 2년 전 메트캐프에서 바비 카트라이트에게 캔틸레버의 원칙을 설명했던 사람은, 병원 건물과 백화점 설계를 하고 지난주에 정원에 놓인 의자에 페인트를 칠하며 30분 동안이나 색깔을 고민하던 사람은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어젯밤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모르고 지내던 형제 같은 살인자의 모습을 보았던 사람은 그럴 수 있었다.

- 본문 중에서 (P258)-

 

 

소설은 가이가 부루노의 아버지를 죽이는 장면, 그리고 그 후에 압박으로 인해 내면이 무너지는 장면을 아주 세심하게 표현한다.

도스트옙스키가 현대 심리소설의 아버지라고 불린다면, 페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범죄심리소설의 어머니로 불릴만 할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가이와 부루노가 느꼈던 압박감이 전해져서 지금도 마치 내가 쫓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읽은 최고의 범죄 심리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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