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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 - 인간 역사의 가장 위대한 상상력과 창의력 ㅣ Philos 시리즈 6
월터 아이작슨 지음, 신봉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3월
평점 :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와 같은 우리 시대의 천재들을 보면 존경심을 넘어 경이감마저 든다. '저들은 어떻게 저렇게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까?' '태어날 때부터 나와는 다른 천재성을 타고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좀 더 올라가서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예술가들의 생애나 그들의 작품을 접하면, 이들을 마치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치부해 버리곤 한다. 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나 [모나리자]와 같은 작품의 언급만으로도 그가 우리와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를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그가 생전에 만들었던 수많은 발명품과 시대를 앞서갔던 창의적인 생각들을 접하다 보면 '이 사람은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사람이다!'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월터 아이작슨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책을 읽으면서 위와 같은 생각들이 산산이 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월터 아이작슨은 스티브 잡스나 아인슈타인, 벤저민 프랭클린과 같은 위대한 창의성을 가진 사람들의 전기로 유명한 전기 작가이다. 그가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쓰면서 스티브 잡스가 가장 존경한 사람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이야기를 듣고, 다빈치에 대한 전기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동안의 고리타분한 천재성 예술가의 전기와는 전혀 다르다. ?이 책은 다빈치의 평범성에서 출발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의 핵심은 어떻게 평범한 인간인 다빈치가 천재가 될 수 있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저자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창조성의 원천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그의 노트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노트에 그림과 함께 필기했다. 한 장마다 빼곡히 그림과 글로 쓰인 그의 노트는 몇 만 페이지에 이를 것으로 추측하지만, 지금은 4분의 1 정도인 7200페이지가 전해져 온다. 저자는 당시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이렇게 기록해 두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현존하는 7200페이지 이상의 노트는 레오나르도가 기록한 전체 분량의 4분의 1 정도로 추정된다. 하지만 500년의 세월이 흐른 이 기록은 스티브 잡스와 내가 회수할 수 있었던 1990년대 잡스의 이메일과 전자 문서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레오나르도의 노트는 창조력 응용의 기록을 낱낱이 제공하는, 그야말로 놀라운 뜻밖의 횡재라고 할 수 있다." (P 150)

그곳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생각의 진화의 과정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는 처음부터 천재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갈고닦고 준비했음을 보여 준다.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 위해서 그가 끊임없이 그 작품을 위한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반복해서 연습하고 있음이 그의 노트에서 나타난다.
"이 노트의 아름다움은 막연한 생각, 반쯤 완성된 아이디어, 덜 다음어진 스케치, 윤색되지 않은 논문 초고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레오나르도의 널뛰는 상상력, 근면함이나 규율과는 거기라 먼 총명함과 잘 어울린다. 그는 종종 자신의 노트 메모를 정리하고 다듬어 책으로 내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예술 작품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과 꼭 닮았다. 그는 많은 그림 작품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논문 초고를 붙들고 가끔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거나 문장을 다듬었다. 그러면서 단 한 번도 완성된 글을 대중 앞에 내놓지 않았다" (P 152)

저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지식을 그대로 암기하고 주어진 일을 단기간에 빨리 완성하는 그런 천재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낙제점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을 발전시키고, 또 예전의 생각과 새로운 생각을 접목시켰다. 저자는 바로 이런 레오나르도의 창의성이 천재성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그가 이렇게 창의성을 가졌던 이유를 그의 출생환경에서 찾기도 한다. 그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공증인으로 유명한 가문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유명한 공증인들을 배출했고, 만약 다빈치도 사생아가 아니었다면 제도화된 교육을 받고 공증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생아였기에 12세가 되기 전까지는 피렌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했고, 제도화된 교육은 주판 교육이 전부였다고 한다.

이런 자유로운 어린 시절과 함께 12세 때부터는 아버지의 부름으로 피렌체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 당시의 피렌체는 모든 혁신적인 기술과 예술이 모인 곳으로 당대의 유명한 건축가와 예술가들의 모두 모여 있었다. 저자는 특히 레오라르도가 그 시대의 건축가인 저 브루넬리스키와 알베르티가 다빈치의 창의성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브루넬리스키는 얼마 전 알쓸신잡이라는 방송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독특한 아이디어로 피렌체의 대성당의 돔을 설계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 후 14세에 이르러 베르키오라는 화가 밑에서 도제 수업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 시기에도 그는 단순히 스승의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스승과의 협업의 과정에서 스승과 다른 독특한 창조성의 그림을 그렸다. 특히 [그리스도의 세례]라는 작품에서는 스승이 그린 생동감 없는 천사와 그가 그린 생동감이 넘치는 천사가 유달리 차이가 난다.
"두 천사를 비교해보면 레오나르도가 스승을 어떻게 뛰어넘었는지 알 수 있다. 베르키오의 천사는 멍해 보이고 얼굴도 밋밋하다. 유일하게 느껴지는 감정이라고는 자기 옆에 있는 훨씬 생동감 넘치는 표정의 천사에 대한 감탄뿐이다. 케네스 클라크는 이렇게 섰다. '그는 자기 동료를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방문자 처럼 처다보는 듯하다. 사실 레오나르도의 천사는 베로키오의 천사가 절대 진입할 수 없는 상사으이 세계에 속해 있다." (P 85)

그 후 이 책의 서론에서 나오는 대로 서른 살에 밀라노 통치자에게 편지를 보내어 밀라노로 이주하며 그곳에서 '최후의 만찬'이나 '모나리자'같은 대표작들을 그리게 된다. 특히 최후의 만찬은 동작의 한순간을 그리는 것을 뛰어넘어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가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하나의 순간 속에 담긴 동작을 묘사하는 것과 더불어, 레오나르도는 '모티 델라니마(moti dell'anima)', 즉 영혼의 동작을 전달하는 솜씨가 탁월했다. 그는 '그림 속의 인물들은 관람객이 그들의 태도를 통해 그 의도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방식으로 그려져야 한다"라고 했다. [최후의 만찬]은 이러한 금언이 잘 반영된, 미술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생기 넘치는 작품이다." (P 363)

또 최후의 만찬은 당시의 최신의 기법이 적용된 그림이다. 그 기법을 소실점이다. 당시에는 막 원근법이 발전되기 시작했고, 레오라르도 다빈치는 소실점을 통해 그 원근법을 완성한다.
"[최후의 만찬]의 원근법에서 단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소실점이다. 레오나르도는 이것을 '모든 선이 모여드는 하나의 점'이라 했다. 이렇듯 멀어지는 선들은 예수의 이마를 향한다. 레오나르도는 이 그름을 그리기 시작할 무렵, 벽면 중앙에 작은 못을 박았다. 우리는 예수의 오른쪽 관자놀이에 뚫린 못 자국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방사선상으로 퍼지는 가느다란 선들을 벽면에 새겨 넣었다. 이것은 천장의 들보, 태피스트리 꼭대기 부분 등 가상의 방 안에서 서로 평행하는 직선을 잘 보여주고, 이 직선들은 점점 멀어지면서 그림 속 소실점으로 수렴한다." (P 368)

이 책을 읽으면서 김태훈의 책보다 여행이라는 팝 케스트를 통해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들었었다. 방송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창의성을 얻은 과정을 이야기하며 한국의 교육과정을 이야기한다. 한국을 비롯해 현대인들이 배우는 교육은 근대이후 지도자의 명령에 복종하는 노동자와 군인 등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성보다는 주입식 암기 교육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이런 교육을 받다 보면 창의성이 사라지고, 현실에 주어진 일만 빠르고 능률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되어간다고 말한다. 이것이 한국에서 교육을 받으면 천재도 평범한 사람이 된다고 한탄하는 이유일 것이다. 아마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으면, 학업 부적응자로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천재성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창의성을 개발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노트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창조성을 개발했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와 방식으로 정리하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단순히 한 명의 위대한 천쟁의 일생을 따라가는 전기가 아닌, 인간의 창조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다루고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