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타 할머니의 우아한 강도 인생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어릴 적에는 위인전들을 좋아했다. 그중에서 가장 좋아한 인물은 나폴레옹이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를 외치며, 이각 모자를 쓰고 알프스 산을 넘는 나폴레옹의 모습은 동경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나폴레옹의 말년을 읽을 때면 어린 나이에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한때 러시아까지 진격해서 세계를 점령할 것 같았지만, 노년에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외딴 섬에 갇혀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결국 나폴레옹을 죽인 것은 적군도 아니고, 러시아의 추위도 아니었다. 노년의 황량함과 쓸쓸함이 나폴레옹의 생명을 서서히 잠식해 들어갔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말년의 나폴레옹 이미지가 계속해서 떠오른다. 늙어간다는 것은 젊을 날의 열정과 의지들이 점점 자신 안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닐까? 남는 것은 나이 든 육체와 주변의 쓸쓸함과 황량함 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가끔 요양병원에서 아무런 소망이 없이 주저앉아 있는 노인분들을 보거나,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병상에 누워 있는 나이 드신 분들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내 안에서 젊었을 때 뜨거웠던 열정과 의지들이 빠져나가려 할 때마다 몸부림치며 이것들을 붙잡게 된다.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가 쓴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를 읽을 때면, 육체의 나이 듦에 저항하여 끝까지 자신만의 열정과 의지로 살아가는 노인들을 만나게 된다. 메르타 할머니와 그의 친구들인 천재, 갈퀴, 스티나, 안나 그레타가 그들이다.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는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로 시작해서 [메르타 할머니, 라스베이거스를 가다]에 이어 3편인 [메르타 할머니의 우아한 강도인생]으로 이어지고 있다. 1편에서 메르타와 노인들은 요양원의 무료하고 소망 없는 삶에 순응하기를 거부하고, 다른 삶을 살고자 한다. 그 다른 삶이라는 것이 바로 감옥이다. 메르타가 생각하기에 요양원의 삶이 감옥의 삶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감옥에 가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처음에는 고급 호텔에 투숙하면 스파의 캐비닛의 귀금속을 터는 정도가 고작이었는데, 점점 스케일이 커지더니 결국에는 박물관의 그림을 턴다. 그것도 르누아르와 모네의 작품을... 2편에서 노인들은 라스베이거스로 여행을 떠나면서 우여곡절의 여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3편에서 노인들은 스케일이 커졌다.

3편에서는 시작부터 노인들의 은행털이가 시작된다. 소설의 초반에 노인들은 대형 쓰레기차를 몰로 은행을 턴다. 폭탄으로 금고의 문을 폭파시키고, 쓰레기 흡입기로 돈과 보석들을 흡입한다. 물론 모든 작전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흡입기의 버튼을 잘못 조작해 흡입했던 돈을 다시 토해내기도 하고, 경찰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지독한 청어 냄새의 쓰레기를 사방에 뿌려대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대형 쓰레기차를 잘못 주차시켜, 이웃집 수영장으로 처박아 버린다. 수습하는 스케일도 남다르다. 수영장에 빠진 증거품인 쓰레기차를 처리하기 위해 수영장을 콘크리트로 매립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노인들의 강도행각은 의도하지 않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

콘크리트로 메꾼 이웃집 수영장을 해결하기 위해, 이웃집 주인에 대해 조사하던 그들은 깜짝 놀랄 사실을 알아낸다. 이웃집 주인이 희대의 사기꾼이자 어마한 조세포탈꾼임을 안 것이다. 그에 비하면 지금까지 노인들의 강도행각은 오히려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꿈인 노인마을인 빈티지 마을을 세우기 위해 이웃집 주인의 요트를 훔치기로 결정한다.

3편에서는 커진 스케일과 함께 노인들의 목적의식과 사회비판적인 생각도 분명해진다. 그 전에 메르타와 노인들은 단순히 양로원의 무료한 삶이 싫어서, 또는 일탈을 꿈꾸면서 강도행각을 저질렀었다. 그러나 3편에서 이들이 은행을 털고, 요트를 훔치는 데는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다. 그들은 빼앗은 돈으로 병원과 복지시설 등에 돈을 나누어 주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 훔친 돈을 손세탁하기 위해 카리브 제도의 은행으로 보내는 일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궁극의 목적이 있다. 그것은 노인들만을 위한 노인 마을을 세우는 것이다. 노인들이 여유롭고 우아한 여생을 보낼 수 있는 노인마을, 일명 빈티지 마을을 세우는 것이 메르타 할머니의 꿈이다. 또한 전편에서보다 더 강한 사회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 곳곳에서 관료들의 탁상행정으로 통한 엉터리 복지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다.

"메르타는 할 수 없이 옆에 있는 빈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눈물이 나려고 했다. 사회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지도자들이 현실과 만나지 않고 사무실 책상 앞에만 앉아 있었다. 은행을 털어서 부정한 돈을 빼내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은, 이런 부조리로 인해 생긴 틈을 메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잘못되어 가고 있는 현대 사회의 기반 자체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 모든 것 속에 개인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관공서들이 돈벌이 사업을 하고, 시장과 도지사들은 이익만 남기려고 한다. 그들이 내린 결정이 돌물들이 아닌 바로 인간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그들은 잊고 있는 것일까? (P 317)"

그래서인지 3편은 전편에 비해서 분위기가 조금 무겁다. 항상 긍정적이고 유모가 넘치는 메르타 할머니도 3편에서는 조금 지쳐 보인다. 강도 생활이 힘든 것이 아니라, 그 강도 생활을 통해 얻은 돈을 가지고 세상의 방식과 타협하지 않고 돈을 나누어 주려고 하다 보니 힘든 문제가 닥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메르타와 노인들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과 싸워간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현실에 순응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젊었을 때는 작은 불합리에도 분노하고 대항하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세상이 다 그런 거지!'라는 말로 세상과 싸우기를 포기한다. 그러면서 꿈을 잃어간다. 세상이 정해 준 대로 열심히 직장을 다니고, 통장에 돈을 불리고, 아파트를 사고, 노후를 준비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모두들 늙어가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늙었어도 세상의 불합리에 분노하고, 세상을 바꾸려는 꿈을 가지고, 자신 안의 열정과 의지를 가지고 몸부림을 가지고 싸우는 사람은 늙은 사람이 아닐 것이다. 반면 아무리 젊었어도, 세상에 순응하며, 꿈과 열정을 잃어가는 사람은 그 안에서 이미 늙음에 지배 당하는 사람일 것이다. 메르타 할머니처럼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꿈을 가지고 세상에 도전한다면 노후도 멋진 삶의 일부분이지 않을까? 내가 재미있는 소설을 너무 무거운 시각에서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메르타 할머니의 우아한 강도인생]에서 점점 사회적인 책임감이 강해지는 메르타 할머니를 만나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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